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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Mar 22. 2020

준비된 작품 있니?

다시 출발선에 서다

"혹시 준비된 작품 있니?"


선배가 전화로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내 컴퓨터 속 폴더 안의 여러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였고, 공개할 곳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꾸역꾸역 써서 쌓아놓은 작품들이었다.


"네."


있다마다요, 차고 넘칩니다. 


"그래? 그럼 연재 좀 할 수 있겠어? 갑자기 한 자리가 비어 가지고......"


그 당시에도 나는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건실한 직장인이었는데 동료들은 물론이요 대표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야근은 밥먹듯, 출장은 그보다는 조금 더 적게 다녀오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점점 올라가는 전세를 감당하지 못해 서울 외곽너머 아예 경기도의 다른 도시로 밀려나 왕복 4시간 정도 걸려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내게는 소설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딱히 써야 할 이유도 없었다.


장르 소설은 문단이라는 개념이 없다. 지금이야 각 장르에 따라 여러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당시에는 소설 쓰는 개인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소설을 썼지만, 그리고 출간도 했지만 문단에서는 나 같은 작가는 알지도 못했다. 그나마 이영도를 필두로 판타지 붐이 일었고, 이우혁이 <퇴마록>을 통해 장르 소설의 확장 가능성을 알리기는 했지만 무명에 가까운 장르 소설가에게 출판계는 여전히 차가운 곳이었다.


문단, 즉 대표할만 한 단체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없다는 소리이고 대중이나 출판사 모두 관심을 덜 가진다는 소리이며 결정적으로 작가가 보호받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장르 단편소설은 아무리 써봐야 발표할 공간이 없었고, 국내 장르 작가의 장편소설은 팔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출간도 잘 해주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출판사들이 하나둘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했고 고생하며 길을 닦아놓았던 선배들이 서서히 빛을 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내게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대학 시절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원론 수업에서 A+를 받은 내 현명한 판단으로 보자면, 안 쓰는 게 더 이득이었다. 쓸 이유가 없었다. 돈도 안 되고 명예도 안 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시간과 체력을 투자하는 건......


아주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썼다. 


나는 출퇴근 왕복 4시간 동안 거의 지하철을 탔는데 높은 확률로 앉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노트북을 꺼내 무릎에 올려놓고 소설을 썼다. 혹 앉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아이디어 수첩에다가 떠오르는 소재나 문장 같은 것들을 마구 써내려갔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뚜렷한 목표가 있던 건 아니었다. 열정으로 불타올라 그렇게 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열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잘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출퇴근 시간 내내, 그리고 밤에 잠까지 줄여가며 거의 매일 썼던 이유는 내가 그걸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장르 소설에 대한 사랑, 그게 내 유일한 동력원이자 슈퍼 파워였다.


 




내가 그 시절을 행복하게 회상하는 이유는 의무감이나 돈 때문이 아닌 오직 순수한 애정만으로 소설을 쓴 거의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절에 쓴 내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장르 소설에 대한 연애편지나 다름없다.


종종 질문을 받는다. 이 힘들고 짜증나고 어렵고 머리 아프며 돈도 안 되는 일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는 비결이 뭐냐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소년만화의 진부한 원칙주의자 캐릭터 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과 용기가 필요해요."


정녕 그게 없다면 이 바닥에서 작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옛날 나는 장르 소설을 지독하게 짝사랑하며 무작정 쓰기만 했는데 그 무모했던 행동 덕분에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소설 연재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거기, 잔뜩 쌓아놓은 작품들, 무수히 많은 작품 폴더 안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쓰는 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후에 또 이야기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참으로 다양하고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공간에서도 글을 썼으니까.


한 번의 기회는 운이 좋아 잡을 수 있다 해도 두 번째 기회는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이 땅의 많은 장르 소설가들과 그 지망생들은 여전히 기약 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여전히 시장은 좋지 않고 책은 점점 덜 팔리니까. 그럼에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반드시 기회는 찾아오리라. 물론, 장담은 못하겠다. 영원히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이 사랑과 용기이다. 그걸 동력 삼아 글을 써왔다면 설령 기회를 잡지 못한다 해도 후회가 덜 하니까.


연재를 한다는 건 곧 장편소설을 쓴다는 의미였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 장편소설을 쓸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실력에 자신감이 없기도 했고, 장편소설을 쓴다는 건 또 다른 에너지와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폴더 속에는 장편소설로 풀어낼만 한 이야기가 몇 개 있긴 했지만 막상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 재미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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