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예지
“이게 뭐지?”
“글쎄, 얼마 후에 뭔가 대단한 우주 쇼가 펼쳐진다는 소리 같은데….”
우리는 오사카 시립과학관 입구의 게시판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낯선 언어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뜻을 해석하고 있는 그녀의 눈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그저 그런 삽화와 난잡한 글씨들의 조합일 뿐인데, 그녀는 이를테면 그 안에서 어떤 법칙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결국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는지 과학관 관계자로 보이는 인상 좋은 아저씨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쓰미마생,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녀가 서글서글한 눈매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멀뚱하게 서서 포스터 속 이미지를 바라보았다.
‘지구’와 ‘화성’이라고 적힌 한자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 것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아리가또,라는 단어로 대화를 끝맺을 때까지 한 옥타브는 낮은 아저씨의 웅얼거림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 생활 반 년 만에 과도하게 친절한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화성대접근. 곧 있으면 지구와 화성이 최단 거리로 가까워지는 날이 온데. 오만여 년 만에. 날짜는 아마 팔월 중순쯤이 될 것 같다고 하네. 음,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기쯤 되려나?”
그녀는 앙증맞은 푸 캐릭터가 프린팅 된 손수건으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나름대로 귀한 성과물을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흡족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게시판 앞에 비치된 팸플릿을 들고 시립박물관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오사카의 기온이 최대치로 올라가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도시엔 가을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너와 난 같은 극점이야.
텐노지역 근처의 라면 체인점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의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려고 할 때쯤 잠자고 있던 그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나는 곧잘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 적이 있다. 멍한 시선으로 라면을 먹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금세 일그러졌다.
“너, 또 그 놈팡이 생각 중이지?"
-극점이지만, 남극은 얼음 덩어리고 북극은 바다잖아. 위치 역시 정반대고.
그가 이런 식으로 이별의 뜻을 내비치려 하는 구나, 생각했다. 우습게도 그 순간의 나는 어쩌면 영원히 그의 앵두 같은 입술에 입맞춤 한번 해보지도 못할 거라는 사실에 억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이대로 관계를 끝낼 수 없어서 도망치듯 비행기를 탄 것이다. 그녀는 진저리 난다는 얼굴로 도리질을 하더니 아르바이트생에게 시원한 물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미수야,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이별이라는 성질이 아냐.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면 나로선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지. 여전히 난, 너에게 순도 100% 친구의 감정으로 끌리고 있는 걸.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노래는 몰라도 장정일을 좋아한다거나, 보르헤스의 난해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네 모습이 좋았기보다, 황송하게도 나처럼 배배 꼬인 꽈배기 같은 인간을 다림질해주려고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야, 우린. 넌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 이를테면 한계선이 있다는 걸 말이지. 남극과 북극 사이에 일 년 내내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적도가 있는 것처럼. 우리 사이에도 메울 수 없는 절대적 간격이 있다는 거야. 하다못해 기호의 차이도 그렇잖아?”
사실 그의 말에 내포된 뜻이 완전한 이별의 말이 아니라서 눈물이 났다. 나는 그에게서 당분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오사카 시립 과학관은 이를테면, 즉흥적으로 떠난 일본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나는 다시 내 일상이 잠자고 있는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꾸리고 갔던 짐들은 해체되었고, 막바지 여름 속에 내 몸의 감각들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 버렸다. 돌아왔음을 알리는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보이프렌드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이 울리는 것으로 보아 그의 여름 역시 막바지 발악 중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화성 대접근 사실만은 또렷이 기억했다. 다음 대접근은 284년 뒤라고 했다. 지금 확인하지 못하면 끝내 지구와 화성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다음 대접근이 있을 284년 뒤까지 산다는 건 무리니까. 어쨌든 내 눈으로 그 황홀한 접근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날 밤을 홀로 맞았다. 그는 이 장구한 우주 쇼가 펼쳐지는 밤, 허름한 반 지하방에서 그의 연인과 게으른 섹스를 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육안으로 확인된 화성 ‘그’는 코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 아주 가까운 거리에, 그러나 아주 작고 작아 감히 만질 수 없는 별로. 어쨌든 지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보다는 더 큰 행성의 모습으로. 그 뿐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본 검은 하늘에 뜬 화성은, 단지 아주 가까운 거리로 접근했을 뿐이다. 대접근이라 명명되었지만, 오만 오천 킬로미터의 어마어마한 간격을 유지한 채….
그와 나 사이도 그즈음일까? 그는 이제까지 만난 여자 중에 가장 자신의 이상형에 가깝다고 했다. 자신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그가 남자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지구와 화성만큼의 간격을 유지한 채 살아야 할 것이다. 284년이 지나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