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막히는 순간을 겪는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고, 글쓰기가 유독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2년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나 역시 매번 같은 감정을 느꼈다.
자주 막혔고, 쓸 이야기가 없다고 느꼈으며, 글쓰기를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 권의 책과 한 명의 롤 모델을 만나면서 글쓰기에 다시 생명력이 생겼다.
만약 지금 쓰는 글이 매일 비슷하게 느껴지고, 글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롤 모델을 정하고, 그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자.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글감과 새로운 문체를 배울 수 있다.
나는 글쓰기 슬럼프를 겪을 때 이러한 방식으로 극복해왔다.
최근에는 클레어 키건의 작품 덕분에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작가의 문장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2. 나의 생각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는 표현은 계절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느꼈다.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다는 문장은 시간의 이동이 아니라 삶의 국면이 바뀌는 순간을 암시하는 듯했다. 11월의 바람이 나무를 벌거벗겼다는 표현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개입이나 폭력적인 변화를 떠올리게 했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어떤 불길한 사건을 암시하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흑맥주처럼 검어진 강이 빗물에 불어났다는 문장은 누군가의 눈물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과 달리, 작가는 이 첫 문단을 통해 임신한 채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 나는 이 책을 세 번이나 읽게 되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어떤 글은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감정과 직관으로 접근해야만 열리는 글도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배웠다.
이 소설은 1985년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착취 기관 ‘막달레나 세탁소’를 고발한다. 그 속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는 일상을 '펄롱'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명한다.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복선은 유리알처럼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한 번의 독서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책 속에는 여러 번 읽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단어들이 숨은 보화처럼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3. 훔치는 글쓰기
10월에 하늘은 어둠으로 바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몸은 발가벗겨진 채였다. 나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뉴타운의 불빛만이 창을 통해 희미하게 비칠 뿐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은 집 안으로 떨어지며 적막을 더했다.
사람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럭저럭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우시장과 커피숍, 슈퍼마켓과 술집에는 사람들이 모여 추위와 비에 대해 의미 없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어머니들은 빨래를 내다 걸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추위를 이미 받아들이고 묵묵히 기도하고 있었다.
클레어 키건은 첫 문단에서 임신한 채 물에 뛰어든 착취 여성을 암시했다. 나는 그와 달리 착취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같은 사건이라도 관점에 따라 글의 흐름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훔치는 글쓰기’란 작가의 시선을 뒤집는 것이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면 1인칭으로 바꿔보고, 사건의 시간이나 배경을 달리 설정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일랜드가 아닌 한국을 배경으로, 다른 시대의 착취 여성 이야기를 써보는 시도 역시 가능하다.
시점, 시간, 배경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글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 매일 비슷한 글을 쓰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문체를 모방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슬럼프가 오는 이유는 대체로 인풋의 부족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이다. 좋은 독자가 되지 않으면, 좋은 작가도 될 수 없다.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 모방해보자.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고, 시점의 변화를 주어 다시 써보자. 그러한 시도들이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글쓰기로 성장하게 된다.
SNS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결국,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 거인의 어깨는 이 세계에 차고 넘친다. 작가가 제일 먼저 시도해야 하는 것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문장을 찾는 것이다. 그런 문장을 사용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그 문장을 끊임없이 써서 무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좋은 글을 쓰려고 하는 마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을 변화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문장을 끊임없이 쓰고 읽으면서 그것을 체화시키는 것이다. 반복하면 인간의 뇌는 믿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이 자신의 삶이 되는 기적을.
사람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글쓰기를 배우려고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글을 볼 때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리는지 먼저 자신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계속해서 필사하며 쓰는 것이다.
반복에 지치지 않고,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일류의 조건>에는 일류가 되는 방법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했다.
"동경을 동경하는 마음"이 어제의 나를 새로운 나로 탄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