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유배지에서 18년을 보내며 마음에 새겼다고 전해지는 말이 있다.
“하늘이 내게 내린 재앙은 나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단련시키기 위함이다.”
이 문장 하나에 그의 태도가 담겨 있다. 시련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고독은 그를 깊게 만들었다.
정약용은 정조 시대의 총애를 받던 학자였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즉위하자 노론 벽파 세력에 의해 정치적 숙청을 당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명예도, 자리도, 권력도 사라졌다. 강진 유배지. 그곳에서의 18년은 벌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이었을까.
그는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바르게 사는 것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하루를 바르게 사는 것. 억울함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읽고, 쓰고, 사유하는 일에 집중했다.
고독의 시간 속에서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개혁서를 남겼다.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권력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그는 조선을 설계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 계속 걸어갔다.
그 안에 길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알았다. 사람이 몰라줘도 하늘은 안다는 것을.
정약용은 조급하지 않았다. 당장의 억울함보다 시간이 증명해 줄 진실을 믿었다. 그의 태도에서 니체의 문장이 떠오른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다.”
시대는 달라도 통하는 문장이다. 니체의 말과 다산의 말은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단련이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인생을 결정한다. 우리는 고난을 없애려 한다. 하지만 그는 고난을 해석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그 질문이 인생을 갈라놓았다. 유배 18년은 그의 추락이 아니라 완성이었다. 더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졌다.
시련은 사람을 멈추게 할 수도 있고, 사람을 깊게 만들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선택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이 한 문장에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하루를 바르게 살면, 하루가 달라지고 그 하루가 쌓여 인생을 바꾼다.
고난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그 시간을 통해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견디며 다져진 사람은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된다. 그 시간을 버틴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덕분에 완성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