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실패했을 때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조금 두려워졌다. 괜히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로 도망쳤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중남미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에 갔다. 한국에서 16시간을 날아 도착한 마을의 이름은 Santa Maria Ostuma.
마을 풍경은 마치 오래된 사진 같았다. 길가에는 노숙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그냥 한국에서 취업할걸.”
해외봉사라는 말이 주는 낭만은 그곳의 현실 앞에서 금방 사라졌다. 그때의 나는 조금 지쳐 있었고 외로웠다.
어느 날 한 소년이 찾아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파인애플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아론, 이거 먹어.”
“이게 뭐야?”
“우리 아버지가 농사지은 거야.”
“너 이름이 뭐야?”
“파블로.”
소년은 이름을 말하고 수줍게 웃으며 달려 나갔다. 그게 우리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나도 선물을 하나 건넸다.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였다.
“이거 한국 과자인데 가져가서 먹어.”
소년은 바나나킥을 가슴에 품고 환하게 웃었다. 그날 이후 그는 나에게 파인애플을 주었고 나는 그에게 바나나킥을 주었다.
그 단순한 교환이 2년 동안 계속되었다. 우리는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서로의 삶을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다. 그는 파인애플을 들고 왔고 나는 과자를 건넸다. 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어느 날 나는 그의 집에 초대되었다.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 페드로를 만났다. 파인애플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농사하면서 무엇이 제일 힘드세요?”
내가 묻자 그는 짧게 말했다.
“농약이 부족해.”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파블로의 아버지였다. 고된 노동이 그의 시간을 조금 더 빨리 늙게 만든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수도로 올라가 상황을 설명하고 프로젝트를 요청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지원이 승인되었다. 마을에는 몇 년 동안 사용할 농약이 전달되었다. 페드로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정말 고마워.”
그의 눈물이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생각보다 큰 기쁨이라는 것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타지에서 파블로는 자주 찾아왔다. 항상 파인애플을 들고. 그 파인애플 하나가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인간관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서로에게 실망을 주면 안 되고
관계를 잘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계는 점점 조심스러운 일이 된다. 하지만 파블로와의 관계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는 그냥 파인애플을 들고 왔다.우리는 서로에게 큰 것을 준 적이 없다. 그는 파인애플을 주었고
나는 과자를 주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좋은 친구란 내 인생을 바꿔주는 사람이 아니라 힘든 날 파인애플 하나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가끔
친구가 그리운 날이 있다.
그럴 때면 파인애플을 들고 웃던
그 소년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