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숨이 막히는 사람이 있다

by 아론의책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한 행복 심리학자가 MC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상에서 가장 비호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화면을 보며 함께 생각했다. 행복지수가 높다는 북유럽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가장 불편해할까.


잠시 후, 서은국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20년 전의 한 친구가 떠올랐다.




대학시절, 나는 술자리 모임에 잘 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밀려났다. 대신 나처럼 조용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한 친구는 달랐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저 사람 옷 스타일은…”
“이 정도 음식점은…”


말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늘 ‘기준’이 있었다. 세상을 은근히 점수 매기는 태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은 조용히 아래로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괜히 나까지 예민해졌다.


비교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비교하게 되고, 의식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의식하게 됐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친구와 함께 하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겠다.’ 그 이후로 나는 그가 있는 자리를 피했다.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일상의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그냥 불편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다가 알게 됐다. 나는 ‘평가받는 느낌’이 싫었던 것이다. 세상이 줄 세워지는 공기가 답답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점수표 위에 올려놓는 기분. 그건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혹시 나도 누군가의 삶을 쉽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겉모습만 보고, 말 몇 마디만 듣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지는 않았을까.


평가는 빠르다. 이해는 느리다. 평가는 나를 우위에 두고, 이해는 나를 낮춘다. 그래서 아마 행복은 이해 쪽에 더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20년 전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오늘 나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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