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무언가 다른 인생이 펼쳐질 줄 알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특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한 사람과의 관계는 나를 지치게 하였다.
"왜 저러는 거지?"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늘 버퍼링이 걸린 사람처럼 버벅거렸다.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난 꽤나 노력을 했다.
"왜 저래 노잼이야"
노력을 하면 노잼이라고 말하고, 말을 안 하면 말 좀 하라고 하고,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나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스무 살이 되어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알았다.
너무나, 힘든 인간관계 때문에 나는 병에 걸렸다. '열등의식'이라는 무서운 병.
다른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렸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내가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삶. 가면을 쓴 삶을 살았다.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바타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만날 수 있다면 이 글귀를 전해주고 싶다.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려 든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가치가 될 뿐이다."
웨인다이어의 이 글귀를 스무 살의 나에게 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몰랐다. 다른 사람이 나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가치를 정한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구하려 하는 사람은 나의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20년을 돌고 돌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로서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완벽주의에 허상을 버리고, 초라하고 부족한 내 모습 그대로 세상을 마주할 때, 세상은 나를 위한 길을 내어준다. 내가 완벽하려 할수록, 더 큰 벽이 나를 막아 세움을 경험하고 나서야 이 진리를 깨달았다.
타인을 위한 인생에는 길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길의 끝은 후회만이 남는다. 중요한 건 내 마음과 생각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진솔하게 글로 담는 것. 그것은 그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보다 강렬한 글귀를 만들어 낸다.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 책이 아니고,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꾹꾹 써낸 글귀들이다. 그런 글귀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누군가의 가슴에, 누군가의 심장에, 누군가의 온몸에 타고 흘러간다.
크로노스를 사는 인간들에게는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고, 유명하지 않은 책으로 또는 글귀로 끝나겠지만, 카이로스를 사는 인간들에게는 영원의 시간추를 흔들면서 함께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확고하게 믿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은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고 믿기에 존재한다. 생각을 넘어 자신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 실체를 이룰 것임을 믿는 강한 신념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이 믿음이 암시의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기 암시의 세계로 이끈다. 매트릭스 세계에서 주어진 시스템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각성시킨다.
타인이 만든 세계에서 경쟁하고 비교하는 존재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가진 숭고한 존재로 만들지 모른다. 플라톤이 말한 이상적 철인이 그와 같은 존재는 아닐지 모르겠다.
니체는 말한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라, 아무리 보잘것없고 자랑할 것이 없어도 응원하라"
니체의 글귀를 통해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만나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로 얼룩진 세상에서 그 얼룩을 걷어내고, 나만의 가치를 발현시키는 일이 글쓰기에 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지 글로 쓸 때, 무의식에 세계에서 나를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의식에 세계로 초대할 수 있다.
그때, 나는 마주한다. 내가 이런 거에 상처가 있었고, 내가 이런 거에 기쁨이 있었고, 내가 이런 거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나를 치료하고 발견하고 창조하게 된다. 조지 버나드 쇼는 말한다 "삶이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매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톱니바퀴의 부속품에서 린치핀으로 변주하는 중이다.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2024년 2월 나는 백수였다. 마흔에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친 백수. 그 어떤 곳에서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버려진 존재. 자본주의 패자였다.
그랬던 내가 1년이 지나고 사람들에게 작가로 불리고 있다. 매일 책을 읽었고,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귀하고 가치 있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나보다 부족하거나 또는 나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그 생각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예술가가 되고 작가가 될 수 있다.
글쓰기는 지성과 교양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글쓰기는 내 가슴과 영혼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나는 네가 되고, 너도 내가 될 수 있는 위로와 공감이 글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이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단 한 사람에게라도 가슴에 남기를 바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