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읽고 쓰는 글의 90퍼센트를 이루는 것은 에세이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주체되지 못하고 정보만 나열하는 글을 제외하고 가장 비중이 큰 글이 에세이인 셈이죠.
오늘 제가 쓰는 글 역시 제가 느낀 것을 마음으로 표현하는 에세이입니다.
그렇다면, 쓰는 사람이 있고 읽는 사람이 있는 글 중에서 왜 에세이가 유독 사랑받을까요?
그 이유는 에세이 글쓰기의 자유로움 때문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에세이 글쓰기의 자유로움이 때로는 글쓰기의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규칙 없는 자유가 방종이 되듯 정의 없는 글쓰기는 미아 같은 글이 되어버리니까요.
정의 내리지 않은 글은 자신의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음을 말하고,정리되지 않음은 독자에게 혼란스러운 언어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사람을 닮아 있습니다. 한사람이 삶을 대하는 자세가 글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에세이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명확한 정의가 있다면, 글은 독자에게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저는 에세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알게 된 것을 마음이 움직여서 쓰고 싶은 글"
아마도 제가 지금 말하는 것처럼 에세이를 정의 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세이를 정의내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에세이 글쓰기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에세이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세이의 시작이라 불리는 몽테뉴에 '수상록' 역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에세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는데, 오래전부터 한자로 '수필(隨筆)'이라 불렸습니다.
수필의 뜻을 풀어보면 '생각나는 대로 붓에 맡겨 쓴 글'이죠. 너무나 편리한 붓 아닐까요? 어디서 파는지 알 수 있다면 저부터 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정의가 와닿지 않아 저만의 방식으로 정리했습니다.
"내가 오늘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 중 내 마음에서 쓰고 싶다고 느끼는 것을 쓰자. 그것이 진짜 에세이다."
저는 이와 같이 정의를 내리고 글쓰기가 쉬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만의 에세이 정의가 만들어지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 경쟁, 글감 논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브런치에 쓰고 있는 글의 대부분이 에세이입니다. 일상에서 느낀 것을 마음을 담아 쓰는 글, 곧 일상이 글감 그 자체가 됩니다.
ex)
아내와 함께 카페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많아 자리를 찾지 못해 두리 번 거릴 때 누군가 다가왔다.
"잠시 메뉴판을 보고 계시면 자리가 생기는 대로 안내해 드릴게요"
따뜻하고 상냥한 사장님의 목소리 덕분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자리가 없어 나가려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고 메뉴판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따뜻한 사람을 만날 때, 그 공간은 머물고 싶은 장소가 된다.
제가 어제 카페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을 마음에서 쓰고 싶다고 하여 오늘 글로 남기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글이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커피를 마신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친절한 사장님을 만나면서 느낀 감정을 기록할 때 공감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로 쓰여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공감은 분주해 보이는 카페 모습에 실망하며 떠나려고 하는 저에게 사장님이 따뜻하게 건넨 말 한마디였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그 한마디를 듣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이 다정한 한마디에 마음을 열고 기다려줄 수 있는 분들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싫은 사람을 만나면 메모를 합니다. 좋은 에세이스트가 되기 위해,느낀 것들을 핸드폰에 적어둡니다.
그 메모가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되니까요.
에세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메모는 필요가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관찰 한 아이디어를 간직하는 힘이 메모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메모는 마르지 않는 글감이 되어 좋은 글로 탄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