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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Nov 11. 2020

[사례13] 시누이로 인한 ‘피해망상’ 1화



[사례13] 시누이로 인한 피해망상



30대 후반 부부가 상담소를 방문했다. 이유는 아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밖에만 나가면 누군가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던가, 사람들이 따라온다던가, 집에 누가 몰래 들어왔다가 나갔다며, 자꾸 벌어지지도 않는 말을 했다.


그렇게 아내를 감시하고 따라다닌다는 대상은 바로 ‘시누이’였다. 남편 위로 누나가 5명, 여동생이 1명 있었는데, 그중 첫째 시누이가 자기를 계속 괴롭힌다는 말이었다. 첫째 시누이는 아내와 20살 차이가 났는데, 아내는 첫째 시누이를 큰고모라 불렀다.


아내는 이 큰고모가 늘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는데, 남편은 지금 당장 보이지도 않는 큰고모가 어떻게 당신을 괴롭히냐고 따졌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왜 내 말을 믿지 못하냐?”고 소리쳤다. 매일 이런 식으로 싸움이 벌어지니 남편은 아내에게 상담을 받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거부했다. 큰고모가 자기를 괴롭히고 사람들을 통해 감시하는 걸 어떻게 상담소가 해결해 주냐는 말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전문가 이야기를 들으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아내를 지속해서 설득했고, 그 결과 겨우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상담소에 온 내담자(아내)는 한눈에도 굉장히 지쳐 보였다. 원장님은 내담자에게 각종 검사지를 건네주었다. 잠시 후, 결과가 너무나 심각하게 나왔다. 한마디로 내담자는 이미 조현병이 강하게 온 상태였다. 피해망상은 물론이거니와 환시로 큰고모를 보는가 하면, 자신을 감시하는 불특정 다수를 보기도 하고, 환청은 당연하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음해하거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큰고모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자신을 골탕 먹이려 합세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내담자를 보아왔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환경프로파일 검사지를 보며 과거에 내담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물었다. 그 결과 내담자는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하면서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 전이었다. 내담자와 남편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사귀다가 결혼을 했다. 하지만 둘 다 사회 초년생이라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아 시댁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댁에는 시부모님과 막내 시누이가 함께 살았고, 근처에 몇몇 시누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남편이 회사에 취직했는데, 지방으로 발령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주말에만 집에 오게 되었는데 도저히 신혼생활을 즐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이유는 주말만 되면 근처에 사는 시누이들이 시댁에서 다 같이 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담자로서는 남편과 단둘이 보낼 시간이 나지 않았고, 주말이 끝나면 남편은 또 일하러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러던 중 서서히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첫째 시누이인 큰고모가 아침만 되면 시댁에 찾아와 사사건건 내담자를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컨대 아침을 차려서 시부모와 함께 밥을 먹고 있으면, 큰고모는 이걸 먹으라고 차린 거냐며 타박했다. 넌 공부만 했지 음식을 차릴 줄도 모른다며 음식을 그 자리에서 버리거나 자기가 다시 만들었다. 또 시누이는 엄마에게 왜 말도 안 하고 그런 걸 먹냐며 엄마가 이런 걸 먹으니까 쟤가 일부러 더 그러는 거라고 모함했다.


그럴 때면 내담자는 큰고모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죄송하다고 했다. 또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큰고모는 그럴 때마다 얻다 대고 말대꾸냐며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큰고모가 간섭하는 건 밥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집에 와서 장롱을 열었다. 특히 시어머니 장롱을 보며 “너는 시어머니 옷도 정리를 하나도 안 하냐?”며 잔소리를 했다. 내담자는 어머니 옷인데 어떻게 함부로 정리하냐면서 실례가 될까 봐 하지 않았다고 하면 큰고모는 빽! 목청을 높였다.

“너는 지금 장난하는 거냐. 한집에 살면 당연히 어머니 옷을 정리해줘야지, 대학교만 나오면 다냐. 친정에서 뭘 배운 거냐. 안 배운 사람도 이 정도는 다 안다.”며 타박을 했다.


또 내담자가 잠깐 찜질방이나 목욕탕이라도 가면 큰고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야지 혼자 가면 되겠냐며 핀잔을 줬다. 그렇게 큰고모가 난리를 치면 근처에 사는 둘째와 셋째 시누이도 합세해 내담자에게 면박을 줬다. 바람 난 거 아니냐며 왜 혼자 찜질방에 가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큰고모가 아침에 올 때마다 내담자는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밥을 조금만 먹으면, “너 지금 시집살이해서 핼쑥해졌단 이딴 소리 들으려고 그러냐. 아니면 고생한다는 티를 내려고 안 먹는 거냐.”며 사사건건 시비였다.


큰고모는 집안에서 제왕 같은 존재였는데, 이유가 잘 살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의 모든 경제권을 쥐고 있었고, 남동생이 결혼할 때도 몇 천만 원씩 주었다. 또 돈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대로 경제적 지원을 했다. 그러다 보니 큰고모는 돈 받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단순히 돈 때문에 위세를 부리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는데 내담자가 대학교를 나와 열등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눈에 밟히는 행동만 하면, “넌 대학교까지 나온 게 그것밖에 안 되냐.”며 온갖 인격모독을 했다. 너무도 힘겨운 시집살이에 내담자는 남편에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큰누나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누나 편을 들었다.


내담자는 친정에 가서도 큰고모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와 언니는 그런 집에서 왜 바보처럼 살고 있냐며 이혼하라고 했다. 특히 친정엄마도 시집살이 때문에 이혼했는데, 딸까지 그런 상태에 놓이자 이혼을 종용했다. 하지만 내담자는 도저히 이혼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편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담자는 참고 살기로 한 후, 임신을 하고 아기까지 낳게 되었다. 하지만 큰고모의 잔소리는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내담자는 집에만 있다간 미칠 거 같아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도 오래가지 못했다. 조금만 집에 늦게 들어와도 큰고모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면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며 음해했다. 결국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집에 있게 되었다. 집에만 있으니 큰고모의 간섭과 잔소리가 더 심해졌다.


하루는 내담자가 아기 옷을 사오자 큰고모는 무슨 이런 촌닭 같은 옷을 샀냐며 그녀를 나무랐다. 

“너는 무슨 대학을 발가락으로 나왔냐. 대학 나온 애들은 세련됐다고 하던데, 너는 왜 그렇게 촌스럽냐. 친정이 가난해서 그러냐. 너도 네 엄마 닮아서 오래 못 살겠다. 우리 동생은 세련된 애야. 너처럼 촌스러운 애하고는 오래 못산다.”


이런 식으로 내담자에 대한 인격모독을 넘어서 친정 비하까지 했다.

아기 옷뿐만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장롱을 들춰보다가 새로운 옷이 보이면, 고작 산다는 게 이런 걸 샀냐며 지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옷을 사줄 테니까 빨리 따라 나오라고 했다. 내담자가 어쩔 수 없이 졸졸 쫓아가면 큰고모는 바짝 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밖에 나왔는데 너는 맨얼굴이냐며, 쪽팔려 죽겠으니 빨리 화장하고 오라고 했다. 내담자는 화장을 안 해도 예쁜 얼굴이었는데, 큰고모는 열등감에 젖어 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시비를 걸었다.


백화점에서 옷을 골라도 문제였다. 내담자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면 큰고모는 “너는 보는 눈이 어쩜 그러냐.”며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고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골랐다. 그러다보니 내담자는 옷도 자기 마음대로 입지 못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옷을 입기만 하면 큰고모는 너는 왜 또 그런 옷을 입느냐며 벗으라고 했다.


내담자에게는 하루하루가 큰 스트레스이자 불행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큰고모와 함께 둘째와 셋째 시누이가 집에 올 때였다. 그녀들은 아침에 집에 와 점심까지 머물곤 했는데, 밥을 먹으면 절대로 내담자와 겸상을 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먹는 밥상이 있고 그녀가 먹는 밥상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즐거워하며 밥을 먹을 때, 저만치에서 내담자가 밥을 깨작거리고 있으면 안 먹는다고 뭐라고 하고, 또 잘 먹으면 넌 눈치도 없냐며 시비를 걸었다.


내담자는 점점 바보가 돼갔다.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우울증까지 왔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큰고모만 집에 오면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보호막이 전혀 되지를 못했다. 시아버지도 몸이 아파 며느리를 도와주지 못했다.


내담자가 기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큰고모는 그 모습이 불쌍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되려, “너 왜 그러냐?” “이제 완전히 맛이 갔구나?” “너 그렇게 앉아있으니까 꼭 원숭이 같아.”라며 웃고 떠들었다. 그때부터 내담자는 큰고모만 보면 벌벌 떨었고, 시누이들이 갈 때까지 구석에 앉아 있기만 했다. 물 떠 오라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떠주는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남편이 이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내담자가 초창기에 큰고모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 뒤로는 아예 입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내담자는 남편이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고, 그를 사랑하는 이상 참고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자신이 병들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울증이 오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포기한 채로 살았다.


남편은 늘 그렇듯 주말에만 집에 왔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잘 안 하고 넋이 빠진 사람처럼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안 되겠다 싶어 아내를 데리고 정신과 병원에 갔다. 그 결과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남편은 이때까지만 해도 우울증이 누나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기가 오랫동안 집을 비워 그런 거라고 여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2년 동안 해외에 나가 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남편은 아내의 우울증이 걱정돼 해외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큰고모 때문이었다. 만약 자기가 남편과 같이 해외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다. 감히 입 밖에 꺼낼 수도 없었고 만약 간다고 하면 자기는 큰고모한테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내담자는 이미 큰고모에게 붙잡혀 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남편은 결국 하는 수 없이 혼자 2년간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가자 시누이들은 내담자를 더 압박했다. 대개 큰고모(첫째 시누이)가 내담자를 모함하면, 둘째가 거들고 셋째는 아래 동생들을 조종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막내 시누이만은 내담자를 안타깝게 여겼다. 내담자보다 한 살이 더 어려 나이대도 비슷했고, 집에서 함께 살다 보니 눈 뜨고 보지 못할 꼴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막내 시누이가 내담자를 챙겼는데 또 그 꼴을 못 보는 큰고모였다. 큰고모는, “너 우리 막내랑 같이 다니더라?” “내가 너 어떻게 하는지 다 보고 있어.” “내가 집에 시시티브이 단 거 알지?” 같은 말을 하며 결국 내담자와 막내 시누이 사이를 갈라놓았다.

막내 시누이도 결혼을 하면서 돌변했다. 그녀도 시집살이로 인해 친정에 와 시어머니를 욕했는데, 그러면서 안면몰수하고 내담자를 괴롭혔다. 그나마 정을 나눴던 막내 시누이마저 다른 시누이들처럼 행동하자 그녀는 마음 둘 곳이 하나도 없었다.


내담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큰고모는 내담자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네 탓”이라고 했다. 네가 아버지를 잘 보살피지 못해 죽었다는 말이었다. 내담자는 그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유산을 했다. 남편이 해외로 출장 가기 전 임신한 상태였는데, 끝없는 스트레스를 줘 결국 유산까지 하게 만든 것이었다. 거기다 더 가관인 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시누이들이 한 명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담자는 그런 이야기도 남편에게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라는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남편은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를 본 후 우울증이 더 심각해졌다는 걸 느꼈다. 자기를 봐도 본체만체하고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운동할 것을 권했다.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해지니 에어로빅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에어로빅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녀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에어로빅 학원에만 가면 사람들이 자기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또 신기한 건 자기는 뒤에서 에어로빅을 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맨 앞에서 에어로빅을 한다고 했다. 나는 분명 뒤에서 하고 있었는데 왜 앞에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내담자의 이상한 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에어로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어떤 남자가 나를 보고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도 그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데, 왜 날 좋아한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상한 건 큰고모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큰고모가 자기를 보더니 너 바람피우는 거 안다며 조심하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내담자가 말한 건 모두 ‘망상’이었다. 에어로빅 학원에서 사람들은 각자 옷을 입고 있는데 내담자는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거로 보였고, 학원에서도 맨 뒤에서 에어로빅을 함에도 어느 순간 맨 앞에서 에어로빅을 하는 거로 착각했다. 남자가 내담자에게 고백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전혀 벌어지지 않았는데 내담자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여겼고, 이 사실을 큰고모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담자가 조현병 증상이 있어서 그런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오히려 ‘아내가 진짜 바람을 피우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돌아온 뒤 자기한테 일절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바람난 사람은 남편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휴대폰 메시지와 여자가 쓴 편지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지만, 역시 말하지 않았다. 남편도 큰고모와 한통속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고모의 지휘 하에 모든 사람이 자신을 감시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명절에 가족이 큰고모 집에 모였을 때였다. 큰고모는 동생들(시누이들)에게 자기한테 절을 하면 5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시누이들은 돈을 받기 위해 모두 엎드려 세배했다. 그리고 큰고모는 올케인 내담자에게도 세배하라고 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꾸물거리며 큰고모에게 세배를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 집에서 헤어질 때였다. 내담자가 고개를 숙여 신발을 신는데, 큰고모가 발로 그녀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너, 왜 세배 제대로 안 해? 누가 그렇게 세배하래? 어? 어?”

내담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쭈그려 앉아 신발만을 신었다. 반면 남편은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어? 저게 뭐지? 큰누나가 왜 저렇게 하는 거지?’ 

남편은 밖으로 나온 뒤 아내에게 물었다. 큰고모가 그런 행동을 하는데도 왜 가만히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내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남편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큰누나에게 말했다.

“누나, 잠깐 말 좀 해.” 

“왜?”

“누나, 아까 소윤이한테 한 행동이 뭐야?” 

“뭐가?”

“아니 앉아서 신발 신는 애를 발로 머리를 쳤다는 건… 난 이해가 안 가는데? 그게 무슨 행동이야? 내가 볼 땐 한두 번 한 거 같지 않은데?”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니?”


오히려 당당한 큰누나 모습에 남편은 기가 찼다.

“아니, 누나 당연히 안 되지. 사람 머리를 발로 차는 게 말이 돼?”

“얘가 미쳤나. 너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네 마누라 편 드냐? 지금 네 마누라 때문에 나한테 덤비는 거야?”

“누나, 아닌 건 아니지.”

그렇게 말싸움이 붙었다. 큰고모가 소리치고 남편도 목소리를 높여 따졌다. 가족이 모두 말려서야 남편은 화내며 차를 탔다. 그리고 운전을 하며 내담자에게 물었다.

“소윤아, 아까 누나가 머리 발로 찼잖아? 평소에도 그랬어?” 

그러자 아내는 두려워하며 입을 뗐다.

“나… 말할 수 없어… 내가 말하면 오빠랑 살지를 못해….”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왜 그동안 나한테 말 안했어?” 

“오빠, 내가 말하면 살 수가 없어….”

“살 수가 없다니. 왜 살 수가 없다는 거야?” 

“봐봐! 저기 또 따라오잖아!” 

“뭐가?”

“고모, 고모가 따라오고 있잖아! 나 너무 무서워!”


양손으로 귀를 막더니 벌벌 떠는 내담자였다. 남편은 혼란스러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아내가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녀를 다독였다.

“왜 그래. 정신 차려. 고모가 어디 있다는 거야? 어?” 

“고모 여기 있잖아! 제발 그 얘기 하지 마!”

아내는 꽥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그 순간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아내가 지금까지 왜 이상한 행동을 한 건지 이해가 갔다. 다시 차를 돌려 큰누나에게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큰누나 집에 쳐들어가 말했다.

“누나, 우리 이제 분가할 겁니다. 여기서 안 살아요.” 

“분가? 그래. 그렇게 해라.”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는 큰누나였다. 남편은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내가 지금까지 큰누나에게 당했던 걸 생각하니 다시 화가 치밀었다. 남편은 큰누나에게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또다시 차를 돌렸다. 아내를 데리고 큰누나 집에 쳐들어가 사과하라고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짝!

큰누나가 다짜고짜 아내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닌 여러 대였다.

“시발, 뭐 하는 거야!”

남편이 소리치자, 큰누나는 남편에게도 귀싸대기를 날렸다. 

“시발년아! 소윤이한테 사과해! 사과 안 해?!”

남편은 차마 큰누나를 때리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온 가족이 큰누나와 남편을 말렸다. 한편 그 광경을 본 내담자는 의아했다. 남편이 갑자기 왜 그러지? 왜 내 편을 들지? 큰고모 편이 아니었나? 지금까지 모두 한 패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자기를 옹호해주고 있자, 내담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Q&A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의 차이



나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듣는 것조차도 스트레스였다. 예전에 「사랑과 전쟁」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할 때도 사연을 보면 너무 답답해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 맞먹는, 아닌 그보다 더한 이야기가 상담소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망상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언젠가 원장님과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피해의식이랑 피해망상이랑 차이를 알려달라고 하자 원장님이 말했다.

“피해의식은 사람들이 날 욕하는 거 같다, 저 사람이 날 싫어해서 저런 행동을 한 거 같다, 라고 예측을 하는 거야. 그런데 피해망상은 아예 그게 맞다고 확정을 하는 거야.”

“확정이요?”

“응. 사람들이 날 보고 욕한다. 저 사람이 내게 피해를 주려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을 하는 거야. 그래서 길에서도 어떤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보통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가는데, 피해망상에 걸린 사람들은 저 사람이 날 보고 비웃었다고 하면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해.” 

“아… 그래서 뉴스에 묻지 마 폭행 같은 거 보면, 저 사람이 먼저 시비 걸었다고 말하는 거네요. 피해자는 눈만 마주쳤을 뿐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나는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내 주변에 피해망상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 가지 않는 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게 아니라고 설득시키냐는 것이었다. 그것에 관해 묻자 원장님이 말했다.

“절대로 설득시켜서는 안 돼.”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요?”

“응. 네가 착각하는 거다, 그런 일은 없다. 아무도 널 해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그 사람의 말을 부정해서는 안 돼. 왜냐면 그 사람 시점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거든.”


다른 상담사례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남편이 피해망상에 걸려 통장에 있는 돈을 아내가 다 인출해 갔다고 하는 사례였다. 아내는 기막혔다. 내가 언제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해 갔냐며 억울해했다. 남편이 그런 피해망상에 걸린 이유는 사업을 하다가 친구로부터 큰 배신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 원장님은 이렇게 말하라고 했다.


“그래서 당신이 화가 났구나. 여보, 화 풀어. 당신이 너무 힘들면 우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아내가 이와 같은 대답을 한 뒤에서야, 남편은 자기감정을 읽어줘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통장에 돈을 내가 빼갔다고 말해서도 안 되지만, 맞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곧 남편의 감정만 받아주고 달래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당신 많이 힘들지? 나도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


이렇게 해야만 피해망상을 가진 사람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후 후속 조치는 상담소와 정신과 병원에 가는 방법이 있다. 치료를 제대로 받으려면 둘 다 가야 한다. 정신과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해야 하고, 상담소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고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를 먼저 가는 게 보편적으로 좋은지 추천을 하자면 정신과 병원이다. 이유는 피해망상은 폭력성이 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 설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보, 많이 힘들면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상담소에 가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여보, 정신과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말해보고 해결방법을 찾아보자. 나도 같이 도와줄게.”


이때 말의 뉘앙스를 조심해야 한다. 상담소든, 정신과 병원이든 마치 너에게 문제가 있는 거 같으니 가보자, 라는 식으로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심리상담소에서도 피해망상 내담자는 연계된 정신과 병원에서 무조건 약물치료를 받게 한다. 그래야 심리치료를 할 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약물치료를 거부할 때는 심리치료만 한다. 하지만 상담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리증상이 심하고, 감정조절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약물치료를 받도록 설득한다. 이렇게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동반해 내담자를 최종적으로 치료하는 게 조현병이다. 조현병은 약물치료도 아주 중요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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