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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Nov 12. 2020

[사례13] 시누이로 인한 ‘피해망상’ 2화

1) 시댁과 분가한 아내점점 심해지는 피해망상



남편은 큰누나와 싸운 후, 그날부로 짐을 싸고 집을 나가버렸다. 나가면서 엄마에게도 한마디 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자기도 한심하지만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아내를 보호해주지 못한 엄마도 필요 없다고. 분가해 내담자의 친정엄마가 있는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 누나들이 아내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다.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가 있는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원장님, 저는 우리 누나들이 왜 그런지 압니다. 백 프로 열등감이었을 거예요. 누나들은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우리 집사람은 대학교까지 나왔고, 고상하고 인품이 좋으니까 그랬던 겁니다. 아내를 건드릴 때마다 대들고 싸웠어야 했는데, 집사람이 안 그러고 참고 인내하니까 어디 얼마나 네가 배운 것이 있냐 하고 끝까지 괴롭힌 거예요. 우리 누나들 그런 사람들 맞아요. 나는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는데, 너무 몰랐던 내 잘못이네요.”


남편은 자책했다. 남편은 아내의 친정 근처로 이사를 하고는 면목 없는 얼굴로 장모와 처형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말했다. 장모와 처형은 기가 막혔지만 사위에게 따지지 못했다. 내담자가 너무 망가져 버려 뭐라고 했다가는 사위까지 도망갈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정에서도 내담자의 문제는 지속해 나타났다. 어느 순간부터 내담자의 눈에 남편과 엄마, 언니가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이런 경우였다.


‘남편이 왜 우리 식구들하고 한편이 되지?’

‘시댁에 있었던 장면이 왜 우리 친정에서 똑같이 연출이 되지?’ 

‘저 사람(남편)이 왜 우리 엄마하고 언니하고 한 패가 됐지?’ 

‘왜 친정 식구들과 저 사람이 뭉쳐서 저러는 거지?’


한마디로 내담자는 시댁에서 시누이에게 당했던 것들이 친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엄마, 언니가 모이기만 하면 자기 흉을 보고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담소에 왔을 때도 내담자는 원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우리 친정도요. 시댁과 한 패예요. 시누이들이 했던 행동을 엄마랑 언니가 아주 똑같이 행동해요.”

내담자가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담자는 친정 근처로 이사를 온 후,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였다. 딸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온종일 잠만 잤다. 그러다 보니 언니는 내담자에게 잔소리했다. 일어나서 뭐라도 하라는 것이었다. 언니 입장에서는 동생이 이러고 있는 게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었다. 친정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내담자가 기운을 차리지 못하자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됐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셋이서 행복하게 잘 지냈던 가족인데, 저러고 있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언니는 화가 나 내담자에게 함부로 말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내담자에게는 공격적으로 들렸다. 언니와 친정엄마가 하는 행동은 시누이들이 내게 했던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보니 내담자는 친정엄마와 언니가 조금이라도 듣기 싫은 소리만 해도 시누들과 친정이 한 패고, 그런 한 패와 어울리는 남편도 한 패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언니가 사소한 전화를 하면 둘이 바람을 피운다고 왜곡했다.


그러다보니 내담자는 엄마, 언니, 남편도 다 싫다. 나 혼자 있겠다. 아무도 필요 없고 가족도 필요 없다며 대책도 없이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내담자가 너무 완강하게 나오자 결국 남편은 친정과도 떨어져 이사하자고 제안했다. 그때가 돼서야 내담자는 수그러들었고, 남편은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아내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2) 심리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잔소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



우리는 종종 친구나 지인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조언을 한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상대방에게 피드백을 하는가 하면, 나도 상대방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는다. 이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심리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이처럼 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우울증 때문에 무기력에 빠진 사람에게 잠만 잔다고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외상만 없을 뿐, 실제로는 내담자처럼 중환자나 다름없을 수 있다. 만약 내담자의 상처가 눈에 보였다면 언니는 동생에게 왜 맨날 누워만 있냐고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한다. 

“너 왜 그러고 있냐.”

“나가서 운동이라도 해라.”

“정신 좀 차려!”

라고 강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람도 그렇게 있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너무 커 일어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무기력하게만 있다고 뭐라고 하지 말자. 오히려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며, 응원을 해줘야 한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빨리 일어나 걸으라고 하는 건 너무나도 가혹한 말이다.





3) 첫째 시누이에게 고통받는 아내



내담자는 남편과 멀리 이사를 했다. 그리고 친정에 절대로 집이 어딘지 알리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친정엄마와 언니는 어이가 없었다. 힘들어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는데 시댁과 똑같은 취급을 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연락을 차단하니 괘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담자의 증상이 나아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같이 타는 사람들이 있으면, 큰고모가 보낸 첩자라고 생각했다. 또 남편과 외출을 한 뒤 돌아오면 큰고모의 향수 냄새가 난다며 고모가 집에 왔다 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옷장에서 옷 하나를 가져오더니 고모가 자기 옷을 내 옷장에 두고 갔다고도 했다.


밥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내담자가 반찬을 하나 빼자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녀는 금방 고모가 나 몰래 반찬을 여기에 뒀다고 했다. 남편이 네가 방금 놓은 거라고 하면, 내담자는 고모가 갖다 놓은 거라며 소리쳤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자 남편은 미칠 지경이었다. 큰누나가 있지도 않은데 자꾸 있다고 하고, 작은누나들이 사람들을 시켜 자기를 감시한다고 하고, 끊임없이 누나들이 들어왔던 흔적이 있다고 해 도저히 살 수 없었다. 또 드라마에서도 자기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며 있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남편은 결국 이대로는 살 수 없어 심리상담소를 검색했다. 그리고 아내를 설득해 상담을 받게 되었다.


내담자는 상담소에 오자마자 시댁에서 있었던 일,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원장님에게 쏟아 부었다.

“원장님, 며칠 전에는요. 남편이랑 차를 타고 가는데 검은색 세단이 우리 차 옆에 서는 거예요. 그러더니 창문을 열고 세단에 탄 사람이랑 저희 남편이랑 웃고 떠들면서 막 이야기를 해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세단에 탄 사람이 누군지 보이지도 않고, 남편이 익숙한 듯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요.”


남편은 어이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기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내담자가 검은색 세단을 말한 이유는 큰고모가 타는 차량이 검은색 세단이기 때문이었다. 시댁에 있을 때 큰고모가 아침마다 검은색 세단을 타고 내리는 걸 지켜보는 게 트라우마가 돼 일어나는 망상이었다. 원장님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소윤 씨, 오늘 상담을 통해 제가 다 알아들었어요. 소윤 씨에게 일어난 일들 모두 인정해요.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고 남편도 인정하지 않아서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저는 소윤 씨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어떤 건지 다 알아요. 그러니까 소윤 씨, 나를 믿고 신뢰해요. 그 긴 13년 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어요? 정말 이건 바보 상을 줘야 할지, 훌륭한 상을 줘야 할지, 상을 주긴 줘야 하는데 무슨 상을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긴 시간 동안 소윤 씨에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았을 텐데 나는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나를 신뢰해요.”


내담자는 조용히 원장님 말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원장님의 시선이 남편에게 향했다. 남편이 알아야 할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분은 이제부터 아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무조건 공감하고 이해하세요. ‘그런 일이 일어났어?’ ‘얼마나 힘들었어?’ ‘내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반응하세요.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그런 일은 없어.’ ‘왜 없는 일을 만들어?’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 안 돼요.”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원장님, 제가 없는 걸 있다고 했단 말이에요?” 
 원장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윤 씨, 없는 걸 있었다고 하는 게 아냐. 소윤 씨한테는 모든 게 진실이야. 다 진실이고 현실이야. 그런데 남편은 그게 진실이고 현실이라는 걸 모르잖아. 남편이 소윤 씨를 공감해야 하는 게 일번이라 말한 거야.”

조용히 듣던 남편이 입을 뗐다.

“그럼 무조건 공감해줘야 합니까?”

“네, 맞아요. 왜? 소윤 씨한테는 모든 게 현실이고 진실이니까. 가상이 아니에요. 그 현실과 진실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걸 아니라고 하면 어쩌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남편분은 무조건 이해하고 공감하세요. 아니라고 절대로 말하지 마세요. 왜? 아내에게는 현실이고 진실이니까.”

“그쵸, 원장님? 현실이고 진실이죠?”

“네, 맞아요. 현실이고 진실이에요. 그리고 소윤 씨.” 


원장님이 내담자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소윤 씨에게 일어난 모든 일 내가 다 정리해 줄 수 있어. 누가 몰래 카메라를 달아 놓은 건지, 진짜 차들이 나를 따라서 온 건지, 고모가 왜 약속 장소에 나타난 건지, 고모가 정말 옷을 갖다 놓은 건지, 향수를 뿌리고 간 건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거 다 소윤 씨한테 일어난 현실이고 진실이야. 오늘은 이야기를 오래 들어서 시간이 됐으니까 돌아가고, 다음에 오면 내가 잘 설명을 해줄게. 이걸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또 다른 사람들은 왜 이해를 못 하는지. 설명해 줄 테니까 다음에 와서 다시 이야기해요.”

“네, 그럴게요. 원장님.”

내담자는 처음보다 생기 있게 대답했다. 나는 내담자와 눈이 마주치자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했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내담자가 남편 등을 치며 말했고, 

“그래. 당신 말이 맞아.”

남편은 내담자 말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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