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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Mar 06. 2021

[상담 사례] 직장생활 적응이 힘든 청년



청년이 상담소에 방문했다. 2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투명인간처럼 지낸다는 말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할뿐더러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다고 했다. 일처리도 마찬가지였다. 상사가 주는 업무도 제대로 해낸 적이 없다고 했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청년은 자존감이 깎여 매우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청년에게 각종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청년은 대인기피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시작은 가정에서부터였다. 청년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는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질책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청년이 조금만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공포감을 조성했다. 한 번은 엄동설한에 청년을 옷을 벗긴 채 집 밖으로 내쫓기도 했다. 거기다 얼음물까지 끼얹는 등 어린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도 아빠에게 한소리 하면서 부부싸움이 자주 일어났다. 청년은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보며 늘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또 아버지는 무조건 청년에게 "잘해" "노력해" "성공해"라는 말을 밥먹듯이 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무엇을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는 단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이는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위해 어떤 교육적인 것을 제공하지 않은 채, 그저 아빠처럼 열심히 해보라는 말만 했다.


그러다 보니 청년은 하나를 하더라도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 글씨도 찐하고 바르게 쓰고, 그림을 그릴 때나 색칠을 할 때도 찐하고 흐트러짐 없이 칠했다. 또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에 깊이 빠지고 완벽을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학생과 비교해서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학교에서 단체로 무언가를 하면 늘 가장 늦게 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자 청년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느리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오랜 시간 하면서 오랜 시간 자존감이 떨어졌고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자존감이 떨어지자 청년은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심지어 왕따를 당하는 일까지 생겼다.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부모님에게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자신의 모자란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버지에게 왕따를 당하는 사실을 들키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는 청년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자 새끼가 바보 같이 맞고 다닌다며 비난을 받았다. 그때부터 청년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괴롬힘을 당하는데, 집에서 까지 아버지의 강압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청년은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했다. 무언가 실수를 하기만 하면 아버지로부터 추궁을 당하는 게 숨 막혔다. 또 아버지는 술만 먹고 오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언행을 서슴지 안 했다.


"내가 서울대 나온 애 뺨도 때려 봤어."

"그놈들 별거 아냐."

"아무것도 아닌 게 웃기지 말라고 그래. 다 내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해."

"다 형편없는 놈들이야."


아버지는 청년의 귀에 딱지가 지도록 남들을 비웃고 비하했다. 그런 아버지의 발언이 청년은 부메랑처럼 자신의 가슴에 꽂이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청년은 아버지가 사람들을 저렇게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부족한 나를 똑같이 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청년은 군대에 가서도 적응이 어려웠다. 무엇을 해도 후임과 선임이 나를 비웃고 수군거리는 것처럼 생각했다. 군생활도 눈치를 보며 왕따로 지내다 제대를 했다. 그리고 난 후 취업을 해 직장생활을 한 지 2년 차가 된 상황이었다.


청년은 상담 때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바보 멍청이라고 말했다. 늘 우울하고 죽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지만, 가장 두려운 건 아버지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은 상담을 하면서도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청년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다음과 같았다.


① 사람과 대화할 때 지나친 긴장감으로 눈을 계속 껌벅거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②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할 때 주제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중심을 잡지 못한다.

③ 스스로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④ 맡겨진 업무, 일을 매우 꼼꼼하게 하다가 남들보다 시간이 3배 정도 걸린다.

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 생각하는 시간이 2일에서 3일 걸려 결정을 못한다.

⑥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⑦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게 편해 나는 바보라고 계속 말한다.

⑧ 잘하는 일이 분명히 있음에도 스스로 잘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⑨ 자신의 장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⑩ 긴장과 위축되어 있는 상태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첫 상담을 하고 난 후 청년의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청년이 상담을 받도록 권유한 게 직장상사이기 때문이었다. 상사는 청년이 어떤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상사에게 상담한 결과를 모두 말해주었다. (사전에 청년에게 동의를 받고 진행함)


청년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억압과 학창 시절에 당한 왕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자신은 회사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상사에게 물었다. 청년의 직장생활에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자 상사는 오히려 청년의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했다. 청년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뿐이지 일은 잘한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맡은 일을 끝까지 처리하려고 하며, 지각도 하지 않고, 발표도 잘한다고 했다. 다만 늘 보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이고 아웃사이더처럼 혼자 있어 그게 걱정된다고 했다.


그렇게 직장상사와 전화통화를 끝낸 후, 청년에게 통화내용을 그대로 말했다. 상사는 능력적인 면에서 청년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걸 전해주었다. 청년은 그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안심을 했다.


청년이 사람들을 기피하는 원인은 첫 번째로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와 잘못된 교육관이 청년을 힘들게 했다. 상담소에 부모님을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청년이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부모님의 잘못된 행동과 교육관에 있다고 말했다.


청년의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인정했지만, 아버지는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청년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게 많은 부모들이 그렇다. 자식에 대한 문제를 이해하기보다, 상담사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에는 자기만의 '긍정적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잘못을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부모님과 이야기가 오갔다. 청년의 어머니는 모든 게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고 했다. 남편에게 어린 시절 빨개를 벗고 물을 끼얹은 것도 잘못했고, 공포감을 조성한 것도 잘못한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인정했다. 그간 청년에게 했던 행동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강압적인 태도와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 또한 이제부터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청년은 그런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환경치료를 마친 뒤 청년은 본격적으로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학교에 다닐 때 왕따를 당한 상처를 치료하는 명상과 명상최면치료 6회기. 미술치료와 세부감각치료 6회기. 단체 상담 2회기를 진행했다. 또 중간에 부모님을 불러 청년과 가족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치료 회기가 거듭되면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특히 아버지의 행동이 변화가 오면서 청년은 집이라는 곳이 처음으로 편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자존감 강화하기 치료와 행동 교정하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렇게 20회기 치료를 받고 청년은 변화했다. 직장 동료들 무리 속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은 마지막 상담을 했다. '목표 설정'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앞으로 나는 어떤 목표를 갖고 살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짜는 일이었다. 그 결과 청년은 용기를 갖고 동아리 모임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연구를 하기 위해 학원도 다니겠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목표를 이룰 건지 정확한 날짜도 썼다.

그렇게 청년은 목표 설정을 끝으로 상담을 마쳤다. 잘해보겠다고 다짐하며 상담소를 나갈 때, 누구보다도 활력 있고 생기가 넘쳤다. 자존감이 낮고 의기소침한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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