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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송아론 Mar 17. 2021

[상담 후기] 부모님의 노력과 지지가 중요한 이유

이 내담자분은 성적밖에 모르는 부모로 인해 정신과 병원에서 조현정동장애(조현병+조울증)진을 받은 내담자입니다.

부모님의 노력이 심리치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내담자분이 직접 쓴 글입니다.

특히 심리 증상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은 반드시 봐야 하는 글입니다.

본 내용은 도서 < 벼랑 끝, 상담> 인지치료 편의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부모님의 노력과 지지

내가 심리적으로 크게 불안했을 당시, 편안한 환경이 제공되는 게 우선이었다. 정신과 병동이 아주 편안하고 환자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렇기에 환경치료를 하는 것이다.

심리치료를 받는 동안은 내담자가 부딪칠지도 모르는 부정적 상황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아무리 긍정적 환경에서 자신감을 얻더라도 부정적 환경에 노출되면 꺾이고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내담자의 경우, 부모님이 내담자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대체로 심리치료를 받으러오는 내담자는 부모님에 대한 억하심정이 큰 데다, 부모님이 내담자를 자극하거나 힘들게 하면 내담자는 또다시 원망이나 분노에 휩싸인다.

특히 나는 더더욱 그랬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치솟아 단단히 뭉쳐있었기 때문에 만에 하나 부모님이 잘못 건드리면 감정이 마구 치달아 올라 어쩔 줄 몰랐다. 심리치료받는 동안 간신히 안정을 되찾고 희망이 보이고 자신감이 오르다가도 부모님과 사소한 갈등이 생기면 모든 게 무너져버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

갈등이란 가족들과 외식을 했는데 내가 알아서 먹겠다는데도 아버지가 계속 옆에서 챙겨주려 했던 걸 말한다. 아버지의 이런 자상한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면 따뜻하고 부러울 상황이었지만, 난 과잉보호를 떠올렸고 그 과잉보호로 말미암아, 유약함 속에서 20년을 보낸 듯한 원통함에 휩싸였다. 내 어두운 20년은 아버지의 과잉보호가 원인인 걸로 생각되었다.

매우 사소한 계기였음에도 그 계기로 말미암아 지난 20년 동안의 수치스러웠던 세월이 모조리 오버랩되어 이제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날 불편하게 했느냐 안 했느냐 그것만 중요할 뿐, 객관적으로 나와 부모님 중 누구 잘못이냐 와는 아무 상관없었다.

심리치료 6회 차 즈음에 원장님이 부모님을 부르셔서 부모님의 잘잘못과 나의 상태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주셨다. 부모님께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가장 시급 한 건 부모님의 사과였다. 6회 차부터 이미 심리치료 성공 여부가 결정되어있었다. 난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부모님이 내게 사과해서 더 이상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천만 다행히도 부모님은 내게 사과를 하셨다. 부모님으로부터 사과를 받았을 때, 고마운 마음도 마음이지만, 이미 엄청나게 누그러지는 내 감정을 느끼면서 심리치료가 무사히 성공할 것 같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되살아난 듯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부모님의 사과가 심리치료가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게 또 있었다. 바로 부모님의 안정적인 환경의 제공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잠만 자도, 컴퓨터를 해도, 바깥만 돌아다녀도, 심지어 술을 새벽까지 마시고 외박을 해도, 내가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느라 돈을 천정부지로 써도, 부모님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내가 집에 돌아오면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가끔 감정이 치솟아 심하게 화를 내도 부모님은 가만히 듣기만 하고 설령 본인들이 화가 나도 참았다. 부모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편안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내가 화를 내도 참아주고 나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으니까.

부모님이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일방적으로 나만 화내는 쪽이었기에 부모님한테 화를 내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때로는 부모님이 이런 시련을 겪을 만큼 큰 잘못을 한 건가라는 생각에 마음을 바꿔먹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에 나는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만약 부모님이 똑같이 내게 화를 내거나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려 했다면 싸움은 더 커졌을 테고 그러면 부정적 감정과 불안은 더 끓어올라 심리치료는 훨씬 더 늦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도 내가 화를 낼 때 부모님이 맞서는 바람에 또다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혼란을 겪었다. 그 후 부모님과 깊은 얘기를 나누고 진심으로 사과한 뒤에야 간신히 나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부모님의 이런 편안한 지지기반 덕분에 나는 심리치료와 내 마음을 정리하는데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고 그에 비례해서 부모님에게 화를 내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무뚝뚝했던 내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한테 말을 걸고 너그러워졌고 진심으로 부모님께 감사하고 결국 내 잘못이 컸다는 반성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건 내 판단력이 훨씬 더 명료해졌다는 걸 뜻했다. 잘잘못을 가려내는 능력이 훨씬 좋아진 덕에 이제는 부모님한테 원망을 하긴 커녕 내가 그동안 너무 지나쳤고 부모님도 희생자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