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가만히 주시했다. 소녀와 친했던 유일한 인물. 전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는 이야기. 소녀에게 받은 라지베르트 터기 부적을 준 장본인. 그녀가 뜬금없이 20년 만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세요.”
강시은은 여유가 넘쳤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이제야 저도 여유가 생겼거든요.”
“여유요?”
“1991년. 청산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아동 살인사건. 선생님은 그 학교의 유일한 생존자 아니세요?”
“그런데요?”
윤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지성문 형사. 선생님의 아버지는 왜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이며 무엇 때문에 사건이 미제로 남았는지 늘 궁금했거든요.”
“그렇다면 미안하군요. 저도 아는 게 없는지라.”
“린이 죽은 것에 대해서도요?”
윤수는 멈칫했다. 소녀를 말하는 것이었다.
“린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거 선생님도 아시죠?”
“....당신이 그걸 어떻게?”
윤수의 눈이 커졌다.
“린이랑 친하면 모를 리가 없죠.”
강시은이 이어 말했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예요. 린이 살해를 당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윤수가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당시 린은 12살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물리적 행사를 가한다면 당할 수밖에 없죠.”
“아뇨. 저는 확신해요. 린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아이가 아니라는 걸.”
윤수는 그녀의 눈을 피했다. 설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믿는다고 한들 어차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20년 전에 있었던 연쇄살인 사건. 그 사건을 다시 조사해 보려고요.”
“공소시효도 한참 지난 그 사건을 말입니까?”
“네, 저는 린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어요.”
“그러면 저를 찾아올게 아니라 청산마을로 가보시죠.”
“선생님도 함께 가요.”
윤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무리한 요구라는 거 알아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고요.”
윤수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린에 대해서 궁금한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죽었던 그녀가 왜 갑자기 나타나 나에게 좌절과 절망을 안기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이 여자에게 말해야 한다. 윤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웠다.
“저에게 다 말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아이들이 죽은 현장만이라도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아니면 적어도 린이 죽은 원인에 대해서라도...”
윤수는 고민에 빠졌다. 바짝 마른 입술을 뗐다.
“....알겠습니다. 언제 조사할 겁니까?”
“모레 오전 어떠세요? 정확한 시간은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러죠.”
강시은이 악수를 청했다. 윤수는 손을 건네던 중 그녀의 손목시계에 눈이 갔다.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와 똑같았다. 보편적으로 여자들이 차는 시계가 아니었다.
***
윤수는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괜한 약속을 한 건가 싶었다. 마을로 간다고 해서 증거가 나올 리도 없거니와 괜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들추는 거 같았다. 게다가 강시은은 나를 미행했다. 도와달라고 했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미심쩍었다.
휴대폰에서 진동 울렸다.
[강시은이에요. 모레 아침 9시에 출발할게요. 제가 상담소로 가겠습니다.]
윤수는 의아해 답장했다.
[제 연락처는 어떻게 아는 겁니까?]
[아까 상담소에 왔을 때, 선생님 자리에 있는 명함 가져가져 갔는데 못 보셨나요?]
[제 명함에는 휴대폰 번호가 없습니다만.]
[상담소 번호로 문자 보낸 거예요, 선생님.]
윤수는 아차 싶었다. 상담소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자신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오도록 설정을 했기 때문이다.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윤수는 출근하자마자, 잡혀있던 상담을 모두 취소시켰다. 건강상 문제로 잠시 상담을 중지하겠다고 말했다. 남은 회기는 모두 환불을 했다. 그리고 컴퓨터에 USB를 꽂고 주희의 휴대폰에 있는 고발 자료들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청산 마을에 다녀온 뒤 형사 고발을 할 생각이었다. USB에 자료를 모두 저장한 뒤, 지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려고 할 때였다.
상담소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윤수는 일부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지이잉- 지이이잉-
‘발신자 표시 제한’이었다. 윤수는 느낌이 좋지 않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상담 안 하시나요?]
이번에는 전화번호가 표기된 문자가 왔다. 윤수는 직감적으로 전화를 했던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만, 당분간 상담소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윤수가 답변을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지금 상담소 앞입니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급해서 그럽니다.]
[죄송하지만 오늘 문을 열지 않았...]
윤수가 문자를 전송하기 전이었다.
쿵. 쿵. 쿵.
“계십니까~”
쿵. 쿵. 쿵
“계십니까~?”
걸걸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윤수는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오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예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삑삑. 삑삑.
윤수는 놀라 동공을 확장했다. 상담소 현관문 비번을 누르는 남자였다. 윤수는 재빨리 상담실 문을 잠갔다.
뒤이어,
삐삐삑.
자연스럽게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남자였다.
“진자 상담소 운영 안 하나 보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집으로 갈까요?”
한 명이 아니라 둘. 목소리만 들어도 다부진 체격이 예상되는 그들이었다.
“일단 휴대폰이 있나 수색해보고, 컴퓨터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대놓고 상담소 안을 수색하는 남자들이었다. 윤수는 숨을 죽이고 재빨리 컴퓨터에 꽂은 USB를 빼 주머니에 넣었다.
덜그럭, 덜그럭.
“팀장님. 여기 잠긴 거 같습니다만.”
“부숴.”
쾅! 쾅!
상담실 문제 발길질을 하는 남자였다.
쾅! 쾅!
윤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상담실 창문을 열고 베란다에 몸을 숨겼다.
뿌직! 벌컥-!
윤수가 숨자마자 문고리가 부서졌다. 스포츠머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빠르게 상담실을 스캔했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 걸 보고,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여기 쥐새끼가 있는 거 같습니다만.”
“확실해?”
“네. 컴퓨터가 켜져 있는데요. 방금까지 사용한 거 같습니다.”
“그럼 숨바꼭질 한 번 하자고.”
“제가 또 술래가 전문 아닙니까.”
낄낄 거리는 남자들이었다. 윤수의 이마에 땀이 맺었다. 베란다 말고는 더는 숨을 곳이 없었다. 베란다를 통해 응접실로 이동할 수 있지만, 그쪽에는 팀장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가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그대로 걸린다.
그렇다면 방법은 베란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은 5층이다. 그렇다면 저 사내들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윤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한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윤수는 이마에 흐르는 식을 땀을 닦은 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남자와 두 눈을 마주쳤다.
“쥐새끼가 있었네?”
스포르 머리를 한 남자가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팀장님. 여기 있는데요?”
윤수는 빠르게 베란다 난간에 매달렸다. 뛰어내릴 생각이었다. 팀장이 뛰어와 소리쳤다.
“이봐, 상담 선생. 자살하려고 그래? 뭐 좀 가져가려는 거뿐이니까, 얌전히 협조해.”
“당신들 누구야! 왜 상담소를 뒤지는 거야!”
“선생이, 먼저 우리 약점을 잡았잖아. 그러니까 없애려고 온 거야.”
‘약점?’
윤수는 그 순간 이 남자들이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건지 눈치챘다. 최보라,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법무부 장관 최형국. 그의 경호원들이었다. 윤수가 소리쳤다.
“당신들! 최형국 경호원이지! 학생이 2명이나 억울하게 죽었어. 그 증거를 없애려고 하는 거야?”
팀장이 히죽이며 대답했다.
“우리도 을이라고. 까라면 깔 수밖에 없어.”
“그러면 좆까! 미친 새끼들아!”
윤수는 소리치다 그만 난간에서 떨어졌다.
“어어 팀장님 떨어집니다!”
다행히도 4층 난간에 떨어진 윤수였다.
“저, 미친 새끼가. 빨리 내려가.”
스포츠머리 경호원이 상담실을 뛰쳐나갔다. 윤수는 가까스로 일어나 절뚝이며 4층 베란다 문을 열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불청객이 나타나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윤수는 그들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어 계단을 내려갔다. 동시에 스포츠머리 경호원이 윤수를 빠르게 쫓아왔다. 윤수는 전력을 다해 뛰었다.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 차에 탄 뒤 시동을 켜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멈춰!”
경호원이 차량 앞을 막아섰다.
끼이이익-!
윤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그대로 전진했다. 경호원이 위험을 감지하고는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가로로 주차장 입구를 막아섰다. 경호원 팀장이었다. 윤수는 그대로 승용차를 들이박았다.
콰앙!
윤수의 몸이 앞으로 들썩였다. 경호원 승용차가 물리적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쏠렸다. 윤수는 뒤로 후진한 뒤. 다시 전진해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빠져나갔다. 스포츠머리 경호원이 조수석에 앉자 팀장은 포기하지 않고 윤수를 쫓았다.
윤수가 도로로 진입하자, 팀장도 도로에 진입했다. 금세 윤수 옆으로 따라와 소리쳤다.
“안 멈춰 이 새끼야?”
스포츠머리 경호원이 욕설을 뱉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임무를 완수하려는 눈빛이었다.
윤수가 핸들을 꺾어 차선을 바꿨다. 하지만 또다시 금세 따라붙는 그들이었다. 운전으로는 이들을 따돌릴 수 없을 거 같았다. 윤수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들었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멈추라고!”
끼이이익-! 쾅!
팀장이 핸들을 꺾어 달리는 윤수의 차를 박아댔다. 윤수는 통화에 집중했다.
“경찰이죠? 여기 수상한 사람들이...”
“안 멈춰?!”
그 순간이었다. 사거리 신호를 무시하고 앞으로 달리자 덤프트럭 한 대가 옆에서 팀장의 차량을 덮쳤다
빠아아앙ㅡ
끼이이익!! 콰아아앙!!!
경호원들의 차가 덤프트럭에 눌려 짜부가 됐다. 동시에 윤수의 차량도 함께 밀려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공중을 두 바퀴나 돌고 거꾸로 지면에 처박혔다.
아수라장이었다. 윤수의 차량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