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현재] 사망선고

by 송아론

학교에 카운터를 먹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동시에 위기에 놓였다. 윤수는 액셀을 세차게 밟으며 119에 전화를 했다. 안내원이 전화를 받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 강서구 세린 여고, 지금 여학생이 투신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빨리 와주세요.”


윤수는 전화를 끊은 뒤 최보라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녀와 통화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다른 선생들의 번호도 모르거니와 주희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곧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 웬일이세요? 금방 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한 건 아닐 테고.


“주희, 학생이 자살하려는 거 같아요.”


-네?


“지금 빨리 옥상으로 올라가 보세요.”


-저 수업 들어가야 하는데요?


“지금 수업이 문제입니까?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아, 알겠어요.


윤수는 통화를 종료 버튼을 누른 뒤 빠르게 세린 여고로 달렸다. 학교 정문 앞에 다다르자, 아니나 다를까 옥상에 주희가 보였다. 그녀는 양손을 뒤로한 채 난간을 잡고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망할!”


윤수는 학교 정문을 차로 들이박아 운동장으로 진입했다.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하고 있던 학생들이 놀라 몸을 피했다.


끼이이익ㅡ!!


윤수는 빠르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 차를 멈춰 세웠다. 승용차에서 내려 크게 소리쳤다.


“주희 학생! 멈춰!”


운동장에 있는 학생들이 윤수의 시선 쪽으로 향했다.


“야, 저기 뭐 있어!”


한 여학생이 검지로 옥상을 가리키자,


“미친!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자살하려나 봐!”


학생들 얼굴이 새파래졌다. 바람이 불자 난간을 잡고 있는 주희의 머리카락과 교복 치맛자락이 세차게 흔들렸다.


“젠장!”


윤수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자,


“지 선생님!”


최보라가 뒤에서 윤수를 불렀다.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라 교장 선생님한테 먼저 알려야 할 거 같아서...”


“뭐 교장? 당신 미쳤어? 상황파악이 안 돼?”


윤수는 최보라에게 일갈 후 다시 옥상으로 뛰어갔다. 한층 한층 올라갈수록 끈적끈적한 습기가 온몸에 달라붙었다.


한편 주희는 아래에 있는 학생들을 보며 난간에서 왼손을 놓았다. 그녀가 휘청거리자. 학생들도 똑같이 휘청거렸다.


“야, 야 떨어진다!”


“어떡해!”


“왜 학교에서 자살하고 지랄이야!”


주희는 마지막 소리만큼은 확실히 들었다. ‘왜 학교에서 자살하고 지랄이야.’


‘그래야 하니까...’


이윽고 주희가 나머지 오른손마저도 놓으려 할 때였다.


“안 돼! 주희 학생!”


윤수가 소리쳤다. 그는 헐떡이는 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안 돼, 너까지 죽으면! 이건 지혜가 바라는 게 아냐!”


“지혜는 바라지 않아도 돼요. 내가 바라는 거니까...”


윤수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다가서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


“그래. 네가 왜 그러는 건지 알아. 지혜랑 네 이야기 많이 했어. 제일 친한 친구였다며.”


“네, 그래서 더 아팠을 거예요.”


***


주희는 미정, 혜리, 연희가 단톡방에 자신을 초대한 걸 떠올렸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 지혜만 쏙 빼놓고 새로운 단톡방을 만들었다.


주희: 뭐야, 이건?


혜리: 너, 놀라지 마라.


주희: 뭘?


미정: 야, 말해 김연희. 네가 하기로 했잖아.


주희는 아이들이 뭘 하는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올라오는 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희: 주희야... 지혜가 국어 선생님이랑 잤대...


주희: 뭐?


혜리: 지혜가 국어 선생님이랑 잤다고.


미정: 너도 안 믿기지? 게다가 임신까지 했단다.


주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주희: 누구한테 들은 건데??


연희: 오늘 과학실에서 담임쌤 한테...


주희: 담임 쌤이 어떻게 알고?


미정: 우리도 오늘 들은 건데 사실 담임 쌤이랑 국어 쌤이랑 사귀는 사이였대. 그런데 최근에 국어 쌤이 바람이 났고, 누군가 했는데 윤지혜였대.


주희: 지혜인건 선생님이 어떻게 알았는데?


혜리: 며칠 전에 지혜가 담임 쌤한테 임신테스트기 가져와서 임신했다고 상담했대. 그래서 누구랑 잤냐고 하니까, 국어 쌤이라고...


주희는 혼란스러웠다.


연희: 우리 이제 어떡해... 애들아...?


미정: 어떡하긴 우리 배신한 거지.


혜리: 그러면서 모르는 척 국어 쌤한테 고백하자고 한 것도 웃기지 않냐? 우리 몰래 뒤에서 호박씨 깠을 거 아냐.


주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주희: 지혜... 한테는 아직 말 안 한 거지...?


연희: 담임 쌤이 말하지 말래. 자기도 충격이라고...


미정: 그리고 말해서 뭐해. 자기가 잤다고 하겠어? 발뺌하겠지.


혜리: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양주희, 너 지혜랑 친한 거 아는데 진짜 너까지 우리 배신하지 마라.


미정: 나 완전 어이 털려.


주희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혜가 다른 아이들보다 국어 선생님이랑 더 친하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그 뒤로 주희를 포함해 3명의 아이들은 지혜를 피하기 시작했다. 지혜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지혜가 오면 자리를 피했다.


지혜: 너희들 갑자기 왜 그래? 왜 나 무시하고 유령취급 해? 응?


지혜가 단톡방에서 그 말을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방을 나간 게 주희였다.


지혜: 양주희 너까지 이러기야?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말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냐.


주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혜에 대한 실망감이 커 가장 티나 게 지혜를 무시했다. 그 후로 지혜는 학급에서 왕따가 됐고, 몇 주후 국어 선생님이랑 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모든 게 최보라의 계획대로였다. 그녀는 자기가 괴소문을 만들어 내고도 지혜를 교무실로 불렀다. 지혜를 위하는 척 정말 국어 선생님이랑 잤냐고 물었다. 지혜가 아니라고 하자, 왜 거짓말을 하냐며 버럭 소리쳤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성공이었다. 교무실 사건 이후로 지혜는 전교에 국어 선생님과 잤다는 소문이 퍼졌다. 더는 얼굴을 들고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무단결석을 하자 임신을 해서 그런다는 괴소문이 더해졌다.


***


“그때, 제가 조금만 믿었어도... 단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눴어도... 지혜가 억울하게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


주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지혜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야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학폭위가 열리기 하루 전 최보라가 자신과 미정, 혜리, 연희를 과학실에 불렀던 걸 떠올렸다. 네 명이 나란히 과학실에 들어오자 최보라가 말했다.


“너희들 잘 들어. 어제, 지혜 자살했대.”


아이들은 놀란 채로 입을 가렸다. 그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주희였다. 최보라가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내일 학폭위 열릴 거야. 가해 학생들은 너희들 4명으로 지목됐어.”


“네..?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연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자, 최보라가 미간에 힘주며 말했다.


“너희 부모님에게는 선생님이 다 연락했고, 지금부터 시키는 대로 해.”


아이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휴대폰 다 가져왔지?”


아이들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지금 빨리 휴대폰 초기화해. 선생님이랑 메시지 주고받았던 거, 너희들끼리 주고받았던 거, 지혜랑 주고받았던 거 다 삭제해. SNS도 지혜 소문이랑 관련된 게시물 있으면 다 삭제하고.”


아이들은 최보라가 시키는 대로 했다. SNS 게시물을 삭제하고 휴대폰을 초기화했다. 최보라는 남은 자료가 있나 아이들 휴대폰을 하나하나 재확인했다. 그렇게 모든 증거를 인멸 한 뒤 최보라가 입을 뗐다.


“지혜가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던 선생님이 있어. 학폭위 때 그 사람이 올 거야. 그리고 지혜가 죽은 건 너희들 때문이라고 할 거야. 무조건 발뺌해. 너희들도 소문의 진원지가 어딘지 모른다고 해. 그러면 학교에서는 지혜가 너희들 때문에 자살한 게 아니라고 결론 낼 거야. 알았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보라는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들을 한 명씩 위로했다. 주희는 기분이 이상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잘못이 없는데, 이상하게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


“저기 선생님...”


주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혜요... 정말로 국어 선생님이랑 자고... 임신까지 한 거 맞아요?”


“왜 아닌 거 같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자, 봐. 이게 지혜 임신테스트기야.”


최보라가 품에서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정확히 빨간색이 두 줄로 되어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 학폭위 때 지혜가 국어 선생님이랑 잤다는 걸, 그걸로 확인시켜 주면 되지 않을...”


“안 되지!”


최보라가 반박했다.


“너 지금 지혜가 죽은 마당에 이 임신테스트기 보여주면서 지혜가 진짜로 임신했다는 거 확인시켜주면 어떨 거 같아? 그게 죽은 애한테 할 짓이니? 아예 확인 사살을 시키자는 거야?”


“그게 아니고....”


주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보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죽은 친구에게 임신했다는 걸 알리는 건 아예 쐐기를 박는 꼴이었다. 하지만 꺼림칙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


주희는 한 손으로 옥상 난간을 붙잡은 채 윤수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상해요... 담임 선생님 말로는... 지혜가 국어 선생님이랑 잤다고 하는데... 자꾸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 거죠?”


윤수가 천천히 다가가며 대답했다.


“진실이 아니니까. 지혜는 국어 선생님이랑 잔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왜 전 지혜를 믿지 못한 거죠? 왜 전... 담임 선생님 말만 믿고...!”


“그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주희가 소리쳤다. 동시에 한 손으로만 난간을 잡고 있는 그녀의 몸이 휘청였다. 운동장에 서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 비명소리가 들렸다.


“죽으면 안 된다고 인마!”


윤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죽으면 누가 제일 좋아할 거 같아? 네 말대로 지혜가 억울한 누명을 쓴 거라면, 제일 친한 네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거 아냐? 죽는다고 모든 게 해결될 거 같아? 네가 죽으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냐고!”


최보라. 그녀였다.

“그러니까 살아서, 증언해! 지혜는 죽어서 아무 말도 못 하니까 네가 대신 말해 주라고! 지혜는 국어 선생님이랑 자지 않았다! 최보라 그년이 지혜를 죽게 만들었다! 증언하라고!”


***


지혜: 나 너무 억울해 주희야... 내가 국어 선생님이랑 잤다는 거 정말 믿는 거야? 너까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주희: 그럼 지금 학교 안 나오는 이유가 뭔데? 임신해서 그런 거 아냐?


지혜: 아니야...나 무서워... 애들이 다 나한테 손가락질하는 거 같아...


***


지혜랑 주고받은 마지막 메시지였다. 주희가 빈틈을 보이자, 윤수는 재빨리 뛰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주희야. 선생님이랑 같이 싸우자. 지금이라도 네가 함께 하면 지혜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어.”


결국 눈물을 흘리는 주희였다. 윤수가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무사히 주희를 구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 때였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그런다고 해서 산산 조각난 지혜의 팔다리가 다시 달라붙기라도 한대? 쏟아진 지혜의 피를 주워 담을 수 있대?”


윤수는 등골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아이. 소녀가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미끄러지듯 주희에게 다가와 귓가에 대고 말했다.


“죽어.”


“네...?”


“죽으라고. 지혜 다음으로 죽어야 할 사람은 너니까.”


소녀가 사망선고를 내렸다. 윤수는 놀라 입을 떼지 못했다. 새하얀 피부. 갈라진 입술. 틀림없는 그녀였다.


털썩.


윤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러자,


맥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주희였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물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꺄악!”


“꺄아아악!”


운동장에 있는 학생들이 소리쳤다. 저마다 까마귀 소리를 내며 푸드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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