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20년 전] 이름이 있는 곳

by 송아론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순백의 찔레꽃. 들판에 수채화를 찍어 놓은 것처럼 형형색색의 조화를 이루는 코스모스. 수줍은 듯 배꼼 노란 잎을 내보이는 괭이밥. 윤수가 생각하는 6월의 초여름이란 그런 것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바람이라도 불면 괜스레 마음이 들떠 어디론가로 날아가고 싶은 날.


하지만 시골은 6월의 적나라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도시에서는 낭만 일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뙤약볕 그 자체였다. 태양의 직사광선은 보이는 사람 족족 지져버리고 있었다. 그건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집 안에 있는 데에도 더위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아버지는 왜 이사할 때 선풍기 하나 가지고 오지 않은 건지 원망스러웠다. 윤수가 마룻바닥에 대짜로 뻗은 채로 있자,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성문이 말했다.


“뭐 하니? 거기 서?”


“더워서요.”


윤수는 반팔도 못 입겠다며 누운 채로 상의 탈의를 했다. 이놈의 시골은 학교도 그렇지만 날씨부터 적응되지 않았다. 잘 때는 창문에 서리가 낄 정도로 춥다가 해만 뜨면 한 여름이었다.


“주말이면 친구들도 만나고 좀 그래라.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심심하지 않아?”


“아빠도 똑같잖아요.”


“아빠는 방금 네 담임 만나고 왔어.”


“무슨 얘기 하셨는데요?”


“그냥 옛날이야기하고, 너 학교생활 어떤지 물어보고 왔지. 아직 서먹해서 그런지 애들이랑 친하게 못 지낸다며?”


“못 지내는 게 아니라 안 지내는 거예요.”


“왜?”


“또 수준이 안 맞느니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니지?”


“수준이 안 맞는 건 사실이에요.”


“남자들은 원래 정신연령이 낮다니까 그러네.”


성문은 윤수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정신연령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윤수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애들이 자꾸 여자애를 괴롭히더라고요.”


성문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 그 언청이? 네가 좀 도와주지 그러냐. 그 애 엄마도 지적장애인이라는데.”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윤수가 얼굴에 물음표를 달았다.


“아빠랑 그 아줌마랑 동갑이야. 옛날에 같은 반이었고.”


“그래요?”


윤수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려고 그래?”


“잠깐 나갔다 오려고요”


윤수는 상의를 입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



‘여기였나?’


윤수는 첫 번째 개울가에서 선채로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번 소녀가 하교하는 걸 본 적이 있어 집이 어디쯤인지 대강 알고 있었다. 소녀는 이 개울가에서 오른쪽으로 갔다. 윤수는 뛰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라면 뛰어서 4분 거리에 소녀의 집이 있었다. 자신의 집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였다.


잠시 후, 윤수는 외딴섬처럼 덩그러니 있는 소녀의 집을 발견했다. 대문을 두드리려 할 때였다.


“하...하지 마세요...”


“거참. 가만히 좀 있어 보이소.”


“이러시면... 안 돼요...”


“채 씨, 금방 끝난다니까 그러네. 응? 마, 니 아직도 안 나갔나? 엄마랑 아저씨랑 할 얘기 있으니까 퍼뜩 나가 있으라.”


강압적인 남자의 목소리와 반항을 하는 여성의 음성이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윤수가 문틈 가까이 눈을 가져다 대자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 니 귀 먹었노? 나가 있으란 소리 안 들리나?”


수염이 가무잡잡한 남자가 소녀에게 눈을 부라렸다.


“이 자슥이 어른 말이 말 같지 않나!”


남자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릴 때였다.


“안녕하세요~ 저 지윤수라고 하는데요.”


윤수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뭐꼬?”


남자가 현관문 바라보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문을 열었다.


“누꼬? 처음 보는 아인데.”


미간에 커다란 점이 있는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저 일주일 전에 서울에서 형사인 아버지랑 이사 온 지윤수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형사?”


“네.”


윤수가 싱긋 웃자, 남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흠, 흠, 아 그 서울에서 아내 잃고 왔다 카는 형사 말하는 기고. 내 잘 알지.”

그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남자였다.


“그래, 저 아랑 놀러 왔나?”


“네, 같은 반이거든요.”


“기래, 재밌게 놀아라. 아저씨는 볼일이 있어 간다잉?”


남자는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쫓기듯 집을 빠져나갔다. 윤수는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본 뒤 소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소녀 엄마, 채윤서의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상의가 벗겨진 채로 속옷이 드러나 있었다. 소녀가 옷을 입혀주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으..응...괜찮아...”


“나 잠깐 나갔다 와도 돼?”


“어디 가는 데... 엄마 무서워...”


“금방 올게 걱정하지 마.”


윤수는 모녀의 대화를 들으며 혼란스러웠다. 하필 이럴 때 집으로 찾아온 게 미안했다. 대문을 등진채로 있자, 소녀가 나왔다. 그녀는 입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였다.


“우리 집 어떻게 안거야?”


“아... 지난번에 이쪽으로 가는 거 보고 와봤는데... 집이 여기 하나뿐이길래...”


윤수는 죄지은 것처럼 소녀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고마워.”


“뭐?”


“고맙다고. 하마터면, 그 아저씨 죽일 뻔했거든.”


도와줘서 고맙다가 아니라, 살인을 막아줘서 고맙다? 윤수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왜 온 거야?”


“아... 그냥 심심해서.”


“심심하면 이렇게 불쑥 찾아도 되는 거야?”


“그건 아닌데...”


“덕분에 못 볼 꼴을 보였네.”


“미, 미안해.”


윤수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괜찮아. 나쁜 건 네가 아니니까.”


사실은 당당하게 소녀에게 같이 놀자고 할 참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윤수가 뻘쭘하게 서 있자, 소녀가 불쑥 말했다.


“그래 온 김에 우리 거기나 가볼래?”


“응? 어디?”


“재미있는 곳이 있어. 따라와 봐.”


소녀는 장소도 말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윤수는 무작정 그녀를 쫓아갔다. 소녀는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산을 오르는데 속도가 줄지 않았다. 반면 윤수는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태어나서 이런 산길을 올라가는 건 처음이었다. 반면 소녀는 호흡도 가벼웠고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


윤수가 소녀 뒤에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벌써 지친 거야?”


“그게 아니라 아까 너희 집 올 때 뛰어와서 체력 소모가...”


자존심상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보고 싶었니?”


훅 들어온 소녀의 말에 윤수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 언덕만 넘으면 돼. 빨리 와.”


소녀가 산을 오르며 말했다.


***


이윽고 산을 다 올라왔을 때였다.


쏴아아아ㅡ


눈앞에서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윤수는 넋을 잃었다.


“이런 곳 있는지 몰랐지?”


윤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시골 촌구석이라 말 그대로 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명소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고만 있어도 더위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윤수는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란 곳이라면서, 지금까지 농사짓는 데만 부려먹었지 한 번도 마을 구경을 시켜준 적이 없었다.


소녀가 폭포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안쪽에도 들어갈 수 있어.”


“안쪽?”


“응. 들어가면 동굴이 있는데 가볼래?”


윤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저 거센 폭포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간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발을 헛디디거나 물살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 바로 황천길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따라와 봐.”


“잠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윤수가 말릴 새도 없이 소녀는 폭포수에 뛰어들었다.


“저기 들어 간 거야?”


윤수가 소리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란 소리는 폭포수가 다 먹어치우고 있었다. 윤수는 설마 소녀가 떠내려간 건 아닐지 밑을 내려다봤다가, 공포심만 늘었다. 폭포수 아래는 물회오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빠졌다가는 숨 한번 쉬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


‘해보자!’


윤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는 두려움 보다, 소녀에게 겁쟁이로 낙인찍히는 게 더 싫었다. 몇 발작 뒤로 물러난 뒤 이를 악물고 도움닫기를 했다. 폭포수를 향해 폴짝 뛰어올랐다.


촤아악ㅡ!


짧은 순간에 폭포수가 온몸을 적셨다.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자 소녀가 서 있었다.


“들어왔네? 떨어질 줄 알았는데,”


소녀는 어느새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어때?”


그녀가 윤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뭐..?”


“내 모습이 어떠냐구.”


윤수는 당황해 말끝을 흐렸다.


“그냥...아무렇지 않아,,.”


“거짓말. 네 마음은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소녀가 윤수를 쏘아봤다.


“너도 내 입이 혐오스럽지?”


직설적인 물음에 윤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소녀의 입이 혐오스러운 건 맞는 말이었다. 윗입술이 두 갈래로 나눠져, 소녀랑 마주 보고 밥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윤수는 미안하게도 그러지 못할 거라고 대답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소녀를 대하는 마음을 달라지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네 입술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인데,,, 난 네가 싫지는 않아.”


소녀는 윤수의 답변을 듣고는 미소 짓더니 마스크를 썼다. 폭포수 앞쪽으로 걸어가 물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내가 여기 어떻게 발견했는지 알아?”


“어떻게 발견했는데?”


“자살하려다가 발견했어. 폭포수 쪽으로 뛰어들었는데, 안쪽에 동굴이 있어서 살았어. 신기하지?”


윤수는 소녀에게 네가 더 신기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그녀의 마음이 가늠되지 않았다.


“왜 빤히 쳐다봐?”


“아니, 나는 엄마가 죽었을 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봐서.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왜 돌아가신 거야?”


“나랑 같이 시장 보고 나오다가 어떤 아저씨한테 죽었어.”


“많이 놀랐겠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손이 떨려. 봐봐, 신기하지?”


윤수는 떨고 있는 손을 들어 보였다.


“잡아줄까?”


소녀가 묻자,


“아니. 이제 혼자 이겨 낼 수 있어.”


윤수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멈춘 뒤, 봤냐며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너도 죽고 싶다는 생각하지 마. 내가 이겨 낸 것처럼 너도 이겨낼 수 있어.”


“정말?”


“아니면,,, 이름을 알려주면 내가 특별히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고.”

윤수는 능청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순간 자신이 아버지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내 이름을 몰라?”


소녀가 말했다.


“알려준 적 없잖아.”


“물어보지 그랬어.”


“물어볼 수가 없었어.”


“맞아. 내가 벽을 만들었으니까.”


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린이야. 엄마 성을 따서 채린.”


“채린? 이름 예쁘다. 몇 살이야?”


윤수는 물어보면서도 불안했다. 린과 함께 있으면 기가 죽는 이유가 혹시나 연상이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리고 정말 연상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너보다 누나야.”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정말? 그럼 6학년이야?”


윤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니, 거짓말이야.”


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윤수는 그녀의 장난에 화내기보다 연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안심이 됐다. 가슴을 쓸어내린 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지내자.”


린은 잠시 윤수의 손을 응시하더니 맞잡으며 말했다.


“좋아.”


이로써 윤수는 린에게 있던 거리감과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음을 느꼈다. 학교에서 표정 하나 없었던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웃을 줄 알았고, 목소리 톤도 여러 가지며 장난까지도 칠 수 있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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