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20년 전] 위기

by 송아론

작고 아담한 세모난 집. 윤수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2층 다락방에서 일어났다. 다락방인 걸 모르고 허리를 곧추세우다, 쿵!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으...”


윤수는 허리를 숙인 채 머리를 감쌌다. 벌써 세 번째였다. 이사 온 첫날 너무 피곤해 거실에서 잤다가, 달랑 방 1개 있는 게 집의 전부라는 걸 알고는 실망감으로 가득 찼을 때 성문은 윤수에게 2층 다락방을 소개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꼭 캥거루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엄마 배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거실로 내려가자 성문이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오늘 도시락 반찬은 뭐예요?”


“계란, 소시지, 된장국,”


“내일은요?”


“달걀, 햄, 된장국”


“그다음 날은요?”


“계란 프라이, 비엔나, 된장국”


“된장국만 빼고 계속 바뀌어서 좋네요.”


“그렇지?”


성문이 씩 웃으며 윤수를 쳐다봤다. 윤수가 한숨을 쉬자 성문이 찔리는지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일은 반찬 바꿔 줄게.”


“아니에요. 노력하는 아버지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죠.”


“그래, 나도 매일 똑같은 반찬을 줘도 투정 부리지 않는 아들을 리스펙 하마.”


성문이 웃자 윤수도 따라 웃었다. 윤수는 이사 오고 나서 가장 흥미로운 광경이 지금이었다. 요리라고는 해본 적 없는 투박한 손과 근육질 몸으로 도시락을 싸는 모습을 볼 때면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어머니가 쓰던 분홍 앞치마와 굳이 쓸 필요 없는 위생 모자는 덤이었다. 저렇게 신이 난 모습만큼 맛이 좋았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윤수는 세면실에서 씻은 뒤 학교에 갈 준비를 마쳤다.


“아직도 멀었어요?”


“그 말 할 때 다 됐다.”


성문이 반찬 뚜껑을 닫고 도시락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잘 먹을게요.”


“그래, 잘 다녀와라.”


윤수는 책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순간 방금도 내가 웃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억지로 웃기 시작했는데, 웃다 보니 이게 진짜 웃음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윤수는 아버지가 엉덩이를 흔들며 요리를 하던 모습을 떠올리곤 한 번 더 웃었다.


윤수가 10분 일찍 일어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개울가에서 학교로 향하지 않고 린의 집 쪽으로 향했다. 같이 등교를 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신경 쓴 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신경한 거 같지도 않은 시간대. 그게 바로 10분이었다. 얼마간 걷자, 린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모였다. 그녀가 다가오자 윤수가 입을 뗐다.


“린! 같이 가자.”


“응.”


윤수가 린 옆을 붙었다. 그녀는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언청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윤수는 괜히 어색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취미는 뭔지, 좋아하는 건 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혈액형은 뭔지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린은 하나씩 대답을 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왜 자꾸 물어보는 거야? 나한테 관심 있어?”


“응. 그러면 안 돼?”


윤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도 엄마랑 처음 만날 때 이런 식으로 대화를 했을까 싶었다.


“그럼 내 질문에도 답해.”


린이 말했다. 윤수는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 변치 않을 자신 있어?”


“변치 않을 자신?”


그게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다다닥- 그르르릉!


갑자기 앞쪽에서 짐승 소리가 났다. 윤수가 고개를 바로 하자 개울가 건너편에서 도사견 한 마리가 맹렬히 뛰어오고 있었다. 도사견은 순식간에 징검다리를 건너더니, 윤수를 향해 돌진했다.


‘왜, 이쪽으로...?’


윤수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어느새 코앞까지 뛰어온 도사견이 윤수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올랐다. 뛰어올랐다.


“아악!”


윤수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도사견의 송곳니가 윤수의 팔에 찍혔다.


“그르르릉!”


도사견이 윤수의 팔을 비틀려할 때였다.


“이노무 개새끼가 미칬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리부리한 눈. 미간에 보이는 커다란 점. 박중구였다.

“마! 이거 놓으라!”


도사견이 윤수의 팔을 놓지 않자 박중구가 목줄로 도사견을 후려 팼다. 깨갱 거리며 턱을 벌리는 도사견이었다.


“아아...”


윤수는 고통에 침음을 흘렸다. 팔뚝이 피범벅이었다.


“아야, 괜찮나? 웬 노루 새끼가 보이길래 잡을라 캈는데 내 실수다. 미안하다.”


박중구는 쓰러진 윤수를 안고 개울가로 향했다. 피범벅이 된 윤수의 팔을 흐르는 물로 씻겨냈다. 식염수로 소독을 한 뒤, 빨간 약을 상처 주위에 발라 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능숙하게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응급처치가 빠르고 수준급이었다.


“일어설 수 있겠나?”


“네...”


“진짜, 미안하데이. 빨리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말씀드리자.”


박중구가 윤수를 부축했다.


“괜찮아?”


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응... 나 일단 집으로 갈게...”


“알겠어.”


린은 박중구가 윤수를 부축해 집으로 가는 걸 바라봤다.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도사견은 개울가를 벗어나지 않았다. 윤수의 혈액에서 감칠맛을 느꼈는지 혀를 날름 걸렸다. 린은 그 모습이 증오스러웠다. 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것처럼 구는 모습이 역겨웠다.


린은 앞발을 핥고 있는 도사견을 주시했다. 수초 간의 시간이 흐르더니 그녀의 눈동자가 일순간 사라졌다. 흰자위만 덩그러니 남더니 동공이 하나의 흑백의 점으로 시작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 전체가 까맣게 변했다. 도사견은 혀를 날름거리다 린과 눈을 마주치고는 움찔거렸다. 끄응- 신음소리를 내더니 똥과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옆으로 맥없이 고꾸라져 몸을 달달 떨었다. 아가리에서 피거품이 올라왔다. 가쁜 숨을 헐떡이더니, 아가리를 세차게 닫아 스스로 혀를 절단 냈다.


***


윤수는 박중구의 부축을 받아 집 앞에 도착했다. 성문은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가 저분이고?”


박중구가 말했다. 윤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윤수 아버님!”


박중구는 성문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성문은 윤수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고는 농기구를 팽개쳤다.


“윤수야. 팔이 왜 그래?”


“죄송합니다. 제 개가 아를 물었다지 뭡니까.”


“개가요?”


“야. 멀리서 본 게 꼭 노루 같아서 개한테 물라고 했다가....”


“어디서 물린 겁니까?”


“저 앞 개울가에서 물렸심니다.”


박중구가 개울가 쪽을 가리켰다. 성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긴 애들 등교하는 곳이잖아요. 위험하게 함부로 사냥하면 어떡합니까?”


“그게... 제 개가 원래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아가꼬 사람은 물지 않는데, 아를 처음 봐서 그런 거 같습니다. 주의를 단단히 줄 테니까. 한 번만 봐주이소.”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조아리는 박중구였다. 성문은 주의는 당신이 받아야 한다고 말하려고 하다 꾹 삼켰다. 이렇게까지 사과하는데 더 따져봤자 감정 소모만 될 뿐이었다. 성문이 윤수를 상태를 체크하며 말했다.


“지금 당장 주사 맞으러 병원에 가자.”


“야, 병원비 값은 제가 드리겠심니다.”


품에서 돈 봉투를 꺼내는 박중구였다.


“괜찮습니다. 뭐 일부로 그런 거 같진 않으니...”


“받으세요, 아빠.”


윤수가 말했다.


“받으라고?”


성문이 묻자.


“네, 받으세요.”


윤수가 대답했다.


“야, 받아야 제 마음도 편하지 않겠습니꺼.”


“그러죠. 알겠습니다.”


성문이 돈 봉투를 받을 때였다. 박중구의 표정이 일순간 변했다. 성문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이만 가겠십니더. 죄송합니다.”


박중구는 몇 번이나 더 고개를 숙인 뒤 등을 돌렸다.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싸가지 없는 것들. 이렇게까지 했으면 거절할 줄 알아야지.”


다시 고개를 돌려 부자에게 죄송하다는 몸짓을 하는 그였다.


***


성문은 윤수를 거실 의자에 앉힌 뒤 상처부터 확인했다. 돌돌 감았던 붕대를 풀자, 도사견의 이빨 자국이 드러났다. 살이 움푹 파여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그 개에 비하면 심각한 거 아니에요.”


윤수가 건조하게 말했다.


“무슨 개였는데?”


“도사견이었어요.”


“도사견?”


도사견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투견이었다. 오로지 싸우기 위해 개량된 품종이라 한번 물면 죽을 때까지 절대 놓지 않는 습성도 있었다. 늑대보다도 괴력이 강한 도사견도 있을 정도. 그런 개에게 물렸는데 이 정도로 끝났다는 건 윤수 말대로 다행이었다.


“일단 식염수로 소독부터 해야겠다. 이장님한테 약품 좀 얻어 올 테니 있어봐.”


“소독했어요.”


윤수가 말했다.


“소독했다고?”


“네, 그 아저씨가 식염수로 했어요.”


“그래?”


성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염수를 지니고 다니는 사냥꾼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근데요 아빠,”


“응?”


“그 아저씨 일부로 저한테 이런 거 같아요.”


“왜?”


“린이라고 알죠?”


“그 언청이는 왜?”


“언청이 아니에요.”


윤수는 목소리를 높였다가 아차 싶었다.


“왜 화를 내고 그래 인마. 아무튼 그 여자애가 왜?”


“저번 주 주말에 그 애 집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그 아저씨가 린 엄마를 성추행하려고 했었어요. 제가 집에 찾아가는 바람에 실패했고요.”


“그래...?”


성문이 수상쩍은 얼굴을 했다.


“그래서, 일부로 너한테 이런 짓을 했다는 거야?”


“네, 직감이지만요.”


“아냐. 일리 있어.”


성문은 윤수의 말에 동조했다. 이제야 모든 게 납득이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줬던 거였구나...”


“뭐가요?”


성문이 돈 봉투를 보여주며 말했다.


“봐라. 너 엄마 장례식장 갔을 때, 사람들이 봉투에 돈 넣어서 부조한 거 봤지?”


“네.”


“보통 봉투에 돈을 넣어서 준다는 건, 미리 누군가에게 주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야. 그런데 아까 그 아저씨가 우리한테 준 돈 봐라. 봉투에 줬잖냐. 그럼 이게 뭘 뜻하겠어?”


“계획적이었다는 뜻이네요.”


“그래, 네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야. 어쩐지 그 자식 갑자기 표정이 바뀌는 게 이상했어. 응급처치를 한 것도 그렇고..”


윤수는 감탄했다. 아버지가 추리를 하는 건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박중구가 계획적으로 자기를 위험에 빠트렸다는 걸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아빠 손.”


성문이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양손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어쨌든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하자. 선생님한테는 아빠가 말할게.”


성문은 겉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


윤수는 읍내 병원에서 예방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복용했다. 병원에서 받는 치료 시간보다 이동시간이 더 길었다. 두 사람은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주사 맞을 때 어땠어?”


성문이 운전을 하며 물었다.


“물어보지 마세요. 생각도 하기 싫으니까.”


선단 공포증이 있는 윤수에게 주삿바늘은 공포 그 자체였다. 보기만 해도 바늘이 뇌 속에 침투하는 것만 같았다.


“너 치료받는 동안 시장 봐왔다. 이따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줄게.”


“드디어 소시지에서 탈출하는 건가 보네요.”


“그래, 오늘은 닭볶음탕 도전해 보려고.”


“저도 아빠가 성공한다는 가정 하에 도전할 게요.”


“이 녀석이 살만 한가 보네.”


윤수는 힐끔 핸들을 잡고 있는 성문의 손을 바라봤다. 성문의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



윤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가방을 맸다. 다쳤다고 학교에 빠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동작이었다. 성문이 대견하다는 투로 말했다


“하여간 근성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오늘 학교 안 가도 돼. 팔 때문에 필기도 못할 텐데.”


“왼손 있잖아요.”


“왼손으로 무슨 필기를 한다고.”


“저 왼손잡이인 거 모르세요?”


성문은 한 박자 늦게 입을 뗐다.


“아, 알지.”


“모르셨던 거 같은데.”


“됐고, 아파서 못 견디겠으면 민환이 한테 조퇴하겠다고 해.”


“저 왼손잡이인 거나 기억하세요.”


윤수는 새침하게 말한 뒤 밖으로 나갔다.


성문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는 곧장 현관문을 닫은 뒤 거실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일이고.


“교장선생님. 그 머리숱 없고 이마에 점 있는 사람 말입니다.”


-박중구? 가는 와?


“그 사람 개가 오늘 윤수 팔을 물었습니다. 집이 어딥니까?”


-목소리는 와 그러노?


“예?”


-떨려온다 아이가.


“아, 숨이 차서요.”


성문은 그 말을 하면서도 목울대를 떨었다. 이장이 박중구의 집 위치를 알려주자 성문은 끊겠다는 말도 없이 수화기를 내렸다. 그리고,


“시발!!”


성문이 소리쳤다. 주방 찬장을 열어 약봉지를 꺼냈다. 가로로 찢은 뒤 알약을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 물도 없이 맨 목으로 삼켰다. 안방으로 들어가 서랍에 있는 권총을 꺼냈다. 탄환을 확인 한 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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