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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Sep 04. 2020

[사례1]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칼을 든 남자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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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시 또는 밀리의 서재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사례1]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칼을 들고 상담소에 온 남자



원장님의 상담사례 중 가장 놀라운 일은 자칫하면 우리 동네에서 ‘묻지마살인’이 발생할 뻔했다는 거였다. 상담소는 예약하고 오는 곳인데, 이를 몰라 바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날도 원장님은 상담을 마치고 저녁 9시에 퇴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밤이었다. 원장님은 신발을 신은 뒤 상담소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웬걸, 한 청년이 현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기, 상담 좀 할 수 있나요.”

원장님은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어 문 앞에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은 상담이 다 끝났는데 어떡하죠?”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요.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면 차라리 예약하고 내일 오시겠어요?”

“내일이면 늦습니다.”

푹 눌러쓴 모자. 상기된 얼굴. 무언가 일을 벌일 것 같은 완고함. 결국 원장님은 청년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자리를 안내하고는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청년은 대답 없이 품에서 신문지 뭉텅이를 책상 앞에 턱, 놓았다. 

“이게 뭔지 아세요?”

“글쎄요, 이게 뭔가요?”

원장님은 섬뜩함을 느꼈다. 굳이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칼입니다.”

“예, 그러세요. 어쩐 일로 칼을 들고 다니게 된 건가요?”

“저 무섭지 않으세요?”

청년은 말을 하면서도 원장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것은 처음 대화를 나눌 때부터 보인 패턴이었다.

“무섭지는 않고, 칼을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 같네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런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사람을 죽이러 가는 중이었어요. 그러다 상담소 간판을 보고 저도 모르게 여기 오게 됐고요.”

“잘 오셨어요. 아주 잘 오셨어요. 그래, 어쩐 일로 사람을 죽이려 하나요? 어디로 가는 중이었죠?”

“그냥… 몇 개월 전부터 지하철역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칼로 다 찔러 죽여 버리고 싶었어요. 그걸 계속 참고 있었는데, 오늘은 찔러야 속이 시원할 거 같아서 그랬고요.”

원장님은 청년이 하는 말을 듣고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청년이 상담소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그런 행위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걸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원장님이 입을 뗐다.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거죠?”

“어떤 거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한눈에 봐도 사연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이렇게 할까요? 어차피 오셨으니까, 상담을 받으려면 제대로 받아보세요.”

“저는 지금 돈도 없고… 상담비도 없어서… 정상적인 상담을 받을 수가 없어요.”

“괜찮아요. 우선 검사지부터 해봐요.”

청년은 불안한 눈동자로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환경프로파일 검사지였다. 청년은 40분간 검사지에 체크한 뒤 원장님에게 건넸다. 그의 이름은 이지욱이었다. 원장님은 검사지를 훑어보며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부모님에 대한 분노가 컸다.

“검사지를 보니까 사람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큰 거로 나타나네요. 그래서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것 같고요.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얘기를 해보시겠어요?”

내담자는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가 3살, 누나가 5살이었던 무렵, 부모님이 이혼했다. 엄마는 돈과 귀금속 등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걸 가지고 사라졌다. 그 후로 내담자는 누나, 아버지와 함께 옥탑방에서 살았다. 옥탑방은 화장실도 없고 물도 나오지 않고 바퀴벌레와 곰팡이가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물이 나오는 곳이 없다 보니 씻을 수도 없었고, 용변을 볼 데도 없어 방안 아무 데나 봤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내담자와 누나에게 손찌검했다. 또 잘못을 저질렀다며 옥탑방에서 쫓겨나 문 앞에서 쭈그려 자는 날도 많았다. 그 긴 밤이 너무나 무서웠고,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 생활을 무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했던 것이다.

내담자는 지금 떠올려 봐도 아버지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건 싸움을 시키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겠다며 몇 학년이나 높은 동네 형들과 싸움을 붙였다. 그럴 때면 내담자는 동네 형들에게 마구잡이로 맞았고, 아버지는 왜 이기지 못하냐며 또 내담자를 구타했다. 이런 방식은 친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내담자를 사촌과도 싸우게 했다. 그리고 싸움에 지면 방으로 끌고 가 내담자를 팼다. 그럼에도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한 번도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이처럼 아버지는 부모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깡패였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누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가출을 했고, 내담자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성적이었고 학교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소외를 당하기 일쑤였고, 초, 중, 고 모두 왕따를 당했다. 옥탑방을 벗어난 건 중학교 2학년 말이었지만, 내담자의 학교생활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시작한 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아버지를 힘으로 이기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반대로 아버지를 패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거나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주먹부터 나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용돈 한 번 준 적이 없었고, 경제적으로 지원한 적도 없었다. 늘 그게 불만이었고, 그 불만이 폭발할 때면 아버지와 전쟁을 치렀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은 적이 없어 군 생활도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겨우 군대를 전역했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또다시 아버지와 매일 싸움을 했다. 사회생활도 어렵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사람에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어디서든 나를 당당하게 내세운 적이 없었다. 심지어 밥을 먹으려 식당에 들어가서도, 주문을 소리 내서 한다는 게 힘들어 그냥 나가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나.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나. 늘 그것이 그의 숨통을 옥죄게 했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자기처럼 살고 있지 않았다. 친구, 또는 연인끼리 짝을 지어 다니는 사람들. 가족끼리 화기애애하게 거리를 걷는 사람들. 늘 얼굴에 미소를 달고 두려움이나 불안감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자기가 살아온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그는 또 여자에 대한 혐오감과 트라우마가 있었다. 여자가 근처에 있을 때면 온몸이 경직됐다.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동시에 여자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기도 했다. 그런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가버렸다는 생각에 여자를 신뢰하지 않았다. 오직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한 삶 속에서도 그는 나름 노력했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피시방 알바를 했다. 처음으로 하는 알바였고 크나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피시방 알바에서도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컵라면에 물만 부어서 주면 되는 간단한 일조차도 하기 어려웠고, 특히 손님을 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손님의 질문에 답하는 것, 손님에게 무언가를 물어봐야 하는 것. 손님이 오고 갈 때 인사를 하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또 알바를 끝마칠 시간에는 청소해야 하는데,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일상 자체가 스트레스이자 지옥이었다. 반면 자기보다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가 극에 달할 순간이 바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갈 때였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모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나만 부적응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몇 개월 전부터 사람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감정을 꾹꾹 눌러냈는데, 오늘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어서 칼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상담소 간판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봤다. 자기도 모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상담소에 왔다는 것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가 이십대 후반이었다.

원장님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왜 사람을 죽이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직도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내담자를 보고 말했다.

“좋아요, 저는 지욱 씨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제가 지욱 씨였어도 똑같이 그런 생각을 했을 거고, 지금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겁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나요. 이제 제가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상담비도 낼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다면 살아가기 힘드실 테죠. 힘내시고 상담비 걱정은 마세요.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 나아지실 수 있습니다.” 

원장님의 말에 내담자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상담비는 자기가 50%는 낼 테니 50%는 봐달라고 했다. 원장님은 그러자고 했다. 내담자가 경제적으로 힘든 건 알지만, 상담비를 부담해야 그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원장님은 내담자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첫 상담을 마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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