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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Jun 09. 2022

남자 친구에게 살인을 당했습니다 이제 호감도를 올리래요

시각, 청각, 신체감각을 이용해 소설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예시를 들기 위한 웹소설입니다.
새로운 텀블벅 프로젝트를 위해 현재 쓰고 있는 소설을 올립니다.



  1화 살인당했어요



  사이코패스 남자 친구에게 살인을 당했습니다. 집으로 오라고 하더니 저를 무참히 살육했어요. 그는 제 목을 자른 뒤 머리를 냉동실에 집어넣었습니다.


  “누나 사랑했어요.”

  남자 친구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사람은 목이 잘려도 20분간 의식이 있다는 걸.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의 뇌파를 측정했는데, 20분 동안 델타파가 나왔다고 합니다. 돼지도 마찬가지예요. 죽은 지 4시간이나 됐는데, 뇌세포가 살아나 활동했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있어요. 어느 닭은 목이 절단된 후에도 무려 18개월 동안 살았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제가 남자 친구한테 죽은 것도 믿기지 않지만, 냉동실에 처박힌 이 머리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네요.


  그나저나 저는 남자 친구에게 왜 살인을 당한 걸까요? 일주일 뒤면 사귄 지 1년이 되는 날이고, 또 일주일 뒤면 고대하던 제 생일인데... 왜 저를 죽인 걸까요? 


  우리가 사귄 지 358일이니까, 이 숫자에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걸까요?

  아니면 1년이 52주니까...

  황당하게도 제 몸무게네요. 여기에 답이 있는 걸까요?


  죄송해요. 제가 웹소설 작가다 보니 되는대로 추리하게 되네요.


  아무튼 저는 남자 친구가 처음에 사이코패스라는 걸 전혀 몰랐어요. 왜냐면 그는 첫 만남부터 댕청했거든요. 우리는 독서토론 소모임에서 만났는데, 그의 첫마디는 사과였어요.


  “죄송해요. 실은 제가 바퀴벌레를 무지하게 싫어해서. 책을 읽지 않고 왔어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회원들에게 싹싹 빌었어요. 그날의 독서토론 주제는 카프카의 ‘변신’이었거든요. 주인공 그레고리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는 이야기인데, 여러분들도 읽어보세요. 강추예요!


  그렇게 남자 친구는 독서토론 첫날부터 책을 읽지 않았고, 단내가 나도록 입을 한 번도 떼지 않더니, 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가려하자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수아 누나. 같이 가요.”

  “네? 제가 누나예요?”

  “어? 아니에요? 누나처럼 보이는데.”

  “뭐예요! 제가 그쪽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이에요?”

  “아, 죄송해요. 하지만 사실인 거 같은데.”


  정말 황당한 녀석이죠? 숙녀에게 에티켓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런데 억울하게도 녀석은 정말로 저보다 나이가 3살이나 어렸어요. 저는 25살. 남자 친구는 22살. 그렇게 우리는 독서토론에서 호감을 쌓다 결국 사귀게 되었답니다. 독서토론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상대방에게 질문이 훅 들어오면 당황해하는 게 귀엽기도 했고, 사람들끼리 열띤 토론을 할 때마다 기에 눌려서 쭈구리가 되어 있는 게 꼭 인절미 강아지 같았거든요.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존재랄까. 이름도 저랑 비슷해서 더 호감이 가기도 했어요. 남자친구의 이름은 외자로 이수. 저는 수아. 수아와 이수. 잘 어울리지 않나요?


  그런데 이 자식이 절 왜 죽인 걸까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열 뻗치는 일이네요. 저는 이수가 살인범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다 눈감아 줬는데...


  [이수 호감도 달성 실패. 리셋하시겠습니까?] 


  갑자기 뭐죠, 이건? 


  [예] / [아니오] ‘Click☜’


  냉동실이라 얼어 죽겠는데(아니 이미 죽은 건가?), 눈앞에 이상한 창이 뜨고 있네요. 이제 죽을 때가 다 된 걸까요?


  [제한시간 안에 선택하십시오.] 

  [10...9...8...7]


  초가 줄어드는 걸 보고 저는 [예] 버튼에 의식을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환해지는 눈앞. 눈은 전혀 부시지 않은데, 세상이 화이트로 가득 채워졌어요.


  그리고 눈을 뜨자,


  “뭐야?!”


  저는 당황스러움이 정수리를 뚫고 하늘로 승천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무기가 용이 된다면 이런 감정일까요? 어느새 저는 두발이 땅에 닿은 채 이족 보행을 하고 있는 ‘인간’ 그것도 살아있는 ‘인간’이 된 채였죠.


  여기는 신촌 로데오거리! 저는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려 지하철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귓가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누나~”


  이수가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이수야!”


  저는 환희에 젖어 그에게 뛰어갔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일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그리고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야, 이 X친 X끼야! 너 나 왜 죽였어! 빨리 말해!”

  “...뭐?”


  이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너 또 멍청한 표정 지을래?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어! 근데 나를 죽여? 니가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냐고!”


  저는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흐아아앙- 거리면서 길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고개를 돌리 저 여자 왜 저러냐며 쳐다봤죠.


  “제가 언제 누날 죽였다고 그래요? 빨리 일어나요!”

  “싫어! 절대 안 일어나. 왜 죽였는지 말해 줄 때까지 안 일어날 거야!”


  다른 사람들은 진상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은 절 이해하실 거예요. 저는 분명 죽었잖아요. 그리고 다시 살아났고요. 이건 진상이 아니라 정당방위예요. 정당방위이자 국민의 알 권리이죠.


  “안 되겠네.”


  제가 계속 땡깡을 부리자 이수는 저를 번쩍 들어 올렸어요. 저는 하지 말라며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어요. 그럼에도 끄떡하지 않는 그. 이수는 결국 한적한 골목에 저를 내려놓았답니다.


  “뭐예요, 어떻게 된 건지 다시 자세히 이야기해봐요.”

  “그러니까, 네가.. 초대하더니.. 갑자기.. 집으로... 칼을 들고... 냉동실에... 내 목을 옮기면서.. 사랑했다고...”

  “아~ 그러니까 내가 누나를 집으로 오라고 하더니 칼로 난도질을 한 후, 목을 잘라서 냉동실에 넣으면서 누나 사랑했어요.라고 말했다는 거죠?”


  이수는 우느라 개떡같이 말하는 제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습니다. 

  ‘역시 나를 잘 아는구나.’라는 생각도 1초. 저는 바로 목소리를 높였죠.


  “너! 그걸 어떻게 알아? 나 그렇게 죽이려고 이미 다 계획하고 있던 거지? 그치?!”

  “무슨 소리예요. 방금 누나가 말했잖아요.”

  “거짓말 마! 그걸 어떻게 알아들어! 말하는 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바보.”


  이수가 저에게 입술을 포갰습니다. 저는 소리를 지르다 그대로 얌전한 고양이가 됐죠. 그렇게 한동안 이수는 저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 뒤 입을 뗐습니다.


  “누나는 지금 이 세계가 망하면 어떨 거 같아요?”

  “망하면? 나도 망해서 죽겠지.”

  “똑같아요. 누나가 죽으면 저도 살지 못해요.”


  그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습니다.


  “우리 예쁜 공주님. 어디 동화 속 악몽을 꾸셨나 본데. 걱정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 테니.”


  저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냉동실에 머리통이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작을 내겠다고 다짐했는데, 역시 이수를 보면 그럴 수 없어요. 그가 사이코패스에다 살인자지만, 저를 지켜준 건 사실이니까요. 무슨 이야기냐면 이수와 사귄 지 5일이 지났을 때입니다. 이수가 저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저는 주소를 따라 집 앞에 도착하고는 놀라 멈춰 섰어요. 가뜩이나 부잣집 동네라 잘 사는 건가 싶었는데, 으리으리한 저택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죠.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서 몇 번이나 다시 주소를 확인했어요.


  3m 높이로 지어진 담벼락과 그 담벼락을 뛰어넘는 3층 건물. 마당만 해도 50평 이상, 대지면적은 200평 정도 돼 보이는 으리으리! 저택. 저는 목이 꺾여라 저택을 올려다보며, 왜 이수는 지하철만 타고 다녔던 건지 의아했습니다. 이건 거의 부잣집 도련님이니까요.


  휴대폰을 들어 이수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통화 연결음이 울리자마자 받는 그였죠.


  “누나! 왔어요?”

  “응. 그런데... 여기가 너희 집 맞지?”

  “네, 나갈게요.”


  마치 걸리버 집에 온 난쟁이랄까. 저는 괜스레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누나, 오래 기다렸잖아요.”


  이수가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저를 꽉 끌어안았어요. 주변을 살피더니 사람들이 보이지 앉자 입술에 뽀뽀까지 했죠.


  “들어가요.”

  “응...”


  이수가 팔짱을 끼고 저를 이끌었어요. 저는 적응되지 않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죠.


  저택 외관이 예고편이었다면. 집안은 본편이랄까. 저는 내부 인테리어를 보며 심장이 뛰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 햇살이 들어오는 오른쪽 벽은 새하얀 대리석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고, 왼쪽 벽은 편백나무로 이루어져 있었죠.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었고 집안 곳곳에는 도자기와 미술품들이 정갈하게 수놓아있었습니다. 마치 집이 하나의 예술품이랄까.


  그런데 끝이 아니었어요. 가장 신기한 게 하나 남아 있었죠. 바로 거실 끝에 있는 바위. 높이 3m, 폭이 10m나 되는 이 거대한 바위가 천장과 양쪽 벽면을 뚫고 나와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 지붕 위에 처박히면 저런 모습이랄까.


  “신기하죠. 저거.”

  “응? 일부러 인테리어를 저렇게 한 거야?”

  “네, 아버지가 예술인이시거든요. 그래서 평범한 걸 싫어해요.”

  “비와도 괜찮은 거야? 빗물도 안 떨어져?”

  “네.”

  “와- 진짜 신기하다.”


  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위 가까이 다가가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수 말대로 1mm의 틈새도 보이지 않았죠.


  “아참. 부모님은? 지금 집에 안 계셔?”

  “아, 맞다. 누나 소개해 줘야지”


  당연한 걸 또 댕청하게 까먹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수가 말했습니다.


  “누나 이리와요.”

  그가 냉장고 쪽으로 오라며 손짓했습니다.


  “냉장고? 여기는 왜?”

  “두 분 다 여기에 동면해 계시거든요.”

  “동면?”


  저는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러자 이수가 싱긋 웃으며 제 어깨를 붙잡고 냉장고 앞으로 안내했죠. 그가 냉동실에 똑똑 노크를 하더니 말했어요. 


  “엄마, 아빠, 여자 친구 왔어요. 소개해 드릴게요. 누나, 인사해. 우리 엄마 아빠야.”


  이수가 냉동실 문을 열었습니다. 


  “뭐 하는 거야 정말.”


  저는 장난치지 말라는 얼굴로 냉동실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차가운 한기가 새어 나오더니 흰색 비닐로 싸인 동그란 물체가 두 개 보였습니다. 크기는 배보다도 훨씬 크고 수박보다는 작은. 파인애플 정도의 길이를 가진 머리였죠.


 ‘응? 머리?’


 “누나, 부모님이 아직 주무시나 본데요? 나중에 다시 인사할래요?”


  털썩.


  “누나 왜 그래요? 누나?”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혼절을 했답니다. 흰색 비닐봉지에 싸여 있던 머리는 이수의 부모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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