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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Sep 11. 2020

[사례3] 성추행으로 인한 ‘불안증과 남자혐오’ 1화

미투 운동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였다. 상담소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 현관문을 열자 모녀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모녀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자리를 안내했다. 원장님도 모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응…?’

원장님과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뭔가 싶었다. 딸을 데리고 온 엄마가 우리를 보고 검지로 돌았다는 손짓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딸이 잠시 화장실에 들어가자, 그녀가 우리에게 오더니 말했다.

“선생님! 쟤 돌았어요, 돌았어.” 

“네?”

“완전히 미쳤다고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알았어요, 어머님. 제가 상담을 한 후에 판단할 테니까, 여기에 앉아 계세요.”

원장님은 딸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상담실로 데려갔다.

원장님은 상담실에 내담자(딸)를 앉힌 뒤 환경프로파일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그녀는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걸로 나타났다. 또 남자를 혐오하고 곁에 있는 것도 몹시 싫어했다. 원장님은 이 모든 걸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딸에게 말했다.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고 남자를 혐오하시네요?”

“네.”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으시나요?” 

“네.”

“그럼 출퇴근은 어떻게 하나요?”

“엄마가 차로 회사까지 데려다주고 퇴근할 때 데리러 와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남자들이랑 부대끼는 게 소름 끼쳐서요.” 

“그렇군요.”

내담자의 대답은 무뚝뚝하고 차갑기만 했다. 원장님이 다시 내담자에게 질문했다. 

“그럼, 무엇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없는지, 남자를 혐오하는지,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을까요?”

“네. 그런데 제 말 듣고 무시하셔도 상관없어요.”

내담자는 상담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도 없는 모습이었다. 원장님은 알겠다며 말해보라고 했다.


내담자는 셋째로, 위에 오빠 두 명이 있었다. 그녀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아빠는 막내딸인 그녀를 무척 좋아했다. 유치원 때부터 딸이 원하는 거면 무엇이든 들어줬다. 매일같이 뽀뽀하고 퇴근하고 오면 딸부터 찾았다. 딸을 좋아하는 여느 평범한 아빠였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빠가 자기를 안고 TV를 보는데, 성기가 딱딱해지는 걸 느꼈다. 안을 때에도 몸을 더듬거렸다. 또 자고 있을 때면 아빠가 자기 성기를 엉덩이에 비비적거렸다. 딸은 그런 느낌들이 너무 싫어 엄마한테 아빠 옆에서 자는 게 싫다고 했다. 아빠만 오면 피하고 엄마에게 도망갔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때마다 아빠인데 왜 싫어하느냐며 딸을 나무랐다. 


내담자는 당시 유치원생이라 아빠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초등학생 때는 확실히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자기를 성추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은 자기 의사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속으로 끙끙 앓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거부 의사를 비치지 않자 아빠는 딸이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성추행을 저질렀다. 딸이 자고 있으면 몰래 방에 들어와 추행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날이 지속되자, 내담자는 결국 20살 때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아빠에게 온갖 욕을 하며 내 몸 만지지 말라고 소리쳤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아빠는 되레 무슨 소리냐며 발뺌했다.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묻자, 딸은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빠한테 성추행 당했던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아빠는 쟤가 미쳐서 갑자기 나를 모함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아빠를 믿어버렸다. 남편은 가정에 충실했고 누구보다 자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오빠들은 군대에 있었다.


결국 내담자는 진실을 밝혔음에도 고립된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성추행을 당한 분노는 내담자를 간헐적으로 폭발시켰다. 그럴 때면 아빠는 계속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특히 딸의 말을 가장 잘 들어줘야 할 엄마마저도 애가 갑자기 돌아버렸다며 딸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담자는 엄마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렸다.


내담자가 직장에 다니게 된 뒤로는 출퇴근을 엄마 차로 했다. 지하철에서 남자들과 부딪히는 게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내담자는 엄마를 하수인처럼 부렸다. 출퇴근 시간에 엄마가 조금이라도 행동이 굼뜨면 욕부터 했다. 매일 딸의 눈치를 보면서 수발을 드는 삶. 엄마는 이런 생활을 무려 8년이나 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딸을 상담소에 데려온 것이다. 딸이 정신 나갔으니 치료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원장님은 그제야 왜 내담자 엄마가 손가락으로 돌았다는 동작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딸의 말을 아예 믿지 않고 있었다. 차갑고 냉담하기만 했던 내담자는 어느새 이야기하며 울고 있었다. 원장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담자의 엄마를 상담실로 불러들였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 처음에 들어오실 때 저한테 했던 행동이 뭐예요?” 

“네?”

“딸이 아빠한테 성추행을 당해서 완전히 망가졌는데, 아까 들어오실 때 어떻게 하셨어요? 그게 무슨 행동이냐고요.”

내담자 엄마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원장님이 이어 말했다.

“세상에, 딸이 자기 남편한테 성추행을 당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지금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아까 뭐라고 하셨어요? 딸이 돌아버렸다고요?”

“그게…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아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아빠가 성추행했다고 그러겠어요? 유치원 때부터 아빠 무릎에 앉으면 아빠 몸이 이상해졌다고 하는데, 애가 그걸 만들어서 이야기하겠어요? 아빠가 온몸을 더듬고, 중학생, 고등학생 때 자고 있으면 유사 성행위를 하고, 성인이 된 나이에도 그랬다고 하는데, 세상에 그런 아빠가 어디 있어요!”


내담자는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원장님이 음성을 높여 말했다.

“아니, 적어도 내가 엄마라면 한번이라도 왜 그러냐. 이유가 뭐냐. 물어봤어야죠. 아이 상처를 보듬어 줘도 부족할 판에 돌았다고 그러고. 부부가 자식을 돈 사람으로 만들어요?! 이게 말이 돼요?”

“죄송해요….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을….” 

울고 있던 내담자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내가 엄마한테 몇 번이나 이야기했어! 어렸을 때도 아빠가 몸 더듬는다고 하면 아빠한테 가라고 하고, 넌 왜 아빠를 싫어하냐고 그랬지! 너 병신이야?! 바보야? 대가리가 없어?! 내가 돈 게 아니라, 넌 또라이야! 또라이!”

내담자는 원장님을 쳐다보며 말했다.

“원장님. 만약에 제가 집에서 이랬잖아요? 그러면 또 미쳐서 날뛴다고 그랬을 거예요.”

원장님은 서럽게 울고 있는 내담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다음 주에 아버지 데리고 오세요. 아버지가 와야 상담 시작하니까, 그런 줄 아세요.”

내담자 엄마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상담실을 나갔다. 원장님은 내담자를 위로했다. 얼마냐 힘들었겠냐. 세상에 그런 아빠가 어디 있느냐. 엄마는 개념도 없고, 지능이 부족한 게 아니냐. 다음 주에 아빠 와도 전혀 걱정하지 마라.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까 믿으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내담자는 처음과는 다르게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했다.


일주일 후, 아빠가 상담소에 왔다. 그는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불렀냐는 얼굴이었다. 원장님은 아빠를 상담실 의자에 앉힌 뒤 말했다. 

“아버님,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말씀하세요. 애가 유치원 때 아빠 무릎에 앉히고, 몸을 더듬고 가슴을 만졌다고 하는데 그런 일 있어요, 없어요?”

“없었습니다.”

“뭐라고, 미친놈아?”


아빠의 대답을 듣자마자 내담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일이 없어?! 네가 그렇게 안 했어?! 네가 그렇게 했잖아! 고추 섰잖아! 나 더듬고 그랬잖아! 너 그게 한두 번이야? 안 했다고? 개새끼야, 네가 인간이야?!”


내담자는 눈이 뒤집혀 아빠에게 온갖 욕을 해댔다. 원장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아버님, 제가 좋게 말할 때 솔직히 말하세요. 만약에 아버님이 여기서 거짓말하면 얘 뒤집어지고 치료도 안 되고 인생 망친 거 더 망칩니다. 지금이라도 치료받으면 건강해질 수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세요. 자,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성추행 했어요, 안 했어요?” 


아빠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더니 입을 뗐다. 

“잘못했습니다….”

“좋아요. 그럼 초등학교 때 아이 자고 있으면, 더듬으면서 흥분하는 소리까지 애가 들었다는 데 맞아요?”

“……”

“맞아요, 틀려요?”

“야, 개새끼야 말해! 왜 말 못 해? 내가 자는 척하고 있었던 거지 다 들었어!” 

내담자가 자백하라고 소리치자 이내 아빠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내담자 엄마가 상담소 책상에 있던 색연필 통을 집어 남편 머리에 던졌다.

“야, 미친놈아! 아니라고 해놓고 맞다고 해?! 인간말종 새끼야. 지금까지 나 속인 거야?!”

내담자 엄마는 남편을 붙잡고 때리기 시작했다. 딸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면서 남편을 발로 차고 손으로 머리를 때렸다.


상담소는 난장판이었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고, 아버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모든 걸 받아냈다. 내담자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죽을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내담자가 사과를 받을 리 만무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니라고 하더니 상담소에 와서야 인정 하냐며, 여태 나를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어디서 무릎을 꿇냐고 소리쳤다. 아버지가 사과할수록 내담자의 반응은 더욱더 격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원장님이 말했다.


“아버님, 지금 사과한다고 해서 딸이 용서할 거 같아요? 이거는 용서를 바라서도 안 되고, 되지도 않아요. 애 심리치료 받고 상처 없어지고 마음이 자유로워졌을 때 딸이 선택하는 거예요. 그때가 돼도 용서가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아버님은 지금 당장 딸이 상처받은 대가부터 지불하세요. 요새 미투 운동 한창인 거 아시죠? 이거 교도소 가는 일이에요. 보상으로 애한테 재산 있는 거 다 주고, 당장 집에서 나가세요. 그리고 지혜가 허락하기 전까지 절대로 눈앞에 보이지 마세요. 알았어요?”

내담자 엄마도 나도 너랑은 못 산다고 소리쳤다. 결국 아빠는 일하는 데서 혼자 살겠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부모를 상담실에서 내보낸 뒤, 내담자만 앉히고 이야기했다.

“지혜 씨, 다음 주부터는 지혜 씨가 어떤 심리적, 신체적 증상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볼 거예요. 그리고 그 증상에 따라서 심리치료가 들어갈 거고요. 치료받으면 힘든 부분도 분명 생길 텐데, 이겨내면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 믿고 같이 노력해 봐요. 알았죠?”

원장님의 말에 내담자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를 믿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원장님은 언제나 내담자 편이라며 미소 지은 뒤, 그녀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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