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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Sep 25. 2020

[사례6] 성적으로 ‘조현정동장애’에 걸린 남자 1화



[사례6] 성적 때문에 조현정동장애에 걸린 남자



글 쓰는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있었다. 20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서로 글을 평가하고 댓글을 달아주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라는 걸 알았다. 내가 온라인으로 심리상담을 한다는 걸 알고 상담을 요청했다. 요지는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성적밖에 몰라 미칠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상담을 받아봤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대화로 하는 상담은 그때뿐이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심리적 증상이 있는 사람은 상담이 아니라 증상에 맞는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내 말에 공감했다. 상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받아보겠다며 두 시간이나 되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상담 예약을 했다.


며칠 후, 그가 상담소에 방문했다.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행색이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한눈으로 봐도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원장님이 있는 상담실로 안내했다.

원장님은 그에게 감각검사지(V, A, K)와 환경프로파일 검사지를 건넸다. 그는 검사지에 체크를 모두 한 후 원장님에게 주었다. 검사 결과 그도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장님이 검사지를 보며 물었다.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나요?”

“…네 각방을 쓴 지 10년도 넘은 거 같아요.” 

“지금도 자주 싸우나요?”

“예전엔 많이 싸웠는데, 요새는 서로 말도 안 하세요.”

“검사지를 보니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깊은 거로 나타나네요? 부모님을 원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내담자는 과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만 보며 자랐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부모가 행복해하는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늘 집안에 고성이 오갔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때면 집안에 냉기가 가득했다. 특히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내담자가 조금만 잘못하면 혼내고 때리고 꼬집었는데, 아빠와 싸우면 또 그걸 자기에게 풀곤 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내담자가 7살 때였다. 엄마가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길래 그는 어디 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죽으러 간다고 말했다. 그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집을 나간 엄마가 너무나 걱정되고 무서워 진정할 수 없었다. 몇 시간 지났을까, 집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드니 엄마였다.

“엄마, 어디야?”

내담자가 묻자 엄마가 대답했다.

“조금 이따 들어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친구를 만나고 있던 엄마였다. 거기다 집을 나갈 때와는 달리 밝은 목소리였다.

“죽으러 가긴 뭘 죽으러 간다, 그래.” 

그는 울먹이며 엄마에게 말했다.

내담자는 지금 생각해도 엄마에게 배신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어떻게 7살밖에 되지 않은 애에게 죽으러 간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엄마가 아들에게 상처를 준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90점 맞아 자랑하려고 엄마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엄마는 되레 아들을 질책했다. 왜 100점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성적에 목을 맸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낮으면 남과 비교했다.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성적 이야기를 했고, 외식할 때도 모래알 씹는 표정을 짓더니 왜 성적이 그거밖에 나오지 않았느냐며 아들을 비난했다.


엄마의 성적 집착은 내담자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절정에 달했다. 그는 중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평균 88점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높아 놀랐다. 친구들도 왜 이렇게 잘 봤냐며 깜짝 놀랐다. 그는 집에 가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엄마에게 자랑했다. 이 정도 점수면 엄마가 기뻐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엄마는 점수를 보더니 조용히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왜 그러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과외 선생님이 와서 과외를 했다. 수업을 마치자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그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의 얼굴에 운 흔적이 있었다. 그가 왜 울었는지 묻자, 엄마는 90점을 넘지 못해서 그런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 기말고사 때 드라마처럼 평균 89점을 맞고 책상에 주저앉아 울었다.


내담자가 말하길, 엄마는 성적 하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의 성적 집착은 아빠의 월급 집착으로도 이어졌다. 아빠가 월급을 타 오면 엄마는 항상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며 아빠를 비난했다. 그때마다 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엄마가 칼을 들고 아빠에게 덤비면서부터 아빠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참기 시작했다. 이렇듯 엄마는 가정에서 무소불위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면 엄마는 집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엄마는 집에서 살림하는 것 빼고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게 없었다. 오히려 집에 불을 다 끈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범접할 수 없는 우울함이 내재해 있었고, 내담자는 집에 엄마가 혼자 있는 게 너무나 싫었다. 언제 소리를 칠지 몰라 항상 긴장했다.


그렇다면 아빠는 내담자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빠도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아빠도 성적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이 정도 성적이면 서울대 감이라던가, 네 영어 실력은 고교생을 능가한다던가, 너 정도면 대학교수도 쉽게 될 거라고 하는 등, 성적 부담을 끊임없이 주었다. 한 번은 내담자가 고려대에 가면 어떨 거 같냐고 묻자, 아빠는 서울대에 가라고 했다.


이외에도 아빠는 엘리트주의가 있었다. 공사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나 노숙자를 보면 다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것이라며 사회의 낙오자처럼 말했다. 아빠와 같이 차를 타고 등교할 때였다. 인부가 도로 통제를 하자 아빠는 “노동자 주제에”라며 그를 깔보는 식으로 말했다.


이렇듯 엄마가 내담자를 남들과 비교하며 비난하는 유형이라면, 아빠는 그를 치켜세워주면서 비교 대상자를 낮추는 유형이었다. 네 머리면 옆집 누구는 아무것도 아니라든지, 사촌동생이 좋은 성적이 나오자 걔는 너와 비교해 별것도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담자는 어린 시절부터 아빠에게 매일 남을 깔보는 말을 듣다 보니, 아빠의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 결과 내담자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빠처럼 속으로 욕하고 무시했다. 그것이 극대화된 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툭하면 그를 불러서 레슬링을 했다. 그게 잘못돼서 허리가 아파 고생을 한 적이 있었고, 재킷을 머리에 뒤집어씌우고 구타하고는 여자 화장실에 밀어 넣기도 했다. 아니면 회전이 되는 의자에 앉혀놓고 여러 명이 어지럽게 계속 의자를 돌리거나 머리를 때려 그대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또 수학여행에서는 옷을 벗기거나 장난감 권총으로 비비탄을 쏘기도 했다.


이런 내담자의 생활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지속했다. 기가 약해 매일 맞고 잠바가 같다는 이유로 애들이 짜증을 내는 등 그는 중학교 3학년 내내 모멸감과 원통함을 느꼈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무시’였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저항할 수 없으니, 속으로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라고 무시했다.

그리고 동시에 공부가 정말로 중요한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어차피 공부를 잘해봤자 아이들에게 욕먹고 괴롭힘을 당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었다. 또 굳이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반에서 인기 있는 학생을 보며 공부에 대한 중요성은 퇴색되어버리고 말았다. 훗날 엘리트가 된다고 한들 그게 의미가 있는지 회의에 빠졌다.


그렇게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일진 행세를 시작했다. 일진 행세를 한 이유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따돌림, 무시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외고에 들어갔으나 이미 공부에 대한 기대를 접어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이때부터 부모님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특히 엄마는 어딘가 인성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가만 보면 혼나고 말고는 늘 엄마 기분에 좌우되고 있었다. 거기다 늘 방에 불 끄고 잠만 자는 것하며, 이불 속에서 “공부해.” “학원 가.”만 반복하는 모습이 보통의 엄마와는 달라 보였다.

그것뿐인가? 밖에서 엄마는 소심 그 자체였다. 모임에서 늘 가라앉아 있었고, 누가 말 걸면 두렵다는 듯이 회피했다. 레스토랑에 가도 엄마는 항상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고, 뭘 먹어도 모래 씹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학부모 봉사활동에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학부모 사이에서 엄마는 혼자 잔뜩 긴장해 벌벌 떨고 있었다. 쉬운 일에도 여러 번 실수했고, 다른 학부모와 잘 어울리지 못했다. 만약 내담자가 엄마에게 잘못된 걸 지적하기라도 하면 엄마는 소리 지르거나 때론 울부짖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엄마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아빠에게 털어놓았다.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러자 엄마는 소리치며 아들을 발로 찼다.


생각해보면 아빠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남을 깔보는 습성하며, 성적 말고는 자기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내담자에게 학교생활이 어떤지, 요새 어떤 고민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에 대해 관심을 준 적이 없었다. 아빠가 하는 말은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이번 성적은 어떤지, 그리고 대학교는 서울대로 가자, 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마음에는 서서히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자리 잡았다. 내가 왜 부모의 입맛대로 살아야 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또 내담자에게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타박했다. 누구는 잠도 몇 시간밖에 자지 않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며 잔소리를 했다. 내담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숟가락을 놓고 말했다.

“성적이 밥 먹여줘요?” 

“뭐?”

“성적이 밥 먹여주냐고요!”

“너, 미쳤어? 지금 엄마한테 뭐라는 거야!”

엄마는 소리를 꽥! 지르며 고등학생인 그를 발로 찼다. 그는 그 순간 머리에 무언가가 번쩍이는 걸 느꼈다. 

“씨발! 그만 좀 하라고!!” 

내담자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이 미친년아! 넌 성적이 다야?! 성적만 좋으면 내가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그는 식탁을 엎어버린 뒤 밥그릇을 벽에 던져버렸다. 밥그릇이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지호야, 왜 그래!”

아빠가 내담자를 말렸다. 하지만 그는 아빠에게도 욕을 했다.

“왜 그래? 너는 내가 왜 그러는 거 같아?! 서울대? 서울대는 너도 못 간 주제에 왜 나보고 가라 말라야! 개새끼야!”

그는 집안에 있는 가구들을 다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돌연 일어난 사태에 부모님은 넋이 나갔다. 그리고 그의 이런 행동은 몇 개월간 지속했다. 조금만 심기가 뒤틀리면 욕하며 난동을 부렸다. 부모님은 도저히 아들을 말릴 수 없었다.







  

Q&A 부당함을 오랫동안 당하면 나타나는 증상



나는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었던 자녀를 보며 한 가지 패턴을 알게 되었다. 바로 사춘기가 되면 더는 부당한 일에 잠자코 있지 않는다는 거였다. 특히 오랫동안 부당한 일을 당한 자녀는 꼭 이 시기에 폭발한다. 그것에 관해 묻자 원장님이 답했다.


“사고와 가치관이 정립되는 시기가 사춘기라서 그래.” 

“사고와 가치관이 정립되는 시기요?”

“응. 보통 0세부터 13세까지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거든. 그런데 13세부터 25세 정도 되면 아이들이 자기가 살아온 삶을 재조명해. 내가 자란 환경은 어떤지, 부모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그로 인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가치관을 정립하는 거야.”

“가치관을 정립한 후에는요?”

“부모에게 불합리한 일을 많이 당한 자녀라면 심리 질환이 생기고 부모와 갈등을 일으켜. 아, 우리 부모는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앞으로 이렇게 행동하겠다. 이런 거지.”


나는 [사례1]의 청년도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시작한 게 고등학생 때라는 걸 떠올렸다. 또 상담사례 대다수 내담자도 성인 이후에 심리증상이 나타났다는 걸 보았다.


이번 사례의 내담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재수하던 중 부모님의 성적 강요에 결국 폭발했다. 그동안 쌓아뒀던 감정을 모두 쏟아냈다. 만약 이렇게 계속 폭발을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에 관해 묻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폭발한다는 건 뭐야? 그동안 싸웠던 분노나 감정을 쏟아내는 거지?” 

“네.”

“그 뜻은 더는 참지 않겠다는 거야. 그래서 한번 터지고 나면 아무도 못 말리게 돼. 그런 상태가 지속하면. 감정조절을 하지 못해 분노조절장애에 걸릴 수도 있고.”

“그렇구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패턴이 지속되면, 결국 분노조절장애에 걸리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동물학대가 왜 일어나는지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는 받고 분노는 차오르는데 풀 대상이 없으니까 동물학대로 그것을 푸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부모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모든 자녀가 지금의 내담자처럼 변하는 것일까? 나는 원장님에게 물었다.


“그러면요. 부모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자녀들은 다 분노를 표출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예도 있지 않아요?”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음지로 빠져들어서 우울증에 걸리는 자녀도 있어.”

“똑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 왜 나타나는 증상이 서로 다른 거예요?” 

“성향의 문제도 있고, 부모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다 달라.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라면, 기가 눌려 반항하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리는 거야. 그런데 이번 상담은 아버지가 기가 센 유형이 아니었고.”

“아….”

나는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꼬리를 물어 또 질문했다.

“그럼 우울증에 걸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요?”

“내가 괴롭고 힘들다는 걸 부모한테 표현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하겠어? 속으로 삭이겠지?”

“네.”

“그런 자녀는 스트레스를 무엇으로 풀까? 스트레스는 계속 받고 있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으니까 어떤 거로든 풀 거 아냐.”

“동물학대?”

“맞아. 동물학대도 할 수 있고 자해도 해.” 

“그럼 우울증을 방치하면 어떻게 돼요?”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에 빠지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은둔형 외톨이가 돼.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조현병까지 발전해. 분노조절장애도 마찬가지야. 치료받지 않고 놔두면 다른 증상들로 발전돼.” 

“그런데 부모들은 그게 자기들 때문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지 않아요?”

“그치. 대다수가 그렇지.”


나는 상담소에 있으면서 그런 장면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많은 부모가 자녀가 이상해졌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게 자신들 때문이라고 하면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도 힘들었다며 자기 입장만 피력하거나 자신의 교육관은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내가 온라인 상담을 할 때 가장 안타까웠던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청소년들이 가장 안쓰러웠다. 성인은 힘들면 적어도 제 발로 상담소를 찾아와 문을 두드릴 수 있는데, 청소년은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 일어나서 힘들어요.”

“아빠가 자꾸 술 먹고 행패를 부려요.”

“부모님이 매일 싸워서 집에 있기 싫어요.”

등등 수많은 청소년이 부모 때문에 고통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그때마다 꼭 부모님과 함께 상담소에 가라고 했다. 문제는 부모님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부모가 자기 문제를 인식하고 상담소에 가려고 할까?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자녀가 심각한 심리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상담소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심리증상이 나타난 것처럼 거짓말이라도 해서 부모와 상담소에 가라고 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온라인 상담 중, 너무 안타까워서 학생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통화를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자녀가 힘들어하니 상담소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전화로는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었다.


만약 이 책을 읽는 청소년이 있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을 설득해 단 한 번이라도 상담소에 가게 하라고. 그러면 상담소에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환경치료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렇다. 당장은 피해자인 학생들이 노력해야 한다. 또 부모와 갈등이 심한 자녀는 절대로 부모님이 상담사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거라고 미리 판단한다. ‘우리 부모는 바뀌지 않아.’라는 고정관념이 박혀 버린 것이다. 이는 성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담사들은 그런 부모조차도 행동교정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다.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가정 문제로 힘든 청소년들은 꼭 부모님을 설득하자. 혼자 설득하기 힘들다면 학교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힘든 일이지만 나는 청소년들이 상담 받을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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