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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Sep 26. 2020

[사례6] 성적으로 ‘조현정동장애’에 걸린 남자 2화



1) 천재가 되고 싶은 내담자



내담자는 부모님에게 분노를 표출한 후로 못마땅한 일이 생기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물건을 부수고 던지며 부모님이 제어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은 내담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정신병원에서는 그를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조울증이 합쳐진 증상)로 판정을 했다. 그때부터 내담자는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했고, 망상으로 들떠있다가도 금방 침울해지곤 했다.


그렇게 내담자는 정신과 병원에서 약을 먹으며 3개월을 입원하고 퇴원했다. 고등학교도 자퇴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극에 달했다. 다행스러운 건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폭력적인 행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1년 후 수능 날. 내담자는 시험을 치르다 무언가에 홀린 듯 수험장을 뛰쳐나갔다.


성적이 전부인 부모님은 그 소식을 듣고는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스포츠 상담사를 1:1로 붙였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켰다. 수능 3개월이 남았을 때는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며 내담자가 원하지도 않는 절에 합숙시켰다. 그것이 그를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특히 내담자가 스포츠 상담사에게 부모님 때문에 힘든 걸 이야기하면, 위로받기는커녕 되레 혼나기만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자식한테 상담사를 알아봐 주는 아버지가 어디 있냐.” 

“너희 아버지는 정말 강인하신 분이다.”

“내가 너희 아버지였다면, 너와 너희 어머니를 버렸을 거다.”

“어머니를 인간으로 봐라. 무조건 미워하지 마라.”

“부모님이 이렇게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데, 너는 언제까지 철없이 그러고 있을 거냐.”

“부모님에게 욕했다고? 당장 부모님께 전화해서 사과드려라.”


이렇듯 스포츠 상담사는 부모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내담자의 탓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내담자는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이 자리 잡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못 할 짓을 한 패륜아라는 것이었다. 스포츠 상담사에게 매번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각인’이 되었다. 하지만 불쑥불쑥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솟아나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내담자는 이듬해 꾸역꾸역 수능을 치렀다.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자기가 원하는 과가 아니었다. 철학과나 심리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로 인해 역사학과를 다니게 되었다. 그런 그가 과연 대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을까?


그는 학창 시절 왕따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있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거기다 억지로 역사학과에 입학해 부모님에 대한 증오와 원망, 환멸만이 더 커졌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휴학을 결정했다.

휴학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내담자는 무기력하게 온종일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세상이 너무나 커 보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나는 나중에 부동산 거래 같이 어려운 걸 할 수 있을까? 원룸을 구하는 대학생들은 그 어려운 걸 어떻게 하지?’


TV 프로그램을 보며 냉소적인 반응도 보였다.

‘너희는 돈이 없지만, 대신 원룸 정도는 구할 수 있는 지능과 일도 쉽게 해내는 솜씨가 있잖아. 나는 돈이 많아도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

그런가 하면 그는 다니던 교회 주방에서 칼을 발견해 가방에 집어넣고는 근사한 테러리스트가 되는 상상을 했다. 또 사람이 왜 사람을 죽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자기가 착하지만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 거라는 것이었다. 또 그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상담을 받은 후 심리치료 일기를 적었는데, 아래는 내담자가 실제로 적은 글이다.




나는 천재가 되고 싶었다. 엄청난 업적을 남겨 위인전에 실리고 역사책에 실리는 내가 되고 싶었다. 천재가 되지 못하고 일반인으로 죽는다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이다. 때문에 나는 이 세상 누구와도 같아지고 싶지 않고 항상 내가 위에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람을 다 죽이고 싶었다. 나는 독재자를 존경했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내가 왜 그들처럼 최고에 있지 않고 내 맘대로 사람을 다 죽이지 못하는지 아쉬웠다. 히틀러가 전 세계 범죄자로 남고 훗날 비참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어도 상관없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권력을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아니면 재벌이 되고 싶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록펠러이고 2위는 앤드루 카네기라고 한다. 빌 게이츠는 20위권 밖이었다. 그래서 나는 록펠러처럼 되고 싶었다. 빌 게이츠는 뭔가 시시해 보였다. 미국 신문 기사에 내 얼굴이 실리고 내 재산이 나오고….


혁명가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다만 혁명에 성공하여 국가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란 보장 하에만 혁명가가 매력적이었다. 카다피, 스탈린, 마오쩌둥, 레닌, 후세인, 피델 카스트로처럼. 체 게바라는 중간에 죽어서 별로였고, 호찌민도 권력을 누리기보단 전쟁만 해서 별로였다. 학자도 좋은 거 같았다. 아인슈타인, 찰스 다윈, 카를 마르크스, 프로이트, 데카르트….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 이름.


작가도 좋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괴테, 발자크, 나쓰메 소세키….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권위가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했다.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은 무조건 맞았고, 권위가 없는 사람의 말은 무조건 틀렸다. 책도 위인의 경지에 이른 천재의 책만 보려고 했다. 그런 명성이 없는 책은 보지 않았다.


천재가 되지 못하는 난 상상할 수 없다. 천재가 되지 못한 사람의 말은 다 틀린 거고 내 말만 맞다. 난 천재처럼 살고 싶고 천재처럼 업적을 남기고 싶다. 나는 노벨상을 탈 것이다. 지금은 27살이 됐으니 한 35살 정도로 잡을까…. 평화상보단 과학상이 낫겠지. 그게 더 대우가 좋으니까.


역사책이 보고 싶으면 전공서적이 아니라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봐야 하고, 경제 책이 보고 싶으면 경제학자의 책이 아니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봐야 하고, 교육학을 보고 싶으면 교육학 전공 서적이 아니라 페스탈로치의 『은자의 황혼』을 봐야 하고, 철학책을 보고 싶으면 철학 개론서가 아니라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봐야 한다. 논어를 볼 때는 논어 전문가가 쓴 논어 해설이 아니라 정약용이 쓴 『논어고금주』를 봐야 한다.

왜냐면 천재가 쓴 책을 봐야 하니까. 천재가 쓰지 않은 책은 보면 머리에 안 좋다.


***


내담자는 이 시기에 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주로 도서관과 카페였다. 하지만 내담자는 도서관에서 책하나 고르는 데도 3시간이 걸렸다. 설령 책을 골라도 5분 이상을 보지 못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책을 대여한 후 카페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담자는 책 한 장을 넘길 수 없었고, 그럴 때면 자신은 천재가 될 사람인데 이런 글도 읽지 못한다며 괴로워했다.

카페에서 나와 다시 도서관에 가서 다른 책을 대여한다. 똑같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가 눈에 안 들어와 다시 일어나 도서관에 간다. 몇 시간 동안 책을 고르고 똑같은 카페에 가기에는 눈치 보여 다른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다시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일어난다. 내담자는 이런 패턴을 하루에 최소 세 번은 반복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길을 걸으며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괴로워했다. 심리치료 시간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하자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


내담자의 자화상


보여지는 모습

아주 무겁고 뜨거운 머리를 지탱하기에 몸이 너무 마르고 허약해서 힘겹게 고생하고 있는데, 장애물이 많다.


내적 능력

좋은 생각이 가끔 번뜩인다.


가치관 생각

안 맞는다. 너무 처량하고 안타깝고 동정심이 일어난다.


외부 느낌

어설프다, 한심하다, 안타깝다, 무능력해 보인다.


내 느낌

불쌍하다, 희망이 없다, 막막하다.


결과

누군가가 내 손에 의해 죽는다.


   

원장님이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묻자, 내담자는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다고 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 과거에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에 대한 복수심, 공부하지 않는 나에 대한 자괴감, 한 번도 성공적이지 못했던 대인관계에 관한 회의와 두려움,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팝콘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어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 가끔은 쓰러질 것만 같아 일부러 다리에 힘을 주고 걸을 때도 있었다.


원장님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했다.

“지호 씨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부모님 때문에 정말로 힘들었겠네요.” 

“그럼 뭐해요. 전 이미 부모님께 패륜아 짓을 저질렀는데요.”

“그건 지호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에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잘못이 아니라고요?”

“네. 부모님은 어린 시절부터 지호 씨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았잖아요. 그러다 참지 못해서 폭발한 거고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내담자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스포츠 상담사한테는 부모님 이야기만 하면 늘 부정만 당했는데, 처음으로 자기를 이해해줬기 때문이었다. 원장님이 내담자를 보고 입을 뗐다.


“다음 주부터 심리치료를 시작할 건데, 나중에 부모님을 부르라고 하면 부를 수 있죠?”

“부모님은 왜요?”

“부모님도 아셔야죠. 자기들로 인해 지호 씨가 얼마나 힘들어졌는지요. 바로 부르는 건 아니니까 마음의 준비만 해두세요.”

“네, 알겠어요.”

내담자는 그렇게 첫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걸 봤다.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서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첫 경험이었다.





※ 자화상이란?


미술치료와 인지치료가 결합된 프로그램. 내담자에게 현재 자기 모습을 그리게 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게 만든다. 이때 대다수의 내담자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리는데, 질문을 통해 다시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한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긍정적으로 바꿈으로써 잃어버린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게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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