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입술. 창백한 피부.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 남들과는 다른 괴이한 능력.
윤수는 전직 형사였던 아버지의 차를 타고 시골로 이사를 갔다. 폭우가 몰아치던 밤이었고, 어머니가 괴한에게 살해를 당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머니가 살해당할 때 윤수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와 장을 보고 집으로 마트를 나왔는데, 복면을 쓴 괴한이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어머니의 목을 낚아챘다. 마치 죽음의 선고를 내리듯 칼로 한 번, 두 번, 세 번, 목을 찔렀다. 어머니는 물가에 빠진 것 마냥 소리도 내지 않고 아등바등거리더니 핏물에 잠겨 익사하고 말았다.
윤수는 그때 얼어붙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찐득찐득한 어머니의 피가 윤수의 신발을 적셨고, 어머니에게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괴한은 가는 눈으로 윤수를 쓱 훑어보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낮에 아내를 죽인 그 새끼가 누군지 알 거 같다며 의자를 집어던지다 새끼손가락이 골절되었다.
윤수는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로 환청과 환시가 보였다. 째깍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귓구멍을 찌르는 것 같았고, 작은 소리도 위협적이게 들렸다. 치료를 위해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올 때도 갑자기 돌변해 주삿바늘로 목을 찌를 것만 같았다. 그때 윤수는 아버지가 병원에 올 때마다 사정했다.
“아빠, 제발 우리 다른 데로 이사 가요. 네?”
“조금만 참아. 아빠 그 범인 잡고 갈 거야.”
“그러다 아빠가 죽으면요?”
“걱정 마. 그럴 리 없으니까.”
“그 아저씨 칼도 가지고 있던데요?”
“아빠는 총 가지고 있어.”
품에서 권총을 꺼내 보여주는 아버지였다. 윤수는 아버지가 그 총으로 꼭 자기 머리를 쏠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아버지는 범인을 잡았다. 역시나 아버지가 예상한 인물이었고 그는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고 어머니를 죽인 거였다. 어떤 앙심이었는지, 아버지는 끝내 이야기하지 않았다. 윤수 보고 이제 고향으로 내려가자는 말뿐이었다.
벌써 6시간이나 달려온 이사였다. 하늘은 구멍이 뚫렸는지 비가 멈출 줄 몰았다. 윤수는 창문에 빗물이 터져나가는 걸 보며 말했다.
“아빠, 아직 멀었어요?”
“다 왔어.”
“아까부터 다 왔다면서요.”
“이번엔 정말 다 왔어.”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운전하며 말하는 아버지였다. 윤수는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봤다. 폭우로 인해 사방에서 나무가 괴상한 춤을 추고 있었다. 짐짓 차가 있는 쪽으로 몸을 조금씩 기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번쩍- 콰광쾅!
하늘에서 섬광이 일더니 구름이 박살 나는 소리가 났다. 그 사이 윤수는 언덕 위에 초연하게 서 있는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맨발인 채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 입술이 흉측하게 갈라진 언청이였다. 윤수가 놀라는 사이 하늘이 번쩍였고 소녀는 사라졌다.
***
어젯밤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온 덕에, 윤수는 집을 둘러볼 새도 없이 골아떨어졌다. 현관문 쪽에서 쩌렁쩌렁 쇳소리가 윤수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뭐라꼬? 아내가 뒤져스브렀다고?”
“네, 그래서 다 정리하고 귀농하려고요.”
“뭐라카노. 니 귀농이 쉬운 줄 아나? 다 설로 떠난다카는 중에 웬 말이고. 아이고야...”
거실에서 자던 윤수는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서있었다. 그가 윤수를 보고 말했다.
“아, 일어났나부다.”
“윤수야 인사드려라. 마을 이장님이셔.”
“...안녕하세요.”
윤수는 엎드린 채로 고개를 까딱였다.
“이놈아 도시에서는 그렇게 인사하라고 가리키던?"
결국 윤수는 잠이 덜 깬 채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는 몇 살이고?”
“12살입니다.”
“그래? 많이 컸네. 어쨌든 잘 왔다. 여기서 눌러 살라 카는 말은 못하겠꼬, 마음이라도 편하게 있으라.”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됐다카마! 앞으로 신경 쓸 일도 없다!”
아버지의 인사도 받지 않고 뒤돌아 가는 마을 이장이었다.
“일어났으면 씻고 준비하자. 학교 가야지.”
윤수는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집은 어디에도 시계가 없었다. 윤수는 이삿짐 가방을 열어 벽면에 시계부터 걸었다. 현재 시간 아침 7시. 집에 있던 가전 생활제품은 모두 버리고 옷과 시계 하나만 챙기고 온 이사 첫날이었다.
***
학교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포장된 도로는 하나도 없고 오로지 비탈길이었다. 오르막이 나오면 내리막이 나왔고 다시 오르막이 나왔다. 중간에 징검다리가 놓인 개울가도 넘어야 했고, 억새풀도 헤치고 나가야 했다. 윤수는 너무 고단해 모험을 하는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새로운 학교에 재미를 붙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재미를 본 건 아버지, 성문이었다.
“너 뭐 하니? 이놈 자식이 그리 운동신경이 없어서야.”
윤수는 두 번째 개울가를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찍으며 바지가 다 젖고 말았다. 성문은 뒤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아버지가 저렇게 웃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윤수는 더 열이 받았다. 징검다리에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개울가를 가로질렀다.
“그래 사내자식이 그 정도 오기는 있어야지.”
열받아한 일에 성문은 오히려 칭찬을 했다.
윤수가 거친 호흡을 하며 오르막길을 올라왔을 때였다. 웬 폐가 한 채가 우뚝 솟아 있었다. 아침인데도 스산하기만 했고, 사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떨어질 낙(落)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건물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고, 떨어지고 싶었다.
“...여기가 학교예요?”
“그럼 서당이겠냐?”
‘와- 그대로네.’라고 말하는 성문이었다. 윤수는 기가 막혔다. 아버지의 향수를 있는 대로 떠올리게 할 정도라면, 정말 보수라던가 확장 공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온도 차이도 극명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갔다간 얼굴에 거미줄이 걸릴 것 같은 윤수와는 다르게 성문은 성지순례를 하는 표정으로 학교 안에 들어섰다. 좁고 기다란 복도가 펼쳐졌고, 교무실 문을 열자 넓디넓은 공간에 달랑 책상 2개만 있는 게 보였다.
“민환아.”
“어? 성문아.”
성문이 손을 들며 인사를 하자,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반가워하며 악수를 했다.
“이야기 들었어. 아내가 사고를 당했다며.”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학교에 선생님은 너뿐인 거야?”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이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민환은 괜스레 부끄러워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침에 이장님, 아니 교장 선생님하고 이야기했어. 너한테 우리 아들 데리고 가라고 하더라.”
“응. 내가 전 학년 다 교육하고 있거든.”
“전 학년을 다?”
“그래야 봐야 총 5명뿐이 안 돼.”
윤수는 그때 두 번 놀랐다. 아침부터 집안을 시끄럽게 했던 노인이 교장선생님이라는 사실과 전교생이 단 5명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 네가 윤수니?”
“윤수야, 인사해. 아빠 친구이자, 네 담임 선생님이야.”
“안녕하세요.”
윤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 시골학교라 적응이 안 될 텐데 이 아저씨가 도와줄 게. 걱정하지 마.”
윤수는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하는 대신 아저씨라고 하는 게 이상했다. 친근한 느낌도 있었지만 더불어 멀게도 느껴졌다. 그 후로 성문과 민환은 자리에 앉아 한동안 옛날이야기를 했다. 주된 주제는 학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성문이 학교가 변한 게 하나도 없어서 좋다고 하면, 민환은 변한 게 없어서 다 도시로 이사를 간 거라 했고, 성문이 한적해서 좋다고 하면, 민환은 얼마 안 가 지루할 거라고 했다. 윤수는 두 분 이야기가 더 지루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이런 낡아빠진 학교에 자동 시스템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 참, 수업해야지? 이만 갈게. 우리 아들 잘 부탁해.”
“그래, 종종 만나서 이야기하자.”
성문은 민환과 악수를 한 뒤 교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시종일관 웃고 있었던 민환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네가 적응하고 말고는, 너 하기에 달린 거다?”
“네?”
“학교생활 잘하라고 인마.”
민환은 윤수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윤수는 하마터면 ‘아!’ 하고 소리를 칠 뻔했다. 그러지 못한 건 어깨의 고통보다 민환의 서늘함이 더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선생님이 아니라 아저씨였고, 동시에 낯선 남자였다.
***
교실은 죄다 텅텅 비어 있었다. 여기다 싶으면 다음 교실로 넘어갔고, 여기인가 싶으면 또 다음 교실로 넘어갔다. 빈 교실은 모두 커튼을 쳐놓아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뜩이나 말라비틀어져 보이는 학교가 더 메말라 보였다.
“먼저 들어가라.”
이윽고 민환이 교실 앞에 선채로 말했다. 윤수는 긴장한 얼굴로 교실문을 잡았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 때였다.
“여, 선생님 왔다.”
“어? 아니네?”
“누꼬!”
처음으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이들이 죄다 사투리를 쓰고 있어 반가운 기분보단 어색함이 더 강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새로운 전학생이 왔다.”
“와- 정말입니꺼!”
“어? 남자다!”
‘우ㅡ’
아이들은 윤수를 보더니 집단으로 야유를 했다. 윤수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하나같이 남자뿐이었다. 전교생이 5명이라는 것도 말도 안 되는데, 모두 남자라는 걸 안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자자- 조용하고, 자기소개해야지?”
민환이 고갯짓을 하자 윤수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온 뒤 말했다
.
“...반가워 서울에서 온 지윤수야. 잘 부탁해.”
“몇 살이고?”
“나이는 말 안 하나?”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민환이 윤수의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이 학교는 학생들 나이가 다 다르니까, 나이도 말하거라.”
윤수는 다시 앞으로 나와 12살이라고 말했다. 반응은 역시나 뜨뜻미지근했다, 아이들은 윤수와 비교해서 대게 한두 살 적거나 한 살 많은 것으로 보였다. 그중에서 덩치와 키가 제일 커 보이는 한 아이. 그 아이가 이 학교의 유일한 6학년인 것처럼 보였다.
“저기 맨 뒤에 빈자리 있지? 거기에 앉거라.”
민환의 말에 윤수는 곧장 자리로 이동했다. 가방을 벗고 신발주머니를 책상 고리에 건 뒤 옆자리 짝꿍에게 고개를 돌렸다.
“반가워, 잘 부탁....”
윤수는 말을 맺지 못했다. 어제저녁 언덕 위에 초연하게 서 있던 소녀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스크를 쓴 채로 윤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매일 오전 8시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