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수업하는 내내 짝꿍인 소녀가 신경 쓰였다. 어젯밤 언덕 위에 서 있던 그녀가 맞는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소녀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윤수는 물어본다 한들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에게서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확신이 가기도 했다. 어젯밤 봤던 그 언청이가 옆에 있는 소녀라는 것을.
“1교시는 여기까지.”
담임 선생님이 교재를 덮은 뒤 교실을 나갔다. 윤수는 그의 등 뒤를 보며 소녀를 ‘거리감’으로 정의한다면 담임은 ‘낯섦’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무실에서 아버지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윤수라고 했제? 반갑다. 난 기찬이다.”
한 까까머리가 윤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게 한눈에 봐도 수상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윤수가 그의 손을 잡는 순간 손바닥이 미끌 거리더니, 엄지손가락 틈에서 개구리가 폴짝 뛰어올랐다.
“푸하하핫! 놀랐나?”
기찬이 크게 웃었다.
“아니.”
윤수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안 놀란 기가?”
“응. 너도 엄마가 죽은 거 보면, 이런 걸로 안 놀랄걸?”
“뭐?”
기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책상 위에서 개구리가 폴짝폴짝거렸다.
윤수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그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입을 열게 만든 건 아버지, 성문이었다. 그는 병실에 들어오더니 느닷없이 네모난 철판을 윤수 가슴에 가져다 댔다.
“뭐 하시는 거예요?”
“마음을 다시 만들어 주려고. 이번에는 아주 강력한 강철 심장으로.”
“네?
“이젠 웬만한 걸로는 놀라지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러면서 심장에 철판을 박는 시늉을 하는 성문이었다. 윤수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성문이 아들을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윤수는 성문의 말처럼 정말로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에 엄마가 눈앞에서 살해당한 것보다 큰 충격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 그람 이것도 괜찮나?”
옆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들더니 쾅! 책상 위를 내려찍었다. 이 반의 유일한 6학년 구형석이었다. 아이들은 형석의 행동에 침음을 삼켰다. 발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가 이런 식으로 죽었기든? 이건 좀 놀랍나?”
형석이 미간에 주름을 지며 말했다. 윤수는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형석은 한눈에 봐도 적의가 가득했다. 개구리에 놀랐어도 시비를 걸었을 테고, 지금처럼 놀라지 않아도 시비를 걸었을 인물이었다.
“새끼가 어데서 센 척을. 치뿌라.”
형석은 윤수 책상이 마치 자기 책상인 것 마냥 말했다.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최고라고 하며 쫄랑쫄랑 형석을 따랐다. 윤수는 짓뭉개진 개구리를 내려다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로 개구리를 뜯어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던 와중에도 소녀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이들과 자기는 다른 세계에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참 희한한 곳이다.’
윤수는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학교는 낡았고, 선생님은 낯설고..
소녀는 거리감이 느껴지고, 아이들은 적대감으로 차 있고...
“적응하고 말고는, 너 하기에 달린 거다?”
이런 곳에서 너 하기에 달린 것이라니.
윤수는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이윽고 마지막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선생님은 분필을 놓고는 교실을 나갔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이었다. 윤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수업이 더 있는 줄 착각했다. 그 흔한 종례시간도 갖지 않고, 선생님에 대한 인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청소당번도 없는지 교실에 남는 아이도 없었다. 의자와 책상은 삐뚤빼뚤하기만 했고, 반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윤수가 학교 정문을 벗어나 집으로 향할 때였다
“마, 언청이!”
까까머리, 기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소녀를 어깨로 치고 가더니, 동시에 또 다른 아이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신발주머니 빼앗았다.
4학년인 성태와 상태였다. 둘은 일란성쌍둥이로 구별을 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상태는 어디 신발주머니를 가져가 보라는 시늉을 하더니 풀숲으로 붕- 던져버렸다. 형석은 뒤에서 웃음을 지었다. 윤수는 그 모습을 보고 소녀가 학교에서 어떤 존재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학교에서 유일한 여자이자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였다.
“언청이 내일 보제이~”
아이들은 낄낄 거리며 사라졌다. 윤수는 멈춰 선 채로 소녀를 쳐다봤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단발머리를 찰랑였다. 소녀는 피부가 하얗고 속눈썹이 길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눈은 맑고 깨끗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녀에게서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괜히 툭툭 건드리거나, 쓰고 있는 마스크를 빼앗아 언청이라고 놀릴 때도 소녀는 단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저기... 신발주머니 내가 찾아 줄게.”
윤수가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윤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꿈쩍하지 않았다.
“여기 있어. 갔다 올 테니까.”
윤수는 말을 마치고 풀숲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위압감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뭔 놈의 풀이 자기 키보다 1.5배는 컸다. 윤수는 소녀의 시선을 느꼈다.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 단번에 풀숲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어둠이 깔렸다. 빛이란 빛은 다 차단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윤수는 그물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마냥 풀숲을 헤엄쳤다. 이내 신발주머니가 떡밥처럼 풀 사이에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윤수는 손을 뻗어 덥석 신발주머니를 잡았다. 그 순간,
“악!”
윤수의 왼쪽 다리가 밑으로 쑥 빠졌다. 비명과 함께 윤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
“자, 여기.”
윤수는 진흙투성이인 채로 소녀에게 신발주머니를 건넸다. 윤수가 조금 전 빠진 곳은 다행히도 깊지 않은 구덩이였다. 덕분에 꼴이 많이 아니지만, 신발주머니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신발주머니를 받았다. 윤수는 소녀의 손등을 보며 사람의 피부가 이렇게 하얄 수 있는지 신기했다. 햇볕이 강해 피부가 탈법한대도 소녀는 마치 모든 걸 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마워.”
“뭐?”
“고맙다구.”
윤수는 귀를 의심했다. 소녀를 쳐다보자 다시 구슬 소리가 들렸다.
“왜 그리, 빤히 쳐다봐?”
“아, 아냐.”
윤수는 황급히 대답했다. 소녀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었던 거리감이 순식간에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그, 그럼 집에 갈까?”
“응.”
윤수는 정신을 차리자며 두 눈을 끔뻑였다. 소녀의 목소리만을 들었을 뿐인데 뒷머리가 무척이나 간지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감격스러웠다. 어둠뿐인 학교생활에 한 줄기 빛이 보였다.
***
윤수가 집 앞에 당도하자, 성문이 밭을 갈고 있는 게 보였다. 본격적으로 귀농살이를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뭐야? 벌써 끝났어?”
성문은 마치 농사일을 방해받은 것 마냥 말했다. 밀짚모자 사이로 땀이 쏟아지는데도, 목에 수건 하나 두르지 않고 있었다.
“귀찮게 안 할 테니까, 하던 거 하세요.”
"자식 아빠 속마음은 잘 알아가지고서는.”
“그런데, 잘 모르면 이장님한테 좀 물어보면서 하세요.”
“뭘?”
윤수는 대답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간 밭은 삐뚤빼뚤하기 그지없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청소당번 없는 학교 책걸상과 같은 모습이었다.
“야, 이놈아. 학교 다녀왔으면 밭에 있는 돌 좀 치워야지.”
가방을 거실에 내려놓자 성문이 현관문으로 들어와 말했다. 윤수는 어이가 없었다.
“보통은 학교 다녀왔으면 어땠는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녜요?”
“아버지 마음을 모르겠어? 그것만 물어보기에는 남자끼리 어색하니까 노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자는 거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는 성문이었다. 윤수는 화장실에 들어가 수건을 꺼낸 뒤, 찬물에 적셔 아버지에 건넸다.
“목에 두르고 하세요.”
“요 녀석 봐라. 누가 보면 애인인 줄 알겠다?”
“엄마도 그런 식으로 꼬셨어요?”
“한 번만 꼬셨겠어? 두 번 세 번 네 번은 꼬으고 꼬아서 꼬셨지.”
윤수는 피식 웃었다. 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버지와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아버지는 능청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둘 다 잠시 웃음을 잃었을 뿐.
***
윤수는 성문과 함께 밭으로 나가 작업을 시작했다.
“그래, 학교생활은 어땠어?”
“다 별로예요.”
윤수는 돌덩이를 논 바깥으로 던지며 말했다.
“아빠도 동감이야.”
“뭐가요?”
“잘못 이사 온 거 같아. 이 자리가 싸다고 해서 왔는데, 뭔 놈의 밭에 돌이 이렇게 많냐.”
“누가 추천한 건데요?”
“교장 선생님.”
“그럼 교장 선생님한테 속으셨네요.”
“전문용어로 눈퉁이라 하지.”
윤수는 웃으며 논 바깥으로 돌을 던졌다.
“그런데 학교에 왜 이렇게 학생이 없어요? 다 이사 간 거예요?”
“그렇지, 누가 요즘에 이런 산골에서 살겠어. 도시로 가지.”
“그쵸? 그것도 돌멩이가 이렇게 많은 밭에.”
성문은 씩 웃으며 윤수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학습효과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 나머지는 아빠가 하세요.”
윤수는 마지막으로 큼직한 돌덩이를 옮긴 뒤 말했다.
“그래. 너도 아빠한테 앞으로 숙제 도와달라고 하지 마라.”
벌써 가냐는 성문의 앙탈에 윤수는 도움받은 적 없다고 말한 뒤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고개를 돌려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을 갈고 있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지금 이대로가 좋은가?
윤수는 문득 궁금했다.
골절됐다가 말끔히 치료된 저 새끼손가락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윤수는 어머니 관이 화염 속으로 들어갈 때, 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아, 안 돼...! 자기야!!”
아버지는 목울대를 떨며 외쳤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부르는 애칭을 들은 날이기도 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자신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슬픔에 짓눌려 어머니와 함께 증발할 작정이었다. 슬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권총으로 범인을 잡은 다음, 남은 여발 분으로 자기를 죽이고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목숨을 끊기보다 생명을 기르는 쪽을 택했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일. 작물과 과일을 키워 수확하는 일. 허허벌판인 논밭을 가꿔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일.
윤수는 비록 농사가 아버지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철판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시 만들어 준 것처럼 아버지 또한 잃어버린 마음을 움트게 하는 데에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힘내세요, 아버지.”
윤수는 밭을 갈고 있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작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