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름이 있는 곳

by 송아론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순백의 찔레꽃. 들판에 수채화를 찍어 놓은 것처럼 형형색색의 조화를 이루는 코스모스. 그 안에서 수줍은 듯 배꼼 노란 꽃잎을 내보이는 괭이밥. 윤수가 생각하는 6월의 초여름이란 그런 것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바람이라도 불면 괜스레 마음이 들떠 어디론가로 날아가고 싶은 날.


하지만 시골은 6월의 적나라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도시에서는 낭만일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뙤약볕 그 자체였다. 태양의 직사광선은 보이는 사람 족족 지져버리고 있었다. 그건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에서 엄폐를 함에도, 더위에 녹아내렸다. 아버지는 왜 이사할 때 선풍기 하나 가지고 오지 않은 건지 원망스러웠다.


윤수가 마룻바닥에 대짜로 뻗은 채로 있자,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성문이 그를 발견했다.


“너 뭐 하니? 거기 서?”


“더워서요.”


윤수는 반팔도 못 입겠다며 누운 채로 상의 탈의를 했다. 이놈의 시골은 학교도 그렇지만 날씨부터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잘 때는 창문에 서리가 낄 정도로 춥다가 해만 뜨면 한 여름이었다.


“주말이면 친구들도 만나고 좀 그래라.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 심심하지 않아?”


“아빠도 똑같잖아요.”


“아빠는 방금 네 담임 만나고 왔어.”


윤수는 담임 선생님 이야기에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얘기하셨는데요?”


“그냥 옛날이야기하고, 너 학교생활 어떤지 물어보고 왔지. 아직 서먹해서 그런지 애들이랑 친한 게 못 지낸다며?”


“못 지내는 게 아니라 안 지내는 거예요.”


“왜?”


“그냥 그런 게 있어요.”


“또 지난번처럼 수준이 안 맞느니 그런 얘기하는 거 아니지?”


“수준이 안 맞는 건 사실이에요.”


“남자애들은 원래 다 정신연령이 낮다니까 그러네.”


성문은 윤수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윤수는 또래 남학생들보다 성숙한 편이었다. 그래서 전학을 오기 전에도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괴롭히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관심의 표현을 왜 굳이 과격하게 하는지 한심하기만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여학생에게 점수를 얻고 싶어 하면서도 스스로 점수를 깎는 일을 자처했다. 윤수는 그런 한심한 녀석들을 대신해 여학생들을 살뜰히 챙겼다. 괴롭힘 당하면 못하게 하고, 놀리면 놀리지 말라고 하고, 짓궂게 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여학생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윤수는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여학생들 무리에 끼게 되었다. 여학생들은 모두 윤수를 좋아했고, 남학생들은 시기와 질투를 했다. 여학생들도 모자라 괜히 자기에게 시비를 걸었다.


유치하다.


그때도 윤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학생에게 다가서는 법을 몰라 고작 괴롭히는 일밖에 하지 않은 그들이, 자기 보고 여자애들 편이나 드는 애라고 비난할 때 든 생각은 유치하다였다.


하지만 이 학교는?


여자를 괴롭히는 건 똑같지만 본질이 달랐다. 반 아이들은 소녀에게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정하고 싫어했다. 소녀를 괴롭힌 다음에 꼭 대장인 형석을 보고는 칭찬을 달라는 눈빛을 했다. 윤수는 서울 학교보다 이들이 더 수준이 낮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작정하고 소녀를 괴롭히는 이유는 그녀가 언청일뿐더러, 그녀의 엄마가 지적장애인이라 그런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한마디로 사회적 약자.


괴롭혀도 전혀 뒤탈이 나지 않는.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약자인 가정.


그래서 아이들은 소녀를 괴롭히기 더욱 기꺼워했다. 그것이 윤수가 일주일 동안 소녀와 아이들을 관찰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다 보니 윤수는 짝꿍이자 학교에서 유일한 여자인 소녀를 챙겨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게 좋겠다 싶어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어디 가려고?”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윤수는 상의를 다시 입고 헐레벌떡 밖으로 나갔다. 소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


“여기였나?”


윤수는 첫 번째 개울가에서 선채로 기덕을 더듬었다. 지난번 소녀와 같이 하교를 한 적이 있어 그녀의 집이 어디쯤인지 대강 알고 있었다. 소녀는 이 개울가에서 오른쪽으로 갔었다.


윤수는 뛰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라면 걸어서 10분. 뛰어서 4분 거리에 소녀의 집이 있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빨간색 지붕. 윤수는 소녀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치 외딴섬처럼 덩그러니 집 한 채가 있는 소녀의 집을 발견했다. 뛰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해 현관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려 할 때였다.


“하... 하지 마세요...”


“거참. 가만히 좀 있어 보이소.”


“이러시면... 안 돼요...”


“채 씨, 금방 끝난다니까 그러네. 음? 마, 아직도 안 나갔나? 엄마랑 아저씨랑 할 얘기 있으니까 퍼뜩 나가 있으라.”


강압적인 남자의 목소리와 반항을 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윤수가 문틈 가까이 눈을 가져다 대자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 문둥이 같은 자슥이 귀까지 먹었노? 나가 있으라고 칸 소리 안 들리나?”


수염이 가무잡잡한 남자가 소녀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소녀는 꿈쩍하지 않고 서있었다.


“이노무 자슥이 어른 말이 말간지 않나!”


남자가 번쩍 손을 들어 올릴 때였다.


똑. 똑.


“안녕하세요~ 저 지윤수라고 하는데요.”


윤수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뭐꼬?”


남자가 현관문 바라보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문을 열었다.


“누꼬? 처음 보는 아인데.”


미간에 커다란 점이 있는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저 일주일 전에 서울에서 형사인 아버지랑 이사 온 지윤수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형사?”


“네.”


윤수가 싱긋 웃자, 남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흠, 흠, 아 그 서울에서 아내 잃고 왔다 카는 형사 말하는 기고. 우리 마을 사람이니 잘 알지.”


그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남자였다.


“그래, 저 아랑 놀러 왔나?”


“네, 같은 반이거든요.”


“기래, 기래, 재밌게 놀아라. 아저씨는 볼일이 있어 간다잉?”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쫓기듯 집을 빠져나가는 남자였다. 윤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는 소녀를 쳐다봤다. 그러다 소녀 엄마, 채 씨의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상의가 벗겨진 채로 속옷이 드러나 있었다.


“엄마 괜찮아?”


“으..응...엄마 괜찮아...”


“나 잠깐 나갔다 와도 되지?”


“응...”


윤수는 모녀의 대화를 들으면서 혼란스러웠다. 하필 이럴 때 집으로 찾아온 게 미안했다.


끼익- 소녀가 대문을 닫는 소리에도 윤수는 괜히 깜짝 놀랐다.


“우리 집 어떻게 안거야?”


소녀가 윤수를 쳐다보고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 지난번에 이쪽으로 가는 거 보고 와봤는데... 집이 이거 하나뿐이길래...”


윤수는 죄지은 것처럼 소녀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고마워.”


“응?”


“고맙다고. 하마터면, 그 아저씨 죽일 뻔했어.”


“뭐?”


도와줘서 고맙다가 아니라, 살인을 막아줘서 고맙다?


윤수는 소녀의 말이 그렇게 밖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왜 온 거야?‘


“아... 그냥 심심해서.”


“심심하면 이렇게 불쑥 찾아도 되는 거야?”


“그, 그건 아닌데...”


“덕분에 못 볼 꼴을 보였어.”


“미, 미안해..”


윤수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괜찮아. 나쁜 건 네가 아니니까.”


“으.. 응...”


윤수는 고개를 조아렸다. 이상하게 소녀만 보면 자신감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온 김에 우리 거기나 가볼래?”


소녀가 불쑥 말했다.


“응? 어디?”


“재미있는 곳이 있어.”


소녀는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윤수는 헐레벌떡 그녀를 쫓아갔다. 소녀는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산을 오르는 데도 속 도가 줄지 않았다. 반면 윤수는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소녀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침없이 산을 올랐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


윤수가 소녀 뒤에서 지친 얼굴로 말했다.


“벌써 지친 거야?”


소녀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봤다.


“그게 아니라 아까 너희 집 올 때 뛰어와서 체력 소모가..”


자존심상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보고 싶었니?”


훅 들어온 소녀의 말에 윤수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 언덕만 넘으면 돼. 빨리 와봐.”


소녀가 산을 오르며 말했다.


***


이윽고 윤수가 산 비탈길을 다 올라왔을 때였다.


쏴아아아ㅡ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윤수는 넋을 잃었다.


“우와... 이런데도 있었어?”


윤수는 입을 벌리고 폭포수를 바라봤다. 시골 촌구석이라 해서 말 그대로 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명소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폭포수를 보고만 있어도 더위가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는 집으로 돌아가면 당장 아버지에게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란 곳이라면서, 지금까지 이런 좋은 곳 하나 소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녀가 폭포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안쪽에도 들어갈 수 있어.”


“안쪽?”


“응. 들어가면 동굴이 있는데. 들어가 볼래?”


윤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저 거센 폭포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간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발을 헛디디거나 물살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 바로 황천길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따라 해 봐.”


“잠깐!”


윤수가 말릴 새도 없이 소녀는 폭포수 쪽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윤수는 당황스러웠다.


“저기 들어간 거야? 괜찮아~?”


윤수가 소리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소리란 소리는 폭포수가 다 먹어치우고 있었다.


윤수는 설마 소녀가 떠내려간 건 아닐지 밑을 내려다봤다가, 공포심만 늘었다. 폭포수 아래는 물보라와 함께 물회오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한 번 빠졌다가는 숨 한번 쉬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해보자!’


윤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는 두려움 보다, 소녀에게 겁쟁이로 낙인찍히는 게 더 싫었다. 그는 몇 발작 뒤로 물러난 뒤 이를 악물고 도움닫기를 했다. 폭포수를 향해 폴짝 뛰어올랐다.


촤아악ㅡ!


그 짧은 순간에 폭포수가 온몸을 적셨다. 윤수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자 소녀가 말했다.


“잘 들어왔네? 떨어질 줄 알았는데,”


소녀는 어느새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그녀가 윤수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어때?”


“어..?”


“내 모습이 어떠냐구.”


윤수는 당황해 뒤로 주춤거렸다.


“그냥...아무렇지 않아.”


“거짓말. 네 다리는 아닌 거 같은데?”


소녀가 윤수를 쏘아봤다.


“너도 내 입술이 혐오스럽지?”


직설적이게 묻는 말에 윤수는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사실 소녀의 입이 혐오스러운 건 정말이었다. 윗입술이 두 갈래로 나눠져, 누군가가 소녀랑 마주 보고 밥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본 다면, 윤수는 미안하게도 그러지 못할 거라고 대답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러니까... 네 입술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난 네가 싫지는 않아.”


윤수가 말했다. 소녀는 그 답변을 듣고는 슬쩍 미소를 짓더니 마스크를 썼다.


“너, 내가 여기 어떻게 발견했는지 알아?”


소녀가 앞으로 걸어가 폭포수를 손으로 맞으며 말했다.


“어떻게?”


윤수가 묻자 소녀가 대답했다.


“나 여기서 떨어져서 죽으려고 했었어. 폭포수 쪽으로 뛰어들었는데, 안쪽에 동굴이 있어서 살았어. 신기하지?”


윤수는 소녀에게 네가 더 신기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그녀의 마음이 가늠되지 않았다.


“왜 빤히 쳐다봐?”


“아니, 나는 엄마가 죽어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봐서.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돌아가신 거야?”


“응. 나랑 같이 시장 보고 나오다가 어떤 아저씨한테 죽었어.”


“많이 놀랐겠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손이 떨려. 봐봐, 신기하지?”


윤수는 떨고 있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잡아줄까?”


소녀가 묻자,


“아니 이제 혼자 이겨 낼 수 있어.”


윤수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꽉 쥐어 가까스로 멈췄다. 소녀를 쳐다보며 봤냐는 듯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너도 앞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하지 마. 내가 이겨 낸 것처럼 너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정말?”


소녀가 묻자 윤수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뭐.... 네가 이름을 알려주면 내가 특별히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고.”


“아직도 내 이름을 몰라?”


“알려준 적 없잖아.”


“그럼 물어보지 그랬어.”


“물어볼 수가 없었어.”


“맞아. 내가 벽을 만들었으니까.”


“알긴 아네.”


윤수가 미소 짓자, 린이 싱긋 웃으며 입을 뗐다.


“내, 이름은 린이야. 엄마 성을 따서 채린.”


“채린? 이름 예쁘다. 근데 몇 살이야? 나랑 동갑 맞지?”


윤수는 괜히 불안했다. 린과 함께 있으면 기가 죽는 이유가 혹시나 연상이어서 그런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연상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너보다 누나야.”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정말? 그럼 6학년이야?”


윤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냐, 거짓말이야.”


린이 다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윤수는 그녀의 장난에 화내기보다 연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안심이 됐다. 윤수는 가슴을 쓸어내린 뒤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우리 이제 앞으로 잘 지내자.”


“좋아.”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손을 잡았다. 윤수는 연신 미소 짓는 린을 보며 드디어 그녀에게 있었던 거리감과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음을 느꼈다. 학교에서 표정 하나 없었던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웃을 수 있는 아이였고, 목소리 톤도 여러 가지였으며, 장난까지도 칠 수 있는 평범한 아이였다.




매일 오전 8시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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