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위기

by 송아론

작고 아담한 세모난 집. 윤수는 학교 알람이 울리기 전에 2층 다락방에서 일어났다. 다락방인 걸 모르고 허리를 곧추세우다,


쿵!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으...”


윤수는 허리를 숙인 채 머리를 감싸 안았다. 벌써 세 번째였다. 이사 온 첫날 너무 피곤해 거실에서 잤다가, 달랑 방 1개 있는 게 집의 전부라는 걸 알고는 실망감으로 가득 찼을 때 성문은 윤수에게 2층 다락방을 소개했다.


“너 다락방에서 잔 적 없지? 아빠 때는 말이야...”


성문은 굳이 듣고 싶지 않은 다락방 에피소드를 말했다. 이 작은 다락방에서조차 형제들끼리 서로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말을 하더니, 갑자기 어린 시절 놀던 이야기로 넘어갔다. 여름에는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아 맞아 그때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서리도 많이 했지. 감자에 소금을 뿌려먹었고. 라며 그 시절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예요?”


윤수가 지루한 얼굴로 묻자, 성문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도시락 남기지 마라. 우리 때는 쌀이 귀했어.”


“그럼 다음에는 밥 남기지 말라고만 해주세요. 그럼 더 알아듣기 쉬울 거예요.”


“그런가?”


성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문이 깰까 천천히 다락방 계단을 내려갔다. 샤워실에 들어 가려 하자, 거실에서 자고 있는 성문이 입을 열었다.


“벌써 일어난 거야?”


“네 10분 빨리요.”


“네가 10분 빨리 일어나면 아빠도 10분 빨리 도시락을 싸야 하잖아.”


성문이 귀찮다는 어조로 말했다.


“항상 나가기 10분 전에 도시락 싸시니까, 저 나갈 때 주면 딱 맞지 않겠어요?”


“그러네. 씻어라.”


뒤척이며 말하는 성문이었다. 윤수는 아버지가 왜 방을 놔두고 거실에서 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사 온 첫날부터 성문은 매일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자 성문은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오늘 도시락 반찬은 뭐예요?”


“계란, 소시지, 된장국,”


“내일 도시락 반찬은요?”


“달걀, 햄, 된장국”


“그다음 날은요?”


“계란 프라이, 비엔나, 된장국”


“된장국만 빼고 계속 바뀌어서 좋네요.”


“그렇지?”


성문이 씩 웃으며 윤수를 쳐다봤다. 윤수가 한숨을 쉬자 성문이 찔리는지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일은 반찬 바꿔 줄게.”


“아니에요. 노력하는 아버지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죠.”


“그래, 나도 매일 똑같은 반찬을 줘도 투정 부리지 않는 아들을 리스펙 하마.”


성문이 씩 웃자 윤수도 따라 웃었다. 윤수는 이사 오고 나서 가장 흥미로운 광경이 지금이었다. 요리라고는 해본 적 없는 투박한 손과 근육질 몸으로 도시락을 싸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머니가가 쓰던 분홍 앞치마와 굳이 쓸 필요 없는 위생 모자는 덤이었다. 저렇게 신이 난 모습만큼만 맛이 좋았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아직도 멀었어요?”


윤수가 학교 갈 준비를 다 마친 뒤 말했다.


“그 말할 때 다 됐다.”


성문이 반찬 뚜껑을 닫고 도시락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윤수에게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전달했다.


“잘 먹을게요.”


“그래, 잘 다녀와라.”


윤수는 성문에게 웃어준 뒤 현관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오며 방금 내가 또 웃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 억지로 웃기 시작했는데, 웃다 보니 가끔 이게 진짜 웃음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윤수는 아버지가 엉덩이를 흔들며 요리를 하던 모습을 떠올리곤 한 번 더 웃었다.


윤수가 10분 일찍 일어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개울가에서 학교로 향하지 않고 린의 집 쪽으로 향했다. 같이 등교를 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신경 쓴 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신경한 거 같지도 않은 시간대. 그게 바로 10분이었다.


얼마간 걷자, 린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모였다. 그녀가 다가오자 윤수가 입을 뗐다.


“안녕, 같이 가자.


“응.”


윤수가 린 옆을 걸었다. 린은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윤수는 짐작건대 입술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언청이라는 것은 그녀에게 콤플렉스이고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조성시키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왜?”


윤수가 계속 쳐다보자 린이 입을 뗐다.


“아니, 도시락 가방이 안 보이길래. 집에 놓고 온 거 아냐?”


“엄마가 아프셔서.”


“아.. 그럼 같이 먹자.”


린은 대답 없이 걸었다.


윤수는 린과 걸으며 괜히 어색해 이것저것 물었다. 취미는 뭔지, 좋아하는 건 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혈액형은 뭔지, 장래희망은 뭔지, 쉬지 않고 물었다. 린은 윤수가 묻는 것에 하나하나 다 대답했다.


취미는 꽃반지 만들기, 좋아하는 건 산책하기, 좋아하는 색깔은 검은색, 혈액형은 O형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다 장래희망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내가 이걸 왜 말해야 해?”


“그냥 심심하니까?”


윤수는 그 말을 하는 것조차도 어색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물어볼게.”


“그래. 아무거나 다 물어봐.”


윤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 변치 않을 자신 있어?”


“변치 않을 자신?”


이번에는 윤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린이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변치 않을 자신이 있냐구.”


윤수는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다.


“응. 변치 않을 거야.”


***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삐뚤빼뚤 했던 책상도 어느새 네모반듯했다. 이번에는 왁스 칠까지 했는지 바닥이 깨끗한 것도 모자라 미끄러웠다.


청소를 한 사람은 담임 선생님, 민환이었다. 아이들이 하교를 하면 민환이 교실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허물을 치웠다.


윤수는 그런 민환의 모습이 납득 가지 않았다. 공부만 가르치고 아이들과 사적인 말도 섞지 않는데, 청소를 한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윤수와 린이 나란히 자리에 앉자 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었다. 교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왁자지껄했다.


윤수보다 1학년 낮은 11살 성태와 상태가 먼저 교실에 들어왔다. 이름과 얼굴이 비슷해 처음에는 헷갈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은 일란성쌍둥이였다.


그들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윤수와 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기찬이 행님 저기 있다. 아까 우리가 저 둘이 같이 가는 거 봤제?”


“응. 엄청 친해 보였다.”


곧 윤수와 동갑인 기찬의 얼굴이 보였다.


“여~ 지윤수 아들한테 들었는데 둘이 같이 등교했담서?”


또 시작이란 생각에 윤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찬이 윤수에게 가까이 와 말했다.


“너 언청이한테 관심 있는 기가?”


“관심이 있든 말든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


그 말에 아이들이 서로 쳐다보며 감탄사를 외쳤다. 기찬이 흥미롭다며 말했다.


“오~ 정말 관심 있는 기가? 그라믄 형석이 행님이 싫어할 낀데. 괜찮겠노?”


“상관없어.”


또다시 ‘오~’ 거리며 실실 쪼개는 아이들이었다.


사실 형석은 윤수가 전학 온 첫날에만 물리적인 힘을 썼지 그 뒤로 윤수를 협박하거나, 구속 또는 강제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린을 주도적으로 괴롭히는 아이들은 기찬과 쌍둥이 성태, 상태였다. 겉으로는 형석이 신경을 끄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윤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무신경하게 있는 게 아니라 기회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윤수가 꼬투리를 잡힐만한 행동을 하면 목덜미를 물어버릴 명분.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이 되자 형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 점심시간에 어데 가노?”


윤수가 린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 하자, 형석이 그를 불러 세웠다.


“왜, 허락 맡아야 하는 거야?”


“그건 아닌데, 니 저 언청이랑 같이 밥 묵을라고 그러나? 왜 도시락은 가지고 나가노?”


“그것도 허락 맡아야 하는 거야?”


형식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들한테 들었다. 니 오늘 언청이랑 같이 등교했다믄서?”


“그런데?”


“내가 저년 싫어하는 거 알제? 괜한 짓거리하지 말고 여서 무어라.”


“싫어.”


윤수는 형석의 말을 무시하고 린과 함께 교실 바깥으로 나갔다. 형석이 다음 행동을 취할 명분을 만들어 주는 셈이었지만, 그렇다고 굴복할 수도 없었다.


윤수가 린과 함께 운동장 벤치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자 역시나 예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다만 조금 빗나간 게 있었다. 조금 더 치밀하다고 해야 할까?


보복의 대상이 된 건 린의 책상이었다. 형석은 말로는 윤수를 겁박하면서, 행동으로는 린에게 피해를 가했다. 린의 책상이 두 조각이 난 채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내 분명 말했제? 이번 건 경고로 치고,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라이?”


형석이 눈짓을 하자, 쌍둥이들이 조각난 책상을 치웠다. 그리고 창녀, 언청이, 더러운 년이라고 적힌 새로운 책상을 옆 교실에서 가져왔다. 린은 익숙한 듯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그 책상 위에 교재를 펼쳤다.


“너 변치 않을 자신 있어?”


윤수는 오늘 등교할 때 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뭐.... 네가 이름을 알려주면 내가 특별히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고.”


동시에 폭포수 동굴에서 자신이 했던 말도 떠올렸다.


‘그래, 이 정도로 흔들리면 안 되지.’


윤수는 공책에다가 무언가를 적고는 찢어서 린에게 건네주었다.


[이 정도는 약과.]


린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주먹을 꽉 쥐었다.


***


수업을 마치고 윤수는 린과 하교를 했다.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번 주와 비교하면 정말로 ‘약과’였다. 중요한 건 다음부터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잘 가, 내일 봐.”


윤수가 개울가에서 린에게 손을 흔들 때였다.


다다닥-


그르르릉!


갑자기 뒤에서 짐승의 소리가 났다. 윤수가 고개를 돌리자 개울가 건너편에서 웬 도사견 한 마리가 맹렬히 뛰어오고 있었다. 도사견은 순식간에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더니, 윤수를 향해 돌진했다.


“왜, 이쪽으로..?”


윤수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무리 봐도 목표는 자신이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뛰어온 도사견이 윤수의 목덜미를 향해 뛰어올랐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윤수의 동공을 가득 메었다.




장르는 추미스입니다.

매일 오전 8시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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