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민환의 심경변화

by 송아론

“중구를 잊고 있었어..,”


성문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박중구의 트레이드마크인 이마에 있는 점조차도 못 알아볼 정도로 성문은 박중구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지우고 있었다. 그제야 그가 왜 죽지 않는 눈빛을 하고 있던 건지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원한과 앙심을 품은 눈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보고 아는 척하지 않았을까?


성문은 의아했다. 자신이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도,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러 왔을 때도, 중구는 자기가 누군지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중구가 왜 정체를 밝히지 않았는지 궁금해?”


성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환이 말했다.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잖아. 넌 중구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어.”


“교장 선생님댁에 가볼게.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그래. 그렇게 해.”


성문은 곧장 교무실을 나갔다. 민환은 그런 성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하지만, 한 사람의 존재를 까먹는다니.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씻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고도 이제야 떠오른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다니.


민환은 성문이 참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형사가 됐다고 해서 기대를 햇것만 아직도 그는 멀어 보였다.


***


성문은 곧장 이장의 집으로 갔다. 대문 앞에 서서 벨을 수차례 눌러댔다. 곧이어 인터폰에서 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따카메 전화한다니까 뭐 이리 급하노!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알았다. 들어와라!


대문을 열어주는 이장이었다. 성문은 지체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장이 인상을 쓰며 현관문을 열어줬다.


“모꼬? 뭐가 급해서 자꾸 찾아 오노.”


“박중구가 선생님 아들이라면서요.”


“거 당연한 얘기를 하노!”


그러던 중 이장의 얼굴이 변했다.


“어..? 니 설마 그럼 그때 그것도 모르고 나랑 이야기 한기가?”


“네.”


황당함을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이장의 얼굴이었다.


“하메야...아주 초등학교 때 기억은 다 지워 뿌렸나 보네.”


성문은 할 말이 없었다.


“중구가 여자 죽인 거 맞죠?”


“그걸 왜 내한테 묻노?”


“어제저녁에 선생님이랑 이야기할 때, 중구가 저희 집에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 살인이 일어났고요. 여자가 죽은 시간을 대조해 보면 얼추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어쩌라는교? 니가 지금 형사가? 나 수사하로 왔노?”


“중구에게 자수하라고 하십시오. 그게 중구에게 이로운 일입니다.”


“자수? 허참. 니한테 그런 말도 듣고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쟈?”


이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성문이 6학년 시절, 아이들에게 자행한 짓만 봐도 중구 이전에 자수할 사람은 그이기 때문이었다.


“중구가 자수를 안 한다고 하면 제가 피의자로 신고하겠습니다.”


성문은 이미 확고한 얼굴이었다. 이장이 설핏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니 그거 아나? 내가 니 보면 참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이가. 난 솔직히 니가 깡패가 되면 됐지 형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폭력을 휘둘렀던 니는 만인의 떳떳한 형사가 되고, 내 아는 성폭행범에 살인자가 됐다 아이가. 참 세상은 알다가도 몰라. 그쟈?”


성문은 할 말이 없었다. 이장이 말한 게 모두 사실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니 진짜 왜 여기에 온기고? 중구도 기억 못 할 정도면 아예 기억을 버렸나뿐데, 대체 뭐 땜시 여기로 온기고? 뭐 좋은 추억이라도 있었나?”


성문은 답변할 수 없었다. 여기가 태어난 고향이라서?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했던 곳이라서? 그건 자신도 몰랐다.


“그냥 쉬고 싶은 곳을 찾다 보니 오게 됐습니다.”


성문은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답변했다.


“니만... 니만 모른 척하면 된다. 니 어릴 때 중구에게 한 짓이 있다면, 이 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지 않나?”


이장이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게 말이 되는...”


“그럼 니는! 니는 중구에게 찾아가서 사과라도 했나! 오히려 20년 만에 만난 아를 개 패듯 패지 않았나!”


“그건 제 아들이 중구 개한테 물려서...”


이장이 성문의 말을 가로챘다.


“중구가가 채윤서 겁탈하다가 니 아 때문에 실패해서 그런 줄 아나?! 니 정말 그리 생각하는 기가?!”


심심하면 툭툭 건드리고, 도시락을 빼앗아 먹고, 가시덩굴에 밀어 넣고, 자빠트리고, 개울가에 머리를 처박아 숨을 못 쉬게 하고, 밭에서 수박이니 참외니 서리를 하게 만들고, 걸리면 자기가 혼자 했다고 자백하라고 하고, 좋아 보이는 물건을 빼앗고, 집에서 부모님 돈을 훔쳐 오라고 시키고, 싸움을 붙이고, 싸움에서 지면 또다시 패고, 부르면 3초 안에 자기 앞에 달려오게 하고....


성문은 박중구에게 행했던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생각해 봐라. 니 중구 괴롭힐 때 내가 니한테 한마디라도 한 적 있나?”


“없습니다.”


“없제? 왜 그런 거 같노? 내가 니한테 뭐라 하지 않고 왜 중구를 때렸을까?”


성문은 알 수 없었다. 가끔 중구가 얼굴에 멍이 들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아빠한테 맞았다고 했다.


성문이 대답하지 못하자 이장이 말했다.


“니한테 지지 말라고 그런 기다! 지지 말고 대들라고! 그런데 어떻게 됐노? 대들기는커녕 결국 니한테 온갖 수발들다 저렇게 된 거 아이가. 아니라 할 수 있나?”


“…….”


성문은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 박중구가 흉악범죄자가 된 게 자신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문은 한참 동안 입술을 깨물고 있다,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이번만 넘어가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내도 앞으로 중구 단속할 테니 걱정하지 말 그레이.”


“...예. 중구한테 가보겠습니다.”


“그래, 둘이 잘 풀어 봐.”


성문은 이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집을 나섰다. 박중구의 집으로 향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이런 식으로 연결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 과오로 인해 형사의 신념마저 배제한 채 가해자를 옹호하는 형국이 됐다. 형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정의는 항상 피해자 앞에 서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해자로 알고 있던 중구가 알고 보니 피해자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성문은 한숨을 크게 쉰 뒤 박중구의 대문을 열었다. 대문은 고리가 녹슬어 잠글 수도 없는 문이었다. 성문이 앞을 바라보자, 박중구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대청마루에 앉아 술을 먹고 있었다. 그는 성문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형, 형사님 아입니까.”


“그래, 중구야 나다.”


중구의 눈빛이 일순간 달라졌다. 드디어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묘한 얼굴이었다. 성문이 그 앞에 앉은 뒤 입을 뗐다.


“너, 왜 나 아는 척 안 했어.”


“내 몰라볼 거 같았다 아이가...”


박중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몰랐어. 네가 그 중구인지.”


박중구는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 몰랐다. 그때 그 시절 국민학교 6학년 때처럼 작고 왜소한 모습을 했다.


“니가 여자 죽인 거 맞지?”


성문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묻자, 박중구는 울 거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왔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너 봐주는 거.”


박중구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데이”


눈물을 글썽이는 그였다.


“그래, 나도 소주 한 잔만 줘라. 우리 이걸로 다 풀자.”


성문이 앞에 있는 종이컵을 들자, 박중구가 그에게 소주를 따랐다. 성문은 그 소주를 다 마신 뒤 박중구의 어깨를 토닥이고 일어났다.


‘이 정도면 됐다. 이젠 제발 삐뚤어지지 마라.’


성문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인 박중구는 달랐다. 성문에게 위로를 받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괴롭힘 당한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리가 만무했다. 또한 무엇보다 성문은 박중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삭제된 언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성문은 알지 못했다.


***


민환은 성문이 나간 뒤에도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한참 동안 담배를 피웠다. 성문에 대한 실망과 착잡함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민환은 성문이 박중구를 떠올렸을 때, 적어도 자기를 괴롭혔던 것도 알아주길 바랐다. 당장 나에게 사과는 못하더라도 일순간의 죄책감이라도 보였으면 했다. 하지만 성문은 그러지 않았다. 박중구도 간신히 떠올렸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민환을 쳐다봤다.


“그럼 그렇지... 그 새끼가 어디 변하겠어...”


민환은 반도 피지 않은 담배를 창틀에 짓눌렀다. 결심했다는 듯 교장 책상에 있는 회초리를 들고 교무실을 나갔다. 성큼성큼 허기진 복도를 걸어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자습하라는 민환의 말을 무시한 채 자리를 이탈해 떠들고 있었다.


“자리에 안 앉아?!


민환이 소리치자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평소와는 달리 격양된 모습이었다. 윤수는 민환의 감정 상태가 평소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2교시 도덕 시간인 거 알지?”


아이들이 대답하지 않자,


“반장, 도덕 시간 아냐?”


“네 맞아요.”


민환이 묻자, 윤수가 대답했다. 민환은 노트를 부욱 여러 장을 뜯더니 아이들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


“여기다 잘못했던 거 다 적어. 내가 없을 때 교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학교 밖에서도 잘못한 게 있으면 다 적어라.”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자,


“눈치 보지 마! 빨리 적어!”


민환이 회초리로 교탁을 치며 말했다. 아이들은 움찍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잘못한 행동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30분 간 시간이 흘렀을까? 민환이 입을 뗐다.


“반장, 다 걷어와.”


“네.”


윤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이 쓴 종이를 걷어 민환에게 건넸다. 민환은 잘못한 목록들을 눈으로 하나하나 읽더니 입을 열었다.


“구형석 나와.”


가장 먼저 거론된 건 놀랍게도 구형석이었다.


“엎드려.”


“네?”


“엎드리라고!”


민환이 목소리를 높이자 구형석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엎드려뻗쳤다.


“잘못한 목록에. 윤수와 교실에서 싸웠다. 이거 하나 맞지?”


“네.”


구형석이 대답하자 민환이 회초리를 높이 쳐들었다.


뻑-!


풀 스윙으로 내려쳤다.


“또 대.”


구형석은 인상을 쓰며 다시 엎드려뻗쳤다.


뻐억-!


처음보다 더 강한 매질을 하는 민환이었다. 아무리 구형석이 덩치가 있다고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대.”


민환은 구형석에게 또다시 자세를 잡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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