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구형석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는 벌써 민환에게 아홉 대나 맞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민환은 또다시 엎드리라고 하고 있었다.
빠악ㅡ!
“아악..!”
구형석이 처음으로 신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렇게 소리를 쳐야지. 왜 바보처럼 참고 있어? 들어가.”
구형석은 민환에게 꾸뻑 인사를 한 후 절뚝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자, 다음 이기찬.”
기찬은 맞기도 전에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겨우 잘못한 걸 하나 썼는데, 열 대를 맞은 구형석을 보니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윤수와 밖에서 싸우고, 린을 괴롭혔다. 맞아?”
“네...”
“엎드려.”
기찬은 이를 꽉 깨물며 엎드렸다.
빠악!
맞자마자 앞으로 쓰러지는 기찬이었다.
“서,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엎드려”
민환의 말에 기찬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엎드렸다.
빠악!
“아..아..!”
민환의 매질에 온몸이 휘청 이는 기찬이었다.
“서, 선생님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기찬은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그러니까 맞기 전에 잘해야지. 엎드려”
기찬은 사색이 됐다. 동시에 자포자기한 얼굴을 했다. 결국 형석과 똑같이 여덟 대를 더 맞아서야 절뚝이며 자리로 돌아간 기찬이었다.
“성태, 상태 나와.”
민환이 종이에 적은 잘못한 목록을 보며 말했다.
“윤수에게 형이라고 말하지 않고, 언니인 린을 놀렸다. 맞아?”
“네...”
“네...”
쌍둥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엎드려.”
쌍둥이가 나란히 엎드리자 민환은 온 힘을 다해 엉덩이를 때렸다.
퍼억-!
성인의 힘을 어린 쌍둥이들로서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단 한 대만 맞았을 뿐인데 자세를 다시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것들 봐라? 빨리 안 엎드려..”
“자,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다음부터 안 그러겠습니다...”
동생인 상태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혼난 적은 있어도 이런 식의 혹독한 매질은 받은 적이 없었다.
“잘 못했으면 한 대 더 맞고 반성해.”
쌍둥이들은 마지막 한 대라는 말에 기운을 차리고 엎드렸다. 한 대라면 어쨌거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빠악-!
쌍둥이들은 민환의 매질에 동시에 눈물을 터트렸다. 버티긴 했지만 울음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이것들이 뭘 잘했다고 울어. 빨리 안 들어가?”
쌍둥이들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들어갔다.
“다음. 지윤수.”
이번엔 윤수차례였다. 윤수가 교실 앞으로 나오자 민환이 말했다.
“너. 왜 아무것도 안 적었어?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네.”
윤수는 떳떳하다며 대답했다.
“구형석은 너랑 싸운 게 잘못했다고 하던데. 넌 아냐?”
“그건 형석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요.”
“저번에도 선생님이 말했지? 형석이가 형 아니냐고.”
“나이로는 형이지만 형이라고 부르기 싫어요. 왜냐면 정신적으로 저보다 어리니까요.”
민환은 어이가 없었다. 역시나 성문의 자식답게 만만치 않았다.
“그럼, 너 린의 엄마도 정신적으로 너보다 어리니까 아줌마라고 안 부르고 야, 너라고 부를 거야?”
“그건...”
윤수는 말문이 막혔다. 설마 거기서 린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윤수가 아니었다.
“제가 말한 정신적으로 어리다는 뜻은, 린의 엄마처럼 물리적인 성숙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형이라고 하면 그에 걸맞은 형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매일 저와 린을 괴롭히고. 협박하고. 겁박을 하니까. 형이라고 부르기 싫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선생님이 선생님 같아야 하는 것처럼요.”
민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선생님이 선생님 같아야 한다는 건, 윤수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은연중 드러낸 거나 다름없었다.
“그 말은 선생님도 선생님 같지 않다는 거야?”
“네,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은 좀 더 확고해졌어요.”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선생님에게 대놓고 저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민환도 마찬가지였다. 윤수가 또래와는 달리 조숙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조숙함이 자신을 넘볼 정도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하는 이교실 안에서.
“엎드려라. 너도 잘못한 게 있어.”
“싫어요.”
윤수가 고개를 저었다.
“싫다고?”
“네, 저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선생님이라고 해서 무조건 맞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싫어요.”
한마디로 파국이었다. 아이들은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교실의 제왕인 구형석도 열 대나 맞은 판국에 한 대도 맞기 싫다니.
“성문이 그렇게 가르치디?”
민환은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말해봐라. 네 아버지가 맞는 건 절대로 하지 말라고 그러디?”
윤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너를 때리는 게 이해 안 돼? 그럼 이해 되게 말해줄까?”
민환이 회초리를 들고는 말했다.
“네가 맞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해. 너희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나를 때렸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자식의 아내가 살해를 당하는 것도 당연하고 너도 맞아봐야 그 고통을 알 수 있는 거야. 안 그래?”
아이들은 경악했다. 방금 말한 민환의 수위가 너무나 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영문 모를 표정도 지었다. 왜 갑자기 선생님이 어린 시절에 윤수 아버지한테 맞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엎드려.”
“싫어요.”
하지만 윤수는 끝까지 버텼다. 아버지가 옛날에 선생님을 때렸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비겁해요.”
“뭐?”
윤수가 반격을 했다.
“아버지한테 맞은 건 선생님인데, 왜 저한테 화풀이를 하세요. 아직도 저희 아버지가 무서워서 그러시는 거예요?”
“내가 무서워서 이러는 거 같아?”
민환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네. 그러니까 저한테 이러죠.”
민환은 결국 한계에 봉착했다. 회초리를 내려놓더니 오른손으로 윤수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후벼 팠다. 윤수는 뒤로 넘어졌고, 순식간에 적막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얼어붙어 꼼짝하지 않았다. 충격의 파장이 교실 안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봐라. 내가 네 애비를 아직도 무서워하는 거 같아? 어? 그래 보여?”
“......”
윤수는 뺨을 어루만질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환이 충혈된 눈으로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 똑똑히 알아둬. 이 교실에서는 내가 곧 질서고 법이야. 앞으로 한 명도 내 눈에 밟히는 행동하지 마. 알았어?”
“네...”
아이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습해.”
민환은 회초리를 들고 교실을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아이들은 대처할 방법을 몰랐다.
***
폭풍전야가 지나간 이후 빙하기가 찾아왔다. 수업 시간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민환은 남은 교시에 수업을 진행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했다. 행여나 민환과 눈을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선생님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이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수업 끝. 당번들은 청소 마치면 바로 집에 가도록.”
민환은 그 말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을 나갔다.
윤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형석이 아니꼽다며 입을 뗐다.
“니. 뭐가 잘나서 선생님에게 대드는 기고.”
“넌, 뭐가 잘라서 날 괴롭히는 건데?”
“니 진짜 돌았나.”
“돌은 건 너야.”
“이게 진짜!”
형석이 흥분해 윤수를 때리려 하자, 기찬이 그를 말렸다.
“행님. 이러다 우리 선생님한테 또 맞는다. 선생님이 관심 없는 척해도 우리가 한 일 다 알고 있다 아이가.”
형석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꺼져 삐라. 청소하게.”
윤수는 형석을 일별 하며 교실을 나갔다.
***
윤수는 내내 고개를 숙이며 걸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어머니가 괴한에게 살해당한 후,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고 했을 때 이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 정말 조용히 공부만 열심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날이 가면 갈수록 고난과 역경이 쌓였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선생님까지도 자신을 고깝게 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윤수는 성문에게 다시 이사를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저기 나한테도 말해줄래?”
린이 말했다. 윤수는 그제야 린이 곁에 있다는 걸 인식했다.
“선생님이 어린 시절에 너희 아빠한테 맞았다는 게 무슨 소리야?”
윤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뗐다.
“선생님 하고 우리 아빠하고 어렸을 때 여기 학교에 다녔대. 그런데 우리 아빠가 선생님을 때렸나 봐.”
“그래서 윤수 너한테 차갑게 대하는 거야?”
“응...”
윤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래도 아까는 선생님이 심했어.”
윤수가 린을 쳐다보자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너희 엄마 돌아가신 거 당연하다고 한 거 심했다구.”
“으응....”
윤수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만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도와줄까?”
“어?”
“이번엔 내가 도와주겠다고. 나랑 같이 선생님 집에 가보자.”
그러더니 무작정 윤수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린이었다. 윤수는 그녀를 따라가며 대체 무엇을 도와준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선생님 집은 왜 가는 건지 그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무작정 린을 따라가자, 얼 마후 민환의 집 앞에 당도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린이 창문을 통해 보이는 여자를 보고 말했다.
“선생님 아내분 아냐?”
“응. 동화작가래.”
윤수는 그래서 선생님이 이곳으로 이사 오기가 더 수월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직장이 있는 여자였다면 이런 시골은 막막하기 그지없기 때문이었다.
“잘 봐,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 게.”
린은 피식 웃더니 이윽고 마스크를 벗었다. 윤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뭘 하려고 그러는 건데? 응?”
그러다 윤수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린의 눈동자가 이상해졌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교실에서 봤을 때랑 같은 모습이었다. 흰자위만 덩그러니 남더니 동공이 나타나고 눈이 새카맣게 변했다.
“채린아! 뭐 하는 거야? 어?”
윤수가 다급하게 묻자 금세 원래 눈으로 돌아오는 린이었다. 그리고,
“저 아줌마 봐봐.”
린이 민환의 아내를 쳐다보라며 말했다. 그녀는 책상에 앉은 채로 있더니 일어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수는 선생님의 아내가 옷을 갈아입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이상했다. 속옷까지 모두 벗어젖히더니, 급기야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왜 저러시는 거야...?”
윤수는 놀란 얼굴을 했다. 선생님 아내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밖을 걷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따라가 보자.”
린은 흥미로운 얼굴로 윤수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