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갑자기 저럴 수는 없었다. 선생님 아내는 맨발에 발가벗은 채로 산보하듯 빠르게 걷고 있었다. 설핏 미소를 머금은 채 기쁘다는 듯 길을 활보했다. 다행인 건 이 광경을 자신과 린 빼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채린아, 네가 그런 거 맞지? 어?”
윤수는 불안해 물었지만,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한 집에서 멈춰 서는 선생님 아내였다. 그녀는 낡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윤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집이 무슨 집인지 몰랐다.
그런데,
“윤수야. 이쪽으로 와.”
윤수는 하마터면 집주인에게 발칵 될 뻔했다. 집주인은 다름 아닌 박중구였다. 놀라운 건 선생님 아내가 나체로 박중구에게 안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박중구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왜 그러냐며 거부하다,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대로 선생님 아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윤수는 숨어서 넋을 잃고 쳐봤다. 도저히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채린아...?”
“이제 됐어. 그만 가자.”
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평소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애가 아까부터 실실 웃고 있었다. 윤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
윤수는 다락방에 누운 채로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린이 선생님 아내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생님 아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린의 괴이한 능력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윤수는 몸을 일으켜 거실을 바라봤다. 불을 꺼놔서 그런지 어두컴컴했다. 해가 떨어졌는데도 성문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학교에 다녀왔을 때부터 보이지 않았다.
따르르릉-
집 전화기가 울렸다. 윤수는 재빨리 일어나 거실로 내려갔다.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자,
-윤수야, 아빠 늦게 들어갈 거 같으니까, 일단 국 대펴서 혼자 먹고 있어.
성문의 목소리였다.
“어디신데요?”
-지금 경찰한테 조사받고 있어.
“조사요?”
윤수의 눈이 커졌다.
-이따가 들어와서 이야기할 테니까, 문단속하고 있어.”
“네... 알겠어요.”
윤수는 전화를 끊은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무슨 조사를 받는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사이 또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건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윤수는 거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밖이라도 나가면 그대로 존재 자체가 지워질 것만 같았다.
윤수는 초조한 얼굴로 밥도 먹지 않고 거실 식탁 의자에 앉아 성문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한 지 2시간 훌쩍 지났는데도, 성문은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윤수는 혹여나 무언가 잘못됐나 싶어 잠긴 현관문을 풀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한 발작 나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윤수의 팔목을 잡았다.
“너 뭐 해? 문단속하고 있으라니까.”
성문이었다. 그는 어둠에 잠긴 얼굴로 윤수를 내려다봤다.
“아...하도 안 오길래요.”
“그렇다고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성문은 윤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잠근 뒤 식탁 의자에 앉았다.
“너 여기 앉아봐.”
성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너 아빠한테 있는 그대로 얘기해야 해. 알았지?
윤수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아까 오후에 선생님 집에 왜 갔어?”
“네?”
윤수는 첫 질문에서부터 당황했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아했다.
“너 선생님 아내가 발가벗고 집에서 나온 거 봤지?”
“네...”
윤수는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선생님 아내가 박중구 아저씨 집으로 갔잖아. 거기서 뭐 봤어?”
“그게... 선생님 아내가 막 그 아저씨한테 유혹하듯이 안겼어요. 그렇게 하니까.. 아저씨가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고요.”
윤수는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그게 다야? 다른 건 없었어?”
“네...”
윤수는 성문을 조심스레 쳐다보며 대답했다.
성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본 광경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수가 린과 민환의 집으로 가기 전, 성문은 박중구의 일로 머리가 복잡해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멀리서 윤수와 린이 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 발견했다. 그들을 따라가자 민환의 집 앞에서 마치 무언가를 훔쳐보는 듯한 모습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문은 얘네들이 뭘 하는 건지 가서 말을 걸려고 했다. 그런데 두 눈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민환의 아내가 난데없이 발가벗고 집에서 나오더니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성문은 민환의 아내를 똑똑히 쳐다봤다. 동공이 위로 올라가고 실실 웃고 있는 게, 전형적으로 맛이 간 상태였다. 마약수사를 할 때 뽕을 맞고 나타나는 환각 증상과 흡사했다. 윤수와 린이 민환의 아내를 따라가자, 성문도 뒤쫓아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박중구의 집이었다. 그녀는 그곳으로 들어가더니 반시진 가량 나오지 않았다. 윤수와 린이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성문은 민환의 아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민환의 아내가 또다시 발가벗은 채로 나왔다.
성문은 그녀를 보자마자 말을 걸었다.
“가현 씨 왜 그래요?”
성문은 그녀 앞에 서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헤벌쭉 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성문은 괴이함을 느꼈다. 무작정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난 곳도 아닌, 가시 덩굴과 나뭇가지가 산재한 곳을 맨몸으로 뚫고 올라갔다.
“가현 씨! 멈춰봐요!”
성문이 뒤에서 소리쳤다. 나뭇가지와 가시덩굴 때문에 그녀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성문의 팔과 얼굴에 생채기가 났다. 민환의 아내는 더욱 심각했다. 온몸이 긁히고 피부가 찢기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괴력을 발휘하며 산을 오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목격한 참상.
위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성문이 있는 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그녀였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구르고 있었다. 이내 바위에 몸이 부닥쳐 허리가 기형학적으로 꺾인 그녀였다.
성문은 그 광경을 보고 충격에 입을 떼지 못했다. 지금까지 형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광경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바로 산을 내려가 경찰에 신고하고 민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네? 그럼 돌아가신 거예요?”
윤수가 묻자, 성문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목격자는 아빠뿐이야. 경찰한테 너희들 이야기는 안 했어. 네 얘기를 먼저 듣고 싶어서.”
윤수는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성문은 윤수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짐작했다.
“다시 한번 물어볼 게. 정말 아빠한테 숨기는 거 없는 거야?”
“네....”
윤수는 작게 대답했다. 성문은 더 물어보기를 포기했다. 사실 윤수에게 물어봤자 얻어낼 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정말로 민환의 집을 훔쳐봤을 뿐이었고, 민환의 아내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윤수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린이 선생님의 아내를 이렇게 쉽게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린은 자신에게 주어진 괴이한 능력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벌레 죽이듯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무리 자기에게 심한 말을 했어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윤수는 린이 벌써 사람을 2명이나 죽일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는 박중구. 자기 엄마가 박중구에게 겁탈을 당할 뻔했을 때였다. 두 번째는 구형석. 교실에서 구형석에게 맞을 때였다. 목덜미가 섬칫해 고개를 돌리자 린의 눈이 이상했었다. 그때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말리지 않았다면 구형석도 죽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윤수는 린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불합리하다고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너무나 쉽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내일 당장 린과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 날,
윤수는 평소 때보다 빨리 일어났다. 샤워실에 들어가 재빨리 씻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린을 만나 왜 그런 짓을 벌인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윤수가 씻고 나올 때까지 성문은 자고 있었다. 그것도 웬일로 거실이 아닌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오늘은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 윤수는 준비를 다 마치고 집을 나섰다. 그러자 벌컥, 성문의 방문이 열렸다. 그는 창문을 통해 평소보다 이른 준비를 하는 윤수를 보며 수상하다는 눈빛을 했다.
***
윤수는 30분이나 일찍 집에서 나왔다. 바로 린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대문을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채린아, 일어났어?”
기다리라는 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5분 후 그녀가 문을 열고 나왔다.
“너, 진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윤수는 린에게 그렇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온 얼굴에 붉은 반점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린아...너 얼굴이.... 왜...?”
“신경 쓰지 마. 원래 이러니까.”
린이 마스크를 쓰며 말했다.
“너, 그 능력을 쓰면 이러는 거야?”
윤수가 충격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묻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본론을 얘기했다.
“선생님 아내, 어젯밤에 죽은 거 알아?”
“몰라.”
“모른다고?”
“응. 하지만 죽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 시간이 좀 더 당겨졌을 뿐이야.”
사람을 죽이고도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린이었다. 윤수는 그녀의 태도에 할 말을 잇고 잠시 멈췄다가 그녀를 따라갔다.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아니, 선생님도 알아야지.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어떤 심정인지.”
“하지만, 선생님 아내는? 그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잖아!”
걸음을 멈추는 린이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입을 뗐다.
“윤수야. 원래 가장 먼저 죽는 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야. 너희 엄마가 돌아가신 것처럼.”
윤수는 말문이 막혔다.
“이제, 선생님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 보자. 무척 재밌을 거야.”
그 말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기는 린이었다.
윤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 재빨리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사람 목숨을 가지고 그러는 게, 재밌는 일이야? 너한테는 그런 거야?”
“응. 세상 사람들은 다 재미로 그러니까. 우리 엄마도 마을 사람들이 재미로 강간하고, 애들도 나를 재미로 괴롭히잖아. 그러니까 나도 재미로 그래야 해.”
윤수는 그때 린의 눈빛에서 느꼈다. 그녀의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완전히 깨어났다는 것을. 그것은 칠흑의 웅덩이 속에서 서서히 몸을 드러냈고 멈출 수 없는 재해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