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환시

by 송아론

새벽 두 시. 다락방에서 잠든 윤수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어머니가 괴한에게 살해를 당하고 있었다. 핏물에 끄윽 거리는 어머니의 신음에 윤수는 두 눈을 감고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차오르는 숨과 함께 감았던 눈을 뜨자, 정신과 의사 도재학이 굳은 얼굴로 윤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윤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 복도에서 성문이 말했다.


“박사님이 하신 말 잘 들었지?”


“조금은요.”


“말 걸어도 못 들은 척하고, 아는 척하지 말란 소리다.”


“생각해 볼게요.”


성문이 배경에서 지워지더니, 곧이어 윤수만 덩그러니 병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하루빨리 퇴원하고 이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자, 스르륵 병실 문이 열렸다.


“안녕. 난 다혜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윤수와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가 인사를 건넸다. 윤수는 또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정신병에 걸린 애가 또 말을 걸고 있었다.


이런 일은 비단 여자애만이 아니었다. 특히 병원에서 산책할 때 그랬다. 어떤 아주머니가 갑자기 와락 안더니 내 아들이 여기 있다고 하질 않나, 늙은 할아버지가 우리 손자라며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윤수를 붙잡고는 우리 형 좀 구해달라며 허공을 보고 말했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여자는 정신병원에서 우리들 몰래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형은 자기가 국정원이라면서 병원을 몰래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은 대게 며칠 후 꼭 병원에서 난동을 부렸고, 격리되고 나면 조용해졌다.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혼란이 집약된 곳. 그곳이 정신병원이었다. 그리고 이 중 가장 귀찮은 존재가 바로 다혜라는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뭐가 재밌는지 연신 미소를 띠고 있었다. 윤수가 인사를 받지 않은 채 경계하자, 다혜가 걸어오며 말했다.


“이야기 들었어. 너희 엄마가 살해당하셨다며?”


윤수의 신경이 예민해지려는 찰나,


“나도, 똑같아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


다혜가 말을 마쳤다.


“그런데 난 항상 궁금했어. 우리 엄마가 대체 왜 죽은 건지. 근데, 널 보니까 이제 알겠어. 우리 엄마가 죽은 이유는 너희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야.”


다혜가 ㄱ자로 허리를 굽혀 윤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윤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장난할 기분이 아니라며 입을 뗐다.


“너도 정신이 이상한 애네. 돌아가. 혼자 있고 싶으니까.”


“너는 처음부터 혼자도 아니었는데, 왜 혼자 있고 싶다는 거야?”


“나가라고. 여긴 내 병실이니까.”


“내 병실이기도 해.”


“열받게 하지 말고 가라니까!”


윤수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러자 다혜가 피식 웃으며 나갔다. 동시에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묻자, 윤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것이 윤수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일이었고 여자아이는 매번 간호사의 눈을 피해 병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다혜가 양발로 점프해 소리를 내며 윤수 앞에 착지했다. 이번에도 내가 왔다는 뜻이었다. 윤수는 그녀를 무시하고 밥을 먹었다.


“내가 말한 거 생각해 봤어? 우리 엄마가 죽은 이유가 너희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라는 거?”


다혜는 윤수 앞에서 살랑거리며 말했다. 윤수가 눈을 마주치지 않자, 고개를 내밀며 다시 물었다.


“생각해 봤냐니까?”


“아니.”


윤수는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그래? 궁금하지 않아?”


“안 궁금해.”


“왜?”


“네가 가짜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윤수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여자아이를 쳐다봤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 도재학 박사랑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박사님 말로는 내가 환시를 보고 있는 거래.”


“환시?”


“응. 그래서 밥 먹고 바로 항정신용제를 먹을 거야. 그러면 너는 사라지게 되니까, 내 대답을 영원히 듣지 못하고 끝나겠지.”


윤수가 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싱글벙글이었던 여자아이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윤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곤 내심 통쾌했다. 사실 처음에 도재학 박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윤수는 믿을 수 없었다. 상담 때 다혜라는 여자아이가 자꾸 병실에 찾아와서 귀찮다고 했는데, 그런 아이는 환자 명단에 없다는 것이었다.


윤수는 믿기지가 않아 여자아이가 병실에 오면 진짜라는 걸 확인시켜 주겠다고 했다. 여자아이가 병실에 들어오는 순간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가 뛰어오자, 윤슈는 옆에 있는 여자아이가 보이지 않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여자아이는 그 순간에도 윤수의 표정이 재미있다며 연신 웃어댔다.


윤수가 처음으로 환시를 보게 된 게 바로 이 시점이었다.


“정말 그 약을 먹을 셈이야?”


“응.”


윤수가 빠르게 밥을 먹으며 대답했다.


“아쉽네. 그러면 다시는 못 보는 거잖아.”


다혜가 급격히 우울해졌다. 윤수는 밥을 먹던 중 순간 마음이 동했다. 항상 얄미운 얼굴로 귀찮게만 굴던 아이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거봐. 너도 내가 사라진다니까, 슬프지?”


다혜가 말했다.


“그래도 네가 보이는 건 옳지 않은 일이야.”


윤수는 마음을 숨기며 대답했다.


“옳지 않은 게 뭔데?”


“상식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거지.”


“이게 상식적인 일이 아닌 거야?”


“당연하지, 넌 환시잖아.”


“그럼 환시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서는 안 되는 거야? 난 다른 거 필요 없이 너랑 대화만 하고 싶은 건데?”


윤수는 그 순간 다시 한번 마음이 동했다. 다혜가 말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단번에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윤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항상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했다. 1인 병실에 홀로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하루하루가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처럼 공허의 부피가 커졌다. 그것이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자, 윤수는 이러다가 풍선이 뻥하고 터져버리는 것처럼 자신이 터져버리는 건 아닐지 불안했다. 자기 또래 아이는커녕,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사람이 없자, 급격한 외로움에 젖어들었다. 성문이 매일 병원에 와 잠들 때까지 손을 잡아주던 게 그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를 죽인 범인을 잡겠다고 선포한 후로부터는 며칠에 한 번꼴로 병문안을 왔는데, 그게 어린 윤수에게는 심리적 불안감으로 작용했다. 그 불안이 축적되며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올라왔을 때, 윤수는 처음으로 환시를 보게 되었다.


자꾸 예기치 못한 상황에 찾아오고 이상한 말만 해대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잘못된 것이라며 환시를 없애버린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윤수는 선뜻 다혜를 지우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을 때, 윤수는 깨달았다.


다혜라는 이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존재라는 것을.


내 불안과 공허, 외로움, 흔들림으로 인해 탄생한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혜가 처음 윤수 앞에 나타났을 때 힌트를 줬던 것이었다.


“우리 엄마가 죽은 이유는 너희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야.”


윤수는 밥을 다 먹은 뒤 고민을 했다. 본래라면 통쾌하고 화끈하게 약을 먹으려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먹지 말고 나랑 대화하자.”


다혜가 윤수에게 다가와 싱긋 웃었다. 윤수는 약봉지를 쳐다보며 갈등했다. 그녀의 진심을 안 순간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이 다혜에게 연결됐다.


윤수는 약봉지를 든 채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정했다며 약봉지를 뜯어 입에 털어 넣었다.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다혜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고개를 푹 숙이더니 점점 투명해지며 환영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환시라는 게 증명되던 순간이었다.




환청이란?

실제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린다고 하는 착각하는 증상이다. 쿵쿵 거리는 소리, 발소리, 천장소리, 사물소리 심지어는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 외상후 스트레스처럼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거나, 누적된 스트레스가 클 경우, 피해망상, 조현병이 있을 때 나타난다.


환시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물체, 동물, 사람 등등을 실존하는 것처럼 보는 증상을 말한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거나, 장기간 부정적 환경에 놓였을 때, 조현병이 있을 때 나타납니다.

증상이 심각해지면 환청과 환시가 동시에 나타난다. 또한 환청을 들으면서 느낌적으로 내 주위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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