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랐나? 문이 잠겨 있어 그런데, 아버지 안 계시노?”
박중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윤수는 가만히 그를 보고 있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지금 주무시는데, 깨워드릴까요?”
“아이다. 나중에 다시 온다고 전해 드려라.”
“네...”
그 말과 함께 유유자적 사라지는 박중구였다. 윤수는 그가 없어져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처음부터 그랬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는 언제나 불길했다. 도사견에게 물렸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방심한 순간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릴 것만 같은 살의를 보였다. 어머니를 죽인 괴한과 결을 비슷하면서도 다른, 흉측함이 있었다.
이 세계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해악이 있음을.
윤수는 괴한과 구형석 그리고 박중구를 보며 인생에 이런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을 닫고 잠갔을 때였다. 문을 따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문이 들어왔다.
“일어났어? 배고프지? 저녁 먹자.”
성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녁을 하기 시작했다. 국을 대 피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윤수는 성문이 왠지 모르게 서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기 아빠.”
“어?”
“방금 그 아저씨 왔다 갔어요.”
계란 프라이를 하려던 성문의 동작이 멈췄다.
“...박중구. 걔 말하는 거야?”
“그 아저씨 이름이 박중구예요? 아까 거실 창문에서 아빠 찾더라고요.”
윤수는 놀랐다는 말은 빼고 말했다.
“언제?”
“방금요.”
성문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재빠르게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윤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괜히 말했나 싶을 정도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퉁. 퉁.
거실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자 성문이 서있었다.
“여기 있었다고?”
“네.”
성문은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적막이 흘렀다. 윤수는 성문이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처음 봤다. 그러다 보니 불안이 가중됐다. 괜히 나 때문에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하지만 성문은 금방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부터 아침이건 저녁이건 창문 문 열어놓지 말고 다 잠가놔. 알았어?”
“네.”
“그리고 박중구 그 사람 보이면 말도 섞지 말고 바로 아빠한테 와.”
“네.”
“그래, 밥 먹자.”
성문은 말을 마친 뒤 다시 저녁을 하기 시작했다. 윤수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는 괜히 그날 린의 집으로 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나 싶었다.
그날 린의 집에 가지 않았다면 도사견에게 물리지 않았을 테고, 지금처럼 불안해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하던 중 윤수는 아차 싶었다. 그렇다는 건 린과 린의 어머니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도사견에게 팔을 물린 것 빼고는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때 린의 집에 간 건 잘할 일이야.
윤수는 그렇게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
박중구는 어두운 시골길을 아직도 배회하고 있었다. 소주병을 홀짝 들이켜다, 술이 더는 남아 있지 않자 병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박중구는 깨진 소주병을 뒤로하고 가로등 옆 풀숲에 들어갔다. 그곳에 선채로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가 났다. 한 여자가 가로등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중구를 자위를 멈추고 고개를 내밀어 여자가 걸어오는 모습을 쳐다봤다. 다시 풀숲에 숨은 뒤 여자가 가로등을 가로지를 때였다. 박중구는 거미가 먹이를 낚아채듯 여자를 등 뒤에서 덮쳤다.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왼손으로 여자의 입을 가렸다. 여자가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오른손과 양다리로 여자를 감싸 안았다. 체중을 실어 여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박중구는 허벅지가 욱신거렸지만 성욕에 비례에 참을만했다.
“가만히 있어 이년아.”
박중구가 오른손에 든 녹슨 낫을 여자의 목에 갖다 댔다. 눅눅한 금속의 재질이 느껴지자 여자는 금방 반항을 멈췄다.
“그래, 그렇게 있어야지.”
박중구가 여자의 상의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여자는 얼굴을 떨며 침음을 흘렸다. 소리를 치면 누군가가 도와줄 수도 있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 만약 소리치지 않는다면? 이대로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해야 한다. 하지만 목숨은 건질 수도 있다. 박중구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들이밀 때까지 여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대로 있을 것인가, 살려달라고 소리칠 것인가.
그때, 풀숲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중년 남자 두 명이 가로등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 미친년이.”
푸욱-
“으읍... 살려주..!”
여자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박중구가 낫으로 그녀를 내리친 후였다.
“응?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나?”
“뭔 소리?”
한 남자가 가로등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풀숲으로 향했다. 풀이 스산하게 흔들렸다. 박중구는 여자의 입을 완전히 봉쇄한 채였다. 낫에 찔린 여자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빨리 갑시다. 마누라한테 또 혼나겠소.”
다른 남자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남자가 벌어져서야, 박중구는 여자를 내려다봤다. 목에 낫이 찔려 있었고 여자는 숨을 거둔 채였다.
“시발...”
박중구가 나지막하게 욕을 뱉었다.
***
다음 날 아침. 마을은 쑥대밭이었다. 가뜩이나 요 몇 년 사이 마을 남자들이 불의의 사고로 몇 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이번에는 젊은 여자가 죽어나갔다. 그것도 누가 봐도 강간 살인. 경찰들은 현장 보존을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진을 찍어댔다. 주변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안한 얼굴을 했다. 몇몇은 마을에 마가 끼지 않고서야 굿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 뒤에 서 있는 성문은 틀림없이 박중구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간밤에 집으로 찾아왔던 시간과 살인이 일어난 시간만 대조해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한편, 그 시각 박중구는 이장의 집으로 가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니, 진짜 미칬나!”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술김에.”
“술김에 할 게 따로 있지! 사람을 강간한 것도 모자라 죽여?!”
짜악!-
이장이 박중구에게 귀싸대기를 올려쳤다. 박중구는 휘청거린 뒤에도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설상가상 눈물까지 흘리는 그였다.
“니 지금 이게 얼마나 큰 실수 인지 아나? 성문이 알제? 걔가 그냥 넘어갈 거 같나?”
“아니요...”
“니, 옛날부터 성문이한테 그리 당해놓고 걔 성깔을 몰라서 그러나.”
“...압니다.”
“아는 새끼가! 아는 새끼가! 이런 짓을 벌여?”
이장이 박중구에게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박중구는 이장의 다리를 붙잡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띠리리리-
그때였다.
인터폰 소리가 울려 이장이 확인해 보자, 성문이었다. 이장의 시선이 박중구에게 향했다.
“봐라, 야 벌써 왔지? 어떡할래? 어? 뭐라고 할 거야?”
“자백하겠습니다.”
“뭐? 자백? 자백하면, 내 얼굴에 똥칠을 하는 건데, 자백을 해?”
이장이 다시 발길질을 하려고 하자, 겁을 먹는 박중구였다.
“하아...이걸 어쩌면 좋노...”
띠리리리- 띠리리리-
이장은 호흡을 가다듬고 인터폰을 눌러 입을 뗐다.
“그래, 성문이냐.”
-네, 선생님. 이야기 좀 했으면 해서요.”
“담에 하자. 내도 지금 머리 아파 좀 식히고 싶다 아이가.”
-잠깐이면 됩니다.”
“됐다. 내가 나중에 연락할 테니 그리 알아라.”
뚝 끊기는 인터폰에 성문은 가만히 서 있다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살인 사건은 이미 온 동네에 퍼진 상태였다. 그건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윤수가 교실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여자가 죽었다고 하면서 얼굴에 놀라움 반, 흥미로운 반을 띠고 있었다. 특히 쌍둥이들은 죽은 여자가 자기네 옆집에 살았고, 가끔씩 사탕을 줬다며 형들에게 어떻게든 재미를 선사하려고 했다.
드르륵-
민환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이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차렷.”
윤수가 일어서 구령을 외칠 때였다.
“1교시는 자습하거라.”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민환이 교실을 나가자 아싸라고 외치며 좋아했다.
“후우...”
한편 민환은 교무실 앞에서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내쉰 뒤 문을 열었다. 민환의 자리에는 성문이 앉아 있었다.
“커피라도 마실래?”
“그럴까.”
성문의 대답에 민환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 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성문에게 건넸다.
“살인사건 때문에 온 거지?”
민환이 묻자 성문이 고개를 끄덕인 뒤 커피를 마셨다.
“박중구 그 사람 말이야. 전과 10범에 처제 강간하고 살인했다고 하더라.”
“응.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성문의 눈이 커졌다.
“아마, 마을 사람들 중에서는 나만 알고 있을 거야. 중구가 서울에 있다가 왔으니까.”
성문은 민환의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중구라고 이름만 말한 부분이 걸렸다.
“혹시, 박중구에 대해 잘 알아?”
“아니, 나도 국민학교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거야. 너처럼.”
“국민학교 때?”
성문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민환이 이상하다며 성문을 쳐다봤다.
“뭐야? 너 박중구가 누군지 몰라?”
그게 무슨 말이냐며 성문이 민환을 쳐다봤다. 성문은 정말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중구, 교장선생님 아들이잖아. 국민학교 때, 너 딱가리 했던 애. 기억 안 나?”
성문은 아차 싶었다. 그제야 중구가 누군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자기 말이면 무조건 복종을 했던 아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아이. 몸집이 작고 왜소해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도와준 후로, 늘 자기를 하늘처럼 모셨던 아이. 가끔 눈에 멍이 든 채로 학교에 와 누구한테 맞았냐고 물어보면, 아빠가 때렸다고 하는 아이. 그 아이가 나중에 알고 보니 담임 선생님 아들이라고 해서 더욱더 놀랐던 아이. 그 이름, 박. 중. 구.
성문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왜 그를 두둔했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그 순간, 민환은 날카로운 눈으로 성문을 쳐다봤다. 그가 20년 전 일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의 따위는 성문에게 있어서 별로 중요치 않는, 그저 흘러가버린 시간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