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례시간. 윤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윤수의 구령에 맞춰 아이들이 민환에게 인사를 했다. 형석이 두 번째로 자신의 말을 따르는 순간이었다.
학급 반장. 갑자기 주어진 권한에 윤수는 얼떨떨했다.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민환이 멈춰 세웠다.
“잠깐, 우리 반에 반장이 생겼으니까 이제 청소 당번도 뽑아야지. 지윤수 네가 반장이니까 오늘부터 청소 당번을 뽑도록 해.”
“아... 네...”
윤수가 대답하자 민환은 고개를 끄덕인 뒤 교실을 나갔다. 가방을 메고 일어섰던 아이들이 일제히 윤수를 쳐다봤다.
청소당번을 뽑는다.
전교생이 5명뿐이 안 되는 이 간단한 일에도 윤수는 혼란스러웠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자신이 반장이 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텐데 거기다 청소까지 시킨다.
과연 고분고분 말을 들을까?
“지윤수 빨리 뽑아라. 안 뽑을 기가?”
기찬이 말했고, 동시에 형석과 눈이 마주쳤다.
‘감히 네까짓 게 나에게 청소를 시켜?’
형석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청소는 나하고 린이 할게. 내일을 성태하고 상태. 그다음 날은 기찬이하고 형석...이형이해.”
윤수가 말했다. 그는 처음으로 형석에게 형이라고 했다. 평소면 절대로 꺼내지 않았을 단어지만, 지금은 위치가 달랐다. 반장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했고, 분란을 조성하면 안 되는 자리에 있었다.
“그럼 청소 잘하그레이~”
기찬이 좋아하며 교실을 나갔다. 자신들의 무언의 압박이 통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청소할까?”
윤수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하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각자 구역을 정해 청소를 시작했다. 린은 칠판을 지우개로 지우고 분필가루를 닦았다. 걸레를 빨아 창틀에 있는 먼지를 닦았다. 윤수는 교실을 빗자루로 쓴 뒤 대걸레질을 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책상 줄을 맞췄다. 그렇게 청소를 다 마친 뒤 윤수는 민환에게 보고하기 위해 홀로 교무실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민환이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저... 선생님 청소 다 했는데요.”
“깨끗이 한 거야?”
“네...”
“그래 가도 좋아.”
민환은 여전히 업무를 보며 말했다. 윤수는 민환에게 왜 나를 반장으로 시켰는지 물으려 하다 그만두었다. 질문을 해도 대답을 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었다.
“안녕히 계세요.”
윤수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도, 민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
윤수와 린은 청소를 마치고 함께 하교를 했다.
“선생님이 왜 나한테 반장을 시킨 걸까.
윤수가 곰곰이 생각하자 린이 말했다.
“윤수 네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신 거 아닐까?”
“응?”
“반장 말이야.”
“아...”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원한이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나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가장 어울려 보여 반장을 시킨다? 왜?
“어? 행님아 저기 왔다, 왔다.”
“둘이 같이 온다.”
쌍둥이 성태 상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수가 앞을 바라보자 형석과 패거리들이 개울가 징검다리를 막고 서 있었다.
“지윤수 반장도 되고 기분 억수로 좋겠네~? 그지?”
기찬이 맨 앞에 서서 비꼬듯 말했다. 윤수는 이들이 반장건으로 언젠간 시비를 걸 줄 알았지만,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다. 하긴 서울에서 온 시골뜨기가 갑자기 반장을 도맡게 됐으니 눈꼴이 시려 울 수밖에 없었다.
“마, 지윤수 니 반장 됐다고 우리한테 명령할 생각하지 말 그레이. 진짜 가만 안 둔다.”
“가만 안 놔두면? 어떻게 할 건데?”
“죽이 삐는 거지.”
“그런 말 한다고 내가 쫄 거 같아? 바짝 말라서 비실비실한 게.”
“뭐? 이게 죽을라고. 환장했나.”
기찬이 윤수에게 달려들었다. 손으로 밀치려고 하자, 윤수는 그 힘을 역이용해 기찬을 개울가로 밀어 넣었다.
첨벙-!
그대로 개울가로 빠진 기찬이었다. 아까는 반장이었다면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여기는 교실도 아니고 지금은 싸워야 할 때였다.
“이기찬. 니 정말 병신이고?”
형석이 입을 뗐다.
“아 그게 아니고,”
기찬은 일어서려 하다 중심을 잃고 다시 넘어졌다.
형석이 한심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 윤수를 쳐다보고 말했다.
“마 지윤수. 난 니가 반장이건 뭐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한테 명령할 생각 마라. 알겠나?”
윤수는 형석에게만큼은 당장 맞서지 못했다. 기찬이 까지는 어떻게 해볼 자신이 있는데, 형석만 보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상대가 아니라고 몸이 먼저 반응했다.
형석도 그걸 잘 아는지 윤수가 겁을 먹는 표정을 보이면 그 걸로도 족하다는 듯 씩 웃으며 굳이 손을 쓰지 않았다. 윤수는 그게 더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나를 보호하고 린을 보고하기 위해서는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형석이 돌아서자, 윤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쯤이면 형석을 이길 타이밍이 올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
윤수가 학교에서 다녀와 신발을 벗자, 성문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오늘은 좀 늦게 왔네?”
“네, 청소하고 왔어요.”
“청소?”
성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환이가 학교에 청소당번 없다고 그러던데. 자기가 직접 한다고.”
윤수는 그때 담임 선생님이 청소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네, 그런데 이번에 반장도 뽑고 청소당번도 뽑았어요.”
“반장은 너지?”
“어떻게 아셨어요?”
윤수가 의아해하자 성문이 대답했다.
“저번에 그러더라. 반장은 너 시킬 거라고.”
“...그래요?”
윤수는 갑자기 헷갈렸다. 아버지가 담임 선생님을 만난 건 저번 주 주말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자신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기 전이었다. 그 말인즉, 자신에게 옛날이야기를 한 후 심경의 변화가 와서 반장을 시킨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애초에 윤수를 반장으로 점찍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빠.”
“응?”
윤수는 이때다 싶어 물었다.
“옛날에 담임 선생님이랑 친했어요?”
“글쎄, 친했다기보다, 괴롭힌 게 더 많은 거 같은데.”
성문은 그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다.
“선생님한테 사과는 하셨어요?”
“사과? 무슨 사과?”
“괴롭혔던 거 사과하셨냐고요.”
“아니? 사과할 정도로 괴롭힌 기억은 없는데?”
성문은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그 표정이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윤수는 더 실망스러웠는지 몰랐다.
“티브이를 봐도 그러더라고요. 꼭 때린 사람은 기억이 안 난대요.”
“이 녀석이 뭐라는 거야? 아빠가 설마 그 정도로 선생님을 괴롭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몰라요.”
윤수는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더는 성문과 대화를 하기 싫었다. 능청스러운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능구렁이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구형석이 떠올랐다. 20년 후, 그도 나를 만나면 친구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넬까? 그러면 나도 담임 선생님처럼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오랜만이라고 말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윤수는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워했을지 짐작이 갔다. 만약 나라면 웃으면서 구형석을 대할 자신이 없었다.
“어디 올라가?”
“피곤해서 좀 자려고요.”
윤수는 실망할 기색을 드러내며 2층 다락방으로 몸을 숨겼다.
***
박중구가 병원에서 퇴원한 뒤 다리를 절뚝이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대청마루에 앉은 뒤, 가게서 사온 소주를 병 채로 마셨다.
“허억...허억..”
빠드득. 충혈된 눈으로 이를 가는 박중구였다.
처음에 그는 다리에 실탄을 맞은 줄 알았다. 하지만 피부가 찢어지고 화상을 입었을 뿐 탄두는 어디에도 없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한마디로 공포탄이었다. 성문은 4발의 실탄을 도사견에게 쏜 뒤 남은 공포탄 1발을 박중구에게 쏜 것이었다. 박중구는 겁에 질려 실탄을 맞은 거라고 착각했다.
“...죽여 버릴 거야.”
그는 소주병을 벌컥벌컥 마시며 복수심에 찬 눈빛을 했다. 소주 한 병을 금세 비운 뒤 다른 소주병을 들고일어나 창고를 뒤졌다. 이내 녹슨 낫을 손에 들고는 집을 나섰다.
***
한편 성문은 농사를 하던 중 마을 이장의 집으로 갔다. 이장에게 전화가 오더니 박중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며 당장 집 앞으로 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박중구가 이장에게 일러바쳤는지는 몰라도, 그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성문은 원목으로 지은 주택 앞에서 초인종을 눌렸다. 그러자 바로 문을 따고 나오는 이장이었다.
“저 올 때까지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카마!”
이장이 버럭 소리쳤다.
“니 박중구가 누구지 알구 그러나?”
“완전 사이코 새끼 아닙니까. 채연서 성폭행 미수에다, 제 아들을 도사견으로 팔을 물게 한 새끼.”
“그거면 다행이게. 걔 전과 10범이다, 10범. 처제 성폭행하고 살인한 뒤 10년 동안 감방 살고 나온 애야.”
“네?”
성문은 무슨 소리냐며 이장을 쳐다봤다. 왜 그런 사람이 이곳에 있냐는 뜻이었다.
“나름 걔도 마음잡고 여기에 온 기라. 자길 받아주는 곳이 없다코, 잘 살겠다고 한사코 부탁해서 허락 한 기라.”
“아니 그래도 그게 말이 됩니까? 마을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하지 않으니께 냅뒀지. 농사일도 열심히 배우고 수확해서 감사하다고 작물이니 과일이니 마을 사람들 다 나눠주고, 자기는 술만 먹을 돈만 있으면 된다 카면서 남는 돈은 마을에 다 기부하고 있다.”
“그럼 채연서는요? 제 아들 말로는 성폭행 시도한 게 한두 번이 아닌 거 같다던데요.”
“채연서?”
교장이 코웃음 쳤다.
“니가 언제부터 채연서 신경 썼나?”
성문은 이장이 말하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너야말로 이곳 학교에 다닐 때 채연서를 주도적으로 괴롭힌 애가 아니냐는 뜻이었다. 당시 이장은 성문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같은 마을 주민 아닙니까. 보호는 해줘야죠.”
“됐다카마! 니 아들은 몰라도 채연서한테 신경 쓰지 마라. 걔 한 명만 희생하면 우리 모두 편히 살 수 있다 아이가.”
“이장님... 아니 선생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이장이 쯧 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니 여기서 산다고 했을 때 불안했던 기다. 니야 이제 형사도 되고 다른 사람이 됐다 카지만, 우린 똑같다 아이가. 채연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액받이야, 액받이.”
“그래도 이건 아니잖습니까!”
성문이 하소연해도 이장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럼 어떡할 낀데? 박중구 가가 니한테 보복이라도 하면 어떡할라고 카나.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감당이 아니라, 책임까지 지겠습니다. 옛날이면 몰라도 이제는 그런 짓 더는 두고 못 봅니다.”
“하이코야. 아주 잘난 형사구만. 난 이자 니한테 분명 경고했다? 뭔 일 벌어져도 나 원망하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성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문을 세차게 닫았다.
그리고 그 시각. 윤수는 2층 다락방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떴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밖이 어두컴컴했다. 1층 거실로 내려갔지만 성문은 보이지 않았다. 윤수는 냉장고를 열어 컵에 물을 따른 뒤, 거실 창밖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아직도 일하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순간, 윤수는 머그잔을 놓칠 뻔했다.
박중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창가 앞에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