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학교에 다녀온 뒤 창가에 서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성문을 쳐다봤다. 성문은 밀짚모자를 쓰고 과일과 채소 따위의 모종을 심고 있었다.
늘 바쁘게 산다.
윤수가 알고 있는 성문이란 그런 사람이었다. 형사 일을 할 때도 농사일을 할 때도 아버지는 그럴 거 같지 않은 이미지인데 항상 열심히 했다. 윤수가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알아서 혼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도 성문의 영향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니.
윤수는 믿을 수 없었다. 줄곧 정의로울 줄 알았던 아버지는 담임 선생님과 린의 어머니를 괴롭힌 악마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 그 가해자의 자식이 내가 지키지 못했던 여자의 딸을 지키려고 한다? 심지어 나에게 도와달라며 구조 요청을 한다? 제 아비가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지른지도 모른 채.
윤수는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20년 전 민환이 했던 역할을 자신이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때의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퉁. 퉁.
창가를 두들기는 소리에 멍하니 있던 윤수가 앞을 바라봤다. 어느새 성문이 코앞에 와 있었다.
“이 녀석 요새 왜 그래? 자꾸 은밀하게 훔쳐보고 말야.”
“아...”
“아...가 아니라 학교를 다녀왔으면 다녀왔다고 인사를 해야지 바로 집으로 들어가?”
“아.. 여기서 인사하려고 했어요. 너무 더워서 순간 멍 때렸어요.”
“이걸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 줘야 하나, 아니면 심문을 해야 하나?”
성문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윤수는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사실 성문은 윤수가 며칠 전부터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말수가 줄어들더니 자기의 뒷모습을 매번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성문이 윤수에게 왜 그러냐고 바로 묻지 않은 것은 심문을 하던 형사의 경험이 있어서였다.
첫째,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응시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물을 것이 있다는 뜻이다. 둘째, 일부로 이야기를 할 시간을 주었는데도 망설이는 건, 아무리 편한 사이라도 묻기가 어려운 주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셋째, 그러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섣불리 다가갔다간 오히려 감출 수 있다.
성문은 베테랑 형사답게 이미 윤수에 대해 파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실은 지금 당장 윤수가 말하지 않더라도 재촉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윤수가 입을 열었다.
“저기 아빠.”
“응?”
성문은 짐짓 관심 없는 척 물음표를 달았다.
“엄마는 왜 보복 살인을 당한 거예요?”
“...뭐?”
이건 형사인 성문도 예상 못 한 질문이었다. 그의 추리대로라면 윤수는 다른 문제로 입을 열어야 했다. 만약 엄마가 어떻게 죽은 지가 궁금했다면, 진작 티가 났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왜 묻는 거야?”
“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궁금했었어요.”
윤수는 고개를 저으며 질문을 철회했다. 순간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민환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문득 엄마가 죽은 이유도 아버지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궁금하면 말해 줄게.”
성문은 정면 승부를 할 작정으로 입을 뗐다.
“아빠가 마약 단속 반인 건 알지?”
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수사는 다른 것보다 어려운 게 조폭, 연예인, 지식인, 재벌, 정계까지 다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수사를 해도 공권력을 펼치기가 힘들어.”
윤수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뉴스로 연예인이나 정치인, 재벌 2세가 마약을 해도 모두 집행유예로 처리되는 걸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성문은 개 같은 판사 놈들 때문에 수사를 하나마나라고 몇 번이나 어머니에게 고충을 토로한 걸 보았다.
“그래서 경찰이 수사법을 바꿨어. 마약을 하는 애들을 잡는 게 아니라, 마약 유통업자들을 잡아내기로. 유통이 끊기면 자연스레 마약도 줄어들 테니까. 그래서 잠입수사를 하게 돼서 아빠가 유명한 조직에 들어갔어.”
윤수는 성문이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때를 떠올렸다.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올까 말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잠입수사를 펼칠 때였다.
“그렇게 조직생활을 아빠가 보스에게 신뢰를 받았어. 증거를 입수하고 밀수 거래할 때 신고해서 모두 감방에 넣었어. 그러다 보니까 조직들 입장에서는 나한테 배신당한 거지. 그래서 조폭이 엄마를 죽인 거야. 행동대장 김철호라고 유일하게 밀수 거래 때 도망간 놈이 있었거든.”
성문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까 윤수야. 너도 기억해라.”
성문이 처음으로 진지한 얼굴을 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사람의 믿음을 배반하는 짓은 절대 하지 마라. 언젠간 다시 나에게 되돌아오게 돼있어. 그때 아빠는 그걸 몰랐다.”
성문이 침울한 얼굴을 했다. 윤수는 아버지가 장례식장에서 이런 얼굴을 한 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안했다. 아버지가 학교폭력 가해자란 사실은 변함없지만, 형사로서의 프라이드와 정신까지 의심한 건 너무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 참, 너 혹시 최근에 그 도사견 데리고 있는 사람 본 적 없지?”
박중구를 말하는 거였다.
“네. 한 번도요.”
“혹시나 눈에 띄며 아빠한테 바로 말해.”
“왜요?”
“아빠가 경고했거든. 그리고 그 여자애 친구 집에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린의 어머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기가 그녀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잊은 척하고 있을까.
윤수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윤수는 린과 함께 등교를 했다. 이제 날마다 등하교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요새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린이 마스크를 한 채 물었다.
“아... 그런가?”
“매일 아... 그런가? 거리기만 하구.”
“아... 그랬나?”
“거봐, 또 그러잖아.”
“아...”
윤수는 머쓱해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담임 선생님이랑 교무실에서 무슨 이야기한 거야?”
“그냥... 형석이랑 왜 싸웠냐고.. 싸우지 말라고 그런 얘기들 밖에 안 했어.”
“정말?”
“응...”
윤수는 시선을 아래로 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린에게는 민환이 했던 이야기를 말할 수 없었다. 말한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고, 린에게 전혀 도움 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윤수와 린은 그 이후로 말없이 걸었다. 학교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 똑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또 둘이 같이 왔다.”
“바보들.”
윤수가 고개를 돌리자, 쌍둥이가 말했다.
“마, 나도 이제 니한테 행님이라 안 부른다.”
“그래. 형석이 햄한테 행님이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언청이하고 잘 놀아라, 바보야.”
“바보야.”
그 말을 하고 빠르게 뛰어가는 쌍둥이였다. 윤수는 주변에 있는 돌을 주어 힘껏 던졌다. 맞힐 작정이었고, 돌은 쌍둥이 머리 사이로 빠르게 지나갔다. 쌍둥이들은 놀라 빠르게 건물 안으로 도망쳤다.
“정말 맞추려고 했던 거야?”
“응.”
린이 묻자 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는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지긋지긋했고 그것이 설령 물리적인 충돌이라 해도 이 싸움을 어서 끝내고 싶었다.
***
교실에 들어서자 모든 아이들이 등교를 한 상태였다. 윤수와 린이 자리로 이동하자, 쌍둥이와 기찬, 그리고 형석이 약속이나 한 듯 둘을 노려봤다.
“뭘 꼬라봐, 이기찬”
먼저 시비를 건건 윤수였다.
“와? 꼬라보면 안 되노?”
“비겁한 새끼. 약자한텐 강하고 강자한텐 약하고. 너희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치디?”
“무라꼬? 니가 뭔데 우리 엄마를 욕하노!”
기찬이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윤수는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왜 열받아? 그런 새끼가 남의 엄마를 욕해?”
“하, 이 새끼, 이거 정말 돌아 삐었네.”
형석이 입을 열었다.
“마, 니 진짜 오늘 죽고 싶나? 요 근래 가만히 있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노?”
순식간에 삭막해진 교실이었다. 형석은 민환에게 윤수를 때린 걸 걸린 뒤에 한동안 잠잠했다. 여전히 윤수에게 살벌한 눈초리를 했지만 물리적 행사는 하지 않았다. 그때 윤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형석이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 쌍둥이와 기찬이를 압박하자고 마음먹었다. 물리적인 힘이라면 이 3명은 당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3명을 쓰러트린 뒤 형석에게 도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며칠 사이 연거푸 무너졌다. 기찬에게 도전을 할 때마다 형석이 지금처럼 살기를 내뿜기 때문이었다.
윤수는 그럴 때마다 숨이 턱 막혀왔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가슴부터 지이잉 떨려왔다. 힘의 차이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 그것은 동물의 세계에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너희들 또 시작이야?”
어느새 민환이 교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윤수를 노려보던 형석의 눈이 풀렸다.
“이것들이 시간만 나면 싸움질을...”
민환이 윤수와 형석을 번갈아 쳐다봤다.
민환은 윤수에게 과거 이야기를 한 후로도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냉철하고 냉혹했으며, 수업 외에는 교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일절 관심이 없었다.
다만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본인이 있음에도, 묘한 기류가 흐르면 그것을 끊는 것도 모자라 아예 엎어버리곤 했다. 마치 내가 교실에 있을 때엔 너희들 따위는 절대로 존재감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그것이 이 학교의 법칙이었고 하나의 룰이었다.
하지만 민환은 오늘 또 다른 룰을 만들기로 작정한 듯, 아이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자, 지금까지 우리 반에 반장이 없었지? 오늘부로 반장을 뽑기로 한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 눈을 깜박였다.
“다만 반장은 투표로 하지 않을 거다. 왜 그런지 알아?”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자, 민환이 이어 말했다.
“애초부터 이 교실은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부터 반장은 지윤수가 한다.”
아이들 모두 벙찐 얼굴을 했다. 놀라기는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반장을 하다니. 왜?
“자, 지윤수 애들 인사시켜.”
윤수가 멀뚱히 있자, 민환이 다시 말했다.
“안 해?”
“아, 네...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인사.”
안녕하십니까!
아이들이 고개를 숙여 큰소리로 인사했다. 그 안에는 형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윤수의 명령에 의해 고개를 숙이는 형석.
윤수가 자리에 앉자, 민환이 그를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당황해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도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