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민환의 과거

by 송아론

“뭐 하는 거야! 당장 떨어지지 못해?”


민환의 외침이었다. 형석은 잘못 걸렸다는 얼굴과 함께 윤수의 멱살을 놓았다.


“이 녀석들이 집은 안 가고 여기서 패싸움을 해?”


“...죄송합니다.”


형석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 다 집으로 가. 윤수는 교무실로 따라오고.”


그제야 주섬주섬 책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가는 아이들이었다. 한편 윤수는 놀란 얼굴로 린을 쳐다봤다. 조금 전 등 뒤에서 서늘함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는데,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이 이상했었기 때문이었다. 흰자위만 보이더니 민환의 목소리와 함께 검은색 동공이 제자리를 찾았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집에 가.”


“응.”


윤수의 말에 린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


드르륵- 탁!


민환은 평소와는 달리 세게 교무실 문을 열었다. 넓디넓은 교무실에 책상이 달랑 2개 있는 모습은 언제나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교장선생님은 윤수가 입학하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교장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있을 뿐, 일과시간을 농사에 쏟아부었다. 그러니까 이곳의 실질적인 학교 주인은 민환이나 다름없었다.


“여기 앉거라.”


민환은 자기 의자를 내어 준 뒤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더니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였다.


“왜 싸운 거야.”


민환이 담배를 내뱉으며 물었다. 윤수는 의자에 앉은 뒤 대답했다.


“구형석 걔가 린이랑 같이 다니지 못하게 해서요.”


“형석이가 형 아냐?”


“…….”


윤수는 자존심상 형이라고도 하기 싫었다. 윤수가 입을 닫은 채로 있자 민환이 담배를 한 모금 피운 뒤 물었다.


“왜 린이랑 친하게 지내는 건데.”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없지.”


“그런데 애들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꼭 린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러잖아요.”


윤수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환이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그런 적 없어. 린이랑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는지, 그게 궁금했던 거야.”


“그게 왜 궁금해요? 그냥 지내면 되는 거잖아요.”


민환은 윤수를 쳐다보며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담배 한 개비를 다 펴 다시 새로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선생님이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네?”


“옛날에 말이야. 초등학교 1학년인 남자애가 있었어.”


갑자기 옛날이야기 타령에 윤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민환을 쳐다봤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창밖을 보며 이어 말했다.


“지금은 학교도 교실도 텅텅 비어있지만, 그때는 한 학년 학급이 열세 반 정도는 됐거든. 남자아이는 그중 1반이었는데, 거기서 같은 반 여자아이를 보고 첫눈에 반했어. 여자도 남자아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금방 마음을 열었지. 그래서 둘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됐어.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었을 때도. 3학년이 되었을 때도, 항상 등하교를 같이 했어. 그런데 4학년이 됐을 때,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민환은 담배 한 모금을 피운 뒤 말했다.


“뭐가 이상했냐면, 학년이 올라가는데도, 여자아이는 계속 2학년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 말하는 것도 어눌하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아무튼 모든 게 4학년 같지 않았어. 성적도 원래는 반에서 상위권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뒤처지더니 4학년 때는 아예 꼴등이었지. 그러다 보니 남자아이는 여자 아이에게서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어. 5학년이 될 때에는 아예 아는 체도 하지 않았어. 간혹 복도에서 여자아이를 볼 때가 있었는데, 항상 혼자고 고개를 숙이면서 다니고 있었지. 그러다 보니 남자아이는 과거에 그녀와 친했던 걸 아이들이 알아차릴까 봐 불안할 때도 있었어. 왜? 옛날이면 몰라도 현재는 그녀와 친했다는 게 흠이 되어버린 상태였거든.”


민환은 윤수를 쳐다보며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창밖을 다시 보며 어두운 얼굴을 했다.


“그런데, 6학년이 됐을 때였어. 하필 그 여자아이랑 다시 같은 반이 된 거야. 그때 남자아이는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어. 괜히 애들이 여자아이와의 사이를 알고 놀림감이 될까 봐 싫었거든.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여자아이가 이상한 이유는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어. 지적장애 3등급. 9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6학년이 된 첫날, 남자아이는 제발 여자아이가 말 걸지 말라고 속으로 빌었는데, 웬걸? 1교시가 끝나자마자 쉬는 시간에 아는 체를 하는 거야.”


민환은 지금 생각해도 웃기 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남자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민환은 윤수를 쳐다보고 말했다.


“아, 망했다. 이제 백 프로 애들한테 놀림감이 되겠다. 이 생각뿐이었어. 그런데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보고 말하는 거야.”


“OO아 반가워. 6학년은 꼭 너랑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다고 빌었어.”


“소원을 빌었다는 거야. 남자아이와 같은 반이 되도록. 참 지적 능력이 2학년스럽지? 자기를 피하는 것도 모르고 그런 소원 따위를 빌다니.”


민환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며 말했다.


“그런데 그때 남자아이는 번뜩 불이 켜지는 걸 느꼈어. 1학년 때로 돌아가는 기분 말이지. 순수하게 그녀를 좋아했던 시절. 주변의 시선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서로 좋아했던 시절 말이야. 그리고 그 순간 하나 더 깨달은 게 있었어. 등하교를 할 때마다 항상 여자아이가 눈에 밟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랑 멀어지고 나서도 계속 등하교를 같이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거였어. 남자아이가 다시 자기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걸어줄 때까지 줄곧,”


민환은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을 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말을 걸 때까지 얼마나 망설이고 용기를 내서 온 건지도 알게 됐지.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여자아이는 정말 2학년 짜리 애처럼 울먹이며 같은 반이 돼서 좋다고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남자아이는 그날 다짐했어. 누가 뭐래도 이 아이만큼은 꼭 지켜주겠다고.”


민환은 창밖으로 담뱃재를 털어 낸 뒤 윤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됐을 거 같니? 해피엔딩 새드엔딩?”


윤수는 답변을 하기보다 민환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딱딱하고 건조하기만 했던 그의 얼굴이 이야기를 하는 잠깐 동안 몇 번이나 처음 보는 감정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윤수가 묻자 민환이 대답했다.


“당연히 그때부터 지옥이었지.”


“지옥이요?”


“그래. 당연하잖아. 바보와 친구가 됐는데. 주변 애들이 가만히 있겠어?”


민환은 창틀에 아예 걸터앉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랑 같이 지내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의 타깃이 됐어. 바보랑 같이 다닌다, 엄마도 없는 자식이니, 네가 아빠가 돼 주려고 그러냐, 아니면 너도 지능이 떨어지냐, 장애인이냐 온갖 비웃음을 샀지.”


민환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 다는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반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애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거였어. 정말 시도 때도 없었지. 끌려가서 맞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맞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그 새끼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지.”


민환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럼에도 남자아이가 대견스러운 건, 단 한 번도 여자아이를 배신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는 거야. 지금 생각해도 놀라워.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게.”


윤수는 말없이 민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6학년 생활을 버텼는데도 불구하고 남자아이에게 더 가혹한 일이 생겼어. 아버지 사업 때문에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된 거야. 남자아이는 어쩔 수 없이 여자아이와 헤어지게 되었고, 약속했어. 성인이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민환은 담배를 피우려고 하다 어느새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보고 새로운 담배를 꺼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성인이 돼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났나요?”


“당연하지.”


민환이 윤수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 남자아이는 중학교 때까지 여자를 잊지 않았어.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지. 여기서 멀어진다는 건 그 여자를 잊는다는 뜻이 아냐. 기억 속에서 멀어졌을 뿐, 마음 한편에 언제나 어여쁘고 순수한 소녀가 있었어. 특히 군대에 있을 때 그 여자아이 생각이 절실했지. 그래서 휴가를 나와 그녀의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어.”


“왜요?”


“아마도 병원에 있었던 거 같아.”


윤수는 왜 하필 그때 여자가 왜 병원에 있는지 궁금했다. 민환이 담배를 피우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아쉽게도 여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날이 남자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했어. 늘 사는 동안 여자가 마음에 걸렸는데,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감이 들었거든. 그 안도감이 남자가 인생을 진취적으로 살게 만들었고 선생님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게 만들고 대학생활도 잘 해냈지. 심지어 거기서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되었고,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고.”


민환이 미소 지으며 윤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윤수는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왜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된 거예요?”


윤수는 이야기 속의 남자가 민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연민이 컸던 거 같아. 그 여자가 잘 살고 있는지 꼭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다 망해가는 시골학교에 선생님 자리가 있다는 탓도 컸고. 그래서 남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아내를 설득해 끝내 고향으로 돌아온 거야. 물론 최악의 선택이었지만 말이야.”


윤수는 담배를 연거푸 피우는 민환을 쳐다보았다. 그는 처음과는 달리 심경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왜 최악이었던 거예요? 이제는 옆에서 지켜줄 수 있잖아요.”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민환은 채 씨, 그러니까 채연서를 만나던 날을 떠올렸다.


민환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나 채연서 집에 가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를 훔쳐보는 순간, 민환은 만감이 교차했다. 연서는 20년 전과 비해 머리칼만 길고 여성스러워졌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더불어 그녀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작고 아담한 여자아이.


민환은 딸이라는 걸 직감했다.


‘다행이다. 잘 살고 있어서.’


민환은 지금까지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던 마음을 모두 보상받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모습을 드러내면 연서가 좋아할 거 같았다. 청소년 때부터 혼자 살았다고 해서 특히나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도 기우였다. 곧이어 집에서 나오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는 이대로 돌아가도 여한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민환의 그 행복한 순간은 얼마 가지 않아 모두 깨져버렸다. 모든 건 착각이었고, 그녀의 집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연서는 공포에 떠는 얼굴로 남자를 맞이했고, 남자들은 하나같이 바지춤을 정리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때, 민환은 번뜩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던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연서가 왜 병원에 있었던 건지 짐작이 갔다.


저 아이를 낳기 위해서다.


언청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우리 반 학생, 채린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갔던 것이다.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자, 민환은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채린이 부정한 성욕에 의해 태어난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지금까지도 연서는 피해를 입고 있었고, 그것은 현재진행이었다.


민환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연서를 성폭행하는 남자들에 대한 신고가 우선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먼저 사과를 해야 하는지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일단 연서에게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걸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녀를 안심시키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었다. 주말에 무작정 채연서의 집으로 찾아갔다.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자, 채린이 문을 열었다.


“선생님인데, 엄마 어디 계시니?”


린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자, 민환은 방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는 채연서를 발견했다. 민환은 곧장 방으로 들어가 그녀 앞에 앉았다.


“연서야. 나야, 민환이. 기억나?”


채연서가 고개를 들더니, 울먹이는 얼굴을 했다.


“몰라요... 아저씨... 아저씨도 저 벗기려고 그래요..?”


민환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채연서가 자기를 못 알아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연서야. 나라니까, 최민환. 너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니, 6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남자애 있잖아. 나 모르겠어?”


“아저씨 하지 마세요..,! 모르는데 왜 자꾸 그래요..!”


채연서는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민환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린을 발견했다.


모든 게 꼬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젠.


“......”


민환은 이야기를 마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민환의 손가락에 있는 담배가 매가리 없이 재를 토했다.


“선생님 그래서... 저를 도와주지 않는...”


민환이 윤수의 말을 잘랐다.


“예단하지 마라. 내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으니까.”


민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렇게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지낸 지 1년이 됐을 무렵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6학년 때 나를 죽도록 팼던 그 악마 같은 자식이 고향으로 이사를 온다는 소식이었지. 나와 연수를 괴롭혔던 자식이 말이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사로잡혔단다. 그 녀석에게 복수를 해야 할지 말지. 그런데 황당한 일이 펼쳐졌다. 그 녀석 아들이 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만 거야.”


민환이 윤수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증오와 환멸, 경멸이 깔려있었다.


윤수는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가뜩이나 힘겨워하는 내게 왜 네놈들이 쌍으로 나타나 내 상처를 들쑤시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왜 나에게 이토록 차갑고 무뚝뚝하게 대하는지 윤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비위를 맞추다, 왜 내게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선생님 간에는 아직 매듭짓지 못한 일이 있었고, 그것이 끝나기 전까진 자신은 민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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