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견이 성문의 목을 물어뜯으려 할 때였다.
타당!
총성이 창공을 갈랐다. 성문은 재빨리 품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도사견은 이마에 탄환이 박힌 채 공중에서 성문을 지나쳐 쓰러졌다.
뚝.... 뚝...
피를 흘리는 건 성문도 마찬가지였다. 도사견의 날카로운 앞발에 목이 긁혀 붉은 선혈이 그의 가슴을 적셨다.
“이 미친놈이...”
성문이 권총을 박중구에게 겨냥했다. 그럼에도 박중구는 처음과는 달리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타당! 탕! 탕
세발의 총격이었다. 성문은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는 도사견의 심장과 폐, 목에 한 발씩 탄환을 명중시켰다. 박중구가 키우던 두 마리의 도사견이 모두 죽는 순간이었다.
“사이코 같은 새끼.”
성문이 입을 떼자 박중구가 지지 않고 말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인 거 같소만.”
“안 닥쳐!”
뻐억-!
성문이 권총을 쥔 손으로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박중구가 여전한 눈빛을 하자 복부를 무릎으로 찍고 주먹으로 턱을 올려쳤다.
우당탕-
박중구는 뒤로 두 바퀴 굴러 엎어졌다. 성문은 그에게 발길질을 하려다가 멈칫, 그만두었다. 고개를 든 박중구에게서 죽지 않는 눈빛을 봤기 때문이었다.
젠장, 생각보다 더 위험한 놈이다.
성문은 속으로 되뇌었다. 형사시절 이런 유형의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폭력으로 굴복시키려 해도 굴복당하지 않는 눈빛.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도 꺼지지 않아 오히려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눈빛. 악착같이 살아남아 다시 네 앞에 나타나겠다는 눈빛. 대게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았다. 그 결과 아내는 보복살인을 당했다.
성문은 박중구에게서 아내를 죽인 그 녀석의 눈빛을 보았다. 이런 녀석들은 때리면 때릴수록 충격을 축적시킨 뒤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 성문이 멈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그러면 내 쪽에서 더 큰 공포를 준다.
타당!
“으아악-!”
성문은 박중구의 허벅지에 총격을 가했다. 박중구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성문도 사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고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철컥철컥.
윤수는 총알이 없는 걸 알면서도 박중구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박중구는 놀라 양손을 번쩍 들어 머리를 막았다.
“시발, 총알이 없네?”
“자, 잘못했습니다. 그만 하이소... 제발...”
“너 오늘 나한테 잘못했다고 몇 번 말했어? 그 결과가 이거야?”
성문은 총격을 가한 박중구의 허벅지를 발로 밟았다.
“아아악!!”
“말해봐. 그 결과가 이거냐고?”
“아아아악! 요, 용서해 주이소! 제발...!”
성문은 굳은 얼굴로 박중구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총구를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너, 내가 어떤 새끼인지 모르지?”
“혀, 형사아입니까.”
“시발놈아 내가 그걸 묻는 거 같아?”
“죄, 죄송합니다.”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는 박중구를 보고 성문은 공포가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다. 총구로 그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날 잘 몰라서 그러는 가 본데 말해줄게. 내가 어떤 새끼냐면, 양아치 같은 새끼 반쯤 죽여 놨다가, 아내까지 죽게 만든 새끼야. 그런 새끼가 너 하나 죽이는 거 눈이라도 끔뻑할 거 같아?”
박중구는 입을 달달 떨었다. 성문은 그와 끝까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마지막 경고다. 한 번만 더 내 눈앞에 띄거나 신경 거슬리는 짓 하면, 네 대가리부터 조사 버린다.”
알겠다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는 박중구였다. 성문은 욕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피로 흥건한 가슴을 손가락으로 훑은 뒤 재수 없다는 말과 함께 손을 털었다. 박중구는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효과를 봤으리라.
성문은 박중구를 일별 한 뒤 그의 집을 나섰다.
***
언제나 고요하고 한적한 곳. 마치 적막이라는 투명한 공기막 안에 들어온 듯한 곳. 그림자가 질 때면 스산한 바람에 나뭇잎이 부대끼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
윤수와 린은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풀었다. 다른 학교였으면 운동장에 아이들로 바글바글 했겠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점심시간만 되면 유독 공허했다.
“같이 먹자.”
윤수는 도시락을 싸 오지 않은 린에게 젓가락을 준 후, 숟가락으로 밥 한 술을 떴다. 린은 마스크를 내린 뒤 습관처럼 입을 가리며 밥을 먹었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많았어?”
윤수가 텅 빈 운동장을 보며 말했다.
“응.”
“그때는 얼마나 많았어?”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교실에 학생들이 꽉 차 있었고, 한 학년 씩 올라가면서 계속 반으로 줄어들었어.”
“친했던 친구도 있었어?”
윤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응. 도균이라고..”
“그 애도 전학 간 거야?”
“응.”
윤수는 이름을 보아 남자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린이 대답 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자, 묻기를 그만두었다. 그러자 린이 입을 뗐다.
“친했던 애였어. 윤수 너처럼 날 이해해 주기도 했고.”
“그렇구나...”
“이게, 그 애가 전학 갈 때 준 부적이야.”
린은 품에서 열쇠고리 같은 물건을 꺼냈다. 8자 모양으로 눈이 두 개 달린 모습이었다.
“라지베르트라는 터키 부적인데, 뜻은 악마의 눈. 지니고 있으면 악귀를 몰아내고 행운을 가져다준대.”
린은 젓가락을 놓고는 눈 하나를 떼어 내 윤수에게 건넸다.
“너도 하나 줄게.”
“고마워.”
윤수는 악마의 눈 부적을 받았다. 흰자위에 하늘색 홍채. 파란색 동공을 가지고 있는 눈이었다.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었다. 다 먹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락 정리를 했다. 린은 곧장 교실로 향했고 윤수는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임 선생님에게 병원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드르륵-
교무실 문을 열자, 민환의 뒷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병원 갔다 왔어요.”
“그래. 팔은 어떠니?”
민환은 윤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류 정리를 하며 말했다.
“아침에는 아팠는데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박중구. 그 사람 개에 물렸다고?”
“네.”
“어쩌다 그런 거야?”
“모르겠어요. 어제 린이랑 같이 집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저씨 개가 달려들었어요.”
“선생님이 학교생활 잘하고 말고는 너한테 달렸다고 했지?
툭툭 내뱉는 민환의 목소리는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린이랑 요새 같이 지낸다는데, 너 계속 그럴 거야?”
“네?”
“린이랑 계속 같이 지낼 거냐고.”
이윽고 민환이 윤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윤수는 그를 보며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의 말과 눈빛에서 중의적 표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말은 린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뉘앙스였지만, 눈빛은 윤수에게 괜찮겠냐고 묻고 있었다.
윤수가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사이,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점심시간 끝났다. 가자.”
민환은 윤수의 어깨를 두드린 뒤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윤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헷갈렸다. 처음에는 낯섦으로만 정의하고 있었는데, 순간 보인 그의 눈빛에서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이를테면 걱정과 외로움이었다.
***
윤수가 교실에 들어서자, 역시나 아이들은 린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재밌는 장난감을 다루듯 괜히 툭툭 건드렸다.
“너희들 뭐 해. 자리에 안 앉아?”
민환의 목소리를 들어서야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 앉는 아이들이었다. 형석은 이번에도 담임에게 꼬투리를 잡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선생님이 나타날 시간에는 귀신같이 린에게 관심 없는 척을 했고, 형석에게 관심을 받으려는 아이들만 린을 괴롭히다. 민환에게 걸리곤 했다.
하지만 민환은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그 흔한 주의도 주지 않았다. 그저 수업시간이니 자리에 앉히기만 할 뿐, 린을 괴롭히지 말라는 말 따위도 하지 않았다.
윤수는 민환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성가시다는 듯한 얼굴로 수업하며 학급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반장도 뽑지 않고 청소당번도 뽑지 않는다. 그저 기계처럼 교육의 의문만 다할 뿐, 학생들과 교감을 하는 법이 없다.
윤수는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전 교무실에서 보였던 민환의 눈빛은 윤수가 그간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린과 가까이해도 좋다만, 정말 너 괜찮겠니?
윤수는 민환이 그렇게 말한 걸로 느껴졌다. 그리고 교무실을 나설 때 어깨를 두드려 줬던 그 행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윤수는 수업시간 내내 민환이 한 행동에 대한 의미를 파악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힌트만을 주고 어려운 주관식 문제를 푸는 것만큼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내일 미술 시간은 정물화를 그릴 테니 스케치북하고 물감 챙기도록.”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가는 민환이었다. 오늘도 역시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민환 역시도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갈까?”
윤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린에게 말할 때였다.
“마, 기다려봐라.”
드디어 움직인 형석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은 채 윤수를 쳐다보고 말했다.
“니 정말 저 가시네랑 지낼 낀가? 우리랑 지낼 생각 없노?”
“그래.”
“니 우리 아부지가 저 가스나 집이랑 엮여서 죽은 거 아직 못 들었나? 저 가스나가 얘기 안하더나?”
윤수는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들었어. 너희 아빠가 린 엄마를 성폭행하려고 한 거.”
“성폭행?”
형석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주변 아이들이 긴장된 얼굴을 했다. 형석의 표정을 보고는 그냥 넘어가기 힘들겠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긴장이 되기는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봐라. 성폭행? 증거 있나?”
“있지.”
“뭔데?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니 직이 삔다.”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려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형석이었다. 그러곤 윤수에게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말해봐라.”
“네 아빠가 린 엄마를 성폭행했다는 걸 알고는 분풀이로 린을 괴롭히는 거잖아. 아냐?”
빠악!
윤수는 일침을 날리고 그대로 뻗었다. 머리에서 부싯돌 켜지는 불꽃이 보이더니, 어느새 쓰러져 있었다.
“이게 뭐라 씨부리쌌노? 뭐 분풀이? 내가 그런 쫌생이로 보이나?”
“맞으니까... 때린 거겠지...”
윤수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형석이 윤수에게 다가갔다.
“아아 그래? 난 니가 그냥 싫어서 때린 긴데?”
“진짜 유치하네, 덩치는 산만해서 초등학생 저학년보다도 못해.”
“상노무 새끼가 말이면 단 줄 아나!”
형석이 윤수의 멱살을 잡고 때리려고 할 때였다.
“구형석! 너 지금 뭐 해!”
형석의 뒤로 민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느새 교실 앞문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