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향하는 길이 천근만근이었다. 윤수는 린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것은 분명히 주눅이었다, 린은 자신의 말에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집으로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꺼내 놓은 말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설령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고 한들 사과할 생각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신성님 아내를 죽일 때에도 일방적이었다. 나에게 어떠한 의견도 구하지 않았다. 단순히 재미있는 걸 보러 가자고 하더니, 선생님 아내를 죽여 버렸다. 졸지에 방관자나 공범자가 된 셈이었다. 린은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상대방에 대한 입장이나 감정 따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입장이나 감정을 고려해야 하는 걸까? 윤수는 그러기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윤수가 옷이 젖은 채로 집에 들어오자 성문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너 옷이 왜 그래?”
“몰라요.”
터덜터덜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윤수였다.
“젖은 옷 갈아입어야지.”
성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다락방 위에서 젖은 옷을 던지는 윤수였다. 성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녀석이 이게 무슨 행동이야?”
“왜요? 저도 말 안 들으면 때리시게요?”
“뭐...?”
다락방 위에서 고개만 내민 윤수였다. 성문은 말문이 막혔다.
“안 되겠다. 이야기 좀 하자. 내려와.”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내려오래도!”
성문이 소리쳐서야 미적거리며 거실로 내려온 윤수였다. 성문은 윤수를 주방 의자에 앉히고는 입을 열었다.
“너 요새 뭐가 불만이야? 아빠한테 왜 그래?”
“.....”
“말해봐. 뭐가 불만이냐니깐?”
“제가 직접 얘기하기 싫어요.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
“네가, 민환이 한테 맞은 거랑 관련 있는 거야?”
“네.”
“알았다. 안 그래도 오늘 민환이한테 찾아가려고 했는데 잘됐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갈 채비를 하는 성문이었다. 윤수는 성문이 나간 걸 확인한 뒤에서야 밖으로 나갔다. 가슴이 답답해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윤수가 학교 쪽을 바라보자 성문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윤수는 고개를 돌려 마을 고지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난번 린이랑 함께 간 이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지금 이 갑갑한 마음을 씻겨 줄 곳은 거기밖에 없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약 30분간을 올라갔을 까? 곧이어 거센 물줄기 소리와 함께 폭포가 등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폭포의 이름은 용언 폭포였다. 폭포 아래 폭호에 용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윤수는 낭떠러지 아래를 보며 정말 무언가라도 튀어나올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워이!”
그때였다. 누군가가 윤수 등 뒤를 밀었다. 윤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며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곧이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놀랐나? 니 여서 뭐 하는 기가?”
고개를 돌리자 기찬이었다. 그 뒤에 성태와 상태, 그리고 구형석도 보였다. 윤수는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포수를 뒤로하고 내려가려 하자 구형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 뭘 삐져서 가고 그러노. 안 괴롭힐 테니까 구경하려면 더 해라.”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하게 들릴 줄은 윤수도 예상하지 못했다. 구형석은 폭포수 옆에 아예 드러눕고는 더위를 식혔다. 그 사이 쌍둥이 형제가 기다란 나뭇가지를 꺾어 와서는 기찬과 칼싸움을 했다.
형석이 그들을 보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너네 그러다 잘못하면 빠진다.”
“상관없다. 행님이 구해줄 거 아이가.”
“그래, 저번에도 행님이 구해줬다 아이가.”
성태와 상태가 말했다.
“모르겠다. 니네 알아서 해라.”
그 말과 함께 다시 벌러덩 눕는 형석이었다. 윤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이들 그룹은 구형석의 강압적인 힘으로 굴러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 같았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구형석에게 의지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 니도 여기 오려면 와라. 엄청 시원하다 아이가.”
형석이 멀뚱히 서 있는 윤수에게 말했다. 윤수는 어물쩍 형석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찬이 칼싸움을 하며 윤수에게 웬일이라는 듯이 오~ 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형석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니 엄마 돌아가셨다고 했제? 어떻게 돌아가신 기고?”
“괴한한테 칼에 찔려 돌아가셨어.”
“뭐? 참말이가?”
형석아 놀랐는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응. 아침에 엄마랑 시장 보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죽였어.”
“그게 말이 되나? 도시에서는 사람을 막 그렇게 죽이고 그러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야. 그런데 우리 엄마한테만 일어난 거고.”
형석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형도 아빠가 돌아가셨다며?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형석은 윤수의 말을 듣고는 싱긋 웃더니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애들아, 이 서울촌놈이 나보고 행님이라는데?”
“오~ 지윤수 너도 이제 우리 행님을 행님으로 인정하는 기가?”
기찬이 나뭇가지로 쌍둥이 형제의 머리를 번갈아 때리며 말했다. 쌍둥이들은 화가 났는지 이를 악물고 마구잡이로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기찬은 어어? 거리더니 이내 돌 뿌리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이 상황에서는 반말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형이라고 한 거야.”
윤수가 무뚝뚝하게 말하자, 재밌다며 그를 쳐다보는 구형석이었다.
“우리 아버지 말이제?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선생님 아내분이 돌아가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아이가.”
“똑같은 자리에서?”
“그래. 니가 봐도 이상 하제?”
구형석 아버지의 죽음은 린의 작품이었다. 엄마를 성폭행하려 하자 발가벗은 채로 미치게 해 실족사시킨 것이었다. 윤수는 굳은 얼굴로 입을 뗐다.
“린이 그랬어. 자기 엄마가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한테 성폭행을 당했다고.”
“성폭행?”
“그래. 그래서 린도 그렇게 태어난 거라고 그랬어. 형은 불쌍하지 않아? 린이?”
“불쌍? 내는 모르겠는데?”
윤수는 형석이 린의 불행한 가정사를 일부러 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형 아빠도 린 엄마를 성폭행하다 돌아가시게 된 거 알잖아? 처음에는 몰랐다 쳐도 이제는 알 나이가 되지 않았어? 근데 왜 자꾸 모르는 척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카지 마라!”
형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린이 그리 말하든? 우리 아버지가 자기 엄마 성폭행 하려고 했다꼬? 증거 있나? 니가 직접 봤나?”
“형네 아빠 속옷이 린네 집에서 발견됐다며. 그게 증거 아냐?”
“그게 왜 증건데!”
쌍둥이 형제와 기찬이 칼싸움을 하다 주춤거렸다.
“니 어디 가서 그런 헷소리 하지 마라. 알았나?”
형식이 윤수를 노려보더니 홱 일어섰다. 아이들은 왜 그러는 거냐며 씩씩거리는 형석에게 뛰어갔다.
윤수는 앉은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석이 자기 아버지의 과오에 대해 인정만 한다면 지금이야 말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렵사리 말을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형성은 강렬하게 거부했다. 진실이 코앞에 있는 줄 알면서도 외면했다.
왜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도, 린도, 구형석도, 그리고 린의 어머니를 성폭행했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목숨을 잃어야 속이 시원한 걸까. 린에게 죽은 사람들처럼.
윤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성문은 교무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기를 주저했다. 민환이 화장터에서 나를 의심했던 말 하며, 윤수를 때렸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결국 하는 수 없다며 교무실 문을 노크한 뒤, 문을 열었다.
“나야.”
민환이 고개를 돌리자, 성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로?”
“너랑 매듭지어야 할 게 있어서.”
“그래. 들어와.”
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포트로 물을 끓인 뒤 믹스커피를 탔다. 성문에게 커피를 건넸다. 말없이 성문에게 커피를 건넸고, 성문도 말없이 커피를 받았다.
“마셔. 거기에 앉고”
민환은 성문에게 자기 자리를 양보한 뒤 창가에 섰다. 재떨이를 놓고 담배를 필 셈이었다.
“나도 필게.”
성문은 커피를 들고 민환 옆에 섰다. 민환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하자,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
“아직도 의심하는 거야? 내가 제수씨를 납치했다고?”
민환은 성문흘 힐끗 쳐다보더니 담배를 불을 붙인 뒤 입을 열었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게 말이 되는...!”
성문은 가슴에서 뜨거운 게 용솟음치는 걸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
“뭐야? 그 약은?”
“아내가 죽은 후로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그전에는 안 그랬던 것처럼 말하네.”
“뭐?”
“아냐. 무시해.”
담배를 빨아들인 뒤 성문 쪽으로 연기를 뿜는 민환이었다. 성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도 없이 알약을 꿀꺽 삼켰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내가 정말 제수씨를 납치해서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글쎄 너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아?”
“시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성문은 자기도 모르게 쥐고 있던 종이컵을 움켜쥐었다. 커피가 위로 솟구치더니 성문의 손등을 적셨다.
“안 뜨거워? 약 효과가 바로 있진 않나 보네.”
민환이 얼굴을 비스듬히 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성문은 화상을 입은 오른손을 움켜쥐고는 말했다.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그럼 너는 나한테 그런 이유가 뭐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직도 멀었네. 지성문. 지금 무슨 대화를 하는지도 모르고.”
민환은 담배를 한 모금 핀 뒤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성문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사정없이 뛰었다. 동시에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약을 먹고 오는 건데.
성문은 후회했다. 늘 약을 늦게 먹어 사건이 벌어진 뒤에서야 감정이 진정됐다.
오늘도 왠지 그럴 것 같은 예감에 정신을 차리자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왜? 생각보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내가 네 아내를 죽였으면, 경찰에서 조사받고 진술서를 썼을 거 같아? 그리고 가장 먼저 너한테 알렸을 거 같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내 자유 아냐?”
“너, 윤수 교실에서 때렸다며? 왜 그런 거야?”
“글세.. 애새끼가 영 신통치 않아서.”
“....미친!”
성문은 와락 민환의 멱살을 잡았다.
“왜? 때리려고? 그래 어디 한 번 쳐봐.”
고개를 돌려 턱을 내놓는 민환이었다.
왜 저러는 걸까. 왜 자꾸 나를 자극시키는 걸까.
성문은 멱살을 잡은 손을 덜덜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