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환은 멱살을 잡히고도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래? 애쓰지 마. 너 지성문이잖아. 네가 언제부터 이랬다고.”
“바른대로 말해!”
성문은 민환의 멱살을 더 강하게 부여잡았다.
“윤수 왜 때린 거냐니까? 이유가 뭐야!”
“이유? 그걸 꼭 말해줘야 알아? 너 머리가 그렇게 나빠서 형사 어떻게 된 거냐.”
“내가 옛날에 괴롭혀서 그런 거야?”
“알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모른 척한 거야?”
“미친 새끼야!”
성문은 민환을 뒤로 넘어트렸다. 민환이 들고 있던 커피가 그의 셔츠 위로 쏟아졌다.
“야, 뜨겁잖아. 지성문.”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너 괴롭힌 거 인정해. 그래 채연서랑 너랑 죽도록 괴롭혔어. 근데 그게 내 아들이랑 무슨 상관인데?”
“너 진짜 머리가 나쁜 거 맞구나. 네 아들이잖아? 그런데 무슨 상관이라니?”
“윤수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
“그럼 내 아내는 잘못이 있어서 죽었냐? 네 아내도 잘못이 있어서 괴한한테 칼에 찔려서 죽었어?”
뻐억-!
눈앞이 번쩍였다. 성문의 주먹에 맞아 뒤로 벌러덩 누운 민환이었다. 성문이 그 앞에 선채로 입을 뗐다.
“우리 아내 입 밖에 꺼내지 마. 알았어?”
“시발... 지 아내 죽은 건 존나게 억울한가 보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야? 때려서 잘못했다. 그때는 미성숙했다. 무릎 꿇고 사과하길 바라는 거야?”
“지금 와서? 남의 인생 다 망쳐놓고?”
“그럼 뭘 바라는 건데!”
“니도 니 인생 망가져봐야지. 네 아내 죽었다고 했을 때, 얼마나 통쾌했는데. 그런데 내 아내까지 죽어버리고 말았네? 그럼 이제 뭐가 남은 걸까?”
“너... 윤수를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민환은 상체를 일으켜 히죽 웃었다. 입안이 터져 잇몸에 피가 가득했다.
“못할 건 없지.”
“제정신이야?”
“너는 내가 제정신으로 보여?”
성문은 발로 민환을 찍어 누르려고 하다 꾹 참았다. 순간 민환의 눈에서 박중구와 똑같은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만하자 최민환. 중구랑도 이야기했지만, 이래서 남는데 뭐야? 서로 좋을 게 없는 건 피차일반 아냐?”
“시작은 네가 먼저 했으면서, 왜 끝내는 것도 네가 먼저 끝내는 건데?”
“그럼 다 죽어야 속이 풀리겠어?!”
민환은 무슨 소리냐며 눈썹을 위로 치켜들었다.
“왜 다 죽어? 너만 죽으면 끝나는데.”
민환이 옅은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윤수 그놈 잘 키웠더라?”
“뭐?”
“아주 애들한테 괴롭힘 당하면서도 채연서 딸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더라고.”
성문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너 채린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지? 걔, 마을 사람들이 연서 성폭행해서 태어난 애야.”
성문은 미간을 움찔거렸다. 채연서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너, 네가 몇 명이나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시켰는지 모르지? 내가 다 알려줄까?”
민환은 입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뱉은 뒤 말을 이었다.
“네가 채연서랑 나 납치해서 알몸으로 벗긴 날,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은 물론 연서의 인생도 완전히 끝났어. 그때만 아니었다면, 난 절대로 서울로 이사 가지 않았을 거고! 끝까지 채연서 곁에 있었을 거야. 그거뿐인 줄 아냐? 박중구는 어떻게 됐는데? 그 새끼가 괜히 전과자가 된지 알아? 내가 전학 가니까 너 또 박중구 괴롭혔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계속 괴롭힌 거 아냐?”
민환은 학교 옥상에서 박중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아니... 나는 그냥 계속 괴롭힘 당하다가, 성문이가 너를 찍은 것뿐이야. 얼마 안 있으면 또 나 괴롭힐걸...”
***
“......”
성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말을 이었다.
“우리뿐만인 줄 알아? 너 때문에 망가진 애들 수두룩 빽빽해. 네가 괴롭혔던 애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보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올걸? 너 박중구 같은 애가 더는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
“알았어. 그만하자.”
“뭘 그만해!”
민환이 소리를 지르자, 성문이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짓. 인정하고 사과할게. 그러니까 그만하자.”
“사과 한 번으로 끝내시겠다?”
“네가 풀릴 때까지 앞으로 계속 사과할게. 그렇게 하면 되겠어?”
“아니. 마을을 떠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꺼져.”
“알았어. 조금만 시간을 줘. 나도 정리할 게 있으니까.”
민환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성문은 그대로 교무실을 나갔다.
설마 20년 전에 내가 저질렀던 행각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마을에 온 이후로 일어난 모든 사건 사고들이 나로 인해 비롯된 것만 같았다. 박중구가 전과자가 되고 마을 여자를 살인한 일. 민환을 전학 가게 만들어 태어나지 않았어도 될 린을 태어나게 만든 일. 그런 아이를 도와주겠다고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는 윤수하며, 민환에게 손찌검까지 당하게 만든 나.
모든 게 내 손끝과 발끝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민환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실제로 민환이 전학을 간 후, 성문은 다시 타깃을 중구로 잡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중구랑 같은 학교로 배정받은 게 원인이었다. 그때부터 내내 따까리를 시켰다. 시내에 나갈 때마다 물건을 훔쳐오게 하거나 후배들 삥 뜯는 일을 시켰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구는 더는 왜소하지 않았다. 성문과 비슷한 체격이었고 우락부락한 눈 때문에 중구를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성문이 없을 때는 가오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기어오른다 싶으면 성문은 그를 박살 냈다.
너는 언제까지나 국민학교 때 그 박중구다. 아이들한테 말 거는 것조차도 어려워하고, 늘 우물쭈물거리고 눈물이나 흘리는 찔찔이. 그러니까 어디 가서 센 척하지 마라.
성문은 이따금 중구에게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도록 각인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성문은 박중구가 다른 학교 여학생과 사복을 입고 시내를 걷는 걸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눈이 번뜩 뜨였다. 바로 중구 앞을 가로막았다.
“박중구, 니 뭐고? 여자친구가?”
“서, 성문아.. 그게... 그러니까...”
박중구는 머리를 긁으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드센 사투리로 말했다.
“우리 사귀는 사이 맞는데요, 왜요? 문제 있어요?”
“문제없지. 근데 너 말투가 뭐꼬? 내 누군지 모르나?”
“알다마다요. 그리고 먼저 띠껍게 구니까 그런 거거든요.”
“야아. 지숙아 그러지 마...”
박중구는 당황하며 지숙을 말렸다. 하지만 기어코 끝까지 말하는 그녀였다.
“오빠, 이 사람 그 양아치 맞지예?”
“양아치?”
“그게 아니라.. 성문아 미안하다. 내 연락할 테니까 이번만 봐도.”
지숙을 데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박중구였다.
그 후로 성문은 중구를 더욱 집요하게 부하 다루듯 했다. 점심시간에 물 떠 오는 일, 공책으로 부채질하는 일, 체육시간에 골키퍼를 시키는 일, 후배들 삥을 뜯게 한 뒤 수금이 좋지 않으면 책임을 물어 손찌검을 했다. 박중구는 반항 한번 안 하고 까라면 까고 맞으라면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를 할 때였다. 성문은 다른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시내에서 봤던 중구의 여자 친구였다.
중구는 지숙을 발견하고는 못 본체 시선을 돌렸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말라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지숙은 거침없이 성문의 패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대쪽같이 말했다.
“오빠, 오늘 생일이잖아요. 저랑 같이 가요.”
성문의 패거리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했다. 이내 중구의 여자 친구라는 걸 알고는 장난 식으로 놀렸다. 그러나 성문은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고개를 돌려 중구에게 말했다.
“오늘 생일이라꼬?”
“어.. 어...”
중구는 성문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래서 저 기집 애한테 갈라꼬?”
“아, 아니... 너 따라갈게.”
“그치? 중구가 설마 나를 배신하겠노?”
그러자 꽥 소리를 치는 지숙이었다.
“오빠! 또 저 양아치 말 듣는 거예요? 지긋지긋하다면서요. 그냥 무시해요!”
성문의 눈이 번뜩였다.
“중구야, 내가 지긋지긋해?”
“아, 아니다. 내는 그런 말 한적 없다.”
“그래가? 그라믄 오늘 생일 기념으로 생일빵 할까? 옷 벗기기 게임 알지?”
“성문아 잘못했다. 제발...”
중구는 그 게임이 뭔지 알고 있었다. 성문이 가장 심기가 불편할 때 취하는 방법이었다. 옷을 벗겨 희롱하고 성적 수치를 주는 성문이 국민학교 때부터 하던 짓이었다. 문제는 그 타깃이 지숙도 포함됐다는 것이었다.
“야, 저 여자애도 데리고 와.”
“잘못했다. 성문아 제발. 나만 갈게.”
소용없었다. 성문은 애들을 시켜 박중구와 지숙을 둘 다 데리고 오게 했다. 인적이 드문 공터로 둘을 끌고 왔다. 폐공장에 쓰러트리고는 중구와 지숙을 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이거 놔라 미친놈들아! 너네 경찰에 다 신고한다!”
지숙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성문이 히죽 웃으며 입을 뗐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멍청한 년아.”
“성문아... 미안하다. 내 사과할게. 한 번만 봐줘라.”
“아가리 안 다물어?”
성문의 싸늘한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닫는 중구였다. 지숙과 중구는 3미터 떨어진 간격에 자리에 묶인 채로 앉아있었다.
“지금부터 시간 10분 준다. 1분에 한 번씩 이년 옷 벗길 테니까, 중구 너는 그 안에 탈출하면 되는 거야. 많이 봤으니까 알지? 자, 그럼 시작!”
성문이 외치자, 한 남학생이 초를 새기 시작했다. 박중구는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다행히 중구와 친한 아이들이 끈을 느슨하게 묶어 손은 금방 풀 수 있었다. 하지만 몸에 묶인 매듭이 너무 단단했다.
그사이 1분이 지나갔다.
“1분, 신발 벗겨.”
패거리들이 지숙의 신발을 벗겼다.
“2분. 양말 벗겨.”
이번에는 양말을 벗겼다.
“3분 치마 벗겨”
“너네들 변태야? 미쳤어?”
지숙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패거리들이 머뭇거리자 성문이 입을 뗐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해라. ”
패거리들의 지숙의 양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 아이가 치마를 벗겼다. 속바지가 드러난 지숙이었다.
성문이 씩 웃으며 박중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박중구 뭐 하노. 네가 빨리 탈출해야 끝나잖아.”
중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움직였다. 정말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성문은 흡족해하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4분. 교복 상의 벗겨.”
패거리들이 망설이자,
“빨리 안 하나 진짜!”
성문이 소리치자 패거리들이 지숙의 단추를 풀어 상의를 벗겼다. 그사이 중구는 몸에 묶인 끈 하나를 겨우 풀었다. 하지만 아직 2개나 남아 있는 상태였다.
“시간 존나 빨리 가네. 5분. 속바지 벗겨라.”
성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패거리들이 속바지를 벗겼다.
지숙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더는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등과 어깨를 잔뜩 굽히고는 고개를 숙였다. 성문은 실실 웃으며 지숙 앞으로가 쭈그려 앉았다.
“야이 멍청한 년아. 내가 여자라고 봐줄 줄 알았나? 어디 같잖지도 않은 게.”
그사이 초를 세던 아이가 시간을 알렸다.
“성문아, 6분이다.”
“그래? 그라믄 이번엔 어디를 벗길까...”
성문은 히죽 웃더니 지숙의 스타킹을 부욱 뜯었다.
“꺄악!”
지숙이 소리칠 때였다.
“야, 이 시발놈아!”
중구가 외쳤다.
“지금 그거 나한테 한 말이가?”
“그래 시발놈아! 죽여버릴 기다! 다 죽여버릴 기다!”
중구가 악다구니를 쳤다. 성문은 굳은 얼굴로 중구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세를 잡는가 싶더니 돌려차기를 날렸다.
빠악! 알이 깨지는 소리가 폐공장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움직이지 않는 중구였다.
“우리 중구 많이 컸다. 6학년 때는 덩치도 요만했는데.”
“서, 성문아 중구 기절한 거 같아...”
초를 세던 아이가 중구를 보고 말했다.
“...하여간 옛날이나 지금이나 허약한 건 똑같다니까. 풀어줘, 그만하자.”
성문은 그 말을 끝으로 옷 벗기기 게임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