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가 변한 건 그 시점이 아닐까.
옷 벗기기 게임을 한 후로, 중구는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불쑥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성문아, 잘 지냈제? 내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앞니가 하나 부러진 중구였다. 패거리들은 서먹한 얼굴로 중구를 반겼다. 그와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은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중구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면목이 없었다. 그럼에도 중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스스럼없이 다시 패거리들과 섞였다.
점심시간에 여느 때와 같이 도시락을 먹고 축구를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중구가 운동장에서 성문에게 음료수를 바쳤다.
“성문아 목마르제? 니가 좋아하는 음료수 사 왔다.”
성문은 시선을 내리깔곤 음료수를 본 뒤 중구를 쳐다봤다.
“내가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고 했지?”
“아, 그르네. 미안.”
“니나 쳐 먹어.”
“응.”
중구는 캔음료 뚜껑을 까더니 성문 앞에서 벌컥벌컥 마셨다. 원샷으로 음료수를 다 마시더니, 성문 얼굴 쪽으로 꺼억 트림을 했다.
“뭐 하는 거냐. 너?”
“아,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씩 웃는 중구였다. 성문은 중구에게서 묘사게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5교시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성문이 나가보니 중구가 보였다. 그 앞에는 2학년 후배가 있었다.
“마, 이것밖에 못 가져오나? 내가 아침에 목표금액 못만 들면 죽이뿐다, 했지?”
“행님. 이게 1학년 애들 돈까지 다 모아서 가져온 거다 아입니까.”
“1학년이 얼마나 너거들을 우습게 보면 이거밖에 안 주겠나!”
싸대기를 날리는 박중구였다.
“뭐 하노. 박중구?”
성문이 말했다. 중구가 고개를 돌렸다.
“아, 내 수금 좀 하느라.”
“내가 언제 너한테 수금하라고 시켰어?”
“어차피 다음 주에 또 시킬 거 아이가.”
“또라이 새끼가.”
성문은 손바닥으로 중구의 대가리를 때렸다. 중구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내, 또 맞을 짓 한기가?”
“그럼 아니냐?”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혓바닥으로 볼을 굴리는 중구였다.
“그래, 알았다. 그럼 이거라도 니 가지라. 내 다음 주에 수금할 거 미리 주는 기다?”
성문의 교복 상의 주머니에 수금한 돈을 꽂고 가는 중구였다.
“저 씹새끼가...”
성문이 눈을 부라리며 바라봤다.
***
‘그때 중구를 완전히 박살 내지 않은 게 문제가 된 게 아닐까.’
성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예 작살을 냈다면 방구석에 처박혀 살고 있었을 텐데. 그러면 적어도 사회의 암 덩어리 같은 존재도 되지 않았을 테고. 성문은 동시에 학창 시절 만나게 된 여학생이 떠올랐다. 박중구를 당시에 끝장 내지 못한 것도 그 여학생 때문이었다.
***
그녀와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옷 벗기기 게임을 하던 날, 성문이 박중구를 때려눕히고 홀로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웬 남학생들이 골목에서 한 여학생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성문은 그 여학생을 구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은 단 1g도 하지 않았다. 원래 다니는 길목이었고, 남학생들이 골목을 막고 있었다.
“비키라.”
성문이 짜증 나는 투로 말했다. 남학생들이 일제시 성문을 노려봤다.
“뭐꼬?”
“닌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훼방이고?”
“훼방은 니들이 하는 기고, 비키라. 지나가게.”
“거 새끼가, 말을 참 예쁘게 하네?”
그때였다.
옆에 서있던 남학생이 주먹으로 성문의 얼굴을 가격했다.
성문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움찔거린 건 때린 쪽이었다. 전력을 다해 쳤는데, 아무런 데미지 없이 서 있는 성문이었다. 그리고 남학생은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어느새 입술이 터진 채로 쓰러진 자신을 발견했다.
남학생은 이어서 눈으로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다부진 체격이지만 키카 크다고도 할 수 없다. 특별한 기술이나 발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훼방꾼이 싸우면서 몇 대는 더 맞았다. 그런데 쓰러진 쪽은 우리 쪽이다. 왜?
남학생은 쓰러진 친구들을 쳐다봤다. 하나같이 입과 코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순간 기세 등등 하게 서 있는 남자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지성문. 뭐? 저 애가 지성문이고?’
험악하기 그지없는 상고와 공고에서도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인문계 학교가 있다. 바로 백운고등학교. 거기에 있는 통이 또라이에 구제불능이란 소문이 자자했다.
게다가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라, 공부도 전교 상위권이다. 공부면 공부고 싸움이면 싸움이지라며 성문에게 도전한 다른 학교 통도 많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작살이 났다. 그 소문의 학생이 지금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고 있다.
“너희 통한테 전해라. 한 번만 더 이 골목에서 얼쩡거리면, 학교 통째로 박살 내뿐다 카라. 알겠나?”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통이 이 자리에 있는데도,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성문은 고개를 돌려 여학생을 쳐다봤다. 그만 집에 가라고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교복이 눈에 띄었다. 자기가 졸업한 ‘청솔 중학교’ 교복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등교를 하는데, 구해준 여학생이 골목에 보란 듯 서 있었다. 성문이 무시를 하고 지나가자 여학생이 옆에 달라붙었다.
“오빠, 저 구해준 오빠 맞죠?
성문이 무시하고 지나가자 바짝 붙어 말하는 여학생이었다.
“오빠, 저 오빠에 대해 알아봤거든요? 근데 완전 쌩양아치던데, 맞아요?”
성문이 걸음을 멈추곤 인상을 썼다.
“이거 봐라. 얼굴에 양아치라고 쓰여있다 아입니까.”
성문은 ‘유소영’이라고 쓰여 있는 명찰을 흘겨본 뒤 말했다.
“그러는 니는 뭔 짓 하고 다니길래 고딩한테 끌려다니노?”
“여학생들이 저 못 이긴다 아입니까. 중딩 남자애들은 다 저 좋아하구요.”
“그래서 여자들이 선배들 시켜서 니 손 좀 봐달라 한 거가?”
“역시 이쪽 세계에 빠삭하네에. 근데 그 오빠야들도 제 매력에 빠져서 때리도 못했다 아입니까.”
성문은 어이가 없다며 소영을 쳐다봤다. 아담한 체격에 자연 갈색머리. 백옥 같은 피부에 그린듯한 눈썹. 오른쪽 눈 밑에는 점이 있었다.
“자뻑이 취미가?”
“사실인 데에.”
성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걷자, 소영이 뒤에서 말했다.
“아무튼 오빠, 정신 좀 차리고 살아요. 알았죠?”
네가 뭔 참견이냐고 입을 떼기도 전에 반대편으로 뛰어가는 소영이었다.
그리고 이틑날, 다시 골목에 나타난 그녀였다. 그리고 하는 말은, “어때요? 이제 정신 차리기로 했어요?” 따위의 말이었다.
4차원도 이런 4차원은 없다.
성문이 빠른 걸음으로 걷자, 착 달라붙는 소영이었다.
“스토커가 취미가? 떨어져라.”
“제가 스토커 여럿 신고해 봤지만, 경찰들은 이런 걸로 신경 안 써요.”
“그래? 그럼 요 파출소에 가서 신고해 보까?”
“해보세요. 그게 되나”
성문의 말대로 바로 골목을 돌면 파출소가 나왔다. 성문은 망설임 없이 저벅저벅 걸었다.
파출소 앞에 당도해 현관문을 열 때였다.
빡!
소영이 성문의 뒤통수를 후렸다. 예상치도 못한 일격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무방비로 맞기도 했지만, 뒤통수를 맞은 것도 처음이었다.
“봐요, 오빠도 맞으니까 기분 안 좋죠? 그러니까 애들 좀 그만 때리고 살아요!”
경찰이 무슨 일이냐며 나오자, 소영은 손을 흔들며 도망갔다.
성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애일까. 그 생각이 마치기도 전인 다음날이었다.
성문은 등교를 하면서 오늘만큼은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헛소리를 하면 으름장을 놓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나타나지 않았다.
성문은 수업시간 내내 그녀의 정체가 궁금했다. 자기가 졸업한 청솔 중학교니 후배들에게 물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수업을 마치고 하교를 했다. 그런데 정문에서 어디서 많이 본 교복이 눈에 띄었다. 체크무늬 치마에 연파랑 교복. 소영이었다.
설마 오늘은 골목길에서 설교를 하지 못해, 학교까지 찾아온 건가?
소영은 감시자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성문을 찾고 있었다. 성문은 모른 채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빠져나갔다. 겁을 주겠다고 먹었던 마음은 증발한 지 오래였다.
“오빠! 어디 가는데예!”
기어코 소영의 레이더에 포착이 됐다.
“왜 모른 척하십니까!”
소영은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성문아 아는 사람이가?”
한 학생이 묻자,
“무시해. 가자.”
뒤도 안 돌아보고 걷는 성문이었다. 그러자,
“야! 니 내 말 씹나!”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순간 뒤통수가 얼얼했다. 소영이 점프를 해 성문의 뒤통수를 쳤다.
“이년이 진짜 미칫나!”
“그러니까 누가 내 말 씹으라 했어요?”
“니, 진짜 죽고 싶나? 내 누군지 모르나!”
“안다 했잖아요! 쌩양아치! 그래서 오늘 학생들 괴롭혔습니까, 안 괴롭혔습니까?”
“마, 니가 무슨 경찰이고? 왜 자꾸 그런 거 묻는데?”
“저 경찰 맞는데예 제 꿈이 그건데예~”
정말 자기가 경찰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학교폭력 단절이라는 슬로건이라도 내걸고 나를 교화할 생각인 건가.
대답 안 합니까? 괴롭혔서예, 안 괴롭혔어예?
“안 괴롭혔다! 안 괴롭혔다꼬!”
성문은 버럭 소리를 지른 후, 아차 싶었다. 무언가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영이 미소로 화답했다.
“잘하셨습니다~ 그라믄 내일 또 확인하러 올 테니까. 꼼짝 말고 있어요. 알았죠?
그 말과 함께 환한 얼굴로 인사하며 사라지는 소영이었다.
성문은 진절머리가 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옷 벗기기 게임 사건 이후 박중구가 학교에 복귀한 첫날이었다. 그날도 소영은 하교시간에 자신을 찾아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성문 옆에 찰싹 달러 붙어 참새처럼 쫑알거렸다.
“오늘은 괴롭힌 사람 있어요, 없어요? 빨리 말해요.”
성문이 대답하지 않자, 소영이 패거리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빠야들. 성문 오빠가 괴롭히지 않았어요?”
“어, 없다.”
눈치를 보며 패거리들이 말하자,
“있는 거 같은데? 있죠? 있죠?”
눈을 게슴츠레 뜨며 패거리들을 떠보는 소영이었다. 그때 소영의 등 뒤에서 박중구가 나타났다.
“마, 니 누군데 여서 이러노? 꺼지라.”
“어? 이 오빠는 처음 보는 오빠야 인데,”
“꺼지라는 소리 안 들리노?”
박중구가 소영의 팔목을 낚아채더니 꺾어서 뒤로 밀쳤다. 소영이 ‘꺄악’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성문이 걸음을 멈췄다.
“성문아, 내가 처리해도 되제? 그제?”
“그러든가.”
성문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홱 돌렸다. 박중구가 혼자서 소영을 끌고 갔다. 성문은 패거리들 중 한 명을 시켜 박중구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라고 했다. 그리고 동네 골목길 구석으로 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약 10분쯤 지났을 까? 박중구를 살펴보러 간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성문아 큰일 났다 아이가!”
“왜?”
“박중구가 아까 그 여자애 겁탈하려고 한다!”
“뭐?”
성문은 피던 담배를 땅에 던지고 박중구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