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중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장소는 옷 벗기기 게임을 했던 폐공장이었다.
성문은 폐공장에 당도해 빠르게 주변을 훑어봤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박중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철문을 열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야, 박중구!”
성문이 소리쳤다. 어두컴컴한 공장 내부에서 메아리가 쳤다. 동시에 어디선가 낑낑 거리는 소연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성문은 그쪽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러자 옷을 벗기고 있는 중구가 보였다.
“이, 미친 새끼가!”
성문은 지체하지 않고 중구를 걷어찼다. 그가 옆으로 굴렀다.
“성문아 기다리라! 아직 다 안 끝났다 카나!”
중구는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소영을 덮쳤다.
“니 돌았나!”
성문은 양팔로 중구의 허리를 부여잡고 소영에게서 끌어내렸다.
“성문아. 잠깐만, 잠깐만, 좀만 하면 끝난다 아이가”
“뭐가 끝난다는 거야!”
“그거 있잖아. 그거.”
맛이 간 모습이었다. 성문은 중구를 구석까지 끌고 간 뒤 그의 상체에 올라탔다. 중구가 팔을 뻗더니 공장에 널브러진 30cm 쇠파이프를 집어 성문의 머리를 가격했다.
“악!!”
순간 블랙아웃이 되었다. 추첨 없는 눈으로 고개를 들자 중구가 소영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성문은 기어가 중구의 다리를 붙잡았다. 다음은 생각하지 못했다. 머리가 핑 돌고 있어서 그게 마지막 행동이었다
중구가 그런 성문을 가엽다며 내려다보았다.
“왜 기를 쓰고 그러노? 니도 당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중구가 쇠파이프를 들고 둔탁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 저절로 눈이 감겼다.
어둠 속에서 훌쩍이는 소영의 목소리가 들렸고, 가만히 있으라는 강압적인 중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영이 비명을 지르자, 중구가 욕을 내뱉었다. 쇠파이프가 땅에 떨어지는 날카로운 소리도 들렸다.
잠시 후...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시력이 회복되었다. 소연이 앉은 채로 성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빠 정신 들어요? 죽은 줄 알았잖아요.”
소영은 눈물범벅이었다.
“...중구는?”
“갔어요.”
“너는?”
“괜찮아요.”
소영은 교복을 입은 채였다. 하지만 상의 단추가 다 뜯긴 채였다.
“일어설 수 있어요? 119 부를까요?”
“니가 아프면.”
“오빠가 아픈 거겠지 내가 아프겠어요? 자, 일어나 봐요.”
소영이 부축을 했다. 하지만 성문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않자, 소영도 똑같이 주저앉았다. 성문이 그녀를 쳐다봤다. 차마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을 수 없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성문이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설 때였다.
“오빠, 좀만 더 앉았다 갈래요?”
소영이 말했다. 그녀는 앉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성문은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다. 처음으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을 후벼 팠다.
***
'나와 중구의 관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나는 중구를 범죄자로 만들었고, 중구는 나를 형사로 만들었다.'
성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폐공장 사건 이후, 성문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저지르는 만행에 대한 대가였다.
성문은 몇 주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 다행히 두개골은 골절되지 않았다. 뇌진탕이었고, 부분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었다. 문제는 박중구였다. 그를 어떻게 처리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학교에 다시 등교했을 때, 헛된 고민이 되었다.
박중구가 전학을 갔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성문은 청산마을에서 중구와 재회했을 때 왜 자신에게 이중적인 면모를 보였는지 알았다.
중구는 성문이 자신을 못 알아볼 때는 쌔게 나왔고, 알아보았을 때는 꼬리를 내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언인가?
자기가 과거에 성문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박중구는 성문을 보기가 두려워 전학을 갔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성문이 자신을 알고 있는 채로 싸우는 건 심리적으로 승산이 없었다.
적어도 성문을 이기려면 나에 대해 모를 때 승부를 봐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도사견까지 풀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거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문이 내가 누군지도 알게 되었다.
박중구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당한 게 더 많다고 하지만, 성문은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복수를 할 거다. 내가 아는 지성문이라면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였다. 성문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행이었다. 하지만 중구의 입장은 달랐다. 성문이 과거를 묻어둔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당시 지숙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여자가 있다는 것 자체로도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내가 보는 앞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참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었다. 소영이라는 그 여학생에게 한 짓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만약 성문을 또 보는 날이 오게 된다면,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제 발로 청산마을에 왔다.
감사했다. 먼저 아들부터 건들기로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아들이 먼저 나를 건드렸다. 채 씨를 성폭행하려 하자, 아들이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 마냥 나타났다. 시간을 앞당겨 아들을 공격했다. 덕분에 성문에게 그에 대한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하지만 즐거웠다. 목숨이 붙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성문을 죽여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았다. 두려울 게 없다. 박중구는 그렇게 은밀하게 성문의 목을 물을 기회를 엿봤다.
***
폐공장 사건 이후 사라진 사람은 중구만이 아니었다. 그날 소영도 보이지 않았다. 더는 골목에서도, 학교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성문은 직접 소영이 다니는 학교로 찾아갔다. 후배들을 시켜 소영을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전학 갔다는 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영은 아버지가 군인이었는데, 장성으로 전역했고 국가유공자라는 사실이었다. 소영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애국심과 정의관에 대한 교육받았다. 그래서 강한 애들이 약한 애들을 괴롭히는 걸 보면 참지 못했다. 오버스러울 정도로 남다른 정의감이 있었고, 그게 일진들에게는 꼴사나워 보였던 것이다. 소영이 고등학생 남자들에게 붙잡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스스로의 몸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나 때문에.
성문은 절망스러웠다.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게 미안했다. 어떻게 해서든 딱 한 번이라도 만나기를 바랐다.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 미안하다고 한 번만 봐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는 남들을 괴롭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고, 나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성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형사가 되기 전까지는.
***
성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특수부대 부사관으로 군대를 전역했다. 그해 경찰공무원 시험에 지원해 한 번에 합격을 했다. 순경으로 서울 관할지역에서 1년간 근무를 했다. 형사과 강력계에 결원이 생기면 언제든 지원할 생각이었다. 마침 결원이 생겨 지원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강력계 형사 일을 하기에는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성문은 그딴 경험이 뭐가 중요하냐며 욕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신고만 들어오면 무조건 앞장섰다. 폭력을 쓰는 이들에게 폭력으로 맞대응하거나, 무리한 제압도 서슴지 않았다. 한 번은 조폭들이 싸우는 곳에 출동해 5명을 쓰러트리고 칼을 맞아 입원하는 신세도 졌다. 그때부터 돌아이 같은 녀석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선배들도 이 녀석은 강력계 형사가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렇게 드디어 다시 강력계에서 공고가 떴고 성문은 지원 후 합격을 했다. 형사 과장이 성문을 보고 뭔가 싸한 기질이 보이는 게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일전에 면접에서 성문을 잘랐던 걸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문은 얼마 가지 않아 직업 권태기가 왔다. 형사가 되기로 해서 됐는데, 그래서 그다음은?이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게다가 서울은 왜 그렇게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지 하루에 근무만 15시간 이상씩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잡다한 신고처리는 물론이거니와 눈만 붙이려 하면 출동 연락이 오니 솔직히 때려치우고 싶었다. 성문에겐 형사가 되고 난 뒤에 대한 동기부여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성문은 오늘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답답한 마음에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저씨, 저 비흡연자거든요.”
성문은 깜짝 놀랐다. 자기 옆에 웬 여자가 앉아 있었다. 고뇌에 빠져 있다 보니 여자가 있는 줄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키자, 여자가 말했다.
“아저씨 피게 해 드릴 테니까 저도 담배 하나만 줄래요?”
“무슨 말씀이신지...”
“저도 무슨 맛인지 펴보게 달라고요.”
“아..네...”
성문은 어색한 얼굴로 담배를 하나 꺼내 주었다.
“불은요?”
“여기.”
성문은 라이터를 켜고 왼손으로 바람을 가렸다. 여자가 담배를 빨아들였다. 담배에 불이 붙는 순간, ‘켁!’ 거리 더니 ‘퉤!’하고 담배를 내뱉었다. 담배 불씨가 성문의 손바닥을 맞고 아래로 떨어졌다. 치익- 살이 익는 소리가 났다.
“아악 시발!”
“어머, 어떡해! 아저씨 데었어요? 아니,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그럼 아픈데 욕이 안 나오겠어요?!”
“어디 봐요. 손.”
“놔요!”
성문은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그 순간 달빛에 그을린 여자의 얼굴을 봤다. 성문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그린듯한 눈썹. 눈 밑에 있는 점. 성문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야... 설마.. 너 아니지?”
“네?”
“너 유소영 아냐?”
“네? 아저씨가 어떻게 제 이름을 알아요?”
유소영이 수상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성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너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아니, 왜 여기 있는 거야?”
“이 아저씨가 왜 이래. 아저씨가 누군데요?”
성문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나 지성문이잖아. 모르겠어?”
“지성문...?”
고민에 빠진 것도 잠시, 소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양아치?'라고 하더니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렸다.
“야, 너 어디가!”
후다닥 뛰어가는 그녀였다. 성문은 어이가 없어 도망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