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유소영(2)

by 송아론

성문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며 피식 웃었다. 설마 그렇게 얼토당토 하게 아내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으니, 오히려 그게 더 어울리기도 했다.


6년 만에 아내와 재회한 그 이튿날, 성문은 퇴근을 하고 다시 그 공원으로 갔다. 역시나 아내가 그 벤치에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야, 유소영.”


성문은 자기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소영은 어딘가 모르게 심통이 난 모습이었다. 성문이 벤치에 앉아 입을 뗐다.


“진짜 코미디다. 여기서 만난 것도 황당한데, 도망갈 건 또 뭐냐?”


“지방 촌놈이 어떻게 하다 서울까지 온 거예요?”


성문은 미소를 띠며 소영을 지그시 쳐다봤다.


“왜요?”


“이제 사투리 안 쓰네?”


“저 서울 온 지 오래됐거든요. 그리고! 왜 지금까지 연락 안 했어요?”


소영이 성문을 쏘아봤다. 성문은 무슨 소리냐며 그녀를 쳐다봤다.


“전학은 네가 가놓고, 왜 나한테 책임을 물어?”


“뭔 소리예요. 제가 쪽지로 오빠한테 집 전화번호 적어주고 갔잖아요.”


“언제?”


소영은 혀끝을 차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인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 사실 기억이 없어. 그때 너랑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안 나.”


“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니까 너 전학 갔다고 해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지.”


“예?”


뭘 자꾸 예예 거리냐며 성문이 소영을 쳐다봤다. 그리고 5년 전에 묻지 못했던 말을 드디어 꺼냈다.


“너 전학 간 거 말야...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런 거 맞지...?”


“묻지 말아요. 대답 안 할 거니까.”


“미안해. 다 내 책임이야. 너 만나면 이 말 꼭 하고 싶었어.”


“됐거든요. 저 이제 다 잊었어요.”


성문은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결혼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당시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스킨십에 대해 매우 예민했다. 뒤에서 갑자기 안으면 깜짝 놀랐고,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스킨십에 대해서는 거부했다.


“근데 너, 이 야밤에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옷도 어제랑 똑같은 거 같고.”


“전에 없던 눈썰미가 생기셨나 보네. 저 사실 가출했어요.”


“뭐? 왜?”


“부모님이 제 꿈을 짓뭉개서요.”


“설마, 그 형사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


“맞는데요.”


새삼스레 뭘 물어보냐는 소영이었다. 성문은 학창 시절 소영이 찾아와 시달렸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는 오빠는 서울에서 무슨 일 해요? 백수는 아니죠?”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퀭한 눈. 거뭇거뭇한 수염. 푸석푸석한 피부. 누가 봐도 영락없는 백수였다.


“너 말야. 형사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거 같은데, 그러다 나 같이 된다?”


“누가 보면 형사인 줄...”


소영은 말을 멈췄다. 성문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 형사 배지를 보여줬다.


“서울 중부지구... 강력계 2반 지성문 경사?”


소영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때? 네가 그렇게 꿈꾸는 형사를 본 소감이? 당장 접고 싶은 생각 안 드냐?”


“뭐예요! 진짜 형사란 거예요? 설마 사기꾼처럼 사칭하고 다니 건 아니죠? 옛날부터 양아치 짓에는 일가견이...”


성문이 그녀를 째려봤다.


“안 되겠다. 가출한 여대생을 지금부터 집으로 압송시켜야겠다. 너 집 어디야? 주소 말해.”


“서울 중구 을지로 7가 352번지요.”


“그래 따라와.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냐. 이 나이 먹고 가출이나 하고 말야. 내가 특별히 형사 차량이라는 걸 태워줄 테니까, 얌전히 따라와.”


소영은 얼떨떨했다. 설마 성문이 형사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그렇게 성문은 소영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차량에서 소영이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3분 간 그 자리에 대기를 하고 있었을까? 성문은 충동적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느닷없이 소영이 사는 단독주택으로 달려가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야, 유소영! 잠깐만 다시 나와봐!"


반응이 없자 급하게 대문벨을 눌렀다. 누구시냐는 소영의 부모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아버님. 저 소영이 남자친구입니다.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습니다."


대문이 열리자, 성문은 한달음에 현관 앞에 당도했다. 문이 열리고 부모님이 나오자, 성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땅에 받은 채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소영이과 결혼을 하게 허락해 주십시요!"


소영은 부모님 등 뒤에서 저 미친놈이 갑자기 뭐라고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6년 만에 만나 한다는 소리가 결혼이라니.


하지만 결혼은 일사천리였다. 장성 전역이었던 소영의 아버지는 처음에 수염도 덥수룩한 짐승 같은 성문을 보고 학을 뗐다. 하지만 나중에 건실한 형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허락했다.


자꾸 형사를 하겠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겹게 하더니,

형사가 사위로 들어온 게 나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행색을 보고 탐탁지 않았는데, 형사였다는 사실과, 성문과 소영의 학창 시절 러브스토리를 듣고는 허락을 했다.


- 자기 딸이 중학생들한테 끌렸갔다가 성문이 구해줬다는 스토리.

- 딸이 박중구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할 때, 성문이 끝까지 지켜주려고 했다가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뇌진탕이 왔던 일.

- 결정적으로 가출한 딸을 오늘 운명처럼 만나 잡아오기까지.


어머니는 이건 운명이고, 넌 평생 남자친구한테 잘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소영이 오늘 다시 봤는데, 무슨 남자친구냐고 항변해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소영도 내심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동경하던 형사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남자를 오늘 만났다는 건, 정말 운명 같았으니까.


그렇게 성문과 소영은 결혼을 하고 윤수를 낳았다. 윤수를 낳으면서 쌍둥이 여자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


그리고 윤수가 4학년이 되던 해, 성문은 마약조직에 들어가 잠입수사를 하게 되었다.


형사과장은 너는 하는 짓이 스펙터클하고 운도 곧잘 따라주는 거 같으니 이번 프로젝트에 적임자라는 말이었다. 성문은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소영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가정에 충실하지 못해서 눈치 보이는데, 위장을 하고 조직에 들어갔다간 주말 부부생활도 못할게 뻔했다.


하지만 소영은 오히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정말? 오빠, 그거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냐?”


“현실은 영화가 아니라니까.”


“나도 그런 거 해 보고 싶었단 말이야.”


소영은 두 손을 꽉 잡고 벌써 꿈에 젖었다. 그 말은 곧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하라는 뜻이었다. 성문은 한숨을 쉬며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는 윤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윤수야, 너 아빠가 집에 안들어와도 엄마랑 잘 있을 수 있겠어?”


“지금처럼 이라면 가능해요.”


“아빠 대신 엄마 잘 지켜줄 수 있지?”


“엄마가 저보다 더 쌘대요?”


고개를 돌리며 말하는 윤수였다.


“그런가?”


성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빠 몸이나 잘 지키세요.”라고 말하는 윤수였다.


“하여간, 이 녀석은 시크한 게, 누구 닮은 지 모르겠다니까.”


“당신, 학창 시절만 안 닮으면 돼.”


소영이 말했다. 윤수는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성문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을 물 흐르듯 결정한 게 너무나 뼈아팠다. 이 일로 인해 결국 소영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게 불현듯 나타난 소영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성문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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