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은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민환과 이야기를 마쳤으니, 윤수와 결판을 내릴 생각이었다.
이곳에 더는 살지 않겠다. 다른 지방으로 이사 가자. 만약 네가 원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도 있다.
선택의 여지를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윤수가 보이지 않았다. 다락방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문은 집에서 윤수를 기다리다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윤수가 야맹증이 있어 걱정이 됐다. 그는 도시에서도 빛보다 어둠이 더 많으면 사물을 구별하지 못했다. 신호등이 뿌옇게 보이기도 했다. 가로등 근처는 괜찮지만, 그 범위만 벗어나면 걷는데 어려워했다.
해가 자취를 감춘 지 몇 분 채 되지 않았는데, 금세 어두워진 마을이었다. 성문은 집으로 들어가 손전등을 챙겼다. 혹시 윤수가 집으로 걸어오고 있을까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하지만 성문의 시야에는 윤수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윤수가 갈만한 곳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린과 친하지만, 요새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문은 결국 린의 집에라도 가보자고 마음을 굳혔다. 혹시 몰라 윤수가 집 위치라도 발견할 수 있도록 현관문에 등대처럼 손전등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린의 집으로 뛰어갔다. 채연서가 어린 시절부터 살던 곳이라 위치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성문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앞을 내다봤다. 린의 집 앞이었다. 빨간색 기왓장은 군데군데 파손되었고, 나무기둥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게다가 70-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창호지 미닫이문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어 사방을 테이프로 막고 있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집이었다. 게다가 전기가 끊긴 건지, 아니면 벌써부터 자는 건지 초저녁인데도 불이 꺼져있었다.
“흐흠.”
성문은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계십니까.”
숨죽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풀밭에서 벌레와 귀뚜라미 소리가 크게 울렸다. 동시에 찬바람이 초초한 성문의 문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도 안 계신가...”
성문이 말을 마치기 전에 창호지 문이 열렸다. 린이었다. 그녀는 촛불을 들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누구시죠?”
“아... 나 윤수 아빠 란다. 그때 화장터에서 본 적 있지?”
린은 아무 대답 없이 서 있었다. 성문은 그때 처음으로 기형으로 된 린의 입술을 봤다. 화장터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흉측할 정도로 입술이 비틀려 있었다.
“저기 말야, 윤수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혹시 어디 있는지 모르니?”
“모르는데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갈 때요.”
“혹시 윤수가 갈만한데 아는 곳이라도 있니?”
그때였다. 안쪽에서 채연서가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린아, 빨리 가라고 해~ 빨리~”
20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어느새 완전한 여성이 되어 있었고, 아이 같은 말투를 했다.
“아, 엄마 인가 보구나.”
“네.”
단답형으로 끝나는 대답에 성문은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윤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 아저씨 이만 갈게. 엄마한테도 안부 전해 주거라.”
성문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 섰다.
“아저씨.”
성문은 멈칫했다. 고개를 돌리자 린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아저씨.”
“어, 어?”
“아저씨 이름이 성문이에요?”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아저씨 목소리 듣고는 그렇게 말하던데요. 성문이가 왔다고요.”
“뭐?”
성문은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래, 아저씨는 윤수 찾아봐야 해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보자.”
“아저씨.”
이번에도 성문을 붙잡는 린이었다. 성문이 고개를 돌리자 린이 말했다.
“왜 이렇게 급하세요?”
“윤수 찾아야 한다고 했잖니.”
“우리 엄마가 무서운 거죠?”
“뭐?”
“우리 엄마가 아저씨 알아보니까 무서운 거 아니냐구요.”
성문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왜 너희 엄마를...”
“거짓말했으니까.”
린이 성문의 말을 가로챘다.
“저한테 거짓말했으니까. 화장터에서는 우리 엄마 괴롭히지 않았다면서요.”
“아... 내가 그랬나?”
성문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린은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성문을 쳐다봤다.
“아저씨가 윤수 아빠만 아니었으면, 벌써 끝났을 거예요.”
“뭐?”
성문은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해 얼굴에 물음표를 달았다.
“이해 안 되세요?”
린이 턱을 비스듬히 기울며 말했다. 성문은 육체가 경직됨을 느꼈다. 순간적이었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온몸이 굳었다.
“아, 그래. 이해된다. 미안하다, 가보마.”
성문은 황급히 몸을 돌리고는 빠르게 걸어갔다. 이곳을, 아니 저 아이의 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한 경고가 울러 퍼졌다. 형사시절 위험한 순간 때마다 육감으로 울리는 위험 신호였다.
“허억.”
성문은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어느새 등골에 땀이 가득했다. 성문은 가파 오르는 숨을 삼키며 뒤돌아 봤다. 아른거리는 촛불과 함께 린이 여전히 서 있는 게 보였다. 정확히 성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성문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적어도 저 아이의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문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오른발이 땅 밑으로 푹 꺼졌다. 몸 전체가 기우뚱거리더니 옆으로 넘어갔다. 낭떠러지였다. 성문은 맥없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가시덩굴이 얼굴과 가슴을 할켰다.
“...으윽!”
성문은 재빨리 양손을 위로 뻗었다. 가까스로 돌부리를 잡아 굴러 떨어진 몸을 멈췄다. 하지만 칼에 베인 듯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려왔다.
“하으윽... 하...”
성문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낭떠러지가 끝없이 아래로 이어져 자칫하면 계곡으로 추락할 뻔했다. 다행히도 낭떠러지에 나무가 산재해 있어 멈출 수 있었다. 성문은 나무를 지렛대 삼아 위로 기어 올라왔다.
***
성문은 지친 기색으로 집으로 향했다. 몸도 그렇지만, 팔과 손가락에 쓸린 자국이 만연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멀리 집이 보였다. 현관문 앞에 달아놓은 손전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성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윤수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온통 어둠뿐이었다.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야맹증이 있는 윤수는 어떨까. 몇 미터도 걷기 힘들어할게 뻔했다.
“하...”
성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들고 집을 바라봤다. 일순간 성문의 얼굴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켜져 있었던 손전등 불빛이 꺼졌다.
***
윤수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폭포 절벽 위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빠와 린 때문이었다. 먼저 아빠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한 후, 집에 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왜 선생님과 린 엄마를 괴롭혔냐고 따져야 하는 건지, 아니면 용서를 해줘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두 가지 모두 정답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또 개울가에서 린과 싸웠던 장면도 계속 떠올랐다.
***
“내가 죄책감이 들어서 그래! 네가 선생님 아내를 죽인 게 맞지만! 네 인생이 불쌍한데 괜히 나 때문에 더 불쌍해질까 봐 그런다고!”
“내가 불쌍해?”
“그럼 안 불쌍하냐! 엄마가 성폭행당하고, 자기는 성폭행범 자식이고, 엄마는 지적장애인에다가 정신까지 나가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안 불쌍해?!”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당연하지! 너를 불쌍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다 죽여 버렸으니까!”
***
특히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린을 살인자 취급을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나였더라면.
내가 누군가를 죽일 만함 힘이 있고, 엄마를 죽인 괴한이 내 눈앞에 있더라면,
나는 그 괴한을 죽이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데,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 반병신이나 불구로 만들지 않을까.
그런데 린에게는 잘못한 것처럼 말했으니...
윤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을 바라보자, 어느새 해가 져 어두웠다. 불과 몇 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윤수는 한숨을 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를 털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뎠다. 나무 이파리가 찰락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나머지는 암흑 그 자체였다.
윤수는 안 되겠다 싶어 눈이 어둠에 적응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야맹증이라도 어둠에 적응되면 사물이 조금이나마 보인다. 그때 길을 걷는 거다. 그렇게 서서히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될 무렵이었다.
앞쪽에서 무언가가 흐느적거리는 게 보였다. 흐릿했던 물체가 서서히 선명해졌다.
그리고 코앞에 다다랐을 때,
‘채린이?’
윤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열었다.
“여기엔 무슨 일이야?”
“너야말로. 너희 아빠가 우리 집에 왔었어. 저녁인데 네가 집에 없다고.”
“그래서 날 찾으러 왔다는 거야? 이 야밤에?”
린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는 린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설령 야맹증이 없더라도 자신은 이런 산속을 올라올 자신이 없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린이 물었다.
“그냥... 답답해서...”
“내려가자.”
“응.”
그 말과 함께 윤수는 무의식 적으로 린의 어깨를 잡았다. 아차 싶어 손을 뗐다.
“아, 미안. 내가 야맹증이 있어서...”
“그래서 아까 멍하니 서 있었던 거구나?”
“응...”
그때였다. 윤수의 손바닥에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럼 손잡고 가.”
린이 윤수의 손을 잡았다. 윤수는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린은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고, 윤수는 린의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린의 따뜻한 온기가 손목과 팔을 타고 마음으로 전해졌다. 여자애 손을 잡는 건 처음이었다.
“저기 말야.”
침묵을 일관하던 윤수가 입을 뗐다.
“아까, 개울가에서 유언장 억지로 본 거 미안해. 너한테 했던 말도 미안하고.”
“왜?”
린이 고개를 돌려 윤수를 쳐다봤다. 달빛에 그녀의 눈동자가 비쳤다.
“그냥... 여러모로 심한 말을 한 거 같아서.”
“그게 죄책감이라는 거야?”
“어?”
윤수는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맞아, 죄책감. 죄책감이야.”
“그렇구나...”
린은 그 단어를 곱씹듯 한 얼굴을 했다.
“근데 한 가지 더 할 얘기가 있어.”
윤수는 이 말도 이참에 해야겠다 싶었다.
“사실, 오늘 교실에서 네가 쓴 유언장 앞부분도 봤어. 엄마 보고 죽으라고 한 거...”
윤수는 괜히 찔려 빠르게 이어 말했다.
“아, 일부로 보려고 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윤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린은 걷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수가 눈치를 살핀 후 조심스레 말했다.
“너... 그 말... 진심이야? 네가 죽으면... 엄마도 죽으라는 그 말...”
“응.”
바로 대답하는 린이었다. 걸음을 멈추더니 윤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윤수야. 내가 불쌍하다고 했지?”
린이 이어 말했다.
“난,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오히려 엄마가 불쌍하지. 그래서 그런 거야. 내가 죽으면 우리 엄마는 더 불쌍해질 테니까. 그러니까 불쌍해지지 않으려면 죽어야 해.”
윤수는 숙연한 얼굴을 했다. 거기에 대고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린은 잡은 손을 끌어 윤수가 자신을 보게끔 했다. 윤수는 고개를 돌려 달에 비친 린의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그녀가 마스크를 쓴 채 말했다.
“윤수야, 그러니까 말야. 내가 만약에 죽게 되면 절대로 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
윤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