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이 깔린 시간. 윤수는 린과 함께 비탈길을 내려갔다. 야맹증 때문에 어색하게 린의 팔을 잡았다.
“왜 그래?”
윤수가 말했다. 아까부터 린이 자꾸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냐.”
린은 그 말을 하면서도 마을에 있는 집 뒤편을 바라봤다. 윤수도 덩달아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마을 아래로 내려오자, 드디어 윤수의 집이 보였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과 현관문 앞에 손전등이 달려있었다.
“고마워. 이제 혼자 갈 수 있을 거 같아.”
윤수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집가지 조심가.”
“너야말로.”
윤수는 린이 집으로 향하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몇 미터 멀어지자 금방 사라진 린이었다.
윤수는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현관문 앞에 있는 손전등 빛을 보며 걸었다.
금세 집 앞에 도착했다.
윤수는 문고리에 묶인 손전등 끈을 풀었다. 손전등 스위치를 끄고, 현관문을 열었다. 역시나 문을 잠가놓지 않은 아빠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었다.
딸꾹.
갑자기 거실 불이 꺼졌다.
“아빠?”
딸꾹.
윤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딸꾹.
거실 안쪽에서 누군가의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
성문은 절뚝이며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켜져 있던 집 불이 꺼진 걸 본 성문이었다. 윤수가 들어와서 끈 거라 생각하고 싶지만, 정황상 맞지 않았다. 손전등 불이 꺼지자마자 거실 불까지 꺼질 수가 없었다. 성문은 불길한 마음이 가득 찼다. 어둠으로 물든 집을 향해 뛰었다. 뛰다가 하마터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저씨 집으로 가는 중이세요?”
린이었다. 그녀가 어느새 자기 앞에 있었다.
“너... 너...”
성문은 의아해 입을 떼지 못했다. 집에 있어야 할 린이 왜 여기에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윤수 방금 집으로 갔어요.”
“윤수가 왔다고?”
“네, 제가 데려다줬어요.”
성문은 미간을 찌푸렸다. 린이 윤수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고 데려다줬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았다. 지금 가보마.”
성문은 린을 뒤로하고 걸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린을 쳐다봤다.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녀였다.
***
린은 성문과 헤어진 뒤 집으로 향했다. 두려움에 떨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린이 집으로 나가기 전 재 씨는 린을 붙잡았다.
“린아 나가지 마. 엄마 무서워. 성문이가 엄마 때릴 거야.”
채 씨는 성문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는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각인시킨 첫 번째 인물이었다. 실실 웃으며 사람 좋은 분위기를 풍겼지 누구보다도 악독한 사람.
민환이를 발가벗겨 만들고, 나를 알몸으로 만든 사람. 그것도 모자라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민환에게 뛰어가게 만든 사람. 민환이 나를 보지 못하도록 전학 가게 만든 사람.
채 씨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민환이 전학 간 뒤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아이들은 자신을 조롱했다. 빨개 벗고 뛴 미친년이라며, 손가락질하며 웃어댔다.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주전자로 물을 부었고, 썩은 걸레를 던지며 걸레라고 놀렸다.
심지어는 집까지 찾아와, 또 벗어보라며 억지로 옷을 풀어헤치기도 했다. 이 중심에는 모두 성문이 있었다.
“린아 가지 마... 엄마 옆에 있어...”
채 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린은 옷을 챙겨 입고 말했다.
“엄마, 친구가 산에서 못 내려오고 있나 봐.”
“친구?”
“응 엄마도 친구 있었지?”
“응, 민환이!”
“그래. 민환이가 산에서 못 내려온다고 하며 엄마 어떻게 할 거야?”
“데리러 갈 거야.”
“그치? 나도 친구 데리러 가야 하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안 돼. 무서워. 성문이가 올 거란 말야.”
“그 아저씨 아까 갔으니까 걱정 마.”
린은 채 씨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백까지만 세고 있어. 그전에 올게.”
“하나... 둘.... 셋...”
린은 채 씨가 숫자를 세는 걸 보아서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엄마는 100도 넘게 세고 있을 것이다.
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100이 넘었는데 왜 빨리 오지 않냐며 울고 있을 게 분명했다.
린은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앞에 당도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창호지 문이 박살 나 있었다.
“엄마.”
린은 화들짝 놀라 뛰어갔다. 방을 살펴보자 쑥대밭이었다. 그 안에서 흐느끼는 채 씨의 소리가 들렸다.
“흐흐흑.... 흐흑...”
“엄마.”
린은 경직된 얼굴로 채 씨를 불렀다. 그녀는 린이 덮어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흐흑... 흐으윽....”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린이 조심히 이불을 들쳤다. 그러자 그 안에서 양손이 튀어나왔다.
“미워 미워 미워!”
채 씨가 린의 목을 졸랐다.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백세면 온다며! 근데 왜 안 와!”
채 씨는 있는 힘껏 힘을 줬다. 린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아랫도리가 벗겨진 채였다. 게다가 눈가가 피범벅이었다.
“엄마 미안해...”
붉어진 린의 얼굴에서 주룩 눈물이 흘렀다.
채 씨는 힘을 주다, 이내 린의 목을 풀었다.
“흐아아아앙! 아파 아파!”
옆으로 누워버리더니 애처럼 발버둥 치는 채 씨였다. 린은 숨이 막혀 기침을 토한 뒤 채 씨를 바라봤다.
“엄마 누가 그런 거야? 응? 얼굴은 왜 그래?”
“몰라, 아파. 아파.”
채 씨의 다리 사이로 하얀 정액이 보였다.
“엄마 누가 그랬어. 말을 해봐.”
“싫어! 싫어! 엄마 아파! 싫어! 싫어!”
채 씨는 누운 채로 발을 동동 굴렸다. 성기와 눈을 잡고는 꺼억꺼억 울었다.
진짜 바보 같다.
린은 채 씨를 보며 생각했다.
아둔하고, 못났고, 멍청하다.
“....엄마. 그냥 조용히 잘래..?”
“엄마 못 자, 린아 엄마 무서워 매일 꿈꿔.”
“내가 악몽 안 꾸게 해 줄 게. 그럼 괜찮지?”
“응! 린아 엄마, 자고 싶어. 자고 싶어 잘래.”
“알았어. 조금 어지러워도 참아? 졸릴 거니까?”
린은 가슴으로 채 씨를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더는 악몽을 꾸지 않도록.
깨어나서도 불안에 떨지 않도록.
평온해지고 평안해지도록 그녀를 위로했다.
***
성문은 집 앞에서 멈춰 섰다. 현관문 앞에 묶어뒀던 손전등이 보이지 않았다.
“하아... 하아..”
성문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쇳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내부가 어두컴컴했다. 성문은 조용히 문을 닫은 뒤, 신발을 벗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벽에 붙어 조심히 스위치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덜컥.
발에 무언가가 걸려 확인해 보자 손전등이었다.
성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 현관문 앞에 윤수의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손전등이 여기에 떨어져 있다? 누군가가 집에 침입한 것이다.
성문은 긴장한 얼굴로 손을 뻗어 거실 스위치를 켰다. 형광등이 빠르게 세 번 깜박거렸다. 그 순간 장도리가 성문의 눈앞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