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찢어진 관계

by 송아론

린이 상담을 마치고 교무실을 나왔다. 윤수는 황급히 몸을 숨겼다. 린은 곧바로 교실로 걸어갔다.


윤수는 린과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만 짐작 가는 부분은 있었다.


선생님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버릇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불도 붙이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윤수는 그때 선생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았다. 반면 린의 뒷모습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틀림없이 선생님이 어떤 충격을 받았으리라.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그때였다. 어느새 민환이 복도에 나와 있었다.


“아... 저... 그게...”


윤수가 당황한 낯빛을 하자 민환이 입을 뗐다.


“린한테 물었다. 아내를 죽였는지.”


“뭐라고 하던가요?”


윤수가 빠르게 물었다.


“만약 자기가 선생님보다 먼저 죽게 되면 유언장을 보라고 하더구나. 거기에 답을 썼다면서.”


윤수는 다행이다 싶었다. 동시에 선생님이 절대로 유언장을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이다,”


민환이 이어 말했다.


“네가 린의 유언장 좀 훔쳐오면 안 되겠니?”


“네? 제가요?”


윤수는 무슨 말이냐며 민환을 쳐다봤다.


“그래. 린이 선생님 아내를 죽인 게 아니라면 충분이 가능한 이야기 같다만.”


윤수는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이 나를 시험하는 것인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라는 소린가?


“아니다, 못 들은 걸로 하자. 선생이 돼서 학생에게 같은 반 친구의 물건을 훔쳐 달라니 내가 실언을...”


“할게요.”


윤수가 대답했다.


“가져올게요. 그걸로 선생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요.”


“고맙구나.”


윤수는 민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 학교를 나가 정문에서 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책가방을 메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린이 보였다. 린은 윤수를 발견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고 있던 거야?”


“중요한 거니까.”


“내가 선생님한테 그대로 말했을 까 봐?”


“솔직히 모르겠어. 나는 이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아예 모르겠어.”


“꼭 알아야 하는 거야? 그냥 친구로 봐주면 안 돼?”


‘친구?’


윤수는 그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린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친구였는데 멀어져서일까? 답을 알 수 없었다.


“선생님한테 이야기 들었어. 네가 만약 선생님보다 먼저 죽게 되면 유언장을 보라고 했다면서?”


“그 사이에 선생님이랑 이야기한 거야?”


“네가 무슨 말할지 불안해서 몰래 지켜보다 걸린 거야.”


“맞아, 유언장에 사실을 썼으니까.”


“정말이야?”


윤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내가 죽지 않으면 선생님은 평생 못 볼 거야.”


“만약에 네가 먼저 죽으면?”


“그럴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어.”


“그게 뭔데?”


윤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린이 말했다.


“아까 교실에서 말했지? 만약에 내가 죽게 되면 너도 내 유언장 읽어보라고. 거기에 그에 대한 답이 써져 있어.”


자기가 죽을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유언장에 그에 대한 답이 써져 있다?


윤수는 린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말이야, 선생님이 네 유언장을 훔쳐 달라고 했어.”


윤수는 징검다리 앞에서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네 유언장을 훔칠 생각은 없어. 선생님 아내를 죽였다는 그 부분만 확인하고 지울 생각이야.”


“내가 주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뺏어야지.”


“안 돼.”


린이 징검다리를 건너자 윤수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고집을 부리는 건데! 정말로 네가 죽였다고 시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나는 내가 죽기 전까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을 거야.”


린이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자, 윤수가 그녀의 가방을 낚아챘다. 지퍼를 열고 유언장을 꺼내 들었다.


“싫다니깐!”


린이 유언장을 든 윤수의 팔을 잡았다. 윤수가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둘은 중심을 잃고 징검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찌익-


반으로 찢어진 유언장이었다. 유언장의 앞부분은 린이, 뒷부분은 윤수의 손에 들려있었다. 윤수는 재빨리 유언장을 들여다봤다.


[선생님 아내 제가 죽인 거 맞아요. 어떻게 죽였는지 궁금하시겠지만, 그건 모르셔도 돼요. 선생님은 위선자니까.]


“너 정말... 여기다가...”


윤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그러면 안 돼?”


“당연하지! 살인자라는 걸 말하는 거잖아!”


“내가 선생님 아내를 죽였다고 먼저 말한 건 너잖아. 근데 왜 그래?”


“걱정되니까!”


윤수가 소리쳤다. 린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입을 뗐다.


“나는... 그때 네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어.”


“내가?”


“그래. 화장터에서 내가 선생님 아내를 죽였다고 말했을 때, 버림받은 기분이었어. 나는 선생님이 싫고 네가 좋아서 도와준 것뿐인데.”


윤수는 그게 무슨 얼토당토 한 소리냐며 린을 쳐다봤다.


내가 홧김에 그런 말을 한건 잘못된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만한 이유가 있었다. 린이 선생님 아내를 죽여 놓고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생님에게 건넸던 말. “선생님. 선생님은 슬프지 않으세요?”


“그건... 네가 당연히 선생님 아내를 죽여 놓고도...”


그 찰나 윤수는 빈 교실에서 린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죄책감? 그게 뭔데?”


“뭐?”


“죄책감이 뭐냐구.”


“죄책감이라는 건! 내 잘못으로 인해 죄의식을 느끼는 거야! 나는 지금 너 때문에 선생님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그럼 나는 전혀 그런 생각 안 드니까, 상관없겠네?”


“뭐...?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그래.”


***


윤수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고 꿀꺽 삼켰다. 한마디로 린은 아직도 내가 왜 화장터에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됐어. 이건 내가 없애버릴 거야.”


윤수는 유언장을 손으로 갈기갈기 찢고는 흐르는 물에 던져버렸다.


“앞으로 선생님 아내 죽였다는 말 절대로 입 밖에 꺼내지 마. 알았어?”


“왜?”


“내가 죄책감이 드니까! 그리고 네가 선생님 아내를 죽인 게 맞지만! 불쌍한 네 인생이 더 불쌍해지니까!”


“내가 불쌍해?”


“그럼 안 불쌍하냐! 엄마가 성폭행당하고, 자기는 성폭행범 자식이고, 엄마는 지적장애인에다가 정신까지 나가서 반푼이나 다름없는데 안 불쌍해?!”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당연하지! 너를 불쌍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다 죽여 버렸으니까!”


“......”


윤수는 숨을 헐떡였다. 린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가방 지퍼를 닫고는 다시 가방을 멨다. 개울가를 건너 집으로 걸어갔다.


윤수는 가만히 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린과 자신의 관계가 찢어진 유언장처럼 완전히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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