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환이 유언장을 쓰라고 한 뒤 교실을 나가자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도 해본 적 없거니와 유언이라는 걸 하기도 싫었다. 괜히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건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이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늙어가는 것이지, 가위로 싹둑 생명을 자르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가위가 아니라 칼에 찔렸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살인이 일어날 거라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어떠한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윤수는 유언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엄마도 오늘 죽는다는 걸 알았다면, 어떤 말을 남겼을 까.
적어도 ‘아빠 오늘 일찍 퇴근하신다는데 저녁 맛있는 거 먹자.’ 보다, 평소처럼 잔소리 같은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윤수야 너는 다 좋은데, 밥 좀 열심히 먹고, 아빠는 집에 좀 일찍 들어오라고 해라.’와 같은...
그런 말이 남겨져 있다면 엄마가 들 그리웠을까?
보고 싶다.
윤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언장이란 흔히들 산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지만, 오늘만큼은 돌아가신 엄마에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필을 든 뒤 유언을 남기기 위해 첫 문장을 썼다.
[엄마 나도 이제 곧 죽는대... 엄마, 내가 죽으면 엄마도 좋아할까?]
그 문장과 함께 연필이 멈췄다. 지금까지 감춰뒀던 엄마에 대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장터에서 엄마를 화장시키고, 납골당에 모실 때까지만 해도 윤수는 엄마의 죽음을 회피했다.
엄마의 죽음을 직면했다가는 아빠처럼 제정신이 아닐 거 같았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이 떠오를 때마다 감정과 생각을 삭제시키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 덕에 지금처럼 덤덤할 수 있었고 감정이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그런데 유언장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변화가 왔다. 나에 대한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죽음을 직면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을 있는 대로 다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엄마가 있었으면 어떻게 행동하라고 화끈하게 다 말해줬을 텐데.
엄마가 있었으면 지금처럼 두렵거나 겁나는 일은 하나도 없었을 텐데.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선생님 아내를 죽인 린도, 아빠에 과거에 대해서도, 엄마가 있었더라면 좋은 대처 방법을 알려줬을 텐데.
지금은 엄마가 없어서 하나도 모르겠다.
윤수는 다시 연필을 들었다.
[엄마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 아빠랑은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여긴 정말 최악이야. 엄마도 이곳에 왔다면 모든 것에 실망할걸?]
형사같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직업은 없다. 박봉에다가 범인을 잡는답시고 며칠, 길게는 몇 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엄마가 아빠랑 결혼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사실 아빠보다 더더욱 정의로운 사람이니까.
엄마도 실은 꿈이 형사였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극구 반대해 무려 성인 때 가출했다. 거기서 우연찮게 형사인 아빠를 만났다. 웬 예쁘장한 여학생이 출근 때마다 같은 장소에 있어서 아빠가 먼저 다가갔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니 가출한 대학생이었고, 엄마는 아빠가 형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를 설득해 집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둘은 계속 연락을 했다. 연락을 하다 보니 사랑에 빠졌다.
아빠는 엄마의 단아함 속에 감춰진 무서움에.
자신을 컨트롤해 줄 여자를 찾았다는 기쁨에.
엄마는 형사가 되지 못한 아쉬움에.
이 형사 같지 않은 형사를 교화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둘은 부모님에게 교제를 허락받고 사귀기 시작했다.
엄마가 말하길 처음 만난 아빠는 형사가 아니라 양아치였다고 했다. 아빠도 웃으며 그걸 인정했다. 동네 조폭이나 양아치들을 갈구고 협박하면서 실적을 쌓고, 뒷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양아치 형사를 교정시키는데 엄마는 만족감을 얻었다. 결국 아빠는 나중에 진정한 형사로 탈바꿈되었다. 이후 엄마가 대학교를 졸업하자 결혼을 했다. 엄마는 비록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만족했다. 아빠로부터 마음껏 대리만족을 느꼈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에 가까운 형사가 남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는 이제 죽고 없다.
형사인 남자와 결혼에서 자기도 모르게 죽음을 앞당겼다.
하지만 엄마가 만약 살아 있다면,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고 뭐라고 할까. 거기다 아빠가 여기서 악당 중 한 명이라면, 당장 아빠에게 잔소리를 하며 교정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곳에 엄마가 있었어야 했는데.
윤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언장을 썼다. 아빠에게 하지 못한 말을 모두 엄마에게 했다. 유언장을 모두 쓴 뒤 반으로 접고는 무심코 린의 유언장을 쳐다봤다. 첫 문장에 ‘엄마’라는 단어가 보였다. 린도, 엄마에게 쓰는 글인 모양이었다.
하긴 가족이 엄마밖에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수는 린의 첫 문장을 보고는 두 눈을 의심했다. 엄마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엄마 나야. 내가 만약 엄마보다 먼저 죽게 되면, 엄마도 죽어. 알았지?]
엄마 보고 죽으라니.
윤수는 입을 떼지 못한 채로 있다, 너무 대놓고 봤다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힐끗 린의 다음 문장을 보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죽는 게 더 편해서야. 산에 올라가서 떨어지면 딱 한 번만 아프고 끝나니까. 꼭 죽어.]
윤수는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린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상당수가 무표정이지만, 가끔씩 눈웃음을 지을 때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도사견을 죽이고 선생님 아내까지 살해한 모습을 봤을 때는 지금 까지 내가 알던 린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순히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남들과는 달리 윤리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또 한 번 유언장에 나타났다. 윤수가 충격으로 침을 꿀꺽 삼키자, 린이 눈치를 챘다.
“벌써 다 쓴 거야?”
“아... 어, 미안. 일부러 보려고 한 거 아냐.”
윤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윤수야, 내가 만약에 죽으면,”
“어?”
윤수가 쳐다보자 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이 유언장 꼭 봐. 알았지?”
린이 오래간만에 산뜻한 표정을 지었다.
“나보고 그걸 보라고? 왜?”
“여기에 너한테 한 말도 적었으니까.”
나한테 전하는 말? 윤수는 린이 뭐라고 썼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알았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1교시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쓰기 어려워하더니 어느새 몰입을 하면서 유언장을 쓰고 있었다.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는데도 몇몇은 쉬지 않고 글을 썼다.
그리고 2교시가 시작되자, 민환이 교실로 들어왔다.
“모두 유언장 다 썼어?”
아이들은 동시에 ‘네’라고 대답했다.
“좋아 그 유언장은 오늘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보여주도록 해라.”
그러자 기찬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뭔데? 말해봐 이기찬.”
“그게 가족한테 안 보여주면 안 됩니까?”
“이유는?”
“부끄럽십니더...”
“그럼 집에 잘 숨겨둬.”
“알겠습니다.”
기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유언장은 일단락됐다. 민환은 2교시부터 정상수업을 시작했다. 5교시까지 수업을 마친 뒤, 윤수와 린이 교실 청소를 했다. 늘 하던 데로 청소를 분담한 뒤, 모두 끝나자 윤수가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 문을 똑똑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선생님, 청소 다 끝났는데요.”
“그래? 잠깐 이리로 와봐라.”
윤수가 앞에 서자 민환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안 그래도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화장터에서 말이다. 린이 우리 아내를 죽였다는 게 무슨 말이니?”
윤수는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다는 생각이었다. 윤수는 고민을 하곤 입을 떼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그건 저도 모르게 한 말이라...”
“거짓말이라는 소리니?”
민환이 쳐다보자 윤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환으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윤수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제 와서 아니라니.
윤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린이 선생님 아내를 죽인 게 사실이지만, 현실성도 떨어지고 지금 다시 일러바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다. 넌 가고 린을 잠깐 불러 주겠니.”
“네...”
윤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교무실을 나갔다.
린을 불러내는 일은 뻔하다. 화장터에 있었던 사건을 물어볼 터였다. 그렇다면 린에게 미리 일러둬야 한다.
교실에 들어서자 린이 창틀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린아. 선생님이 부르셔.”
“나를?”
린이 바닥으로 착지하자 윤수는 빠르게 입을 뗐다.
“그런데, 말야.”
“?”
“선생님이 화장터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려는 거 같아. 내가 그랬잖아? 네가 선생님 아내 죽였다고... 아까 나한테 그 이야기를 물어봤어.”
“알았어.”
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을 나서려 하자 윤수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너, 뭐라고 말할 거야? 정말로 네가 죽였다고 말할 건 아니지?”
윤수는 불안했다. 린이 어디로 튈지 몰라 예상이 가지 않았다.
“왜? 네가 다 말해놓고. 뭐라고 대답하길 바라는데?”
“너 때문에 하는 말이야. 네가 그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 네가 지금까지 죽였던 사람들까지 밝혀질지도 몰라.”
채 씨를 성폭행했던 마을 남자들을 죽인 이야기였다.
“그래도 상관없어.”
“뭐?”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면서 마음 가는 데로 할 거야.”
그 말과 함께 휙 교실을 나가는 린이었다. 윤수는 자리로 가 가방을 멘 다음 빠르게 린을 뒤쫓았다. 그녀가 선생님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꼭 들어야만 했다. 이윽고 린이 교무실로 들어가자, 윤수는 문을 살짝 열어 놓고는 교무실 안을 들려다 봤다.
선생님이 린에게 의자를 건네자 자리에 앉는 그녀였다.
“그래, 채린아.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단다.”
“화장터에서 윤수가 한 말 말이죠?”
“윤수가 말한 거니?”
“네. 그런데 그전에 선생님이 먼저 제 질문에 답변하셔야 해요.”
“?”
민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직감적으로 간단한 질문이 아닐 거란 예상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그곳에 기대 담배를 꺼냈다.
“그래, 질문할 게 뭐니?”
“선생님. 우리 엄마 좋아하셨죠? 근데 왜 배신하셨어요?”
“뭐?”
민환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다시 뗐다.
“엄마가 선생님 얘기를 한 적 있니?”
“네, 아주 오래 전이요.”
민환은 놀라웠다. 이곳에 와서 본 연서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했다니?
“엄마가 그랬어요. 선생님이 도망갔다고.”
“내가?”
“네, 엄마가 알몸으로 선생님한테 갔는데, 선생님이 도망쳤다고 했어요.”
“알몸...?”
민환은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아차 싶었다. 학창 시절 성문에게 납치됐었던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그건 말이다,”
린이 말을 가로챘다.
“그 후로, 엄마가 선생님을 얼마가 기다렸는지 아세요? 제가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때까지 선생님 얘기를 했어요. 민환이 아직 안 왔냐고 하면서요.”
민환은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날 풀숲에서 도망치고 난 후, 민환은 알몸으로 집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민환의 모습을 보고 입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 난 거냐며 당장 학교에 항의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안 그래도 서울로 갈 참이었는데, 잘 됐다며 당장 짐을 싸자고 난리를 피웠다. 민환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채연서에게 말도 없이 전학을 갔다.
민환은 윤수에게 과거 이야기를 할 때 이 부분을 완전히 삭제시켜 버렸다. 평생토록 성문을 증오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지만, 숨기고 싶은 단 하나의 오점이기도 했다.
“...연서가 그렇게 오랫동안 날 기다렸다는 말이니?”
민환은 충격에 담배를 필 힘도 없었다.
“네 적어도 제가 열 살 때까지는요. 저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고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새로운 선생님이 발령 났다. 도시에서 온 남자 선생님이었다. 린은 처음에 그 선생님이 엄마가 그토록 왜 치던 ‘민환’ 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우연히 이름이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집에 찾아오더니, 엄마를 찾았다. 그리고는 도망친 주제에 마치 잊고 있었던 보석을 찾는 것과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엄마는 정신상태가 악화돼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랬구나... 또 연서가 날 기다리고 있었구나...”
민환은 멍한 표정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될 때까지 그녀를 기다리게 만들더니, 이번에도 자신을 기다리게 만든 셈이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20년이라는 세월이었다.
연서는 그때까지 도망간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런데 나는 도망가 놓고는 마치 끝까지 책임을 다하려고 돌아온 사람처럼 스스로를 포장했다. 윤수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을 거 같아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연서의 딸이 의문을 갖는다.
“선생님은 왜 이곳에 다시 오신 거예요? 윤수 아빠가 선생님을 괴롭혔다고 하던데, 선생님도 우리 엄마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친 거잖아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잘했다는 듯이 윤수에게 차갑게 대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
민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다. 마음 같아서는 주저앉고 싶었다. 만약 나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이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며 울부짖고 싶었다.
당시에 내가 느낀 모멸감과 환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게다가 채연서가 알몸으로 나를 위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진짜로 발가벗겨진 기분이라 도망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이 소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선생님이 제게 묻고 싶은 게 뭔지 알아요. 제가 선생님 아내를 죽였는지 궁금한 거죠?”
민환은 마른침을 삼킬 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그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어요.”
린이 에이포 용지를 들었다. 민환이 오늘 아침에 나눠준 유언장이었다.
“만약 제가 선생님보다 먼저 죽게 되면, 저희 집에서 이 유언장을 찾아 읽어 보세요. 그럼 아시게 될 거예요.”
린은 유언장을 들고는 교무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