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유언장

by 송아론

‘우당탕!’


박중구는 뒤로 구른 뒤 배를 부여잡았다.


“서, 성문아 와 이러노.”


“몰라서 물어?”


성문이 손을 들어 올려 박중구의 뺨을 때렸다. 짝!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내, 내는 모른다, 아이가!”


박중구가 겁에 질린 얼굴을 했다.


“그럼 알 때까지 맞아.”


“이자는 하다 하다 아버지 앞에서 아를 패는교?”


성문이 손을 들어 올릴 때였다. 마을 이장이 방에서 나왔다. 성문은 놀랐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교장 선생님도 아시죠? 박중구가 민환이 아내랑 잔 거.”


마을 이장의 눈이 커졌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아노? 산에서 떨어진 것만 본 거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습니다.”


“그런데 경찰한테는 중구 얘기하지 않은 기가?”


“민환이 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이장은 얼굴에 물음표를 달았다. 성문이라면 숨길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말하지 않은지 궁금하시죠?


“이유가 뭔데?”


“민환이 아내가 죽은 건 중구랑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민환의 아내가 죽은 그날, 박중구는 마을 이장 집으로 달려갔다. 느닷없이 민환의 아내가 알몸인 채로 자기 집으로 와 관계를 가졌다는 말이었다. 이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박중구가 또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다. 동창생 아내까지 성폭행한 뒤 산에 떨어트려 죽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목격자인 성문의 진술은 달랐다. 민환의 아내가 집에서 발가벗은 채로 나오더니 실족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라모 진짜 혼자 죽었다는 말이가?”


“네,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다만,”


빠악-!


성문은 예고도 없이 주먹으로 박중구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속절없이 나자빠졌다.


“미친놈아. 거기서 민환이 아내랑 잘 생각을 해? 내가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도?”


“미.. 미안하데이...”


박중구가 엎드린 채로 말했다.


“미안해? 미안한 걸 아는 새끼가 그래?”


짜악-!


성문은 박중구의 머리채를 잡은 뒤 뺨을 때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박중구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이장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가만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내가 오늘 화장터에 가서 최민환한테 어떤 의심을 받았는지 알아? 나보고 자기 아내를 납치한 거 아니냐더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성문이 발길질을 하려고 하자. 이장이 그를 가로막았다.


“니 자꾸 아부지 앞에서 아 때릴 끼가?”


“그럼 애를 제대로 키우시던가요 선생님.”


민환이 이장을 노려봤다.


“중구 여자 죽인지 며칠도 안 됐습니다. 아무리 알몸인 채로 여자가 덤벼들었다지만, 생각이 있는 새끼면 이런 짓 안 하죠. 안 그렇습니까?”


이장의 눈빛도 돌변했다.


“니 지금 뭐라 캤나. 아를 제대로 키우라고?”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옛날에 중구 때린 거 가지고 뭐라 하셨죠? 그런데 때린 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잖아요. 아닙니까?”


“허- 그라가? 알았다. 알았으니까, 때리라 카믄 때려라. 화 풀릴 때까지 때리라. 단 너 절대로 후회하지 마라이.”


“후회요? 제가 이 마을에서 후회할 일이라도 있을 거 같습니까?”


“없제. 그러니까 이리 당당하지.”


성문은 이장과 박중구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내가 죽은 후, 조용히 사려고 이곳을 택한 게 아닌가? 처음에는 한적하니 농사도 적성에 맞아 잘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윤수가 채연서 딸과 친하게 지내고, 박중구가 관여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지금 보니 최민환이 학교에 선생님으로 있는 것도 잘못된 듯했다.


성문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모두가 자신에게 같은 눈빛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중구도, 민환도, 심지어 교장 선생님까지 나를 보는 눈빛이 똑같았다.


벌써 2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못 잊는 건가? 지금부터라도 잘 지내면 되는 게 아닌가?


“이젠 알아서 하십쇼. 저도 참을 만큼 참았으니.”


성문은 손을 털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중구와 이장을 일별 하며 집을 나갔다. 이장이 그런 그를 뚫어 저라 쳐다보며 입을 뗐다.


“니 복수하고 싶지?”


이장은 포기한 듯 말했다.


“이제,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나도 모르 갔다.”


“죽여도 됩니꺼?”


박중구의 눈빛이 달라졌다?


“누구? 성문이? 니가 죽일 수 있을 거 같나?”


“.....”


“아무튼 니 맘대로 해라. 단, 나한테 절대로 피해 주지 마라카이! 알았나?”


“네.”


박중구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성문에 대한 잠자고 있던 본심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


윤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등교를 할 때 린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락방을 내려오자, 안방에서 나왔다.


“응?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난 거냐?”


“아빠는요?”


“난 잠이 안 와서.”


성문은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했다. 윤수가 거실을 가로지르자 성문이 입을 열었다.


“오늘도 린이랑 등교하는 거지?”


“아뇨.”


“아니라고?”


성문이 고개를 돌려 윤수를 쳐다봤다,


“너희 아직 화해 안 한 거냐?”


“화해할 것도 없어요.”


윤수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성문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채연서 딸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아이와 지내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윤수가 씻고 나오자 성문이 요리를 하며 물었다.


“윤수야, 너 말이야.”


“네?”


“학교에서 왕따 당한다는데, 사실이야?”


“전교생이 고작 6명인데, 왕따라고 할 필요가 있나요.”


“어쨌든 애들한테 괴롭힘 당한다며?”


“린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윤수는 정황상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리고 너 왜 민환이 한도 맞았다며? 왜 아빠한테 이야기 안 했어?”


윤수는 옷을 갈아입으려 하다 멈칫했다.


“정말 다 얘기했나 보네.”


“말해봐. 최민환이 널 왜 때린 거니?”


성문이 윤수를 쳐다봤다.


“글쎄요.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성문은 다시 요리를 하며 물었다.


“윤수야. 이건 다른 얘긴데, 혹시 다시 이사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니?”


“이사요?”


“그래, 다른 지방으로 말이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사실 윤수는 모든 것에 지쳐가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들의 괴롭힘도, 선생님과의 갈등도, 예전 같지 않은 린과의 관계도, 모두 부정적인 것만 가득했다.


“좋아요. 아빠가 좋으면 그렇게 하세요.”


그 말과 함께 옷을 마저 갈아입었다.


***


윤수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에서 나왔다. 개울가에서 린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빨리 나온 탓인지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윤수는 고개를 돌려 징검다리를 건넜다.


“이럴 줄 알았어.”


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수는 징검다리 끝자락에 서 있는 그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다시 굳은 표정을 하고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이제, 나랑 같이 다니지 않을 거야?”


“당분간은.”


“왜?”


윤수는 걸음을 멈춰 정말 모르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한마디 하려고 하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숨을 쉬며 빠르게 걷자, 린이 그를 뒤따랐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 당도해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입을 꾹 닫았다.


얼마 후, 조회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에 나타났다. 성태와 상태 쌍둥이가 들어오자, 기찬과 구형석이 뒤이어 자리에 앉았다. 이들은 오늘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윤수와 린을 보고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했다.


“마, 지윤수. 물어볼 게 있는데.”


구형석이 말했다.


“화장터에서 했던 말은 뭐고? 언청이가 선생님 아내를 죽였다꼬?”


윤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 하나? 진짜 돌은 거 아이가?”


“너 들으라고 한 이야기 아니니까 신경 꺼.”


“너?”


구형석이 몸을 윤수에게 옮길 때였다.


“행님. 곧 있으면 선생님 오신다. 이따가 하자.”


기찬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회시간이 되자 칼같이 교실에 들어온 민환이었다.


“모두 어제 화장터에 와줘서 고맙다.”


“아입니다.”


기찬이 대답했다.


민환이 아이들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선생님 아내는 이제 죽고 없다.”


아이들은 숙연한 얼굴을 했다.


“선생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죽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단다. 같이 나이를 먹으면서 살 줄 알았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어.”


민환은 시간을 둔 뒤 입을 뗐다.


“우리 반에는 선생님과 같은 상황에 닥친 학생이 있던데, 구형석.”


민환이 호명하자 구형석이 고개를 들었다.


“너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지? 그때 기분이 어땠어?”


구형석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그냥... 첫째는 당황스러웠고... 둘째는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셨어?”


“산에서 굴러 떨어졌는데요.”


민환의 고개가 윤수를 향했다.


“지윤수. 너도? 엄마가 돌아가셨지? 그때 어땠어?”


“정신병원에 입원한 채로 한동안 계속 악몽을 꿨어요.”


“선생님도다. 오늘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어.”


민환이 주제를 이어 나갔다.


“이렇듯 인간은 말이다. 태어난 순간, 죽음도 같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은밀하게 머물다, 재수 없으면 갑자기 들이닥치지.”


윤수는 그 말에 공감했다. 엄마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은 게 있었다. 죽음이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다가 불현듯 나타났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너희들도 죽음을 준비했으면 한다.”


민환의 말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죽음을 준비한다? 어떻게?


“아주 간단하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고 너희들의 마지막 ‘말’을 쓰는 것이다.”


윤수는 그제야 민환이 왜 화장터 견학을 시킨 지 이해가 갔다.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마지막 너희들의 마지막도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반장, 앞으로.”


“아, 네.”


윤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가자, 민환이 A4용지를 건네주었다.` 역시나 유언장이었다.


“오늘 1교시는 유언장을 쓰는 거다. 이 시간 이후로 너희들은 죽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그 종이에 모두 쓰도록 해라. 이상.”


민환은 그 말을 끝으로 교실을 나갔다. 너희들이 혼자 스스로 생각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의미였다.


윤수는 아이들에게 모두 유언장을 나눠준 뒤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모두 께름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유언장을 써도 되는지 이상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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