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과거와 현재

by 송아론

민환은 옆으로 누운 채로 몸을 말았다.


“왜... 왜 그러는데, 나한테...”


“와 그러긴. 재밌는 놀이 하려고 그러지.”


성문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게임할 끼다. 잘 들어라. 한 번밖에 안 말한다. 알겠제?”


민환은 거의 울 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박중구는 뒤에서 그런 민환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자, 저 반대편 풀숲에 채연서도 니처럼 알몸으로 있을 낀데,”


“뭐라고??”


민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동시에 성문의 손에 채연서 옷가지가 들려 있는 걸 발견했다. 왜 뒤늦게 당도했나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지금부터 30분 줄 끼다. 채연서 찾아가서 이 옷 입혀라. 시간 안에 성공하면 니 승리고, 니 옷도 준다. 근데 실패하면? 집 앞까지 홀딱 벗고 기어가야 될 기다.”


낄낄 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성문은 씩 웃더니 ‘자, 시작!’이라며 채연서의 옷가지를 내던졌다. 동시에 박중구가 카운트를 세는 소리가 들렸다. 민환은 그 목소리가 중구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를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반대편 풀숲으로 가려면 길을 한 번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하교시간이라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다. 다들 발가벗은 내 모습을 보고 소스라칠 것이다. 웬 남자애가 미쳐서 알몸으로 뛰어다닌다고 전교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


더는 얼굴을 들고 학교에 다닐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도 할 건가?


민환은 결국 수치심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채연서가 혼자 공포에 떨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채연서의 옷가지를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풀숲을 헤치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진짜 갈 낀가?”


“야, 엉덩이 봐라.”


“공주님 구하러 가십니까~”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환은 그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풀숲에 숨어 길가를 쳐다봤다. 수많은 학생들이 삼상 오오 모여 하교를 하고 있었다.


너무 많다.


민환은 도저히 길을 뚫고 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 여기를 지나간단 말인가. 앞으로 몸을 내던지려고 할 때마다 뒤꿈치가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너, 최연서 좋아한다며? 좋아하는 사이에 이런 희생도 못하나?”


성문이 민환을 자극했다. 역시 그는 게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나를 전교생에게 창피를 주는 게 목적이었다.


민환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딱 한 번만 결심하면 된다. 눈 감고 지나가는 거다. 민환은 채연서의 옷가지를 꽉 잡은 채 몸을 앞으로 내던졌다.


하지만, 또다시 실패.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온몸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뒤에서 아이들의 핀잔소리가 들려왔다.


“마, 뛸 끼면 확 뛰어 뿌라.”


“아니면 포기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엉덩이 좀 가리라. 냄새난다, 마.”


마치 전염병처럼 한 명이 웃으면 따라 웃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성문은 유일하게 웃지 않았다. 마치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야, 최민환. 포기할 거면 포기한다고 말해라. 그라면 니 옷 줄게. 불쌍해서 더는 못 보겠다.”


그 말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포기’라는 그 단어가 채연서를 향한 자신의 한계를 뜻한다는 걸 민환은 알지 못했다.


결국 수치를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알았다. 나 포...”


“야, 저기 뭐 온다!”


한 아이가 소리치자 아이들이 일제히 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동시에 길거리에서 꺄악 거리는 여학생들의 소리가 들렸다.


“채연서다!”


한 아이가 외쳤다. 정말로 채연서였다. 그녀는 놀랍게도 알몸인 채로 이쪽 풀숲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민환은 믿을 수가 없었다. 연서가 왜?


“아, 넘어졌다!”


한 아이가 말했다.


채연서는 길 중간에서 발을 헛디뎌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동시에 채연서가 들고 있던 옷가지들이 널브러졌다. 민환은 그 옷이 자기 옷이라는 걸 눈치챘다. 내 옷이 왜 저기에...?


민환은 그제야 깨달았다. 성문은 자기 옷을 벗긴 뒤 채연서에게 똑같은 게임을 제안하라고 시켰던 것이었다. 민환은 정신이 없어 자기 옷을 당연히 여기에 있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채연서는 넘어진 채로 꼼작하지 않았다. 하교를 하던 학생들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민환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벌린 채로 풀숲에서 채연서를 바라봤다. 곧 그녀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그리고 얼굴을 들 때,


민환은 채연서와 두 눈을 마주쳤다.


발가벗겨짐.


민환은 알몸인 채로 자신의 몸이 한 꺼풀 더 벗겨짐을 느꼈다. 채연서가 절뚝이며 곧장 이리로 오기 시작했다.


‘안 돼....’


민환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성문에게 패배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대로 뒤로 내달렸다. 부끄럽고 미안해 두려웠다. 채연서가 학기 초에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던 그날, 분명 다짐하지 않았던 가? 누가 뭐래도 이 아이만큼은 꼭 내가 지키기겠다고.


그런데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보호받고 있는 처지였다. 민환은 도망쳤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않아 성문에게 붙잡혔다. 성문은 민환을 넘어트린 뒤 등에 올라타 말했다.


“넌, 이제 남자새끼도 아이다. 알았나?”


민환은 자신의 무기력함에 눈물을 흘렸다.


***


성문은 민환을 괴롭혔던 일을 떠올리던 중, 자기도 모르게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황급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뺐다. 화장터 건물 바깥에 린이 홀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성문은 벤치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네가 채연서 딸이라고 했지?”


“…….”


린은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 예전에 너희 엄마랑 같은 반이었어.”


“그러면 아저씨도 우리 엄마 괴롭혔던 사람이었겠네요?”


“뭐?”


성문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 난.. 뭐 특별히 너희 엄마를 괴롭힌 적은 없단다. 친하지 않았을 뿐이지.”


“정말이에요?”


“그래.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겠니? 윤수랑 친한 거 같던데.”


“네.”


성문은 중간에 음료자판기 쪽으로 걸어가 린에게 사이다를 뽑아 주었다. 그녀는 성문에게 고맙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벤치에 앉은 뒤 린에게 물었다.

.

“다른 게 아니고, 윤수 학교생활 좀 묻고 싶어서. 윤수 학교에서 아이들이랑 잘 지내니?”


“아니요.”


“그래? 아이들이랑 사이가 좋지 않은가?”


“아니요.”


“그럼?”


“우리 왕따예요.”


“....왕따?”


성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들과 친하지 않은 줄로만 알았지 왕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라면 여기에 있는 이 아이도 해당된다는 말 아닌가?


“설마 아이들이 너하고 윤수를 괴롭히니?”


“네. 그래서 싸우고 있는 중이에요.”


“어떻게?”


“말싸움도 하고, 몸싸움도 하고, 얼마 전에는 선생님과도 싸웠어요.”


“민환이랑? 왜?”


성문은 거기에 민환이 왜 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도 잘 몰라요. 윤수가 맞기 싫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심한 말을 하고 얼굴을 때렸어요.”


“...뭐?”


성문은 가면 갈수록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것도 모자라, 민환에게 맞다니.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성문은 가까스로 진정시켰던 감정이 또다시 고조가 되는 걸 느꼈다. 가슴을 손바닥으로 세 번 친 뒤 물었다.


“저기, 아저씨가 하나만 더 물어볼게.”


“네 말씀하세요.”


처음엔 린을 보며 제대로 된 답변이나 들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 반대였다. 경계를 잔뜩 하고 있는 겉모습과는 달리 대답이 시원시원했다.


“아까, 윤수가 했던 말 있잖니. 네가 선생님 아내를 죽였다는 거. 그게 무슨 말이니?”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딱 잘라 말하는 린이었다.


“모르겠다라... 그럼 윤수가 왜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저랑 싸웠으니까요.”


“싸워? 왜?”


“그건 윤수에게 물어보세요.”


성문은 말해달라고 한 번 더 물을까 하다 그만두었다. 잠깐 대화해 본 결과 기면기고 아니면 아니다.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또 요새 부적 예민한 윤수의 학교생활이 어떤지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래, 알았다. 답변 고맙구나.”


“네.”


이번에도 린은 인사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주차된 버스 쪽으로 걸어갔다. 성문은 그 어린 소녀를 보면서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작은 아이가 민환의 아내를 죽였다?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납골당으로 향하는 버스는 우중충하기 그지없었다. 가뜩이나 다운된 분위기에 윤수와 린, 성문과 민환 덕에 더욱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네 사람은 납골당에 고인을 안치한 뒤 다시 집으로 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이 없는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례식 장부터 화장터에 대한 어두운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장난도 치지 않았다.


버스가 마을에 당도하자, 민환은 가장 먼저 하차를 한 뒤 아이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너희들 너무 수고 많았다. 잘 쉬고, 내일 보자꾸나.”


아이들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하차를 했다. 민환은 그 이후에도 조문객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성문에게는 일부로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위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성문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의 뺨을 때렸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까부터 감정이 들쑥날쑥했다.


어색한 기류를 흘리는 건 윤수와 린도 마찬가지였다. 린이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윤수는 못 들은 척했다.


***


성문은 윤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뒤, 곧장 저녁 준비를 했다. 윤수가 보기에는 서두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국을 대피고 만들어 놓은 소시지 볶음을 프라이팬에 달궜다. 공깃밥을 하나만 식탁 위에 놓은 뒤, 찬장에서 약을 꺼내 삼켰다.


“무슨 약이에요?”


윤수는 아빠가 약을 먹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냥, 머리 아플 때 먹는 약이야.”


감정을 가라앉히는 약이었다. 성문은 대충 둘러댄 뒤 반찬들을 식탁 위에 올렸다.


“아빠는요? 저녁 안 드세요?”


“잠깐 나갔다 오려고.”


“어디요?”


“박중구네.”


윤수의 눈이 커졌다.


“거기는 왜요?”


“아참, 내가 말 안 했지?”


“네?”


성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박중구 말이야. 알고 보니까 국민학교 때 아빠랑 같은 반 친구였어. 하도 오래돼서 못 알아봤지 뭐냐.”


윤수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며 눈을 끔뻑였다.


“아무튼 먹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그 말과 함께 신발을 신고 빠르게 바깥으로 나가는 성문이었다.


***


성문은 뛰다시피 했다. 맥박이 아직도 빠른걸 보니 약 효과가 있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었다.


민환이 자신을 의심했을 때는 겨우 감정조절을 했다. 하지만 민환이 윤수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한계를 벗어났다는 걸 직감했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감정을 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박중구였다. 여자를 죽여 자숙해도 모자랄 판인데, 민환의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민환에게 아내가가 박중구 집에 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둘 사이가 복잡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또 실질적으로 중구가 죽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장례식 때까지는 소란을 피우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끝났다.


성문은 박중구의 집 대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 위에 올라가 미닫이문을 두들겼다.


“박중구, 문 열어.”


“성문이가?”


순백한 박중구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문을 열어주자,


“개새끼.”


성문이 박중구의 복부를 걷어찼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8화 성문의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