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은 청산 국민학교에서 소위 통이라 불리는 학생이었다. 학업성적도 우수했고 학급 반장에 체력도 좋아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성문의 하루 일과는 중 하나는 오전에 볼을 차는 거였다. 가장 나약한 애를 골키퍼를 시킨 뒤 바로 코앞에서 있는 힘껏 차 맞추는 게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박중구가 그 역할을 했으나, 성문에게 잘 보여 벗어나게 됐다.
반면 민환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학생이었다. 성적도 평범했고 평범한 아이들과 지냈고,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눈치도 있어서 성문에게 꼬투리를 잡힐 만한 특별한 짓도 하지 않았다. 성문의 무리와 떨어져 지내면서도 적당히 타협하며 성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문의 입장에서는 민환 말고도 괴롭힐 애들은 얼마든지 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성문은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저능아인 채연서랑 붙어 다니자, 모든 아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민환은 그 시점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자기를 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오는 한 일이었지만, 일주일도 안 돼서 아이들이 돌변하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처럼 성문의 굴속으로 자신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성문이 자기를 지켜보는 횟수가 날이 가면 갈수록 많아졌다. 이윽고 완전히 굴 안에 들어왔을 때, 성문이 불렀다.
“최민환. 잠깐 이리 온나.”
“어? 응...”
민환은 긴장한 채로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는 성문에게 걸어갔다.
“니 요새 채연서랑 같이 다니더라.”
“으..응...”
“채연서 좋아하나?”
성문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민환은 그게 오래전부터 자신이 성문을 존중한다는 걸 은연중에 보낸 덕이라고 생각했다.
“대답해 봐라. 좋아하냐구?”
“아, 아이다. 소꿉친구였을 때부터 그냥 좀 친했을 뿐이다.”
“아~ 그래? 그라믄 뭐 그럴 수도 있지. 알겠다, 가라.”
“응...”
민환은 대답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살짝 허리를 숙였다. 성문은 학교 통이면서도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면모가 있었다. 힘 좀 꽤나 쓰는 애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괴팍하기 마련인데 성문은 그러지 않았다. 항상 웃고 다녔으며 한 번도 인상을 쓴 적이 없었다.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대했고, 누군가를 괴롭힐 때도 마치 재밌는 놀이 것처럼 구슬렸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성문은 한 번도 힘으로 아이들을 굴복시키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만들었다. 민환은 그런 성문의 능력이 때론 부럽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성문이 민환에게 말을 걸었다.
“민환아 밥 묵고 축구할래?”
“응. 그래, 알았다.”
민환은 여느 때처럼 성문의 말을 거부하지 않았다. 평소 때보다 밥을 빨리 먹고는 성문에게 보고했다.
“성문아, 나 다 묵었다. 기다릴게.”
“역시, 최민환 마음에 든다 아이가.”
성문이 흡족해했다. 역시 처세술이 뛰어나다는 얘기였다. 성문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중 박중구는 운동장 저 끝에 혼자 서 있었다. 성문이 오라는 손짓을 하자, 작은 박중구가 빠르게 뛰어나왔다.
“어, 성문아. 불렀나?”
“오늘은 최민환이 키퍼 할 거야. 넌 나와.”
“아... 그래? 고맙다.”
민환은 그때까지만 해도 박중구가 왜 고마워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축구를 시작하고는 곧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성문이 슛을 쏘는 족족 몸을 향해 공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공에 맞고 괴로워하면,
“오~ 최민환 골키퍼 기가 막히네. 앞으로 계속 시켜야겠다~”
라며 슛을 쏴댔다. 그러던 중 막판에 공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민환이 손을 내밀자, 엉뚱하게도 명치에 명중이 됐다.
퍼억-!
“악!”
민환은 고통에 배를 붙잡고 무릎 꿇었다.
“야, 최민환 괜찮나?”
성문이 달려오며 말했다. 민환은 컥컥 거리며 호흡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명치가 급소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전 처음 맛보는 고통에 등허리까지 식은땀이 쫙 났다.
“괜찮나?”
“으.. 응...”
민환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거짓말하네.”
“어...?”
민환이 배를 부여잡고 고개를 들자.
“거짓말하지 마라, 새끼야.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기다.”
성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때 민환은 성문의 눈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찍혔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채연서를 좋아하냐고 물어봤을 때, 거짓말을 한 걸 들킨 게 확실했다.
“미...미안하다, 성문아. 잘못했다 아이가.”
“뭐가?”
“그... 니가 며칠 전에 물어봤던 거...”
그때였다. 성문이 고개를 돌려 아이들에게 크게 외쳤다.
“야~ 야들아! 최민환이 채연서 좋아한댄다!”
민환은 아차 싶었다. 성문이 노린 게 바로 이거였다. 아이들에게 내가 채연서를 좋아한다는 걸 공론화시켜 놀림감으로 만드는 것. 민환은 틀렸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
***
아이들의 놀림감이 된 게 그때부터였을까.
채연서와 등하교를 할 때마다 수군덕거리는 건 늘 있는 일이라 참을 만했다. 하지만 친했던 친구들마저도 괜히 툭툭 건드리며 ‘너 채연서 좋아한다며’라고 비웃을 때는 모멸감과 배신감이 극에 달했다.
괴로운 건 채연서도 마찬가지였다. 성문은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도 채연서가 민환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해 여자들이 더 다양한 소재로 채연서를 괴롭힐 수 있게 했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물리적인 가해는 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그리고 더 주도적이고 악착같이 채연서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민환이 여자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건, 언제나 그 뒤에는 성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실에서 항상 먼저 다가왔던 채연서도 어느 순간부터 민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마다 엎드려서 일어나지 않았다. 민환은 자기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 연서가 그렇게 늘 풀 죽어 있는 게 더 마음이 쓰였다.
‘어떻게 해야 이 지옥에서 빠져나 올 수 있을까.’
민환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와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툭. 툭.
누가 또 뒤에서 자신을 건드렸다. 민환이 신경질 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다름 아닌 박중구였다.
“뭐야? 니까지 내 무시하나?”
“아.. 아이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나...?”
박중구는 의기소침한 얼굴로 말했다.
***
“왜, 뭐 때문에 그라는데?”
민환이 학교 옥상에 올라와 물었다. 박중구는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기... 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성문이한테 미안하다 해라.”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학교에서 채연서 좋아하는 애 아무도 없잖아... 선생님들도 걔 신경 안 쓴다 아이가... 그러니까 앞으로 채연서랑 같이 안 다니겠다고 하면, 성문이가 봐줄지도 모른다...”
박중구는 이야기하는 내내 주눅이 들어 있었다.
“너도 그래서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 거가?”
“아니다... 나는 그냥 계속 당하다가, 성문이가 니를 찍은 것뿐이다. 난 얼마 안 있으면 또 괴롭힘 당할끼다...”
박중구는 이미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듯 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민환은 더 웃음이 났다.
“넌 보면 볼수록 진짜 멍청하다. 담임 선생님이 니 아빠 아이가? 그런데 아직도 괴롭힘 당하는 걸 이야기 안 했나?”
“했는데... 때리더라...”
‘봐라.’ 라며 허리춤을 풀더니 바지를 홱 내리는 박중구였다. 민환이 당황하는 사이 그의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왔다.
“뭐꼬? 허벅지는 왜 저라노?”
“아버지가 한 번만 더 그딴 일로 찾아오면 죽인다 캐면서 때렸다...”
우습게도 박중구는 바지춤을 내린 채로 눈물을 펑펑 흘렸다. 민환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가끔가다 눈에 멍이 든 채로 학교에 와 저렇게 심하게 때리면 담임 선생님에게 걸리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박중구를 때린 건 그의 아버지였다.
“알겠다, 알겠다. 이제 바지 입어라.”
“으.. 응...”
박중구가 소매로 눈물을 닦은 뒤 바지춤을 올리려 할 때였다.
“너희 여서 뭐 하노?”
민환은 옥상문 앞에 서 있는 성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야, 박중구. 니 여기서 뭐 하노? 누가 니 맘대로 움직이라 했노?”
“미, 미안.”
박중구는 재빨리 허리춤을 조여 맸다.
“니 울었나?”
“아, 아이다.”
“아이다?”
“....미안. 맞다, 울었다...”
“와?”
“…….”
“와?”
“…….”
박중구가 대답하지 않자, 어이없다며 미소를 흘리는 성문이었다. 성문이 굳은 얼굴로 박중구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게 요새 좀 봐줬더니만.”
“내가 옥상으로 올라오라 했다.”
민환이 말했다.
“왜?”
“이 새끼가 겁도 없이 건드리길래.”
“그래서 맞아서 우는 거가?”
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이 웃으며 박중구를 쳐다봤다.
“새끼야. 누가 니보고 그런 거 따라 하라고 했노?”
“미안.”
벌써 이 짧은 순간에 성문에게 사과를 세 번이나 한 중구였다.
“됐고, 너희 내려가라. 오늘은 여기서 구상 좀 할 게 있으니.”
두 사람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성문은 쉬는 시간 때마다 옥상에 올라갔다. 점심시간에는 웬일로 축구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우르르 옥상에 올라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환은 성문이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의 꿍꿍이를 알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채연서와 집으로 갈 때였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오더니 채연서와 자신을 들고 나르기 시작했다. 채연서는 왼편으로 민환은 오른편이었다.
“왜 그래?! 연서야!”
민환이 소리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여러 명의 힘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민환을 풀밭에 내동댕이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급기야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라, 재밌는 거니까!”
“그래, 시험이라고 생각해라.”
아이들은 낄낄 거리며 민환의 상의와 하의를 잡아당겼다. 단추가 뜯겨 나갔다. 민환은 발가벗은 채로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곧 풀을 헤치고 성문이 나타났다.
“응? 아직도 다 안 벗겼나? 팬티도 벗기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민환은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