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약 1시간가량을 달려 화장터에 도착했다. 장례지도사의 지도에 따라 남성들이 운구를 들었다. 민환이 영정사진을 들고 화장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고인과 마지막 고별의식을 치른 뒤 화장로에 시신이 들어갔다. 가족들은 거세게 불타는 화로를 보며 울부짖었다.
“가현아!”
“안 돼 언니!”
장모는 목 놓아 울다 주저앉았다. 장인어른은 겨우 서 있을 뿐이었다. 처제들은 화로 입구 맨 앞에 선 채로 발을 동동 굴렸다.
아이들은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화로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잘은 보이지 않지만, 고통의 크기를 가족들의 눈물로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윤수는 그 와중에도 맨 뒤에 서 있는 민환을 발견했다. 그는 정자세로 꼼짝없이 서 있는 채였다.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와중에도 홀로 꼿꼿이 선채 눈만 깜빡였다. 윤수는 그런 민환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죽었을 때 내가 저랬었나. 하고 생각했다. 온 가족이 눈물바다가 됐을 때 윤수만이 홀로 돛단배처럼 남겨져 있었다.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밀물인지 썰물인지 헷갈렸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렸으면 눈물이 터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민환도 그래 보였다. 덩그러니 하나의 배가되어 표류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윤수는 린이 뒷짐을 지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민환 앞에 서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들고 말했다.
“선생님.”
민환이 미동도 하지 않자,
“선생님.”
“어...?”
민환이 이윽고 쳐다보자,
“선생님은 슬프지 않으세요?”
린이 물었다.
“뭐라고?”
민환은 린의 말을 못 들었는지 되물었다.
“아녜요, 선생님. 성공이에요.”
민환의 표정을 보고는 홱 돌아서는 린이었다. 민환은 어리둥절한 채로 있다가 린을 멈춰 세웠다.
“잠깐만. 무슨 말이야? 성공이라는 게?”
린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냥 그런 게 있어요. 복수 같은 거,”
눈웃음을 짓는 그녀였다. 민환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야!”
그때였다. 빠르게 달려오더니 두 손으로 린을 강하게 밀었다. 맥없이 뒤로 넘어진 린이었다.
“너 미쳤어? 진짜 미쳤냐고!”
윤수는 린의 몸 위에 올라가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윤수야!”
성문이 소리쳤다. 그는 양팔로 윤수의 몸을 감싸고 린에게서 떼어냈다.
“너, 지금 뭐 하는 뭐 하는 거야!”
“린이 죽였어요. 린이!”
윤수가 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고인의 가족과 학교 아이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아내 린이 죽였다고요. 제가 봤어요!”
윤수는 린을 가리키며 고자질하듯 말했다. 유족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체구가 작은 저 어린 소녀가 사람을 죽이다니.
성문은 유족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성문은 윤수를 들쳐 매고 화장터를 나갔다. 유들은 눈물범벅이 된 채로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민환도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눈을 깜빡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퇴장한 윤수였다.
***
“이 녀석! 너 왜 그러는 거야?”
성문은 화장터 바깥으로 나와 윤수를 나무랐다.
“린이 민환이 아내를 죽였다는 게 무슨 소리야? 어?”
“그때 선생님 집 앞에 있었을 때 제가 봤다고요.”
“뭘?”
“린이 최면 같은 걸 써서 선생님 아내를 미쳐버리게 한 거요.”
“...최면?”
성문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윤수를 쳐다봤다.
“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믿지 않으려면 믿지 마세요. 저도 이제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그 말과 함께 뒤돌아 버스에 탑승하는 윤수였다.
“저 녀석이... 진짜.”
성문은 작게 읊조렸다. 윤수의 말을 들으면 누구나 똑같이 나올 반응이었다. 성문은 한숨을 뱉은 뒤 화장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성문은 대기실에 앉아 있는 유족들 눈을 피해 민환을 바깥으로 불러냈다. 화장이 된 유골함을 돌려받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려가서 담배라도 한대 필까?”
성문이 묻자 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흡연실로 이동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미안해. 윤수가 이상한 말을 해서.”
“아냐. 됐어.”
“재수 씨 화장한 유골은 확인했어?”
성문이 묻자 민환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뼈가 정말 작지 않냐? 나도 우리 아내 유골 보고, 몸이 이렇게 작았나 싶더라.”
“그러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난 지금도 아침만 되면 몇 번이나 아내가 옆에 있다고 착각해. 그래서 웬만하면 안방에서 자지 않아.”
“나도 그러는 게 나을까.”
“처음엔 그게 좋을 거야. 미칠 거 같으니까.”
민환은 성문을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학창 시절 나를 제일 괴롭혔던 녀석이 제일 괴로운 순간 위로를 해준다. 그것도 자신과 똑같은 입장이 되어서. 민환은 담배를 피우며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문아,”
민환이 입에서 담배를 떼며 말했다.
“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뭐가”
“아내 말이야. 왜 옷을 벗고 집 밖으로 나간 걸까?”
“글쎄...”
성문은 담배를 피우며 윤수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때 선생님 집 앞에 있었을 때 제가 봤다고요.”
“뭘?”
“린이 최면 같은 걸 써서 선생님 아내를 미쳐버리게 한 거요.”
성문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담배연기와 함께 윤수의 말을 내뿜었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 마약수사할 때 환각을 보는 애들을 많이 봤는데, 그런 증상이라랑 비슷했달까. 꼭 무언가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어.”
그날 민환은 집에 왔을 때부터 꺼림칙했다. 학교에 다녀오니 서재에 아내의 옷과 속옷이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리정돈이라면 칼같이 하는 그녀가 벌인 짓이라고 할 수 없었다. 거실로 나와 아내를 불렀지만 고요하기만 했다. 현관문 앞에는 신발이 그대로 있었다. 밖에 나가 봐야 하나 초초해하던 중 성문이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민환아 놀라지 말고 들어. 제수씨가 산에서 실족사했어. 빨리 신고해야 해.”
민환은 믿을 수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 한 뒤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한 광경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내가 발가벗은 채로 두 눈을 번쩍 뜨고 생전 처음 보는 형태로 바위에 꽂혀있었다.
민환은 아득해짐을 느꼈다. 휘청거리자 성문이 부축을 했다. 경찰이 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며칠 전에 일어난 성폭행 살인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아내가 죽었다.
왜 아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민환은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처가댁에 연락해 아내의 부고에 대해 알린 뒤 침대에 누워 있자 땅속으로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이 얽히고설켜 자칫하다간 정신이 나가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상주도 처가댁에 맡기고 학교에 갔다. 처가는 아내처럼 배려심이 깊어 그런 민환의 행동을 이해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게 민환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민환은 그렇게 정신없이 수업을 했다. 3일장을 치를 때야 비로소 머리가 조금씩 식기 시작했다. 성문에게 아내가 어떻게 죽은 건지 자세히 물어봤다. 그런데 답변을 들었지만, 답변이라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아내가 집에서 발가벗고 나오더니 헤롱헤롱 한 얼굴로 산에 올라가 떨어졌다?
‘그 말을... 믿으라고...?’
민환은 어이가 없었다.
“나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정말 우연찮게 제수씨를 보고 따라 간 거야.”
성문의 눈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 않았다.
“하....”
민환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곳에 다시 오는 게 아니었다.’
채연서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책임감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파괴된 채였고, 심지어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적어도 그때 돌아가야 했다. 이 버러지 같은 마을과 사회에 백기를 들고 서울로 올라갔어야 했다. 하지만 채연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초조해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 언젠가는 당신을 알아볼 수도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다. 출근할 때마다 도시락을 싸주고 가끔은 반찬을 해서 채연서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 민환은 몰래 채연서 집에 반찬을 몇 번이나 놓고 왔다. 채연서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었던 것은 모두 아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었다.
‘이제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민환은 화장터 흡연실에서 담배 재도 털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성문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꼭 모든 걸 포기한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저기 성문아,”
민환이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어, 말해.”
“혹시 말야, 우리 아내, 납치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성문은 민환의 어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아니, 그렇잖아. 너 예전에 채연서 납치해서 성추행한 적도 있었고, 기억 안 나?”
성문은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환이 성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해. 믿어 줄 게.”
“미친놈.”
“뭐?”
성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놈아. 내가 미쳤다고 제수씨를 납치해? 왜? 무슨 이유로?”
“아니라면 아니라고 하라고 했잖아. 왜 화를 내고 그래. 전과가 있는 사람을 의심해 보는 건 당연한 거잖아. 너도 형사 때 그런 식으로 수사 안 했어?”
성문은 목소리를 높이려 하다 그만두었다.
“지나간 이야기는 하지 말자.”
성문이 담배를 짓이긴 뒤 흡연실을 나가려 할 때였다.
“지나간 얘기? 너한테는 그냥 지나간 얘기인 거야?”
성문이 고개를 돌려 민환을 쳐다봤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성문이 소리치자 주변 사람들 이목이 집중됐다. 민환은 끝까지 침착한 어조로 입을 뗐다.
“어쩌라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너 스스로에게 물어봐야지.”
민환은 담배를 끝 뒤 차가운 눈빛으로 성문을 훑고 등을 돌렸다. 성문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20년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 지금 끄집어내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연결시킨다는 게 어이없었다.
설마 내가 지 아내를 납치하고 죽였다는 말인가?
그런 개 같지도 않은 말을.
성문은 감정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근데 지금에 와서 그 이야기를 꺼내 뭘 한다는 말인가? 피차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가? 성문은 빠르게 뛰는 맥박을 느끼며 화장터 벤치에 앉아 채연서를 납치했던 때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