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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살인(2)

by 송아론

박중구는 있는 힘껏 소주병을 던졌다.


퍼엉-


소주병이 벽에 맞고 폭탄처럼 터졌다. 3병째였다. 방바닥에 유리조각이 산재했다.


“개새끼...”


박중구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에는 경멸과 증오심이 가득했다.


중구는 지숙을 강간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였을 때, 희열을 느꼈다. 내 진정성을 무시하고 모욕한 이들의 파괴된 모습을 보니 카타르시스가 전신을 감쌌다. 꿈틀거리는 남편의 손가락을 보았을 때는 저 부분만 잘라 유리관에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 수감된 순간부터 급격한 우울증에 빠졌다. 무언가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래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같은데 여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살인을 저지른 게 맞지만, 왜 살인자가 되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강간을 저지른 게 맞지만, 왜 강간범이 되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나는 왜 이곳에 온 건가?


박중구는 혼란스러웠다. 수감생활 내내 그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10년 후 출소를 했을 때도 박중구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점과 전과자로 낙인이 찍혔다는 게 의아했다. 교도소에 수감을 할 당시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버림받은 기분이었고,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육자 아들이 살인범이라는 걸 알리기 싫은 건 당연했다. 그래도 면회 한 번쯤은 와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살인을 저지른 후였다. 경찰서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중구입니더.”


“그래, 니 요즘 뭐 하고 사노? 전역하자마자 공장 댕기나?”


“네, 근데 저 교도소에 들어갈 거 같아요.”


“그게 뭔 소리고?”


“저... 사람 죽였심니더.”


“사람? 니 돌았나. 인적사항에 내 이름 박았나?”


“아닙니더… 혼자 산다꼬 했심니더.”


“내 분명 말한다, 내 이름 입밖에라도 꺼내지 마라. 내년부터 교장 하는데 학교에 소문 돌면 죽어삔다! ”


“예... 어무이는 잘 계십니꺼?”


“니미, 어매는 찾지도 마라!”


그 말과 함께 뚝 끊기는 전화였다. 박중구는 어머니를 바꿔달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사실 자신보다 어머니가 더 걱정이 됐다. 불같은 아버지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소식이 궁금했다. 박중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에 있는 공장으로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살기 싫었고, 자신이 없으면 아버지가 화를 내는 일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어머니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하지만 수감 중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장례식도 다 치르고 끝났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정신이 분리되는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 성문에게 맞고, 아버지에게 맞았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걱정하던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그녀는 천성이 유약한 데다 드센 남편을 만나, 중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남편 몰래 맛있는 반찬을 더 주거나, 가끔 용돈을 몰래 쥐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억울하게 이곳에 갇혀서.


중구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내 주변엔 가족도 친구도, 나를 이해해 주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어째서 이런 사람이 되었을 까.


박중구는 늘 그것이 의아했다. 지나가던 남자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 때리고, 여자가 나를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봐 성폭행하고, 만만한 사람에게 접근해 사기를 치는데, 자꾸 찝찝하기만 했다.


그것은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가 아니었다. 꼭 누군가에 의해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너는 살아갈 수 없다는, 낙인이나 세뇌 같은.


실체 하지 않는 그 존재는 박중구를 매번 범죄의 길로 인도했다. 박중구는 그 존재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을 파괴시키며, 함께 파괴되는 자신을 보며 언제쯤이면 이 존재가 나를 놓아줄지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존재가 눈 앞에 나타났다.


말끔한 모습과 건강한 정신, 그리고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모습으로. 아들 한 명을 데리고 마을에 왔다.


중구는 머리가 번뜩였다.


드디어 찾았다! 나를 구렁텅이 속으로 빠트린 남자. 그리고 이 순간까지도 나를 조종하고 있는 남자.


성문이었다.


박중구는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지성문만 죽이면, 이제 모든 걸 끝낼 수 있다. 나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


박중구는 마시던 술병을 얌전히 바닥에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당 창고를 뒤져 장도리를 집어 들었다. 의미 있는 무기였다. 첫 살인을 장도리로 시작했으니, 이것으로 끝마치는 게 예의였다.


그는 슬리퍼를 신은 채 대문을 열고 나왔다. 성문의 집에서 방향을 틀어 린의 집으로 향했다. 성문을 죽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사를 치르고 싶었다. 반항하면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그는 술에 취해 충혈된 눈으로 저벅저벅 나아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장도리로 휘저었다. 이내 린의 집이 보였다. 창호지 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박중구는 성큼성큼 걸어 창호지 문을 덥석 잡았다. 문고리가 걸려 있어 장도리질을 했다. 동시에 채 씨의 비명이 들렸다.


박중구는 신경 쓰지 않고 문을 박살 낸 뒤 안으로 들어갔다. 채 시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보였다.


“채 씨, 미안한데 마지막으로 합시다.”


“아저씨 안 돼요...”


“다시는 올일 없으니께, 자 이리 와봐.”


박중구는 채 씨의 이불을 걷었다.


“아아! 이러지 마세요!”


채 씨가 소리쳤다. 박중구는 눈치를 살피며 안과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딸내미가 있으면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박중구는 바지를 벗은 뒤 채 씨를 안았다.


“채 씨, 그냥 받아들여. 그래야 당신도 편하고 나도 편해. 안 그러면!”


박중구는 장도리로 채 씨의 눈을 강타했다.


“아악! 린아..! 린아...!”


채 씨는 발버둥 치며 갈라지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


박중구는 채 씨를 강간 한 뒤 헐레벌떡 바깥으로 나왔다. 작정하고 벌인 일이지만, 채 씨 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장도리를 들고 길을 빙 둘러갔다. 이젠 본격적으로 성문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약 10분간을 걷고 뛰기를 반복했을까. 박중구는 산에서 누가 내려오는 걸 보고 몸을 숨겼다.


이 시각에 사람이 다닐 일이 없어 의아해할 때였다.


윤수와 린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손을 맞잡고 산비탈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박중구는 천천히 그들을 미행했다. 린이 고개를 돌리자 황급히 몸을 숨겼다.


왜 이들이 이곳에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절호의 기회했다.


아들을 불모로 삼으면 성문을 제거하기가 훨씬 쉽다.


박중구는 두 사람이 헤어지기를 기다리다, 생각을 바꿔먹었다.


여기서 뒤를 쫓는 것보다, 차라리 성문의 집에서 윤수를 납치하는 게 낫겠다는 것이었다.


박중구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조심히 이동했다. 두 아이들 뒤로 움직이자, 린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아냐.”


박중구는 윤수의 집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거실 창문을 통해 성문이 뭘 하고 있는지 살폈다. 거실은 불만 켜져 있을 뿐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외벽을 타고 걸어 안방 쪽 창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창문을 두들기고는 몸을 숨겼다. 반응이 없자 더 크게 두들겼다. 처진 커튼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성문도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 박중구는 다시 거실 뒤편으로 뛰어가 지체 없이 창문에 장도리질을 했다.


와장창-


창문이 박살 났다.


박중구는 점프를 해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안방과 화장실을 열어 성문이 있나 확인했다. 역시나 성문은 보이지 않았다. 안방과 화장실 불을 껐다.


그때였다.


갑자기 현관문 손잡이가 덜컥거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중구는 재빨리 거실 스위치를 찾았다. 잘못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발각이 될 수 있는 상황. 스위치를 찾자, 끼익 현관문이 열렸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불을 껐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빠?”


딸꾹.


박중구는 딸꾹질을 했다.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다.


딸꾹.


“누구세요...?”


윤수는 놀란 얼굴로 뒤로 주춤거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박중구가 윤수의 목을 낚아챘다. 빠르게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 마치 악어가 사슴의 목을 물고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했다.


“니, 지금부터 숨소리 하나 내면 죽인다. 알았나?”


박중구는 윤수의 입을 막은 채 말했다. 윤수는 눈을 크게 뜬 채 가슴을 바삐 움직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놀라움도 잠시,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을 예견했다. 현관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틀림없는 성문이었다. 박중구는 윤수를 데리고 거실 스위치가 있는 쪽으로 몸을 옮겼다.


끼익.


쇳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동시에 헐떡이는 성문의 숨소리가 들렸다. 박중구는 힘을 줘 윤수의 입을 더 세게 틀어막았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경고였다.


성문은 컴컴한 집안을 보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느낌이 좋지 않아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로 올라갔다. 벽에 붙어 조심히 스위치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덜컥.


발에 무언가가 걸려 확인해 보자 손전등이었다.


현관문 앞에 윤수의 신발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손전등이 여기에 떨어져 있다?


누군가가 집에 침입한 것이 틀림없다.


성문은 손전등을 주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손전등을 켜면 앞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스쳐 지나갔다. 성문은 결국 손정 등을 짚지 않았다.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조심스레 움직였다. 혹여나 자신을 덮칠까, 거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을 뻗어 거실 스위치를 켰다. 형광등이 세 번 깜박였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오판이었다.


스위치를 킨 쪽에서 물체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보인 순간 맞았고,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다시 물체가 날아왔다. 범인의 얼굴도 보였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며 윤수의 다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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