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성문은 신음을 흘렸다. 두통이 몰려옴과 동시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시계 반향으로, 그러다 반 시계 반향으로, 소용돌이에 빠진 것 마냥 몸이 돌았다. 결국 밀려오는 두통에 구토를 했다.
“우.. 우웩ㅡ”
토사물이 다리에 쏟아졌다.
“와, 어지럽노?”
박중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토까지 싸 제끼는 거 보이 억수로 어지러운갑다, 그제?”
성문은 한 번 더 헛구역질을 한 뒤 눈을 떴다. 점성으로 보이던 시야가 서서히 초점이 맞춰졌다. 박중구가 앞에서 쭈그려 앉은 채 웃고 있었다.
성문은 고개도 가누지 못한 채 눈동자를 들어 윤수를 찾았다. 박중구 뒤, 거실 맞은편에 윤수가 묶여 있었다. 손발이 묶인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중구는 씩 웃더니 고개를 돌려 윤수를 쳐다봤다.
“아, 니 애비 일어났다. 다행이제?”
“중구야....”
성문이 얼굴을 부르르 떨며 입을 뗐다.
“우리 애 풀어줘... 둘이서만 이야기하자...”
박중구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그건 내가 정한다. 와 니가 신경 쓰노?”
박중구는 거실 한가운데를 서성이며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이윽고 성문을 보며 입을 뗐다.
“성문아, 내 머릿속이 억수로 복잡한 거 아나?”
성문이 대답하지 않자 그가 이어 말했다.
“지금 어떻게 해야 네가 제일 괴로울지 고민하고 있다 아이가.”
윤수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
“니 아를 이걸로 좀 두들겨 패면 열이 받겠나?”
중구가 장도리를 들어 올리자 성문이 눈을 부릅떴다.
“주, 중구야.”
“근데, 니 아가 무슨 잘못이고? 그치?”
중구는 장도리를 거둔 채 다시 거실 한가운데로 섰다.
“근데...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니한테 뭐 잘못해서 맞은 건 아니지 않나?”
성문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윤수가 앞에 있었다.
“중구야, 미안하다. 옛날 일은 사과할게.”
“뭔 소리고! 내가 언제 너더러 사과하라 했노! 니 엊그저께 만해도 내 패지 않았나!”
성문은 입을 꾹 닫았다.
박중구가 성문 앞으로 걸어와 쭈그려 앉았다.
“니, 어떻게 할래? 사실 내가 니 오늘 죽이려 했거든? 근데 망치로 머리 깨다 보니까 이건 아닌 거 같더라. 시발 나는 몇십 년 동안 괴로움에 발버둥 쳤는데, 니만 한순간에 가는 건 아니제.”
성문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네가 뭘 해도 받아들일게. 그러니까, 내 아들만, 아들만 풀어줘.”
“아까부터 뭔 소리고! 니 고통에 니 아도 포함된다!”
그러더니 뒤로 돌아 윤수에게 걸어가는 중구였다. 그는 묶인 채로 있는 윤수에게 발길질을 했다.
“주, 중구야! 그만해 알았어!”
박중구가 출혈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발, 빨리 말해라. 니 어케 할래? 어떤 식으로 뒤질래?”
“날 패... 내까 옛날에 너한테 그랬던 거처럼 날 패...”
“그래? 그러면 이리하면 되지?”
박중구는 윤수의 멱살을 잡고는 그의 얼굴에 뺨을 날렸다.
짜악-!
윤수의 입술이 터져나갔다.
“윤수야...!”
성문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수는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마치 넋이 나간 듯, 혹은 이 모든 것을 외면하려는 것처럼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자, 또 어떻게 하까? 말해 봐라.”
성문은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말 좀 해봐라. 이번에는 니 좋아하던 옷 벗기기 게임이라도 할까?”
성문은 고개를 쳐들어 중구를 올려다봤다.
“중구야,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그러니까 한 번만...”
“한 번만이 어딨노!”
박중구가 윤수를 쳐다봤다.
“니 지금까지 애비가 형사인 거 자랑스러웠제? 근데 저 새끼가 어떤 새끼였는지 아나?”
윤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 새끼야 말로 흉악 범죄자였다! 애새끼들 패는 것도 모자라 성희롱하고 옷 벗기고. 그게 한 둘인 줄 아나! 내가 니 나이 때 수도 없이 당했다 아이가!”
“그래서요.”
윤수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요? 전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아저씨 마음대로 하세요.”
박중구가 코웃음을 쳤다.
“마음대로 해? 니 그 말 감당할 자신 있나?”
“네. 어차피 아저씨나 아빠나 다 똑같은 병신들이니까 하고 싶은 데로 하세요.”
순간 정적이 일어났다. 성문은 물론 박중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병신? 니 지금 뭐라 했노. 병신이라 켔나?”
“두 번 듣고 싶으세요?”
윤수가 눈을 치켜들어 중구를 쳐다봤다. 중구는 그때 처음으로 가슴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윤수야.. 그러지 마... 다 아빠 책임이야. 그러니까...”
“아빠 책임인 거 알아요. 아니까 제가 대신 벌 받고 있는 거잖아요.”
성문은 윤수의 눈빛을 보고는 입을 닫았다. 윤수의 눈에는 자신을 향한 많은 말들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해석하지 않아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니 내가 채 씨 네서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애 새끼가 좀 이상하더라.”
박중구는 말을 마치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식칼 꺼내 들었다. 화장실에서 수건을 하나 가져오더니 가로로 길게 접었다.
“내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애새끼한테 병신 소리 나 듣고, 니도 내도 좋을 거 없네. 안 그런가?”
성문의 눈이 움찔거렸다. 박중구가 무얼 하려는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그는 윤수에게 걸어가더니 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내, 니가 어려서 봐주는 기다? 아저씨 원망 말그레이.”
중구는 수건으로 윤수가 앞을 보지 못하게 묶었다.
“중구야, 너...”
“새끼야, 넌 좀 닥쳐라. 애 새끼 말고 니가 죽는 거니까 닥치라고.”
성문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박중구는 뚜벅뚜벅 걸어와 성문 앞에 섰다. 윤수는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무슨 일 이 일어날지 묻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성문아, 이제 나 그만 괴롭혀도.”
박중구가 칼로 성문의 복부를 찔렀다.
푹-
“흐읍!”
성문은 억지로 신음을 삼켰다. 윤수에게 고통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씨발, 굵어서 그런가 들어가지도 않네.”
박중구는 욕을 내뱉은 뒤 성문의 복부에 들어간 칼을 두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과도를 들고 나왔다.
“내는,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으니까, 니는 감사한 줄 알아라. 알았나?”
박중구가 과도를 높이 쳐들어 성문의 목을 찔렀다.
똑똑.
박중구는 1cm가량 성문의 목을 찌른 채 고개를 돌렸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야.
민환의 목소리였다. 박중구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흔들리더니 금세 반짝하고 빛났다. 망설임 없이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민환인교.”
박중구가 말했다. 민환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박중구가 성문의 집에 있다는 사실 따위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이후, 처음으로 말을 섞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민환이 마을에 이사를 왔을 때도, 중구는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것은 민환도 마찬가지였다. 중구가 강력범죄자라는 사실이 그를 더 기피를 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추억을 나눌 거리가 없었다. 하나같이 들추기 싫은 치부뿐이었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 그것이 더 선명하게 떠올라 괴롭기만 했다.
그런데 그런 박중구가 내 이름을 부른다.
학교 옥상으로 자신을 불러낸 후, 20년도 더 지난 후에서야...
“민환이 아닌교?”
-어...중구야...중구 맞지?
“무슨 일로 왔나?”
-아... 성문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둘이 있던 거야?
“응. 들어 올 기가?”
-그래.
민환은 대답을 하면서도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박중구가 성문의 집에 있다는 것도 이상한데, 맞이하는 사람도 중구다?
철컥.
박중구가 잠긴 문을 열었다.
“들어와라.”
민환은 박중구의 옷을 보고는 동공을 확장했다. 피로 범벅이 된 그의 옷을 보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성문이 칼에 찔린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보이는 윤수의 모습.
“윤수야!”
민환은 윤수에게 걸어갔다. 동시에 쿵! 하고 문이 닫히더니 박중구가 문을 잠갔다.
“오랜만이다 민환아.”
“중구야 너...”
“보다시피 이런 상황이다. 당황스럽제?”
민환은 거실에 떨어진 장도리와 중구가 들고 있는 칼을 번갈아 봤다.
“중구야.. 죽이려는 거야?”
“그라제. 지성문이 이사 왔을 때부터 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니가 얼마나 성문이를 싫어 한지 알아... 그래도 이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살인은 아니다. 그 말하려고 하나?”
민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로는 중구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도 니는 다행인 게 뭔지 아나?”
중구가 이어 말했다.
“니 그때 벌거벗은 채 도망간 다음 전학 갔을 때, 내는 니 진짜 걱정 됐거든? 완전 인생이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근데 웬걸 선생이 돼서 나타났네? 게다가 결혼까지 하고? 말은 안 했지만 진짜 부러웠던 거 아나.”
민환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중구에게 뭐라고 해야 이 행각을 멈출 수 있을지 몰랐다.
“민환아 내 너한테 잘 못 한 거 하나 있는데 나중에 말할게. 용서해도. 내는 이미 이렇게 생겨먹어서 이젠 자생이 안 된다 아이가.”
민환은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아내가 죽기 전 중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민환이 이도 저도 못한 채 어물쩍거리자 중구가 입을 뗐다.
“이제 그만 가라. 니 이사 오고 난 후 한 번도 얘기하지 못해서 들어오라고 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 나가도.”
민환은 성문이 자신의 배에 찔린 칼을 빼낸 걸 목격했다. 이를 악물고 배에 찍힌 칼을 흔들어 뺀 뒤, 뒤로 묶인 손으로 칼을 잡고 있었다.
민환은 망설이다 입을 뗐다.
“중구야... 다시 생각하자.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
“원래?”
“그래 기억 안 나? 내가 채연서 때문에 괴롭힘 당할 때 네가 옥상으로 불렀던 거. 나를 걱정해 줬던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내가? 내는 기억 안 나는데?”
민환은 중구의 말이 사실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너무나 오래된 일이었고 중구에게는 중요한 기억이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기억으로 인해 자각해만 하는 것이 있었다.
“네가 옥상에 나 불러서 채연서랑 같이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선생님들도 다 걔 싫어하니까 같이 다니지 말라고."
민환은 20년도 더 지난 일을 떠올렸다.
***
“저기... 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성문이한테 미안하다 해라.”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학교에서 채연서 좋아하는 애 아무도 없잖아... 선생님들도 걔 신경 안 쓴다 아이가... 그러니까 앞으로 채연서랑 같이 안 다니겠다고 하면, 성문이가 봐줄지도 모른다...”
“너도 그래서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 거가?”
“아니다... 나는 그냥 계속 당하다가, 성문이가 니를 찍은 것뿐이다. 난 얼마 안 있으면 또 괴롭힘 당할 끼다...”
“넌 보면 볼수록 진짜 멍청하다. 담임 선생님이 니 아빠 아이가? 그런데 아직도 괴롭힘 당하는 걸 이야기 안 했나?”
“했는데... 때리더라... 아버지가 한 번만 더 그딴 일로 찾아오면 죽인다 캐면서 때렸다...”
중구는 바지춤을 풀고 울면서 말했다. 허벅지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
민환이 중구를 보고 입을 뗐다.
“그때, 내가 어떤 생각했는지 알아? 사실 처음에는 너처럼 멍청한 애는 없다고 생각했어. 이젠 너까지 날 동정하는 존재가 됐다면서 속으로 널 무시했어.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 그 시절 유일하게 나를 생각했던 사람은 너밖에 없었다는 걸.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중구야. 누구보다 용기 있고, 따뜻한 사람이야. 지금까지 아무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중구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삼켰다. 우습게도 옥상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드디어 징역살이를 할 때 머리를 맴돌던 의문들이 해소되었다.
나는 원래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 거 같은데,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살인을 저지른 게 맞지만, 왜 살인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강간을 저지른 게 맞지만, 왜 강간범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그 답이 비로소 해소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본연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성문의 괴롭힘으로 인해, 성문의 지배하에 의해 그것을 잊고 있던 것이다.
중구가 칼을 떨어트리며 입을 뗐다.
“맞다, 민환아. 내 이제 기억났다. 내 원래 이런 사람 아니지? 그지?”
“그래 중구야.”
“잠시 잊고 있었다. 내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잊고 잊었어!”
중구는 천장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마치 작위적으로 태어난 자신을 위해 작위적인 웃음을 짓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문이 손발에 묶인 줄을 풀더니 박중구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