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by 송아론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면. 그런데 이 소리가 사실 소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내게 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내가 잘못된 것일까, 이 소리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들은 말야, 백악기 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너희들보다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


마룻바닥 가장자리. 더듬이를 까딱거리는 녀석이다. 녀석은 이렇듯 나를 볼 때마다 항상 자신들이 인간보다 우월한 종족임을 과시한다. 화장실로 들어가자 문지방을 타고 올라간 녀석이 다시 내게 속삭인다.


“너희 어머니 말이야. 우리들을 끔찍이도 싫어하더군. 대체 그 이유가 뭐야?”


녀석들의 미적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 눈높이가 맞춰진 녀석을 보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듣지 못했던 것들을 듣기 시작하고 있다. 어찌 보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은 것이리라. 하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그저 미쳐가고 있을 뿐이다.


정신병이란 흔히들 선천적이나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 일어나는 병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론 어느 날 갑자기 미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술에 뻗어 잠에 취해 있을 때 나를 깨운 건 어머니가 아니라 침대였다.


“어서 일어나게. 해가 벌써 중천에 떴다고.”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자 나를 진료 한건 의사가 아니라 그의 금테 안경이었다.


“다들 눈이 어두워서 그래. 그래서 귀도 어둡지.”


멍하니 그의 안경을 보고 있자, 의사는 내게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외에 나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어머니에게 이 말을 하자 그녀는 매일 같이 집에만 틀어박혀 게임만 하더니 드디어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구분 못하냐며 내게 핀잔을 줬다. 하긴, 이 나이 이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컴퓨터를 켜 인터넷을 한다. 온라인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이고, 우주처럼 끊임없이 팽창한다. 아마도 나중엔 우주보다 더 광활해지지 않을까?


나는 마우스를 클릭해 한 기사를 본다. 자신을 나무란 어머니를 둔기로 내려쳐 죽였다는 학생 이야기다. 그는 어머니를 죽인 것도 모자라 품에 있던 돈과 카드를 빼내 태연히 피시방에서 게임을 했다고 한다.


“소설 같은 이야기네.”


컴퓨터가 말한다. 저런 학생은 똑같이 죽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려 강제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핑- 하는 비명과 함께 컴퓨터가 눈을 감는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학생은 왜 엄마를 죽인 걸까? 심리학에서는 살인이든 뭐든 사람이 하는 행동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학생이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이유는? 편안히 게임을 하기 위해? 어머니 돈을 훔치기 위해? 나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 거실로 나온다. 학생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 위해서다. 거실을 살피며 학생이 엄마를 죽이는 데 사용했을 법한 도구를 찾는다.


“쯧쯧쯧…….”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다 나를 보고선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혀를 찬다. 일도 안 하고 매일같이 집에 처박혀 뭐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해 베란다에서 공부함 박스를 찾는다. 당시 학생이 썼을 거라 예상되는 연장인 쇠톱 집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 어머니의 목을 본다.


“너의 어머니는 세상볼쩡을 너무 모르셔.”

쇠톱이 윙윙 거리며 말한다.


“용서해라.”

드라마에서 부모가 무릎을 꿇고 주인공에게 용서를 빈다.


편안하게 백수생활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키나 할까. 나는 할 수 없다며 쇠톱을 가지고 밖으로 나간다.


“날이 많이 어두워졌지?”


저녁이 땅바닥에 들러붙어 말한다. 나는 무심히 걷다 한 호프집에 들어간다. 약속된 장소고 조금 늦었을 뿐이다.


“어서 오세요.”


알바생이 인사를 건넨다. 그러다, 내 왼손에 들려 있는 쇠톱을 보고 흠칫한다. 나는 알바생에게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한다. 알바생은 그러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한쪽 테이블에 나를 안내한다. 나는 자리에 앉고서는 주위를 둘러본다. 약 40평 남짓 되는 공간. 하하 호호. 남자와 여자의 웃음소리. 허허, 껄껄, 인생의 무게를 단 중년의 소리가 들린다. 그 수많은 소리들 중에서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이상한 사람이 면접 보러 왔는데요.”


그 말을 들은 사장이 양복을 입은 채 내게 걸어온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툭, 하고 수첩을 책상 위에 던진다.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서른셋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처음이라고 말한다.


“다른 알바는요?”

나는 아무것도 안 해봤다고 한다.


사장이 눈살을 찌푸린다.

“경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쇠톱이 내 손에서 윙윙거리며 말한다.


“그 나이에 이런 일을 하겠다는 게 이상한 거지.”

호프집 생맥주 기계가 침을 튀기며 참견한다.


나는 그의 주둥이 앞에서 맥주를 담고 있는 알바생과 눈이 마주친다. 알바생은 나를 보고서는 시선을 급히 다른 곳으로 돌린다. 나는 사장에게 경력은 없지만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냥 다른 일 찾아봐!”

생맥주 기계가 내 말을 자른다. 그 타이밍에 맞춰,


“다음을 기약하죠.”

사장이 말한다.


나는 쇠톱을 집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말한다.


“제가 왜 안 된다는 거죠?”

“그야, 경력이 없으니까...”

“구인 글에는 그런 말 없었잖아요!”


나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친 뒤 맥주 기계에게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의 뒷덜미를 왼손으로 잡고 주둥아리를 쇠톱으로 자르기 시작한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맥주 기계가 침을 흘리며 말한다.


“다 너 때문이야!”

나는 오른팔을 빠르게 도움닫기를 한다.


쓰싹쓰싹쓰싹!

맥주 기계 주둥아리가 서서히 갈려진다.


“어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사장이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알바생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한다. 그 순간 댕강, 주둥아리가 잘려나간다. 맥주 기계가 피를 토하듯 맥주를 쏟는다. 사장, 손님, 알바생, 모두가 숨죽이고 나를 바라본다.


“하아... 하아...”


나는 거친 호흡을 하며 맥주 기계 주둥아리를 땅바닥에 던져버린다. 제발 좀 입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호프집을 빠져나간다.


***


“공기가 많이 차갑지?”

바람이 말한다.


“겨울이니 그럴 수밖에….”

내가 말한다.


바깥은 어느새 꽁꽁 언 상태고, 나는 오늘도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함에 환희를 느낀다. 동시에 이게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대로 집으로 가기에는 무언가가 아쉽다. 그렇다고 딱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날 사람도 없다. 친구들은 다 취업했다. 결혼해 애까지 낳은 녀석들도 있다. 그들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누구랑 대화를 해야 하는 걸까? 소리들은 그저 내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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